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 장강십팔탄(3) >
대형 범선들이 천룡표국의 표기를 내걸었다는 말에 황하루 꼭대기 층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경악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이종산을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번번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천하의 표왕이 또 무언가 엄청난 반전의 패를 준비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종산은 십리경에서 조용히 눈을 떼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천룡표국 내의 사정을 잘 아는 이갑룡과 이을룡 그리고 이병룡도 놀란 고양이 눈이 되어 나를 응시했다·
이종산이 물었다·
“네가 벌인 일이더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보아라·”
“연초에 범선 다섯 척의 건조를 해룡선방에 맡겼다고 보고드린 일이 기억 나시는지요? 그 배들이 완성되어 지금 장강을 거슬러 오른 것입니다·”
“저만한 크기의 범선을 건조하려면 일 년은 족히 걸릴 터인데? 게다가 범선을 부릴 줄 아는 선원들까지 구하려면 내년 가을은 되어야 장강에 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니만·”
“돈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얼마나?”
“그때 그 시점에서 가진 돈 다 털어 넣었습니다· 싹싹 끌어다가 전부요·”
“농부는 밭을 팔아도 종자를 남겨두고 마부는 말을 팔아도 고삐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재기의 동력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마지막에 아낀 한 줌의 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불길은 한 번에 크게 일으켜야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으키다 중간에 소나기라도 오면 꺼지는 수가 있더라고요·”
슬쩍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이종산과 나의 주변은 강남구상의 늙은 상단주들을 비롯해 삼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범선이 천룡표국의 표기를 달고 오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기 위해 아래층에서 미곡시를 지켜보던 표국주들까지 전부 올라온 탓이었다·
그런데 이종산은 까맣게 몰랐고 오히려 전부 내가 벌인 사달이라는 걸 알고는 다들 놀라서 까무러칠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대체 범선을 어떻게 무한까지 끌고 올라 올 생각을 한 것이더냐·”
“그때도 범선을 타고 무한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교룡방의 도움을 받을 줄 알았다· 지금도 스무 척의 비조선이 달라붙으면 조운선 한 척을 끌어 올린다· 계속해서 비조선의 숫자를 늘리다 보면 어느 순간엔 범선도 끌어 올리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느니라·”
“장강에 범선 띄우는 일을 그들이 도와 줄리가요·”
“해서 실패할 줄 알았느니라· 운이 좋아 교룡방을 설득한다고 해도 먼 장래의 일이 될 것이라고· 한데 범선을 무한까지 직접 끌고 올라올 줄은 몰랐구나·”
“교룡방의 힘을 빌릴 것 같으면 기존에 있는 조운선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구태여 비싼 범선을 다섯 척씩이나 건조할 필요가 없지요·”
“네 말이 옳다· 남의 배를 빌려서 표물 운송하는 걸 두고 조운을 한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껄껄껄·”
이종산은 저 멀리 범선이 올라오고 있는 장강 하류쪽을 응시하며 한바탕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가 외인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대놓고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는지 이갑룡과 을룡과 병룡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편 이종산의 입에서 흘러나온 ‘조운’이라는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흡사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단들이 미곡을 사서 표국에 운송을 의뢰하면 표국이 다시 교룡방의 조운선과 방도들을 고용해 장강 구간을 이동하는 실정이었다·
한데 천룡표국이 직접 장강 조운까지 하게 되면 교룡방을 거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대륙의 모든 표국을 통틀어 최초의 일이면서 운송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얼굴을 맞대고 조용히 걱정하는 소리들이 초조하고 다급한 음성으로 들려왔다·
난리가 났다·
범선이 도착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강변 개활지에 모여든 군중의 수는 어느새 수천 명에 달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하류쪽 강변의 관도에는 범선들을 구경하며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도 장사진을 이루었다·
상인이나 표사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평생 살면서 제 살던 고장을 떠날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범선이 온갖 복잡한 모양의 돛을 달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광경은 충격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해가 반 뼘쯤 남았을 때 마침내 다섯 척의 범선이 천룡표국의 표기를 힘차게 펄럭이며 선창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수심이 충분치 않아 바로 붙지는 못하고 십여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닻을 내려야 했다·
그러자 방청양이 분타의 표사와 쟁자수들로 하여금 교룡방으로부터 사들인 조운선 열 척을 끌고 오게 해서 임시로 부교를 놓았다·
그제야 대장선으로 전부 옮겨타서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선체가 워낙 높다 보니 뱃머리에서 뭍으로 그냥 훌쩍 뛰어오르면 되는 조운선과 달리 줄사다리를 타고 내리는 절차를 거쳤다·
구경꾼들에게는 모든 것이 생경하고 신기해서 무언가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와아’ 하며 감탄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국주님을 뵙습니다·”
“국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비룡당의 표두 가불염과 특무표사 남궁소소에 이은 황해노경의 인사였다·
한데 황해노경의 말이 좀 뜻밖이었다·
두 사람이 이미 아는 사이였나?
“방주님을 이런 장소에서 이런 방식으로 다시 뵐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만 비룡당에서 운용하는 선단의 단주가 되어 있지 뭐겠습니까? 천룡표국의 사람이 되었기로 국주님께 정식으로 다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면서 황해노경은 또 한 번 포권지례를 올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흑룡도방과 황해노경을 알아보는 표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코딱지만한 곳이었을 지언정 일방의 방주였던 황해노경이 범선들을 이끌고 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천룡표국 소속의 단주임을 밝히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종산도 적지 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저의 막내 녀석이 어려운 표행 몇 개를 성공하더니 기고만장해서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지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단주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아는 거라곤 그저 배를 모는 것뿐입니다· 어찌 표행을 함에 가르침을 운운하겠습니까· 다만 당주님을 주군으로 모시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주군이라는 말에 주위 사람들 전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까지의 극존칭과 관계 정립은 생각한 바가 없었기에 나도 적지 않게 놀랐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황해노경은 지금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흑룡도방의 전대 방주라는 신분을 던져 버리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는 자신을 따라 온 법 보다 주먹이 먼저인 세상에서 살아온 백여 명의 방도들에게 이제부터 자신들의 진짜 대장이 누구이며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그들의 방식과 언어으로 확실하게 가르쳐 주려는 것이다·
그래야 한시라도 빨리 다들 적응할 테니까·
그래야 비룡당 표사들과의 마찰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오랜 세월 일방을 이끌어 본 사람이다 보니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국주님 말씀처럼 정말 앞으로 많이 배워야겠다·’
황해노경은 이어 나를 향해 허리까지 숙이며 포권지례를 올려왔다·
“쌍각오선단주 임광요 당주님을 뵙습니다·”
한 박자 정도 사이를 두고 황해노경의 뒤에 도열해 있던 백여 명의 흑룡도방 방도들이 일제히 포권지례를 올려왔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절반 정도는 흑룡선을 타고 함께 왜국으로 들어갔던 선원들이었다·
그중에는 전날 나와 한바탕 주먹 다짐까지 하며 거창하게 인사를 나눴던 거인 갑판장 범주도 있었다·
저렇게 쓸만한 인사를 다 빼 와 버려도 흑룡도방이 멀쩡할지 살짝 걱정될 정도였다·
“천룡표국 비룡당의 식구가 되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은 당주이지만 한가지 여러분 모두 죽을 때까지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될 거라는 것만큼은 저 역시도 확실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와아아!”
이제는 천룡표국 비룡당 소속 쌍각선단의 선원이 된 흑룡도방의 방도들이 하늘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함께 배를 타고 올라온 비룡당의 표사와 쟁자수 일흔여 명도 덩달아 함성을 질러댔다·
그 바람에 한순간 벌떼와도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그렇게 일어난 기세는 선원들의 등 뒤에 버티고 선 산더미 같은 범선 다섯 척의 위엄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미곡시가 열리고 있던 수만 평의 강변 개활지 전체를 단숨에 뒤덮어 버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궁소소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수고 많았소·”
“칭찬할 거면 돈으로 해줘요·”
“칭찬도 하고 포상금도 줄 거요·”
“내 돈 들어간 것도 꼭 챙겨줘야 해요·”
“돈 들어갈 일이 있었소?”
“그건 차차 얘기하기로 해요·”
그러면서 남궁소소는 싱글싱글 웃었다·
무언가 강한 도전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빨리 온 것이오?”
“생각했던 것보다 배가 훨씬 빠르더라고요· 급류를 지나 평수가 시작되면 강변 관도에서 말이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달릴 정도였다니까요·”
배가 아무리 빠르기로 달리는 말보다 빠를까·
아무래도 전문가의 냉정한 식견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황해노경을 바라보았다·
황해노경은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순풍이 불 때 돛을 전부 펼치면 정말 그 정도의 속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역풍이 불 때라도 세 개의 커다란 삼각돛과 천공범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가능하고요· 노를 젓는 것까지는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 말씀은?”
“대성공입니다· 범선이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걸 강변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지켜보던 교룡방 방도들의 얼굴을 보셨어야 하는 건데· 껄껄껄·”
“장강수로맹의 수적들은 어떻게 상대하셨습니까? 통행세를 넉넉히 준다고 해도 순순히 통과시켜 주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도 그걸 가장 걱정했었는데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바다만 다니다 보니 장강수로맹과 천룡표국의 돈독한 관계를 크게 오판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무슨 말이냐는 듯 가불염을 돌아보았다·
가불염이 말했다·
“일곱 차례나 장강수로맹의 수적선을 만났지만 적당히 성의를 보였더니 모두 순순히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심지어 우리와 나란히 달리며 누구의 배가 빠른지 경쟁을 해보는 수적선도 있었고 조심하라며 물밑에 암초가 솟은 곳을 가르쳐 준 수적들도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이틀이나 더 일찍 도착한 진짜 이유가 장강수로맹의 협조 덕분인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천룡표국과 장강수로맹이 대대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오긴 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배인 범선이 출몰하면 계산도 다시 하자고 일단은 강짜부터 부렸어야 정상이다·
그게 흑도다·
남궁소소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범선에 싣고 갈 미곡은 어딨어요?”
“아직은 조운선 오십 척을 채우지도 못했소·”
“왜요?”
“일이 생각보다 잘 안 풀렸소·”
남궁소소는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그녀는 돌아가는 분위기만으로 세 곳의 상단 외에도 추가 이탈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범선이 도착했으니 다 해결되겠죠?”
비용이 절감된 만큼 표비를 내린다면 모를까 범선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상단들로부터 계약을 따낼 수 없다·
무한 미곡시에 모인 상단주들은 귀계와 암투가 난무하는 상계에서 지금의 상단을 일군 여우들이었다
단지 장강에 범선이 올라온 게 신기하다는 이유로 혹은 호기심에서 의뢰를 맡기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다·
오로지 돈이다·
무조건 다른 곳보다 싸야 한다·
월등한 운송 품질을 이유로 약간 더 지불할 수는 있으나 그 경우에도 이 할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범선을 통한 운송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며 상단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 할의 벽을 넘을 무기는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저 의심 많고 꼼꼼하고 고지식한 여우들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고 확실하게 설득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을 뿐·
‘어떻게 한다?’
쓰윽 옆을 돌아보니 수많은 상단 사람들이 범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타 표국의 국주와 표사들도 다소 긴장한 기색이기는 하되 처음 범선이 나타났을 때만큼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안력을 돋우어 황학산 쪽을 올려다보니 북천표국주와 강북의 표국주들이 아직도 황학루 꼭대기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천룡표국의 들러리가 되기 싫어서 아예 내려 오지도 않은 것이다·
심지어 북천표국주는 팔짱까지 낀 채 지켜보는 여유를 보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경계심을 넘어 적개심까지 비쳐야 정상이다·
가장 두려워 하던 경쟁 표국이 획기적인 비용 절감으로 표비를 대폭 인하할 여력까지 생겼으니까·
저들도 아는 것이다·
이종산이 지금의 표비를 고수하는 것이 꼭 이윤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였다·
누가 엉덩이를 꾹꾹 찌르기에 돌아보니 강남구상의 수장인 황삼 뇌일봉이 땅에 내려진 가마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지팡이로도 쓰고 가마꾼들과 호위무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할 때도 쓰는 청려장(명아주 풀로 만든 지팡이)을 들고 있었다·
강호인들이 그를 황삼이라 부르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단지 사시사철 뉘리끼리한 황삼만 고집하며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래야 때가 묻어도 잘 표시가 안 나고 표시가 안 나야 한 번이라도 덜 빨고 한 벌이라도 덜 빨아야 옷을 좀 더 오래 입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만의 부를 축적하고도 돈 한 푼 쓰는데 벌벌 떠는그의 지독한 성격 혹은 습관 때문에 그런 말들이 도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아무렴 그렇게까지 수전노이려고·
“예 상단주님·”
“어르신이라고 해라·”
“예?”
“상단주라고 하니까 너무 삭막해서 그래·”
“알겠습니다· 어르신·”
“아니다 선배님이라고 해라·”
“예?”
“막상 어르신이라고 하니 내가 금방 죽을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래· 선배님으로 하자· 솔직히 너한테까지 형님 소리 듣는 건 좀 그렇고·”
“알겠습니다· 선배님· 한데 제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우리 저거 한번 태워 줘·”
“예?”
“저거 말이야· 이상하게 생긴 배· 저 배들 네 것 아냐? 아까부터 계속 잘난 척을 하길래 난 또 네가 주인인 줄 알았지·”
황삼의 뒤에는 강남구상의 다른 상단주들도 전부 가마에 앉아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요?”
“어차피 상단들이랑 계약을 못해서 지금 당장 할 일도 없잖아·”
“한번 태워 줘!”
“한번 태워 줘!”
“한번 태워 줘!”
누가 한마디 하면 따라서 하는 게 버릇인지 늙은 상단주들이 전부 똑같은 소리를 했다·
황삼이 입맛을 다시며 또 말했다·
“그냥 배에 올라가 기분만 내는 것 말고 저 밑에 청수탄까지 갔다 오자· 아까 들어보니 아침에 청수탄을 통과해서 지금 도착했다며? 그럼 지금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는 청수탄을 지날 수 있겠군· 거기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청수탄을 거슬러 오르는 거지· 그럼 내일 저녁쯤에는 여기에 도착할 수 있잖아· 어때? 선배님 생각이·”
“딱 좋네·”
“아침은 제가 사지요·”
“가면서 천룡표국주가 갖고 온 봉황명주를 마시면 되겠네·”
“크어·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 선상에서의 주연(酒宴)이라·”
“단주님은 어째 나이가 드실수록 계산이 총명해지십니다·”
“형님이라고 해라아·”
강남구상의 상단주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자기들끼리 좋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다 황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싫어? 싫으면 북천표국이랑 계약하고·”
밤새 범선을 타고 청수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급류를 거슬러 올라 여기까지 오자고?
이 노인네들이 영약을 먹고 회춘이라도 하셨나·
순간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누가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고 간 것 같았다·
이 노인네들은 지금 나를 도와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그런 묘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