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59. 검과 별(4)
#A59
“흐아아아암···아빠 뭐 해여?”
“이릴?”
이릴이 하품했다.
마당에서 뒷짐을 진 채 서성이던 카인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똑 닮은 새하얀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온 그가 딸을 안아들었다.
“왜 자다 말고 나왔니?
악몽이라도 꿨어?”
“우웅 화장실 가고 싶어서 깼어여.”
이릴이 눈을 부비적거렸다.
눈꺼풀에는 아직 졸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카인이 미소지었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이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보물이었다.
사랑스러운 딸을 보고 있자면 아벨에게 복부를 꿰뚫린 고통마저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어서 들어가 자렴. 아직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르구나.”
“네에에···그런데 아빠 왜 울어여?”
“응?”
“눈에서 비가 내리고 있어여.”
카인은 황급히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투명한 눈물이 줄줄 새나오고 있었다.
턱까지 흘러내리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소매로 얼굴을 문질러 닦은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왜 이런담.”
“아파여? 아니면 안 좋은 일 있어여?”
“아니. 그럴리가 없잖니. 우리 이릴과 함께 있는데.”
“울지 마세여···아빠 울면 나도 슬퍼여.”
이릴이 훌쩍거렸다.
옛날부터 그랬다.
남이 우는 걸 보면 자기도 괜히 따라 슬퍼지고는 했다.
잠시 침묵하던 카인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릴. 너는 참 착한 아이란다.”
“쿨쩍···네에?”
“그 힘을 물려받은 게 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야. 곧 태어날 네 동생도 마음씨가 고와야 할 텐데 말이지.”
“힘···?”
이릴이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인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고운 마음씨 때문에 곤란을 겪을지도 모른단다. 세상이 너를 힘들게 할지도 몰라. 그때는···”
그 뒷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
“그때 아버지가 운 이유를 추리해 봤는데요 아마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어머니와 저희 남매를 두고 떠나야 했던 것을.”
이릴이 설핏 웃었다.
그녀는 여전히 앞장서서 심야의 산길을 걷고 있었다.
따라가던 슐리펜이 끄덕거렸다.
“그렇군요. 구원자님과 그런 일이 있었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구원자의 과거 이야기를 이렇게 들을 줄은 몰랐다.
늘 함께 지내면서도 그녀가 초월적인 존재의 딸이라는 사실은 곧잘 잊어버리고 만다.
이릴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부모님도 두 분 다 계셨고 모두 저를 사랑해 주셨죠. 그때는 세상이 저를 힘들게 할 거라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카인과 카샤는 좋은 부모였다.
이릴은 두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누구보다 밝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친절했고 동네 또래는 모두가 친구였다.
문제는 카인이 떠난 후에 벌어졌다.
정확히는 어머니마저 로난을 낳고 돌아가셨을 때부터.
“뭐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요.”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억일수록 더 선명한 법이다.
소망을 이뤄주는 힘이 발현되기 전.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선하지만은 않던 시절의 이야기.
****
“왜 왜 그러는 거야 잉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았잖아····”
“너 이제 고아 됐다면서. 애미애비도 없는 주제에 우리랑 어울리려 들어?”
잉게가 킥킥거렸다.
또래에 비해 유달리 덩치가 큰 그녀는 님버튼의 아이들을 주름잡는 골목대장이었다.
이릴은 잉게와 그 패거리에게 둘러싸인 채였다.
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붙들리고 말았다.
등에 멘 포대기 안에서는 막 옹알이를 시작한 로난이 잠들어 있었다.
“아니야! 나 아빠 있어!”
“병신년아. 버리고 떠났으면 그게 없는 거지. 이래서 부모 없는 애들은 안 돼.”
“맞아. 하나같이 대가리가 꽃밭이라니까.”
곁에 있던 악동들도 함께 비웃음을 흘렸다.
그들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릴과 어울려 놀던 또래들이었다.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얼굴 좀 예쁘다고 설치기나 하고.”
“나 나는 그런 적 없는데····”
“웃기지 마! 옆 마을 빌헬름이 고백했는데 찼다면서!”
잉게가 뻭 소리를 질렀다.
다시 생각해도 열불이 치솟았다.
빌헬름은 그녀가 일 년이 넘도록 짝사랑한 소년이었다.
이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취향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게 왜?”
“뭐 뭐가 어째? 아아···!”
“잉게!”
잉게는 뒷목을 잡으며 휘청거렸다.
곁에 있던 소녀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고 고아년이 주제를 알아야지. 취향이라니?!”
“하여튼 재수없어. 오늘 완전히 묻어버리자!”
다른 소녀들 역시 이릴을 증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짝을 모조리 그녀에게 빼앗긴 탓이었다.
짝사랑하던 아이는 물론 자신과 사귀고 있던 아이도 모조리 이릴에게 홀려서 떠나갔다.
물론 이릴은 연애 따위에 관심이 없었기에 결국에는 모두가 상처만 받고 끝났다.
거칠어진 호흡을 고른 잉게가 고개를 내저었다.
“후우우···됐어. 닥치고 이릴 시장에서 산 거 다 내놓고 가. 물론 돈도.”
“시 싫어···이건 로난이 먹을 거란 말야. 돈은 줄 수 있어도 이건 안 돼.”
이릴이 보따리를 끌어안았다.
안에는 이유식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바가지를 잔뜩 쓰며 산 음식이라 절대로 뺏길 수 없었다.
잉게가 소리쳤다.
“이 계집애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려? 저거 당장 뺏어!”
“좋았어!”
악동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꼭 굶주린 하이에나 떼 같았다.
이릴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주먹을 휘둘렀다.
“꺄아악! 하지 마!”
“커억!”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놈이 나가떨어졌다.
거진 2미터를 날아간 몸뚱이가 바닥에 뒹굴었다.
팔다리가 뻣뻣하게 펴진 채 경련하는 꼴이 감전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
“뭔···!”
“주 죽은 거 아냐?”
악동들의 얼굴이 굳었다.
눈 먼 주먹에 맞은 가슴이 음푹 파여 있었다.
싸움을 잘 해서 나름 동네에 이름이 알려진 놈이었다.
“무 무슨 힘이 뭐 저렇게 세? 한 번에···힉.”
뭐라 말하려던 잉게가 얼어붙었다.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이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악동들 중 누구도 그녀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이릴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음에도 아름다웠다.
꽉 쥐어진 주먹을 본 잉게가 헛숨을 들이켰다.
“자 잠깐···”
“내 동생 건드리지 마!”
이릴이 메인 목소리로 외쳤다.
동생은 건드릴 생각도 없었다 항변하려 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뻐어억!
혜성처럼 날아든 주먹이 잉게의 안면에 처박혔다….
“누야. 으에엥!”
“옳지옳지. 배고프죠? 누나가 얼른 맘마 만들어 줄게요~”
늦은 귀가를 한 이릴이 웃음지었다.
그녀는 울어제끼는 로난을 요람에 눕힌 뒤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식재료는 지켜냈지만 돌아가신 엄마가 사 준 원피스는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채였다.
“···있죠. 사람들은 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요.”
이릴은 탁 풀린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얼굴에 한 방 맞은 잉게는 그대로 오줌을 지리며 기절했다.
악동들에게 두 번 다시 괴롭히지 않겠다는(정확히는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지만 그녀의 가슴은 찢어질 것처럼 아프기만 했다.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요. 다정하게 남을 대하면 안 되는 걸까요. 왜 아프게 하는 걸까요.”
비단 잉게 패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떠나신 뒤로 이런 부조리한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카인의 말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홀로 남은 소녀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한 곳이었다.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임기응변을 하고 있다지만 나쁜 어른들까지 본격적으로 꼬여들기 시작한다면 분명히 한계가 찾아올 터였다.
그녀가 로난을 돌아보았다.
“우갸?”
“에헤헤.”
로난이 갸웃거렸다.
곰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워낙 사나운 눈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안 귀여운 아기도 드물 거라 놀렸지만 이릴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동생일 뿐이었다.
“저는 제 동생이 너무너무 좋아요.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로난도 나중에 이런 일을 겪을 거라 생각하면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창문 너머로 밤하늘이 보였다.
어머니가 쉬고 계실 하늘이 아버지를 비추고 있을 별빛이 주홍빛 눈동자에 담겼다.
“그러니까···누군가 거기 있다면 들어 주세요.”
창틀에 몸을 걸친 이릴이 두 손을 모았다.
고사리 같은 손바닥이 겹쳐졌다.
중얼거리는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제 동생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만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어요.”
****
“네! 여기까지에요! 엄~청 재미없었죠?”
이야기를 마친 이릴이 손뼉을 쳤다.
여운에 잠겨 있던 슐리펜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아닙니다. 귀중한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헤헤 고마워요.
아직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거든요. 흐아 엄청 부끄럽네 이거.”
이릴은 화끈거리는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로난에게도 아직 해 준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조금 힘들었어요. 어린 여자애 혼자서 동생을 기르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아버지가 돈을 꽤 남기고 가셨지만 거의 다 금화라서 쓰기도 어려웠죠.”
카인의 불찰이었다.
이릴이 혼자 남게 될 것을 상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어린 소녀가 들고 다니기에 금화는 너무 큰 돈이었다.
“조금 뜬금없었어도 이해해 주세요. 그냥···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이 힘들었던 일을 들으면 의지를 다질 수 있더라구요. 아아 저 사람은 저런 역경을 겪었는데도 잘 버티고 있구나! 하면서.”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응응.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는 사실 그때도 행복했거든요. 힘들었기는 했지만 어쨌든 로난이 곁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 곁에는 저랑 아리아가 있잖아요.”
이릴이 웃었다.
뒤를 돌고 있음에도 그 웃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슐리펜은 말없이 입술을 짓씹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심하군.’
고작 검성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에 너무 많은 폐를 끼쳤다.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축내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걱정시켰다.
슐리펜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아. 도착했어요!”
이릴이 등산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등불로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슐리펜은 앞을 바라보았다.
나무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탁 트인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
“오느라 고생했어요. 여기가 바로 제가 가장 아끼는 비밀 장소에요.”
슐리펜의 눈이 커졌다.
이릴은 벙쪄 있는 남편의 손을 끌어당겼다.
바위가 듬성듬성 솟아나 있는 공터는 산의 정상에 어울리지 않게 넓고 평평했다.
그들은 공터 중앙에서 멈춰섰다.
이릴이 양 팔을 활짝 펼쳤다.
“하아아아···! 높아서 그런지 공기도 맑네요. 별이 참 잘 보이죠?”
“···네. 그렇군요.”
슐리펜이 끄덕였다.
밤하늘 저 멀리 별의 대양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체는 모두 과거로부터 온 빛이었다.
어느 때보다 선명한 은하수와 성운이 왜 이 장소가 이릴의 보물인지 말해 주고 있었다.
“저는 힘이 들 때마다 여기 왔어요. 아무 돌 위에나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람들이 선해지기를 동생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상냥해지기를 빌었죠. 그런데 세상에. 어느 날부터인가 진짜로 사람들이 착해지기 시작했어요!”
끊임없는 기도는 기어코 카인의 저주를 뚫었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점차 선해져 갔고 더는 악의로 남을 대하지 않았다.
소망을 이룬 댓가로 이릴은 잠이 좀 늘어나게 됐지만 성취해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당신을 위해 기도할께요. 제 남편 슐리펜 데 시니반 그랑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검사가 되기를 빌면 될까요?”
“아 아니오. 그러지 마십시오 부인. 강함은 제 스스로 성취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또 다시 몸을 축낼 거잖아요. 집에도 잘 안 돌아오고. 저랑 같이 있는 시간도 적어지고.”
이릴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눈빛에서는 걱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슐리펜이 다급하게 손사래쳤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저는 방금 깨달았습니다. 검성의 자리는 단순한 이상향일 뿐인데 저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더 중요한 걸 소홀히 하고 있었습니다.”
“흐응 그게 뭔데요?”
“부인과 아리아의 행복입니다. 로난과 했던 맹세는 검성이 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비록 제가 미진해서 검성이 되지 못하더라도 저는 영원토록 당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슐리펜이 이릴의 어깨를 붙잡았다.
확 가까워진 얼굴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검푸른 눈동자를 응시하던 이릴이 눈웃음쳤다.
“땡. 틀렸어요.”
“네?”
“당신의 행복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잖아요. 우리 가족의 행복이라 정정해 주세요. 하여튼 당신은 너무 다른 사람만 생각한다니까.”
“······부인.”
“에헤헤 그래도 거의 다 맞췄어요. 그럼 제가 원래 하려 했던 대로 기도할게요. 거기서 가만히 지켜보고 계세요.”
이릴의 두 손이 가지런히 모아졌다.
소망을 구현화하는 권능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세상 자체를 뒤바꿀 만큼 강력하지만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권능이.
화들짝 놀란 슐리펜이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릴은 벌써 기도의 첫 구절을 읊은 뒤였다.
“우리 가족이 앞으로도 쭉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느끼는 행복만큼.”
“······!”
“로난과 했던 당신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아요. 당신은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나를 우리의 보물인 아리아를 지켜줄 테니까. 세상의 누구보다 당신을 믿어요.”
또 하나의 소망이 빌어졌음에도 이릴은 잠들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 당연한 일에는 대가가 필요없는 법이다.
눈을 뜬 이릴이 슐리펜을 올려보았다.
“그때 나한테 사랑한다 말해 줘서 고마워요. 저는 지금 태어나서 제일 행복해요.”
“나는····”
슐리펜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부옇게 변한 눈앞을 손으로 쓸어내릴 뿐이었다.
이릴은 조금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울어요. 이 좋은 날에.”
“저도 잘···모르겠습니다.”
“아이 참. 이리 와요.”
이릴이 슐리펜을 끌어안았다.
아리아가 잠깐 잠에서 깼지만 눈만 부비적거리더니 이내 다시 잠들어 버렸다.
슐리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릴이 배시시 미소지었다.
“별빛이 아름답네요. 음악은 없지만 춤이나 출까요?”
이릴이 손을 내밀었다.
슐리펜은 머뭇거리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더는 검성이 되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영광입니다.”
슐리펜이 주억거렸다.
별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두 사람을 축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슐리펜은 이 날의 별빛 아래에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