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 중원을 가로지르다(5) >
연소교 일당을 아는 사람이 나와 이병룡만은 아니었다·
남만행에서 중간에 우리와 합류했던 남궁소소 독고완 탁중로도 놀란 눈을 치켜떴다·
그때는 분명 삼뇌가 이끄는 천마성교의 잔당들을 상대로 함께 싸우며 도망쳤는데 지금은 반대로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밖에·
그러고 보니 연소교 일당에게 납치돼 남만의 무총으로 끌려갈 때 삼뇌가 이끌고 온 대병력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불현듯 그때 엿들었던 삼뇌와 연소교의 대화가 떠올랐다·
“네가 백골시마의 제자더냐?”
“선배님을 뵙습니다·”
“선배라 감히 허락할 수 없는 호칭이구나· 앞으로는 군사부주님이라 부르거라·”
“저희는 천마성교의 교도가 아닙니다만·”
“매화 나무에 열리는 것은 결국 매실일 수밖에 없는 법· 네가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다· 이제 그만 운명을 받아들이거라·”
“진작에 가지를 꺾어 다른 곳에 옮겼습니다·”
“옮겨 심었다고 매화 나무에 살구가 열린다더냐?”
결국 그렇게 된 모양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그녀가 삼뇌의 수하가 되었든 첩이 되었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다만 마공비급을 찾는 걸 얼마나 열심히 도와주었는데 이제 와서 은혜를 화살로 갚다니·
연소교는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삼뇌의 곁을 지키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수하들인 설표 산노 우숙 야차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숫제 나를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삼뇌에게 조금 전 하려다가 만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못 본 사이 인재들을 많이 얻으셨습니다·”
“저들은 본래 우리 쪽 사람들이었느니라·”
“하면 지난날 제가 본 이들은 배교자들이었겠군요· 조심하십시오· 한번 사람을 문 개는 반드시 다시 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설혹 몇 자 정도 썩은 곳이 있더라도 그 나무가 벽오동이라면 목수는 이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법이다·”
“하기사 이미 폐허가 된 절간인데 서까래 보수에 썩은 나무 몇 개 섞어 넣기로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천마성교는 반드시 새롭게 재건될 것이다·”
“기왕에 재건하시려면 그 복잡한 족보부터 좀 정리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들 마교도라고는 하는데 누가 어느 쪽 편인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요·”
“내가 네 놈의 아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로구나·”
어쭙잖은 말로 도발을 하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은 삼뇌의 반격에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래서 늙은 생강은 함부로 깨무는 게 아니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이갑룡과 을룡과 병룡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킨 후 다시 삼뇌를 보며 말했다·
“인사는 이쯤 하면 된 것 같군요·”
“앞불을 놓는 건 훌륭한 작전이었다”
“화공으로 저희를 모조리 태워 죽이려 한 것이야말로 무서운 한 수였습니다· 그 시각에 바람이 바뀔 줄을 어떻게 알고 준비를 하셨는지요?”
“풍운의 조화를 어찌 한두 마디 말로 설명하리· 그저 하늘의 뜻인 줄 알거라·”
“천마성교의 군사다운 말씀이시군요·”
“싸움을 멈춘 이유가 무엇이더냐?”
“병법에 이르길 다 같이 죽을 때까지 하는 싸움이야말로 어리석은 장수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듣는 말인데?”
“이 정도면 서로의 어깨는 충분히 견주어 본 것 같으니 애꿎은 목숨들 그만 희생하고 주장전으로 승부를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항복을 하겠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이기고 있었습니다만·”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중이었겠지· 그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 정도 안목은 있을 거라고 보는데·”
나는 한 손을 들어 오른쪽 바위 뒤에서 호시탐탐 도약을 노리는 사내를 찌르듯이 가리켰다·
그러자 ‘억!’ 소리와 함께 사내가 갑자기 제 목을 붙잡고는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넘어갔다·
그 옆의 사내와 다시 그 옆의 사내도 차례로 가리켰다·
그때마다 두 사람 모두 앞선 사내와 똑같이 목을 붙잡고 쓰러져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마혈을 짚인 것도 같고 어찌 보면 독(毒)에 당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듣도보도 못한 신기에 마교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쪽 일행들도 크게 술렁거렸다·
나는 오연하게 서서 삼뇌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만약 제가 여길 내려가면 단언컨대 지금 정상을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고수들 전부 선배님을 지키는데 전력을 쏟아야 할 겁니다·”
“창룡후의 경파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 나이에 벌써 격공섭물을 익혔구나· 하지만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암기를 출수하는 정도에 불과한 모양이지?”
비격쌍뇌창을 썼으니 암기가 맞기는 맞다·
다만 그것을 출수한 수법이 공력에 바탕을 둔 격공섭물이 아니라 선천오법의 염동술이라는 것이 다를 뿐·
이런 사정을 모르는 마교도들은 그제야 내 수법이 사술이 아님을 알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애써 지웠다·
그래도 께름칙함은 남았던지 앞줄에 선 자들은 매우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당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독과 암기로 사천을 제패했지요·”
“내 오늘 너에게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 주겠노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삼뇌가 사인교에 앉은 채로 한 손을 쭉 뻗었다·
손에는 어느새 황동으로 만든 요령이 들려 있었다·
땡그렁!
엄청난 요령 소리가 창공 저 높은 곳까지 메아리치며 울렸다·
흡사 구름 속에서 천둥이라도 친 것 같았다·
지난날 천마성교의 아홉 술법사들이 흔들어 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산 정상에 있던 표사들 전부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괴로워했다·
때그렁!
또다시 요령 소리가 울렸다·
상대적으로 내공이 약한 십여 명의 표사가 코피를 쏟아내며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중에 둘은 독고완과 탁중로였다·
나도 요령 소리가 울릴 때마다 고막이 얼얼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요령을 무기로 썼을 뿐 이건 마공이 아니었다·
요령 소리에 내공을 담아 멀리 떨어진 상대의 상단전과 중단전에 타격을 가하는 순수한 음공이었다·
도대체 내공이 어느 정도여야 이런 경지가 가능한 것일까?
‘저 영감탱이가 다리까지 성했으면 큰일 났겠구나!’
그랬다면 단숨에 산 정상으로 올라와 주변을 초토화해버렸을 것이다·
서둘러 비격쌍뇌창을 출수했다· 다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이백 년의 공력을 담아냈다·
삼뇌는 실로 무시무시한 인간이었다·
여태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더욱이 가공할 속도로 날아오는 청동빛 작은 바늘을 들고 있던 요령으로 정확히 후려친 것이다·
따캉!
요령이 굉음을 내며 박살 나버렸다·
삼뇌의 왼쪽 뒤에 있던 한 사내의 이마에서 피가 실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요령을 박살 낸 비격쌍뇌창이 살짝 방향을 꺾으면서 사내의 이마를 뚫고 들어가 박힌 모양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삼뇌의 무공에 나는 속으로 크게 당황했다·
본래부터 지닌 무공을 펼칠 기회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연소교가 가져간 목함 속 마공을 익혀 갑자기 강해진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삼뇌도 나 못지 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덧붙여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는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철각(鐵脚)!”
“존명!”
삼뇌의 호출에 별호와는 달리 황새 다리를 가진 철척 장신의 사내가 훌쩍 튀어 나왔다·
가슴에는 커다란 싸리나무 광주리를 매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인교 위의 삼뇌를 번쩍 들어다가 그 광주리에 척하고 담았다·
가슴 위쪽은 드러나고 아래쪽은 보이지 않는 것이 광주리는 삼뇌의 몸에 맞춘 것처럼 꼭 들어 맞았다·
그리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광주리보다는 사인교가 훨씬 잘 어울리십니다·”
“닥쳐라!”
삼뇌는 어느새 가늘고 기다란 쇠사슬의 양 끝에 커다란 표창이 매달린 무기를 꺼내 들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저걸 쌍두표(雙頭鏡)라고 부른다·
“매번 네 놈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 내 오늘만큼은 기필코 네놈과 네놈이 호송 중인 해남파의 장문인을 죽여 천마성교를 막아선 대가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노라·”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주장전으로 가자고 했잖습니까· 여긴 장소가 좁은 듯하니 제가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수하들을 조금만 옆으로 물려 주시지요·”
“내가 올라갈 것이다· 날벼락을 맞게 하지 않으려거든 표사들을 멀리 치워라·”
그러면서 황새 다리가 산 정상을 향해 신형을 쏘려했다·
나는 얼른 길목을 막아서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무슨 수작이냐?”
“뭐가 말입니까?”
삼뇌의 눈동자가 갑자기 쪼그라들었다가 어느 순간 크게 확대되었다·
그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군!”
“무슨 말씀이신지·”
“연소교!”
“하명하십시오·”
“산 정상으로 올라가 해남파의 장문인과 사형제들이 있는지 확인해라· 어서!”
“존명!”
연소교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수하들과 함께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신공을 펼쳤다·
삼뇌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까지 할 사람처럼 보였다·
이에 맞서 남궁소소 독고완 탁중로 서호삼견이 일제히 도검을 꼬나쥐며 길목을 막아섰다·
연소교와 그녀의 수하들 역시 중간쯤에서부터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저들의 무공 수준을 익히 아는바 이대로 격돌하면 우리 쪽 희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두 물러나세요!”
내가 명령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적들이 우리 진영을 휘젓고 다니도록 놔두라고 하니 이상할밖에·
나는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했다·
“이미 늦었으니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세요·”
삼뇌는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을 알고 일부러 연소교를 올려보낸 것이다·
그렇게 약을 올리고 흥분을 시켰는데도 이런 계산을 하는 그의 침착함과 노련함이 놀라울 뿐이었다·
이윽고 연소교 일당이 산 정상에 도착했다·
연소교가 나와 마주 보고 서 있는 사이 그녀의 수하들은 뿔뿔이 흩어져 엽초풍과 일행들을 찾기 시작했다·
연소교는 내 뒤쪽으로 도열해 있는 표사들을 한 명 한 명 눈으로 확인했다·
백칠십여 명은 얼핏 보기에 많은 숫자인 것 같아도 그 속에서 아는 얼굴 하나를 찾아내는 건 간단했다·
그가 열세 살가량의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라면 더더욱·
아마도 연소교는 수일 전에 이미 멀리서 엽초풍과 그의 일행을 보고 얼굴을 익혀 두었을 것이다·
잠시 후 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가운데 정상을 사방으로 휘젓고 다니던 그녀의 수하들이 돌아왔다·
설표가 대표로 보고했다·
“바위는 훤히 드러나고 나무는 모조리 타버려서 숨을 만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땅을 판 흔적도 없고요·”
“내려간다·!”
연소교는 편의를 봐주어 고맙다는 한마디 없이 수하들과 함께 다시 경신공을 펼쳐 아래로 훌쩍 뛰어 내려갔다·
그녀가 삼뇌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삭이자 안 그래도 쭈글쭈글한 삼뇌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산 아래쪽으로부터 한 사람이 경신공을 펼치며 화살처럼 빠르게 달려 올라왔다·
그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삼뇌에게 서둘러 보고했다·
“한 무리의 고수들이 기습해 척후병들을 쓰러뜨린 후 말을 훔쳐 타고 달아났습니다· 한 명은 경신공이 출중한 자인데 산 아래에 매어두었던 말 일천 필의 고삐를 죄다 끊어 쫓아버리는 중이고요·”
“그게 무슨!”
마교도들 전부가 뒤돌아 들판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고삐 풀린 말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십여 명의 무인들이 말을 타고 신나게 달아나는 중이었다·
다시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는 이십여 명의 마교도들이 말을 타고 맹렬하게 추적 중이었고·
삼뇌의 왼쪽에 있던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십리경을 눈에 붙이고 앞서 달리는 자들을 살폈다·
연소교도 품속에서 십리경을 꺼내 살폈다·
잠시 후 장한과 연소교가 동시에 십리경에서 눈을 뗐다· 장한이 한발 먼저 삼뇌에게 보고했다·
“해남파의 장문인과 제자들입니다·”
다시 뒤돌아 나를 올려다보는 삼뇌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번에야말로 크게 흥분한 그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말했다·
“어떻게 빼돌린 것이냐?”
“산 중턱에 계곡의 가장자리가 무너져 내리다 만 곳이 있더라고요· 불길이 올라오는 한 식경 동안 이걸 양손에 끼고 죽어라 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품속에서 흙이 잔뜩 묻은 혈응조 한 쌍을 꺼내 삼뇌가 요령을 흔들 때처럼 앞뒤로 까딱 까닥 흔들어 보였다·
“혈응조만으로 그걸 팠다고?”
“잘 모르시겠지만 현 도화곡주이신 저의 사저께서 제게 두 가지 무공을 전수해 주셨는데 그중에 하나는 천금풍이라는 경공술이고 다른 하나는 잠백지둔이라는····”
“지둔공(地適功)!”
“그렇습니다·”
지둔공은 두더지처럼 땅을 파는 공부를 말한다·
여종매의 명령으로 이막하가 이걸 내게 전수해 줄 때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뜬금없이 무슨 지둔공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이 공부가 너와 네 동료들의 목숨을 한번은 살려 줄 것이다· 하니 짬을 내서라도 부지런히 익히도록 하여라·”
불과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그녀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 순간 들판 쪽을 응시하고 있던 마교도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빨리 시선을 던져보니 뒤를 바짝 추격해 가던 삼십여 명의 마교도들이 하나둘씩 픽픽 쓰러지는 중이었다·
앞서 달리는 해남파의 제자들이 놀랍게도 마상에서 상체를 틀어 활을 쏘는데 그야말로 백발백중이었다·
쓰러진 말에 앞발을 걸려 뒤에서 달리던 말들이 또 쓰러지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믿을 수 없게도 잠깐 사이에 삼십 필의 말이 전부 쓰러져 버려 더는 추적하는 마교도가 없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상승의 기마궁술에 우리 쪽 진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추적의 고삐를 끊어버린 해남파의 제자들은 이제 각 두 명씩 짝을 지어 다섯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때쯤엔 이미 너무 멀어져 버려 십리경을 사용하고도 어느 쪽에 엽초풍이 있는지 구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십리백별(十里百別)이면 백리천별(百里千別)이라· 병법에 이르길 십 리를 달려 백 명의 적을 따돌릴 수 있다면 백 리를 달려 능히 천 명의 적을 따돌릴 수 있다고····”
“모두 산을 내려간다!”
삼뇌의 일갈에 칠백여 명 남짓한 마교도들이 뒤돌아 산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썰물이 지는 것 같았다·
다섯 방향으로 흩어진 해남파의 제자들은 전부 추격해 잡으려면 저들 모두를 동원하고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 줄 것이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삼뇌가 내게 마지막 살벌한 경고를 했다·
얼른 포권지례까지 하며 작별인사를 했지만 삼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마지막으로 연소교와 그의 수하들이 삼뇌의 뒤를 따르려고 했다·
잠시 그녀의 발걸음을 붙들어 보았다·
“끼니는 챙기고 다니는 거요?”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기왕에 선택한 길이라면 마지막까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오· 그래야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지 않겠소?”
그녀의 나이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으라는 뜻이다·
비상한 여자이니 분명히 내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연소교는 뒤돌아 내 옆에 서 있는 남궁소소에게 잠깐 눈길을 주었다·
그러다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새벽 인(黃)시 무렵 청성파의 장문인이 제자들을 이끌고 타강을 건넜어요· 반 시진 후면 이곳에 도착할 거예요· 그럼 이만·”
연소교가 이번엔 정말로 수하들과 함께 경공을 펼쳐 사라져갔다·
적들이 빈손으로 물러가자 산중의 표사들은 또다시 하늘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러댔다·
“와아아아!”
나는 독고완과 탁중로를 시켜 재빨리 주변을 살피게 했다·
일각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온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보고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그제야 남궁소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소소가 저 멀리 산 정상의 뒤쪽 가장자리로 달려가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던 엽초풍과 아홉 명의 사형제들이 하나둘씩 기어 올라왔다·
지금 마교도들이 열심히 쫓고 있는 열 명은 해남파의 제자들과 옷을 바꿔 입은 표사들이었다·
한 시진 전의 일이었다·
남궁소소는 산 아래에서 백칠십여 명의 표사들 중 해남파의 제자들과 흡사한 체형을 가진 열 명을 골라 변복을 시켰다·
그리고 가장 키가 작은 표사를 골라 엽초풍의 옷을 입힌 다음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달리도록 지시했다·
뒷모습을 보이며 달릴 것이기 때문에 역용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뒷모습은 정말 감쪽같이 손을 보았다·
그사이 나는 계곡 안쪽의 부드러운 흙을 죽으라고 파내 그들이 화마를 피해 숨을만한 공간을 만들었다·
혈응조를 착용하고 잠백지둔을 펼쳤다는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다만 그 속에 들어가서 숨은 사람이 달랐을 뿐·
“모두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삼뇌가 도중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말머리를 돌려 오면 도로 아미타불 되는 겁니다·”
“복명!”
당을 구별하지 않고 터져 나온 표사들의 우렁 찬 함성이 허공을 갈랐다·
각 당의 표두들이 재빨리 달려가 표국기 아래에 매달려 있는 당기들을 회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