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Escort Warrior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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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 미친 놈(1) >

석삼두가 금전 일천 냥을 가지러 가는 바람에 백포산군과 도화곡의 제자들은 공터를 사이에 두고 잠시 대치했다·

나는 사대장로와 백포산군과 삼각형을 이루는 한 지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먹다 남은 육포를 씹었다·

남궁소소가 다가와 둘만 들을 수 있는 이음술로 말했다·

“괜찮아요?”

“뭐가?”

“목이 시커멓게 멍들었어요·”

“심각하오?”

“어려서 밧줄에 목매달아 죽은 사람을 본 적 있는데 그때 그 시체랑 똑같아요·”

“표현이 사실적이군·”

“그러게 왜 쓸데없이 도발을 해가지고·”

[그것보다 도화곡 내부 사정을 좀 알아다 주시오·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나도 대책을 세우지·]

[그건 염려 말고 조심해요·]

대화 도중에 전음으로 바꾼 것은 백포산군의 내공 수준을 도무지 측량할 수가 없어서였다·

망혼소로 그의 단전을 더듬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전에도 남궁유룡에게 그 방법을 썼다가 들켜서 혼구녕이 날뻔했었다·

남궁소소가 나를 떠나 장원 쪽으로 달려갔다·

이막하를 비롯한 도화곡의 제자들이 그녀를 유난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위기에 순간에 나타나 도움을 준 것이 고마워서이기도 하지만 전대곡주와 남궁유룡이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는 말에 더 끈끈한 무언가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잠시 후 통천방의 새로운 방주인 석삼두가 수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돌아왔다·

내 앞에 사람 머리통 두 개를 이어 붙인 크기의 궤짝 하나가 놓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금전과 은전은 물론이거니와 갖가지 모양의 옥장신구들과 야광주까지 들어 있었다·

“뭐가 이렇게 어수선합니까?”

“돈이 조금 모자라서 급한대로 보옥과 야광주를 전부 챙겨 가져왔소· 시세보다 낮게 처분해도 얼추 맞을 것이오·”

“날 더러 보옥과 야광주를 내다 팔아서 돈을 만들라고요?”

“이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오·”

금전 일천 냥의 가치에 맞추기 위해 돈이 될만한 것들은 전부 쓸어 담아 온 모양이었다·

백포산군의 호통이 무섭기도 하지만 도화곡이 없어지면 성도를 먹은 후 빈 곳간을 다시 채울 생각에 신나서 쓸어 왔을 것이다·

‘통천방을 개방 분타로 만들어 주마·’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저만치에 섭부용과 얘기 중인 남궁소소를 불러다 돗자리와 지필묵을 비롯해 이것저것 몇 가지 구해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듯자리와 지필묵이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리 짐작이 맞았어요· 지금 곡주님으로 분장하고 있는 사람은 팔대제자 중 한 분이래요· 진짜 곡주님은 구천홍염장(九泉紅懷掌)의 파훼법을 찾기 위해 스무날 전부터 폐관수련 중이시고요·]

[구천홍염장?]

[백포산군의 성명절기예요·]

[이름에다가 쓸데없이 힘을 잔뜩 줬군· 한데 그의 제자인 뇌정갑은 원래 방천화극의 달인이 아니었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방천화극은 뇌정갑이 이름을 날리게 만든 병장기공이었을 뿐 여종매 선배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장법이었어요·]

[듣고 보니 그렇군·]

전음으로 대화를 하는 중에도 나는 남궁소소가 준비해온 돗자리를 깔고 앉은 다음 지필묵을 펼쳐 놓고 먹을 열심히 갈았다·

백포산군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뒷짐을 쥔 채 ‘저 인간이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저 가공할 장법의 파훼법을 무슨 수로 찾는다는 거요?]

[섭부용 향주의 말이 도화곡의 격언에 모든 싸움은 일초반식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순간이 있는데 그 일초반식의 승부처를 찾기만 하면 방법은 있대요·]

[그거야말로 상대가 싸우는 방식을 어느 정도 알아야만 가능한 일 아닌가?]

[봄에 여종매 선배와 뇌정갑이 구백여 합을 싸웠잖아요· 그날 싸움을 지켜본 사대장로와 팔대제자들의 기억을 대조해가며 자세히 복기해둔 기록이 있나봐요·]

[대체 그걸 왜?]

[곡주님께서 주도해서 하신 일이래요· 뇌정갑과 같은 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리 없으니 반드시 사문이 있을 것이고 사문이 있으면 복수를 하려는 자들도 있을 거라시며·]

[무서운 분이시군·]

[그러게 말이에요·]

“대체 뭘 하는 거냐?”

백포산군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때쯤에는 먹 갈기를 끝내고 하얀 종이 위에 글자를 써 내려 가던 중이었다·

나는 잠시 붓을 떼고 백포산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표단(鏡單)을 작성 중입니다·”

“그게 뭐지?”

“표국에서 사용하는 계약서입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표물의 종류와 비용 배상금 책임소재 표주와 표국이 각각 지켜야 할 일 등을 상세하게 적어 두는 것이지요·”

“여기서 저기를 가는데?”

“오히려 그럴수록 더 필요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 줘아죠·”

“그래서 얼마나 걸리느냐?”

“지금처럼 계속 말을 거시면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글자라도 실수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보시다시피 대답을 드리는 동안에는 멈춰야 해서요·”

“일각을 주겠다·”

“재촉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써라!”

이윽고 스물일곱 개 조항을 세필로 써넣은 표단 두 장이 완성되었다·

두 장 모두 내가 먼저 수결한 다음 붓을 백포산군에게 넘겼다·

백포산군은 유심히 읽어보더니 말했다·

“하나마나 한 소리를 정성스럽게도 써놨군·”

그러더니 나머지는 읽지도 않고 전부 수결 해주었다·

나는 두 장 모두 고이 접어 하나는 백포산군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내 행낭 속에 넣었다·

이어 지필묵을 남궁소소에게 주며 치워줄 것을 부탁했다·

남궁소소가 지필묵을 들고 가려는 순간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최대한 빨리 파훼법을 찾으라고 전해 주시오·]

[알았어요·]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무한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행낭을 뒤져 고이 접은 천 조각을 꺼내 펼쳤다·

그러자 승천하는 용과 천룡표국이라는 네 글자가 수 놓인 깃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남궁소소가 가져다준 창대의 끄트머리에다 튼튼하게 묶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룡표국의 표기가 만들어졌다·

흔한 표기 같아도 자세히 보면 천룡표국이라는 네 글자 옆에 표사 이정룡이라는 다섯 글자도 조금 더 작은 글씨로 수 놓여 있었다·

“그건 또 뭐냐?”

“위무표(威武鏡)임을 나타내는 깃발입니다·”

“위무표?”

“이 표물은 천룡표국 내에서도 이정룡이라는 표사가 운송하는 것이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길을 양보해 달라는 뜻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비켜라?”

“덧붙여 이 표행은 이정룡이라는 표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뜻도 있고요·”

“이제 다 끝났겠지?”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합니다·”

“신발은 또 왜?”

“새로운 표행에는 반드시 새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표사들은 안 그러면 표행을 하는 내내 재수가 없다고 믿습니다· 발병이 나거나 자주 넘어지는 식으로요·”

“누가 보면 천 리를 가는 줄 알겠군·”

“갖출 건 갖춰야죠·”

나는 백포산군이 잘 볼 수 없도록 그를 등지고 앉은 다음 행낭 속에서 새로 맞춘 가죽 신발을 꺼내 신었다·

항주의 장인에게 특별히 부탁해 만든 이 신발은 바닥에 굳은살 자리를 따라 일곱 개의 작은 쇠못이 박혀 있었다·

너무 크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은 것이 꼭 개의 이빨을 닮았다·

왜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귀영무의 보법을 수련하던 중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멀리 도약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방향을 꺾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됐다·

그러다 문득 얼어붙은 서호 위에서 백백곡주와 싸우던 일을 떠올리며 만든 것이 바로 이 신발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발이 잘 벗겨지지 않도록 발목 부분을 가죽끈으로 친친 동여맨 후에야 나는 비로소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진짜 끝났겠지?”

“마지막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또 무엇이?”

“랍관정기(技貫頂旗)와 량표위(高鏡威)의 절차가 남았습니다·”

“그건 또 무엇이냐?”

석삼두가 가져온 궤짝을 버리고 내용물만 따로 챙겨 행낭 속에 넣었다·

큼지막한 궤짝과 달리 내용물은 하나로 뭉치니 어린아이 머리통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에는 웬만해선 찢어지거나 풀어지지 않도록 행낭 전체를 광목천으로 친친 묶었다·

깔고 앉아 있던 돗자리도 돌돌 말아 행낭 밑에 묶어 등에 짊어졌다·

마지막으로 창대에 맨 표기를 집어 깃발이 머리 위 석 자 높이에서 펄럭이도록 오른쪽 어깨에 척 걸쳤다·

이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천룡표국의 표사 이정룡은 백포산군의 의뢰를 받아 사천성 성도 도화곡으로 가는 위무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펑펑 소리가 울리도록 표기를 좌우로 크게 세 번을 휘저었다·

랍관정기는 표기가 머리 위로 솟구치도록 하는 것이고 량표위는 표국의 이름을 외치며 출발을 선언하는 걸 말한다·

비로소 표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저만치 보이는 이막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백포산군과 석삼두 그리고 통천방의 방도들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압도적인 무력에 이어 명분까지 갖추었으니 이제야말로 곡주를 쓰러뜨리고 도화곡을 싹 밀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얼떨결에 통천방을 날름 주워 먹은 석삼두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생각에 그야말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반면 도화곡의 제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특히 남궁소소로부터 아직 내 전언을 전해 듣지 못한 구대제자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든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윽고 다섯 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어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깃발을 땅바닥에 푹 꽂은 다음 행낭에 묶어 놓은 돗자리를 풀어서 표기 아래에 깔았다·

그리고 털썩 앉았다·

휘우우웅~

찬바람이 지나가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적아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러다 백포산군이 침묵을 깨고 가만히 물었다·

“무얼 하는 게냐?”

“좀 쉬었다가 갈려고요·”

“어째서?”

“이제 곧 해가 질 것 같아서요·”

“아직 한 뼘이나 남았다만·”

“원래 해뜨기 반 시진에 일어나서 해지기 반 시진 전에 멈추는 것이 모든 표행의 첫 번째 규칙입니다·”

“그 말은 설마····”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출발하려고요·”

사람들이 눈앞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게 술렁였다·

통천방의 흑도들은 이게 무슨 듣도보도 못한 헛소리냐는 표정들이었고 도화곡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반면 가장 놀라고 경동해야 할 백포산군은 오히려 나를 채근하던 조금 전보다도 더 차분했다·

그는 잠시 나를 관찰하듯 응시하다가 물었다·

“그렇게 열심히 입을 놀리더니만 기껏 준비한 함정이라는 게 노부의 발목을 묶어 두는 것이었더냐?”

“저를 끌어들인 건 선배님이십니다만·”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당장 도화곡으로 쳐들어가겠다면 어쩔 것이냐?”

“선배님께서는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비무첩을 전달한 후 도화곡주와 승부를 보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천하십대고수의 칭호를 달고 다니는 고인께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셔야 되겠습니까? 이는 시정잡배들도 하지 않는 짓입니다·”

“그러는 너는 어찌하여 천룡표국의 깃발을 들고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냐· 너야말로 천하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기꾼이 아니더냐?”

“천만에요· 저는 이 표물을 반드시 도화곡으로 가져가서 곡주께 전해드릴 것입니다· 다만 발걸음이 무거워 다소 시간이 걸릴 뿐·”

“의뢰를 취소하고 다른 표사를 찾는 수도 있다·”

“위무표는 표사의 명예가 달린 일입니다· 중간에 취소를 하고자 하신다면 제게 팔 한 짝 정도는 내놓으셔야 합니다·”

백포산군은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지 내가 준 표단을 다시 꺼내어 펼쳐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쓴웃음을 흘렸다·

“사기를 당했군·”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를 죽이겠다고 겁박하며 표행을 억지로 맡긴건 선배님이십니다· 그리고 표단에는 표물을 도화곡에 전달하지 못 하면 저 역시도 팔 한 짝을 내놓겠다고 씌어 있고요·”

“대신 도착 날짜가 없지·”

“무기표(無期鏡)라고 합니다·”

“···?”

“표행이 너무 어렵거나 위험해서 표사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때 기한을 정하지 않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천날만날 걸리기야 하겠습니까· 지켜보는 눈들이 있는데·”

“전부 헛소리!”

백포산군이 표단을 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화르륵 소리와 함께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타올라 한 줌의 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삼매진화(三味眞火)!’

인체의 내공을 끌어 올려 공기 중에 작은 불을 일으키는 경지를 말한다·

격공섭물에 이어 삼매진화까지· 전설로만 듣던 경지를 연달아 두 번씩이나 눈앞에서 보자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명분 따지길 좋아하는 자들이 아무리 규칙을 만들고 머리를 쥐어짜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한가지 있느니라· 강호무림은 결국 주먹과 칼의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지·”

“···!”

“너의 말처럼 지금부터 아주 힘들고 위험한 표행이 될 것이다· 각오는 충분히 되어 있겠지?”

“아무래도 표물을 노리는 비적이 나타난 것 같군요· 은전은 당연히 통하지 않겠지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돗자리를 다시 돌돌 말았다·

이어 행낭의 아래에 단단히 묶고는 두 다리를 비스듬하게 벌리고 섰다·

“이노옴!”

대갈일성과 함께 백포산군이 쌍수를 뻗어왔다·

순간 강렬한 흡입력이 나를 통째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격공섭물을 펼친 것이다·

나는 천근추의 수법과 함께 이번에도 진각을 힘차게 밟았다·

‘꿍!’ 소리와 함께 지축이 울리면서 왼발이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식경 전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과 달리 지금은 비스듬히 서서 양 무릎을 살짝 구부린 상태로 꼿꼿하게 버텼다·

심지어 발이 땅을 파고들지도 않았다·

나는 그대로 철기둥이 되어 버렸다·

앞서와 달리 백오십 년의 공력을 모두 천근추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갑자기 돌변한 내 무위에 백포산군은 이제야말로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켜보고 있던 통천방의 흑도들도 도화곡의 제자들도 모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공을 감추고 있었구나!”

쩌렁쩌렁한 일갈과 함께 백포산군이 상체를 한번 크게 떨치면서 다시 쌍수를 출수했다·

그러자 훨씬 더 강력한 흡입력이 나를 빨아 당겼다·

자기가 신법을 펼쳐 덮쳐오면 간단할 것을 구태여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 순전히 자존심 때문이었다·

옷자락이며 머리카락이며 깃발까지· 내게 달려있던 모든 것들이 일직선으로 뻗은 채 파르르르 떨어댔다·

급기야 바닥의 흙덩어리들까지 뿌옇게 일어나 백포산군을 덮쳐갔다·

흡사 그의 양손 사이의 공간으로부터 미지의 구멍이 생겨나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진기 중의 진기였다·

그런가 하면 내 오른쪽에 꽂아 둔 깃발이 찢어질 것처럼 펄럭이면서 ‘펑펑!’ 굉음을 냈다·

양손으로 창대를 잡고 베베 돌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에서 깃발이 창간에 전부 감기자 더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갈!”

천둥같은 대갈일성과 함께 내가 지면을 박차며 신형을 쏘았다·

백오십 년 공력이 담긴 천금풍의 경공술에 백포산군의 격공섭물이 더해지자 그 속도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더불어 오른손에는 펄럭이는 깃발을 친친 감는 바람에 완전한 창의 모습으로 돌변한 표기가 들려 있었다·

땅에 발이 닿을 틈도 없었다·

나는 한 자루 창이 되어 백포산군을 향해 날아갔다·

“어딜!”

백포산군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좌수를 내리긋는 것으로 격공섭물의 흡력을 간단히 끊어 버렸다·

동시에 우수를 왼쪽 손목 위로 교차해 내지르며 장법을 출수했다·

한순간 눈앞이 붉은빛으로 가득 찬다 싶더니 엄청난 경력이 폭발하듯 덮쳐왔다·

그때쯤엔 나도 좌장을 출수하고 있었다· 두 개의 장력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뻐벙!

산천초목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산악처럼 버티고 섰던 백포산군이 뒤로 세 걸음을 타다닥 물러나는 게 보였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공중에서 다섯 바퀴를 회전하며 몸에 실린 힘을 죽이고 중심을 잡았다·

이어 평사낙안(平沙落個)의 낙법을 펼치며 멋지게 떨어졌다·

떨어지고 보니 통천방 방도들의 진영 한 가운데였다·

행여라도 불똥이 튈세라 놀란 통천방의 방도들이 후다닥 흩어졌다·

“뒤로 십 장이나 물러났군· 이러면 며칠 더 걸리겠는데·”

“저런 미친놈이!”

분기탱천한 백포산군이 질풍처럼 신형을 쏘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와 나와의 거리가 사라져버렸다·

숨돌릴 틈도 없이 그의 두 손바닥이 불을 뿜어댔다·

뻐엉! 뻐벙! 뻥! 뻥!

붉은빛이 번쩍일 때마다 막강한 경력과 함께 엄청난 열기가 휘몰아쳤다·

백포산군의 성명절기를 왜 구천홍염장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저건 그냥 지옥불이었다·

저기에 내가중수법의 묘리까지 실렸다면 일장을 맞자마자 내장이 순간적으로 쪄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감히 맞설 생각을 못하고 귀영무의 보법을 펼치며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러다 눈 한번 깜빡일 정도의 틈이라도 생기면 창으로 백포산군의 발등을 게구멍 쑤시듯 푹푹 쑤셔댔다·

슉! 슈슈슉! 슉슉슉!

상체를 쑤셨다간 나로서는 본적도 없는 상승의 공부로 창간을 잡아 부러뜨리거나 빼앗아 버릴 것 같아서였다·

한 번도 당해본 적 없는 변칙적인 공격에 백포산군은 장법을 번갈아 출수하다가 창날을 피해 팔짝팔짝 뛰었다가 다시 장법을 출수했다가 또다시 창날을 밟아 부러뜨리려고 기기묘묘한 보법을 펼치는 등의 수법으로 응수해왔다·

그러다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며 좌수를 쭉 뻗었다· 내 어깨를 잡아채려는 것이다·

나는 상리를 벗어난 방향으로 번개처럼 방향을 꺾고 몸을 돌려세웠다·

이어 창간의 반대쪽 끄트머리로 백포산군의 손목을 후려쳐 갔다·

비정상적인 각도에서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펼친 한 수였다·

뻐억!

굵은 대나무를 각목으로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시원하게 울렸다·

순간적으로 백포산군의 가슴이 살짝 열렸다·

‘무리하면 죽는다!’

나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찰나의 틈을 이용해 천금풍의 경공술을 펼치며 십여 장 밖으로 질풍처럼 도망쳤다·

그리고 반격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도주를 하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백포산군의 이어지는 공격에 대비했다·

백포산군은 십여 장밖에 서서 나를 가만히 노려볼 뿐 더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눈동자에서는 시퍼런 화염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손목의 뼈가 시큼 거릴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는 지금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경신법이 좋구나·”

“비록 선배님을 해할 수는 없지만 잡히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모두 도화곡의 귀신같은 경공술을 익히고 꾸준히 수련한 덕분이지요·”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냐?”

“선택권은 선배님께 있습니다· 고작 며칠 차이로 강호인들의 손가락질과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도화곡으로 쳐들어 가느냐 아니면 잠시 여유를 가지고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느냐·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할 말을 잃은 백포산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도화곡의 제자들은 곡주가 무사히 폐관수련을 하고 나올 수 있도록 내가 시간을 끌어 주려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하나같이 감개무량한 얼굴들이었다·

반면에 통천방의 흑도들은 세상에 저런 미친놈은 다시 없을 거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하면 통천방의 흑도들보다도 더 뒤쪽 길목에 서서 구경하고 있던 천여 명의 군중은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웅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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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carnated Escort Warrior

Reincarnated Escort Warrior

Score 8
Status: Ongoing Released: 2022
My dream is to become an escort warrior that rides on a cool horse and transports goods. But I’ve got a limp leg and I’m unable to learn decent martial arts. I’ve lived as a porter working odd jobs for the entirety of my life. Until I died because of the mountain bandits that I met during an escort mission. But… ‘I became the fourth young master, Lee Jungryong?!’ When I died and woke up, I was reborn as the Heavenly Dragon Escort Agency’s infamous good-for-nothing youngest son. The weakling, Lee Jungryong, will become the best escort warrior in t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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