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 장강십팔탄(8) >
“천룡표국과 거래를 하겠다는 상단이 백 곳도 넘습니다· 그나마 백인 이하의 작은 상단들은 하고 싶어도 자신들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며 아예 포기한 상태고요·”
“무한에 도착하면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며 다른 범선으로 옮겨 탄 이후에도 선장들을 압박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북천표국로 갈아탔던 여덟 곳의 표국들 중 나중에 옮겼던 다섯 곳의 상단주들께서 국주님을 뵙고 싶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밝혀왔습니다·”
이갑룡과 이을룡과 방청양이 차례로 한 말이었다·
세 사람의 보고를 두 마디로 정리하자면 능곡지변 상전벽해였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전세역전이었다·
천룡표국에 미곡운송을 맡겨 달라며 상단들을 열심히 찾아다녀야 하던 처지에서 몰려드는 상단들을 상대로 열심히 옥석을 가려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로도 범선들의 선적량 상태 강동을 비롯한 여러 곳으로 가고 오는 동안 걸릴 시간 등에 대한 황해노경의 보고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런 다음엔 비룡당이 현재 보유한 표사와 쟁자수들로 감당할 수 있는 운송량에 대한 가불염의 보고가 바로 이어졌다·
이갑룡과 을룡도 천룡표국에서 출발해 이리로 오고 있는 본대의 규모와 현재 위치 및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했다·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손님인 남궁소소 뿐이었다·
이윽고 보고가 모두 끝났을 때 이종산이 내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떻느냐?”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보고를 듣고 내게는 의견을 묻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갑룡과 을룡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굳어졌다·
이 모든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자 쌍각오선단의 주인인 나는 말만 비룡당의 당주이지 실제로는 이종산과 함께 보고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저 내용들은 전부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었고 그걸 근거로 이후의 일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종산은 벌떼처럼 몰려든 상단들로부터 거래 요청서를 잔뜩 받아 온 이갑룡과 을룡이 막내 동생인 내게 직접 보고 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 주려고 일부러 이런 그림을 만든 것이었다·
“국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너의 배들을 보고 계약하겠다는 상단들이다· 당연히 너와 비룡당에서 전부 책임지고 운송 해야 하고·”
“천룡표국과 대를 이어 거래할 상단들을 고르는 일입니다· 지금은 고작 일 년 차 표사인 저의 어설픈 눈치가 아니라 오랜 경험을 지닌 국주님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네가 주도적으로 상단들을 정한다면 상단주들이 앞으로는 비룡당과 너에게 줄을 서려고 할 것이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을 터인데·”
“정 그러시면 범선 한 척을 채울 정도의 상단들만 제가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종산은 ‘이 자식이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는데·’라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포기한 듯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교룡방으로부터 확보한 조운선 오십 척과 범선 네 척으로 거래할 상단은 강남구상을 포함해 서른 곳으로 한정한다· 강룡당과 복룡당의 당주는 나머지 스물한 곳의 후보를 선별해 내게 보고하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상단들이 맡긴 미곡 전부를 범선에 실을 수는 없다· 범선과 교룡방의 조운선으로 나누어 싣되 가까운 곳으로 가는 미곡은 속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으니 조운선에 싣고 닷새 이상 멀리 가는 미곡은 범선에 싣는 것으로 조율하면 상단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갑룡과 이을룡이 거듭 대답했다·
이종산은 두 사람에게 한 명당 대략 열 곳의 상단들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대외적인 체면을 세워 주었다·
한데 이건 사실상 내가 일부러 양보해 준 것이었다·
이종산은 물론이거니와 갑룡과 을룡도 당연히 그걸 눈치챘다·
다만 내가 열심히 죽을 쒀서 왜 자신들에게 주려는 지 그 이유를 모를 뿐·
상황이 대충 정리되는 듯하자 이종산이 남궁소소에게 역시나 우리를 대할 때와는 다른 음성으로 물었다·
“지켜보니 어떻느냐?”
“제가 표국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타성에 젖지 않은 의견을 듣고 싶구나·”
남궁소소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곡운송에 관한 한 표국들은 지금까지 상단들에게 끌려다니는 처지였습니다· 한데 천룡표국이 처음으로 그걸 뒤집었습니다· 이제 그 힘을 확실히 보여주어 계속해서 주도권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 있느냐?”
“상단들과 계약을 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대로 공정하게 선발해선 안 되고요·”
“어찌하여?”
“누가 보아도 계약을 할 것 같은 상단들과 계약을 하면 상단주들은 천룡표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상단들 중 몇 곳을 과감히 배제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자격이 안 되지만 미래가 밝은 상단들로 채우면 상단주들이 천룡표국을 대함에 있어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상단들을 줄 세워서 내가 얻는 것은?”
“천룡표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만드는 것이지요·”
“우호적인 세력은 만들어서 무엇에 쓰고?”
“표사들의 전통을 존중하게 할 수 있습니다·”
“···!”
이종산을 비롯해 막사 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화들짝 놀랐다·
단순히 상계를 찍어 눌러서 최대한 이득을 취하라고 할 줄 알았다가 상상도 못 한 답변을 들은 것이다·
저렇게 놀라운 말을 해놓고도 남궁소소는 혹시라도 실수를 했을까봐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남궁소소를 빤히 바라보던 이종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다 끝내 희고 가지런한 이까지 드러내며 말했다·
“표사가 다 되었구나·”
“어쭙잖은 경험으로 국주님과 여러 선배님들의 귀를 어지럽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후배의 치기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어요·”
여우다· 여우·
이종산은 더 이상 흡족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도 물었다·
“잘 들었느냐?”
“그렇습니다·”
“하면 범선 한 척을 어떻게 쓰려느냐?”
“무한 분타에 줄 것입니다·”
“···!”
“···!”
이종산과 무한 분타주인 방청양의 눈동자가 동시에 주먹만하게 커졌다·
다른 사람들도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기껏 범선 한 척을 차지해 놓고 그 막강한 권력을 무한분타에 주겠다고 하니 다들 어리둥절할 수밖에·
이종산이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
“무한은 해마다 두 번 미곡시가 열리는 곳이고 천룡표국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교두보입니다·”
“그런데?”
“하여 분타주께서 상단의 대행수들과 자주 만나고 관계를 다져 두시려면 무한 분타에도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소소도 말했지만 범선들이 있는 한 상단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단순히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함께 갈 상단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싹수가 있어 보이는 작은 상단들을 선별해 대형 상단으로 키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강남구상이 끝까지 의리를 지킨 것도 수백 년 전의 선대 때부터 천룡표국과 함께 서로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방 분타주에게 그 역할을 주겠다?”
“가장 적임자입니다·”
천룡표국 살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대장궤 손지백이듯 무한 분타의 살림을 맡은 사람은 분타주의 딸인 장궤 방금옥이었다·
따라서 범선 한 척으로 장사할 상단들을 결정하는 일에도 방금옥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어갈 것이다·
날벼락처럼 자신에게 큰 힘이 주어지자 방청양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그 놀란 표정 속에 깃든 기쁨과 환희를 몰라볼 사람은 막사 안에 아무도 없었다·
한편 이갑룡과 을룡은 누가 망치로 뒤통수를 박살 내버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놀라고 당황해하는 지를 모를 사람도 여기에 없었다·
방청양은 이제 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한 분타는 천룡표국의 분타가 아니라 비룡당의 분타가 될 것이고·
장강 물길을 통해 항주와 무한을 오고 가고 그로 말미암아 조운을 개척해 큰돈을 벌어들이려면 무한 분타를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날강도 같은 녀석을 보았나· 어쩐지 힘들게 수확한 과실을 흔쾌히 양보하더라니 알고 보니 밭을 통째로 훔쳐 갈 생각이었군· 그래· 껄껄껄·”
이종산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무한 분타를 내게 빼앗겨서 아깝다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무도 올라온 적 없는 벼랑을 기어코 기어 올라와 자신이 꽂아둔 황금 깃발을 뽑아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흐뭇해했다·
황해노경이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방법은 다르지만 남궁 표사와 비룡당주께서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그 당주에 그 표사입니다· 허허허·”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종산과 황해노경은 이심전심 마음을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갑룡과 이을룡의 표정은 굳었다·
반대로 남궁소소의 얼굴은 발개졌고·
“그리고 저도 보고 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음흉한 녀석· 또 무슨 일을 꾸미려고?”
“청수탄에서 괴한들이 대장선을 공격할 때 병룡 형님이 먼저 알아차리고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침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한 문파의 기강은 분명한 상벌에서 나오고 적어도 천룡표국은 그것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이제 그만 병룡 형님을 복권 시켜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형을 생각하는 네 마음은 알겠다만 공에 비해 지난 날 녀석이 저지른 잘못이 지나치게 크다· 이만한 일로 복권시키면 앞으로는 국주의 령이 서지 않을 것이다·”
“공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포상과 치하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표사들이 앞장 서서 싸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데 병룡이 선실 고물에는 왜 들어간 것이더냐?”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뗐다·
“급류를 오를 때 배에 문제가 있을지 몰라 제가 들어가서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기왕이면 귀밝은 선원이 필요하던 차에 때마침 일류 고수인 삼공자께서 눈에 띄기에 그만····”
황해노경이 슬쩍 끼어들어 나를 도와주었다·
이종산은 잠시 실눈을 뜨고 나와 황해노경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노려 보았다·
반대로 나와 황해노경은 눈을 똑바로 뜨고 직사광선 같은 이종산의 눈빛을 악으로 깡으로 받아냈다·
이윽고 이종산이 말했다·
“알았으니까 눈이나 깜빡여라·”
나와 황해노경은 더는 참지 못하고 얼른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사이 이종산이 막사 바깥을 향해 말했다·
“쟁자수 이병룡을 들라고 해라!”
잠시 후 이병룡이 찻주전자와 다기가 가득 든 대바구니를 들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이어 사람들 앞에 찻잔을 하나씩 놓고 차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이냐?”
“철관음입니다·”
“철관음인 줄은 나도 안다·”
“차를 가져오라고 부르신 것 아닙니까?”
“그새 쟁자수 일이 몸에 배었더냐?”
“뭐든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중입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쟁자수 일을 몇 달 하고 보니 뜯어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 죄송합니다·”
“표사 일도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배우거라·”
“예?”
***
막사를 나온 사람들은 각자 맡은 일을 위해 빠르게 헤어졌다·
남궁소소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선지 나와 손등을 살짝 스치고는 여표들이 휴식 중인 곳으로 갔다·
그러면서 작게 속삭였다·
“이따가 봐요·”
잠시 후 황해노경이 대장선 하판의 수리가 곧 끝난다는 보고를 해왔다·
출항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돌아서려는 데 저만치에서 방금옥이 중년인과 얘기를 나누며 오는 게 보였다·
중년인은 전날 황학루 꼭대기에서 만났던 합비의 작은 상단 만보상단의 대행수였다·
이름이 방립동이었던가?
황학루에서 그는 십수 년 전 비적이었던 시절 천룡표국의 표마차를 습격했다가 표사들에게 맞아 불구가 되었다고 고백해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두 사람 모두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작은 소리로 나눈다고 했겠지만 백오십 년의 공력을 지닌 내게는 조곤조곤 다 들려왔다·
“정말 안 될까요?”
“글쎄 소용 없어요·”
“모두 천룡표국을 떠나려고 할 때 우리는 오히려 천룡표국을 찾아가 계약을 했습니다· 하면 우리에게 먼저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천룡표국이 불이익이라도 주었던 말인가요?”
“그런 뜻이 아니라·”
“무려 백 곳이 넘는 대형 상단들이 천룡표국과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어요· 표국의 입장에선 대형 상단들과 거래를 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고요· 그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요·”
“비룡당주께서 총애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실 리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더더욱 조심해야죠· 보는 눈들도 많고 하니 그 얘긴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
대여섯 장 앞에서 나와 눈이 딱 마주친 방금옥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립동도 덩달아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 모두 잰걸음으로 다가와서 내게 꾸뻑 포권지례를 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제가 무얼 했다고요·”
“갑자기 오백인 분의 주먹밥을 만들었잖습니까·”
“저는 재료와 비율을 가르쳐 주고 감독만 했을 뿐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한 건 비룡당의 쟁자수들이었습니다· 남궁소소 아가씨와 비룡당의 여표들도 도와주었고요·”
그때였다· 무한 분타의 표사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가 뒤돌아 있는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방금옥에게 다급히 말했다·
“분타주님께서 급하게 찾으십니다·”
“저를요?”
“예!”
“왜요?”
“그건····”
표사가 말을 못 하고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방청양에게 뭔가 들은 얘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방금옥에게 말했다·
“빨리 가보십시오·”
방금옥이 불안한 표정과 함께 서둘러 표사를 따라갔다·
그녀가 대여섯 정도 멀어졌을 내가 불러 세웠다·
“주먹밥 잘 먹었습니다!”
방금옥이 걸음을 뚝 멈추더니 뒤돌아 나를 보았다·
이어 깜빡했다는 듯 제 머리를 쿡 쥐어 박고는 얼른 포권을 쥐어 보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나와 방립동만 남았다·
내가 물었다·
“두 분은 전부터 아는 사이였습니까?”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다니며 방물을 팔았는데 그때 가끔 들렀던 마을에 그녀가 살았습니다· 분타주님도 그렇고 장궤님도 그렇고 우리 모자에게 잘해주셨지요·”
“성씨가 같아서 친족인 줄 알았더니만·”
“제 성은 가짜입니다· 아비가 누군지를 몰라 성도 물려받지 못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방 씨 성이 듣기 좋다며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번 황학루에서도 그러더니 어떻게 된 사람이 보통은 숨기고 싶어 할 이야기를 잘도 털어놓는다·
한데도 이상하게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천성이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렇군요·”
“저기 당주님····”
“말씀하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도 범선에 미곡을 실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비록 이백 섬밖에 되지 않지만 편의를 봐주시다면 이 은혜는 꼭····”
“죄송합니다만 제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방립동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실망을 넘어 살짝 섭섭한 모양이었다·
내가 범선들의 주인이라는 걸 다 아는데 힘이 없다고 하니 거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이럴 게 아니라 방 장궤에게 한번 말씀해 보시죠· 제가 도와주지 못해 아쉬워하더라고 하면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예에?”
“제가 방 장궤에게 직접 말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되어버려서 말입니다·”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가보시면 압니다· 그럼 이만·”
나는 서너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방립동에게 다시 말했다·
“혹시 과일을 운송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과일을요?”
“아 지금 말고 장강수로가 상대적으로 한가한 여름에 말입니다· 강남에서 나는 신선한 과일들을 강북으로 가져가 파는 것이지요· 천룡표국의 범선을 이용해 남경까지만 가도 좋고 아예 진강까지 가서 운하를 타고 북상하면 양주 회안 합비 등의 대도시는 물론이거니와 멀리 산동의 추성 곡부 제남도 넘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일부 상단에서 교룡방의 조운선을 이용해 과일을 운송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량도 적은데다 신선함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방립동의 눈이 툭 튀어나오며 그대로 석상이 되어 버렸다·
젊은 나이에 상단의 대행수 자리에 오른 사람답게 내가 한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바로 깨달은 것이다·
“관심 있으시면 방 장궤와 상의해 보십시오· 그럼 진짜로 이만·”
***
깜깜한 밤 나는 비룡당의 표사 십여 명을 이끌고 독고완의 뒤를 따랐다·
울창한 숲길을 달리길 한참 갑자기 오래된 선창을 연한 작은 마을 같기도 하고 장원 같기도 한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당연히 그 너머는 장강이었다·
“여깁니다·”
독고완이 잠행을 멈추고 완벽한 새소리를 흉내 냈다·
잠시 후 시커먼 그림자가 딱히 조심하는 기색도 없이 쭐레쭐레 나타났다·
호리독사였다·
“오셨습니까?”
“상황은?”
“살인멸구를 할 줄 알았더니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가 일곱 명 모두 살려서 데려갔습니다· 아주 의리가 없는 놈들은 아닙니다·”
“위치는?”
“안으로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세 번째 전각에 전부 처박혀 있습니다· 서너 명이 계속해서 들락거리며 피를 닦아내고 약을 먹이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함께 온 무한분타의 표사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교룡방이 맞습니다·”
이을룡의 말이 맞다·
천룡표국의 범선이 공격받고도 그냥 넘어가는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
최소한 그것을 사주한 자들에게는 확실히 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엉뚱한 짓을 못 한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