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 표행을 이어 받다(2) >
한밤중 갑자기 소집된 장로회의 임에도 불구하고 칠당의 당주 전부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표왕부에 모였다·
심지어 마교에 납치된 일로 근신 중인 탓에 지난 몇 달 동안 장로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이병룡도 와 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종산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달리 잔뜩 굳어있었다·
좌우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총표두 곽석산과 대장궤 손지백도 마찬가지였다·
짐작하건대 목리극이 다녀가고 난 후 이종산은 곽석산과 손지백을 따로 불러 한차례 상의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장로회의에서 모두에게 말해줄 작정이고·
긴 침묵 끝에 이종산이 곽석산에게 말했다·
“시작하시게·”
“알겠습니다·”
곽석산이 정중하게 묵례를 하고는 탁자 한가운데에다 비단 보자기를 올려놓고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가 잔뜩 묻은 채로 반쯤 잘려나간 행낭과 함께 본래는 행낭 안에 들어 있었을 법한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발굽 모양의 부싯쇠와 부싯돌 가죽으로 만든 십리경 금창약이 든 작은 목곽 낡은 지도 방향을 살피는 나경 그리고 손때가 까맣게 묻은 가죽 전낭이 그것이었다·
나는 저 행낭의 주인이 표사였다는 것과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다른 당의 당주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두 눈매를 좁혔다·
의뢰가 들어오면 일단 손지백이 설명하고 진행하던 보통의 장로회의 때와 달리 이번엔 곽석산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한 달 전 표사 하나가 운남성에서 금사강을 건너던 중 정체모를 고수의 공격을 받고 죽었으며 그가 운송하던 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금사강은 운남성을 지나 사천성으로 접어드는 장강 최상류 구간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모두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만약 천룡표국의 표사가 표물을 운송하던 중 죽임을 당했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사건이 아니었다·
일벌백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흉수를 찾아내 잃어버린 표물을 되찾고 처절한 피의 복수까지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룡표국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비적들은 천룡표국의 표사들을 우습게 볼 것이다·
‘좀 이상한데?’
이종산과 손지백과 곽석산을 제외하고는 여기 있는 누구도 천룡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표행 전부를 알 수 없다·
세 사람만 조용히 의논하고 치루는 암표와 밀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 무렵 홀로 금사강을 건너던 중 죽은 천룡표국의 표사는 없었다·
곽석산이 말했다·
“그 표사는 유성표(流星鏡) 한백경입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대황촉 세 개가 고수들이 뿜어내는 기파에 크게 흔들렸다·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지만 나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백경은 유성표라는 별호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발군의 경공술 덕분에 어떤 표물이든 가장 빨리 운송하는 걸로 유명한 표사였다·
단언하건대 하늘 아래 그보다 빠른 표사는 없을 것이다·
표국업계를 벗어나 전 강호로 따져도 무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공술의 대가라는 게 강호인들의 평가였다·
그리고 풍운표검 설인탁 황금장표 석불원과 함께 당대의 가장 뛰어난 표사들을 상징하는 사대명표 중 한 명이었다·
또한 그는 석불원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표국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활동하는 독표였다·
차이가 있다면 석불원은 의뢰가 있을 때마다 그 일에 꼭 맞는 인물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표사로 고용하는 반면 한백경은 어떤 의뢰든 철저하게 혼자서만 처리하는 고집불통으로 알려졌다·
한데 그가 죽었단다·
‘그게 지금이었다고?’
전생에서 나는 일개 쟁자수의 신분이었기에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야 들었다·
그마저도 표행 중 표사들에게서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로 주워 들은 탓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아는 거라곤 빠른 발과 귀신같은 검술을 밑천 삼아 낭인 일이나 하며 떠돌던 그를 이종산이 표국업계로 끌어들였다는 정도?
곽석산의 말이 이어졌다·
“거물 표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하오문에서 그의 주검을 수습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품은 달리 보낼 곳이 없어 생전의 그가 표사로서 유일하게 인정하고 존경했던 국주님께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이 한밤중에 다 같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술이라도 마시자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국주님께서는 이를 단순한 유품이 아니라 유성표가 선배 표사에게 보내는 전위표(傳委鏡)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황촉이 또다시 꺼질 것처럼 출렁거렸다·
전위표란 글자 그대로 전달하여 맡긴다는 뜻으로 표사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의뢰 받은 표행을 더는 할 수가 없을 때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맡겨 대신 이어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표행 완수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표사들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유산 같은 것이었다·
유성표가 죽은 후 그의 유품이 이종산에게로 전해졌다는 걸 나는 전생에선 알지 못했다·
이종산이 그걸 전위표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였고·
“하오문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성표는 해남도에서 배를 타고 대륙으로 들어왔고 운남의 점창산에 잠시 들른 후 금사강을 건널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 표주나 표물 그리고 최종 목적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살짝 방심하고 있던 사이 갑자기 튀어나온 점창산이라는 말에 모두가 또다시 눈동자를 빛냈다·
거대한 점창산에는 수많은 절과 사원과 산간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사대명표 중 한 명이 올랐다면 아무래도 점창파를 찾아갔을 확률이 높았다·
사대명표의 반열에 든 사람들은 이미 모두가 절정고수들이었다·
홀로 해남도에서 나와 점창파에 들른 다음 금사강을 건너려던 절정고수를 누군가가 죽였다·
그것도 전 강호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공술의 대가를·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표행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종산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어떤 결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종산이 잠시 말문을 열었다·
“모두 알다시피 나는 그를 표국업계로 끌어들인 빚이 있소· 하여 실종된 표물을 회수해 수취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고인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하오·”
이종산은 이어 탁자의 왼쪽 줄에 참새처럼 나란히 앉아 있는 이갑룡과 을룡과 병룡과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병룡은 이제 그만 근신을 끝내고 묵룡당주로 복귀하라· 그리고 전위표를 준비하는데 전력을 집중하라·”
“예?”
“나는 너희 넷에게 전위표를 맡기고자 한다· 서로 협력할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유성표가 잃어버린 표물을 모두 회수하고 수취인을 찾아 전달하는 사람에겐 금전 일천 냥과 함께 월인소야검(月刀消夜劍)을 하사하겠다·”
이갑룡 을룡 병룡이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명표에게나 제시한다는 액수인 금전 일천 냥이 이종산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월인소야검은 표왕 이종산이 평생 애용한 두 자루 애검 중 하나였다·
그걸 준다는 것은 곧 표왕으로서 그가 평생 쌓아 올린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사대명표 중 한 명인 유성표 한백경의 표행을 이어서 성공시키는 것만으로도 명성이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그런 차에 이종산의 월인소야검까지 하사받게 되면 강호인들은 그를 천룡표국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여길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이갑룡 을룡 병룡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종산이 이번 일을 기회로 우리 네 명을 시험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고·
“왜 모두 대답이 없느냐?”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결의를 다지고 추적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유성표의 유품들을 하나씩 가져가거라· 물론 다 함께 공유해도 좋다·”
이갑룡과 을룡과 병룡은 선뜻 결정을 못 하고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항상 형들의 눈치를 보기에만 급급하던 셋째 이병룡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낡은 지도를 챙겼다·
‘그러면 그렇지·’
표사들이 쓰는 지도에는 평소 애용하는 길이나 자주 들르는 여곽이며 주루 등에 대한 표시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유성표와 같은 독보강호 하는 표사라면 더더욱·
이을룡은 말발굽 모양의 부싯쇠와 부싯돌을 챙겼다· 저렇게 독특한 모양의 부싯쇠는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유성표가 주문 제작해서 다니는 물건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목격자를 찾는데 좋은 단서가 될 것이다·
이갑룡은 잠시 나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먼저 고르거라·”
“형님께서 먼저 고르시지요·”
“그럼 그러지·”
이갑룡은 두 번도 사양 않고 피 묻은 행낭을 골랐다·
그는 행낭에 남은 핏자국과 검흔에서부터 시작할 생각인 것 같았다·
지켜보고 있던 삼당의 당주들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갑룡의 선택이 지금까지는 가장 현명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물건은 금창약이 든 작은 목곽과 가죽으로 만든 십리경 그리고 손때가 까맣게 묻은 가죽 전낭이었다·
세 가지 모두 흔하디흔하게 생긴 것이어서 무얼 골라도 아무런 단서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왕이면 돈이죠·”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낭을 챙겨 품속에 넣었다·
순간 이종산과 곽석산과 손지백의 눈동자에 어리는 이채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걸 본 청룡당주 유지평이 알만하다는 듯 혼자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종산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닷새 후 대마장에서 랍관정기와 함께 출표식을 하겠다· 모두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
표국에 남아 있던 천여 명의 표사와 쟁자수들이 대마장에 집결했다·
국주가 직접 참관하는 데다 그의 네 아들이 하나의 표행을 위해 동시에 출표식을 하는 진기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종산과 곽석산 손지백 황자충 양진각 유지평은 진작에 나와서 출표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이종산의 세 부인들도 시비를 잔뜩 거느린 채 나와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왜 이렇게 거창한 출표식을 하는 걸까?
소위 사대명표라는 칭호는 한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소속을 떠나 모든 표사들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표사도 이렇게 고수가 될 수 있고 표사도 이렇게 유명한 무림명숙이 될 수 있다는·
이종산은 그런 명표 중 한 명을 죽이고 표물을 약탈해간 미지의 고수와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 볼 강호인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표물을 노리고 있을 온갖 비적들에게 표사들을 대표해 일종의 경고를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술렁거리며 내원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갑룡과 그가 이끄는 표행단이 강룡당의 표기를 높이 든 채 말을 타고 나타났다·
노련한 표두들이 포함된 일급표사가 무려 쉰 명이나 되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난다긴다하는 강룡당의 표사들을 전부 동원한 셈이었다·
다들 일류급 이상의 고수들이니 웬만한 흑도문파 하나쯤은 반나절 만에 박살 내버리고도 남을 전력이었다·
한데 이갑룡의 옆에는 천룡표국의 표사들 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인들이 세 명이나 있었다·
황금 엽전으로 한쪽 눈을 가린 외눈박이 쥐상에 눈동자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백발노인 날렵한체구에 푸르스름한 얼굴의 곰보가 그들이었다·
남궁소소가 말했다·
“외눈박이는 독안추귀라고 하는 천리추종술의 대가인 것 같고 쥐상의 백발노인은 세상에 모르는 무인과 무공이 없다는 만박신안 같고요· 장년의 곰보는··· 잘 모르겠어요·”
가불염이 남궁소소의 말을 이어 받았다·
“청면살 악중삼입니다· 이년 전 금룡표국의 당주로 초빙되어 온 표사이지요· 그전에는 운남성 대리 일대에서 이십여 년간 악명을 떨친 흑도였죠· 운남성에는 아직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장삼도 한입 보탰다·
“소인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일공자님께서는 유성표가 변을 당한 운남성의 금사강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하실 거랍니다·”
남궁소소와 가불염이 세 객원표사들의 정체를 알아본 것처럼 다른 당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술렁거림이 끝도 없이 퍼져갔다·
그 술렁거림이 잦아들기도 전에 이번엔 이을룡이 표행단을 이끌고 나타났다·
역시나 복룡당의 표기를 높이 든 채였다·
그 역시 쉰여 명의 일급표사들을 전부 동원했고 낯선 외부인들을 객원표사로 고용한 상태였다·
심지어 객원표사는 이갑룡의 표행단 보다 두 명이 많아서 총 다섯 명이나 되었다·
이번에도 용모를 보고 남궁소소와 가불염이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다들 이갑룡이 고용한 자들 못지않게 유명한 그래서 돈깨나 들었을 법한 객원표사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병룡이 표행단을 이끌고 나타났다·
묵룡당은 아직 강룡당이나 복룡당만큼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표사들은 서른 명 정도에 불과했다·
대신 갖가지 용모와 기세를 풍기는 객원표사들이 무려 열 명이나 되었다·
이번엔 남궁소소와 가불염도 절반밖에 알아보지 못했다·
다시 남궁소소가 말했다·
“객원표사로 고용한 자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자들이에요· 특히 금룡표국의 당주인 청면살이 경쟁표국인 천룡표국의 일을 한다는 건 금룡표국을 미련 없이 때려치웠다는 말인데 대체 얼마를 받아야 표사로서의 남은 인생 전부를 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가불염이 또 남궁소소의 말을 받았다·
“저들 중 상당수는 단지 돈을 준다고 해서 끌어들일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십중팔구 당주님들의 외가에서 막강한 지원을 해주었을 겁니다· 그 지원은 표행을 하는 내내 이어질 것이고요·”
장삼이 이번에도 한입 보탰다·
“이공자님은 일공자님과 함께 유성표가 변을 당한 곳으로 가신다고 합니다· 삼공자님은 점창산으로 곧장 갈 예정이시고요·”
이갑룡 을룡 병룡 전부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는 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핵심인력들을 이렇게 동원해 버리면 강룡당 복룡당 묵룡당은 한동안 큰 표행들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다른 세 개 당이 남아 있고 계절적으로 표행이 집중되는 시기가 아니니 천룡표국 전체로 보면 큰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기간 동안 각각의 당들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도박을 하는 건 성공했을 경우 얻게 되는 것이 너무나 큰 탓이었다·
대마장에 모여든 천여 명의 표사와 쟁자수들은 이제 전부 고개를 돌려 나와 비룡당의 표사들이 모여 있는 쪽을 보기 시작했다·
천룡표국 내에서 가장 돈이 많은 나는 표사들을 몇 명이나 동원하고 또 어떤 유명한 무림인들을 객원표사로 고용했을지 궁금한 것이다·
이종산과 곽석산 손지백 그리고 당주들도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세 명의 부인들과 형들은 어디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보자 하는 얼굴이었고·
“아 이 분위기를 어째·”
“저라도 함께 가야 하는데·”
남궁소소와 가불염이 탄식하듯 한 말이었다·
미곡운송일을 거의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다른 당들과 달리 비룡당은 이제부터 공물 운송이라는 미곡운송일 못지않게 중요한 표행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해서 내가 동원한 비룡당의 표사라고는 운남을 세 번 정도 가봤다는 독고완과 번견을 귀신같이 다루는 탁중로가 전부였다·
객원표사로는 비룡당의 지분을 일푼 정도 가진 공동 투자자 남궁소소와 천룡표국 사람이라면 이제 누구나 아는 술꾼에 도둑놈인 호리독사가 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겠지·
“독고완· 표기 올려라·”
“존명!”
독고완이 우렁찬 외침과 함께 천룡표국 하고도 비룡당의 표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를 따라 모두 말머리를 또각또각 몰아갔다·
고작 다섯 명이 표행단의 전부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옆 사람들과 온갖 말을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잠깐만!”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인파를 헤치고 흉악한 인상을 지닌 세 명의 장년인들이 내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묵직한 행낭을 등에 짊어지고 각자의 병장기를 허리며 어깨 등에 패용한 세 사람은 대마장에 모인 표사와 쟁자수들 전부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등장으로 잠깐 흥분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를 깨닫고 하나같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셋 중 가장 나이 많은 자가 말했다·
“다행히 아직 안 늦었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 왔네·”
“제가요?”
“직접 와서 보니 과연 총체적 난국이군·”
그러면서 장년인은 세 형이 꾸린 표행단의 규모와 그들 속에 끼어있는 온갖 용모의 객원표사들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고마워할 것 없네·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지· 우리가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짜로 도와주겠다는 건 아니시잖아요?”
“돈 얘기는 가면서 천천히 하세·”
두 번째 나이 많은 장년인이 말했다·
“일단 말부터 내오라고· 나는 기왕이면 백마로 준비해 주게·”
세 번째 장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신경쓰지 말고 아무 말이나 튼튼한 놈으로다가 세 필만 내오게·”
세 사람은 서호삼견이었다·
서쌍교방의 내분으로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니 그새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찾아온 것이다·
그때 이갑룡이 이끄는 표행단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가볍게 말을 달려 대마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을룡과 병룡이 이끄는 표행단도 뒤를 이었다·
네 형제의 사활을 건 표행 대결이 마침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