Academy’s Genius Swordmaster Chapter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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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녀올게

#S02

사람이 너무 놀라면 굳는다는 말이 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나름 일리가 있는 표현이다.

극광 아래에서 기습 키스를 당한 아데샨이 그랬고 옛날에 동아리 활동 계획서를 건네받던 바렌이 그러했다.

지금도 아셀 그 쪼다는 내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면 벼락에 맞은 것처럼 마비되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 표현에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머리카락이 쫙 펴질 정도로 충격을 받더라도 내 손만큼은 언제나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사란테.”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사란테를 보고 굳어지거나 환영의 포옹을 하는 대신 검을 휘둘렀다.

칼날은 이파리 한 장 간격을 두고 사란테의 목 앞에서 정지했다.

“·······”

검에는 브리기아의 피가 묻어 있었다.

자연스레 뿌려진 핏방울이 그의 목에 튀었다.

꽤 섬뜩한 경험일 텐데도 늙은 엘프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를 마주보던 내가 천천히 검을 내렸다.

“진짜네요. 저번처럼 환상인 줄 알았는데.”

“저번이라뇨?”

“그런 일이 있었어요. 만나서 기뻐요 사란테.”

“저도 기쁩니다. 반응을 보니 틀림없는 로난 님이군요.”

사란테가 웃었다.

서글서글한 미소가 향수를 자극한다.

요상한 옷차림만 빼면 모든 것이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바이디안 산맥의 신전에서 직접 내린 차를 대접해 주던 그 엘프가 맞았다.

“내가···묻고 싶은게 굉장히 많은데요.”

다만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사란테는 아직 돌멩이 상태로 굳어 있었다.

네뷸라 클라지에와의 전쟁이 끝나고 잠깐 내 앞에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란테가 아니라 외모를 변화시킨 세니엘이었다.

게다가 브리기아는 분명 내 손으로 목을 쳐낸 여자였다.

살아있을 리가 없다.

부슬비가 내리던 바이디안 산맥에 묻고 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사란테가 주억거렸다.

“이해합니다. 헌데 가능하다면 제가 요약해서 설명드려도 될까요? 시간이 얼마 없어서 말이죠.”

“시간이 없다고요?”

“네. 저는 고작 몇 분 뒤면 원래 있던 시간대로 퇴출당하거든요. 브리기아가 말려드는 바람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저도 이맘때의 로난 님과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당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사란테는 손수건으로 목에 묻은 피를 차분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말뜻을 되새기던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설마 댁이 미래에서 왔다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이해가 빠르시군요.”

“골때리네 진짜. 증명할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로난 님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우선 이걸 보시겠습니까?”

사란테는 품에서 웬 구체를 꺼내들었다.

주먹만한 덩어리의 표면에는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파아앗!

글씨들이 하얀 빛을 발하더니 구체 위로 입체적인 영상이 떠올랐다.

“무슨···!”

“디디칸 공업사의 신제품이지요. 미래에 벌어진 일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겨운 이름이 언급됐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도저히 현실이라 믿기 힘들었다.

참상을 지켜보던 내가 간신히 입을 뗐다.

“···그러니까 이게 미래라고요?”

“그렇습니다. 로난 님.”

“농담하는 거라면 당장 그만둬요. 지금이라면 코뼈 부러지는 정도로 봐 줄 테니까.”

“저는 이런 걸 유머 소재로 삼을 만큼 짖궃지 못합니다.”

사란테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나도 알면서 물어봤다.

이런 걸 보면서 낄낄거릴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시선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영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 꺄아아아악! 도망쳐!

– 기관포 사격 개시! 다인하르 여단이 올 동안 버텨라!

도시가 공격받고 있었다.

대로변에 솟아난 마천루와 네온사인이 세월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날개 달린 거인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 엘키네스가 형을 집행한다.

–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빛의 창이 내리꽂힐 때마다 거대한 폭발이 작렬했다.

반구형의 역장이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미래의 병기로 무장한 군대가 필사적으로 항전하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새하얀 옷을 입은 광신도들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칼자루를 잡아당길 뻔했다.

낙지처럼 희멀건 대머리들은 틀림없이 그 침략자들이었다.

이 별의 사람들이 죽을 똥을 싸가면서 멸절시킨 놈들.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놈들을 멸종시켰다.

종족의 근원이 되는 힘을 손수 파괴함으로서 놈들에게 붙들려 있던 영혼까지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시간대의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느덧 영상이 끝났다.

구체의 빛이 사그라짐과 동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사란테.”

“네. 로난 님.”

“미래의 나는 뭘 하고 있는데 코빼기도 안 비치죠? 아데샨이나 아셀 슐리펜은?”

“그건·······”

사란테가 말꼬리를 끌었다.

한참이나 내 눈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대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떨구었다.

모진 심문에도 비밀을 지키려는 스파이처럼.

거대한 추가 내 심장 위로 떨어졌다.

“설마.”

“···아직은 다 무사하십니다. 당장 저를 과거로 보낸 것도 아셀 님과 에르제베트 님이고요. 다만 이 상태가 길어진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네. 우리는 중과부적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놈들의 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어요. 심지어 이번에는 구원자 님도 안 계시니····”

사란테가 침음을 흘렸다.

나는 미래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구태여 더 캐묻지 않았다.

진실을 들었다가는 평정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씨발.”

머리가 어지러웠다.

구역질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행복했던 나날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나는 마루에서 아데샨의 무릎을 벤 채 누워 있었다.

오른쪽 귀가 배에 착 붙어 있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발로 차는 것이 느껴지냐 물었다.

아직 태동이 찾아올 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 거 참 안 들린다니까.

– 그래도 귀를 좀 기울여 봐. 혹시 알아?

– 지금 발차기를 하면 그건 아기가 아니라 괴물이지.

그 뒤에는 예비 부모의 단골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 이름은 뭘로 지을 건지 둘 중에서 누구를 더 닮았으면 좋겠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걸로.

나는 수다를 떠는 중간마다 아직 부풀지 않은 배꼽에 입을 맞추었다.

아데샨은 간지럽다며 키득거렸다.

“후우···후욱···!”

숨 쉬기가 어려웠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 둘 중 누구도 행복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을 방법은 없어요?”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온 거고요.”

“그거 잘 됐네요. 어서 말해줘요.”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평소보다 묵직했다.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린 내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몸이 폭발해 버릴 것 같으니까.”

“······!”

사란테가 움찔거렸다.

찰나 숲이 흔들리나 싶더니 수천 마리의 새가 홰를 치며 날아올랐다.

내려앉은 적막.

식은땀 한 방울이 사란테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지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조금만 진정해 주시겠습니까?”

“네? 아아.”

나는 그제야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음을 알아챘다.

심호흡을 몇 차례 하자 살기가 가라앉았다.

나는 면목 없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안해요. 애새끼처럼 굴었네.”

“아닙니다. 오히려 저를 이 시간대의 로난 님에게 보내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란테가 웃었다.

온화한 얼굴은 어느새 땀으로 절여져 있었다.

살기에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로난 님. 평행세계라는 개념을 알고 계십니까?”

평행세계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아셀과 대화를 나누었던 주제였다.

“···대충은 들었는데요.”

“아하 그렇다면 설명이 빠르겠군요. 방금 보신 거인들은 모두 평행세계에서 넘어왔습니다.”

“예?”

“저희 세상과 닮은 평행세계는 총 3개가 존재합니다. 전부 네뷸라 클라지에에 의해 멸망했거나 멸망한 예정인 세계들이죠. 그곳들과 이어지는 문이 열렸습니다.”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심층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란테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 가정한 뒤 질문을 건넸다.

“···좋아요. 평행세계는 그렇다 치자고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세 개에요?”

“간단합니다. 아내분께서. 그러니까 아데샨 님이 회귀를 세 번 하셨으니까요.”

“뭐라고요 씨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벽돌로 머리를 후려맞았는데 험한 말을 안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황스러우시겠지요. 당연히 모두가 아는 정보는 아닙니다. 아데샨 님은 이번 네뷸라 클라지에의 침공이 벌어지고 나서야 원인 규명에 협조하기 위해 자신이 회귀자였음을 밝혔습니다. 당대의 석학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그런 결론이 나왔죠.”

“그럼 아셀이 했던 말이 진짜였던 거에요? 시간을 되돌리면서 세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평행세계로 넘어간다고 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정확히는 아데샨 님이 회귀를 할 때마다 평행세계가 창조된 겁니다. 그 분은 목숨을 잃음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거기로 이동해서 새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네뷸라 클라지에를 타도하는 인생을요.”

“내 어이가 없어서···그게 진짜였어?”

나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요 근래 나를 괴롭히던 망상이 진실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아데샨이 사라진 세상에 구원 따위는 없었다.

버림받은 세계는 해변에 떠밀려 온 고래처럼 숨을 껄떡이며 머지않아 찾아올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었거나.

사란테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평행세계에는 아데샨 님이 안 계실 겁니다. 돌아가신 뒤의 세상이니까요. 로난 님이 해주셔야 할 일은 세 개의 평행세계를 돌면서 미래와 이어진 균열을 파괴하고 아카샤를 찾아 척살하는 겁니다.”

“아카샤?”

“그러고 보니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이번 사태가 벌어진 만악의 근원이죠.”

사란테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표표하던 눈동자에 증오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미래에 나타난 재앙. 역사상 최초로 평행세계를 조작할 수 있는 마법사입니다. 그 외의 마법에도 능통하고요.”

“듣기만 해도 미친 새끼 같네. 그거 아셀도 못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메이지 아셀과 에르제베트는 대부분의 마력을 쥐어짜낸 끝에 저를 과거로 보내는 데 성공하셨지만 끝내 평행세계는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카샤가 아니라면 균열에 진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죠.”

사란테가 이를 악물었다.

아카샤인지 뭔지 하는 놈한테 유린당한 것이 어지간히도 분한 듯했다.

나는 칼자루를 톡톡 두드리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놈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평행세계를 오가면서 차원을 잇는 균열을 마구잡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재앙이죠. 별 전체가 공격받고 있는 미래에는 놈을 잡으러 갈만한 인재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명을 과거로 보낼 수 있었으면 그냥 아카샤가 헛짓거리를 하기 전에 교화하거나 죽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놈의 정체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봐도 불가능했습니다. 저희가 아카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그가 상상하기 힘들 만큼 강력한 마법사라는 것 뿐입니다.”

사란테가 입술을 질겅였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재앙의 싹을 자르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은 아카샤의 목적은커녕 정확한 외모까지 모르는 채였다.

언제나 전신 로브에 가면을 쓰고 다니는 아카샤는 말 그대로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시간대가 안 맞는거 아니에요? 아카샤는 미래의 인물이잖아요. 잡아 죽이고 싶어도 만나는 것 자체가 안 될거 같은데.”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평행세계니까요. 그곳은 우리 세상과는 다른 별개의 시간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사란테는 현재나 미래 어느 시점에 진입하든 평행세계의 시간대는 일치할 것이라 했다.

복잡한 설명이 이어졌고 나는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아카샤라는 놈의 머리통을 날릴 수 있느냐 없느냐 뿐이었다.

“저희는 아카샤를 최대한 평행세계로 몰아넣겠습니다. 힘든 일이겠지만 로난 님은 통발에 갇힌 놈을 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 더럽게 큰 통발이네.

이제 대충 알겠네요. 아카샤가 아니면 못 들어간다 했으면서 굳이 나를 찾아온 건 세상을 잇는 균열도 마법의 일종이기 때문이죠?”

“정확합니다. 오직 로난 님만이 할 수 있는 양동 작전이지요. 미래의 로난 님이 미래 세계에 나타난 균열을 파괴하고 거인들을 막는 동안 지금의 로난 님은 평행세계의 균열을 파괴하시면 됩니다.”

“알아들었어요. 그러면 어서···음?”

나는 말을 잇다 말고 미간을 좁혔다.

어째 사란테의 몸이 좀 투명해진 것 같았다.

까맣게 그을린 브리기아의 시체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몸이 왜 그래요?”

“아아···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요. 서두르죠.”

그렇게 말하며 사란테는 웬 작은 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안에는 피처럼 붉은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건 저희가 극적으로 입수한 아카샤의 피입니다.”

“뭐야 시발. 진짜 피였어요?”

“네. 아카샤는 자신의 피를 촉매로 평행세계와 이어진 균열을 개방합니다. 아주 지독한 마법이죠. 피가 어딘가에 닿는 순간 균열이 열리니까요. 놈은 온 세상을 누비며 자신의 피를 뿌려 대고 있습니다.”

아카샤의 피는 공기와 닿는 순간 차원 균열로 변모한다고 했다.

원리를 알아낸 마법사들은 시타와 흡혈귀들의 협조를 받아 혈액을 얻어냈다.

균열로 변하기 직전의 혈액을.

“정말 힘들게 얻었습니다. 시타 씨가 대활약을 해 주었죠. 간신히 균열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양입니다.”

“잠깐. 그거 막 열어도 되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사란테는 병뚜껑을 열었다.

병 안에 머물던 피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퍼지나 싶더니 눈앞의 공간 위로 새하얀 실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실금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어느 순간이었다.

콰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효과와 함께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균열이 나타났다.

천천히 점멸하는 균열 내부는 찬연한 백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로난 님. 당황스러우실 겁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신가 싶겠죠.”

사란테가 말했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더 투명해진 채였다.

몸 뒤편으로는 숲의 풍경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잘 알고 있네요.”

“이런 선택을 한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미래의 사람들은 오직 이 무렵의 로난 님만이 세상을 구해낼 수 있는 열쇠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내 팔자가 그렇죠 뭐. 그 시간 없는건 알겠는데 딱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음? 무엇이죠?”

“미래는 정말로 바뀔 수 있나요?”

진지한 질문이었다.

사란테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깐 벙쪄 버렸다.

그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앞머리를 쓸어넘긴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냥 대답하지 마세요. 안 듣는게 낫겠어.”

“하지만····”

“어차피 의미도 없는 질문인데요 뭘. 중요한 건 당신이 내게 부탁을 했다는 거죠.”

두 번의 삶을 살면서 변하지 않는 신조였다.

해야 하는 일은 한다.

거기에 대해 쓸데없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일을 할 뿐이었다.

사란테의 입가에 조금은 슬픈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 나에게 내밀었다.

“제 옷을 가져가시지요. 특수 처리를 해 놔서 저처럼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뭐야 작별 선물이에요?”

받아드는 순간 코트는 투명해지는 것을 멈추고 원래의 밀도를 되찾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시 정리할게요. 목표는 균열의 파괴와 아카샤를 죽이는 것.”

“그렇습니다.”

“원래 세계로는 어떻게 돌아오면 되죠?”

“제가 드린 코트 안주머니에 아카샤의 피가 담긴 병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잘 간수하고 계시다가 일을 마친 뒤 개봉하시면 됩니다.”

코트를 뒤적여 보니 과연 같은 병이 하나 더 있었다.

관리에 깊은 주의를 요해야 할 듯했다.

이게 깨졌다가는 말 그대로 좆되는 거니까.

“혹시 평행세계에 제가 살아 있다면 꼭 찾아가 보세요.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명심할게요.”

뒤를 돌아보자 어둠 팽배한 숲이 보였다.

나를 찾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 걸 봐서 아셀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참 슬플 것 같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바꾸려다 행복한 현재를 잃어버리다니.

“별 거지 같은 일이 다 일어나는군.”

그럼에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셀과 에르제베트는 나 말고 누구도 못 하는 일이라 판단했기에 사란테를 여기로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친구들을 믿는 것.

그리고 친구들이 믿는 나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사란테에게 받은 코트를 걸쳤다.

밤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이 시타의 날개를 연상케 했다.

원단을 좋은 걸 썼는지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가볍네요. 좋은데?”

“다행입니다. 미래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하긴 짊어진 것이 무거운데 옷이라도 가벼워야지. 잘 입을게요.”

사란테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목소리가 숲 속에 메아리쳤다.

“미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균열과 마주섰다.

재촉이라도 하는 건지 점멸하는 간격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후우····”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걸음을 내딛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멈춘 곳은 아데샨이 머물고 있는 필레온 방향이었다.

나는 아내가 될 사람과 그녀의 뱃속에서 꿈꾸고 있을 생명을 향해 인사를 보냈다.

“다녀올게.”

그리고 걸음을 내디뎠다.

이 너머의 세계가 아주 좆같지만은 않기를 바라면서.

새하얀 균열이 나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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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s Genius Swordmaster

Academy’s Genius Swordmaster

Score 8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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