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바다 건너 동쪽으로(9) >
석불원과 호리독사와 미나모토와 남궁소소와 모모카를 상대로 파상적인 공세를 퍼붓던 적들이 모두 칼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피칠갑에 만신창이가 된 채 내게 사로잡힌 타키히로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석상이 되어 버렸다·
“물러서!”
이번에도 통역은 필요 없었다·
내가 왼손으로는 투구의 뿔을 잡아 흔들고 오른손으로는 금방이라도 목을 썰어버릴 것처럼 굴자 모조리 좌우로 물러났다·
“남궁소소!”
“통역할게요·”
“우린 계속해서 갈 길을 가겠다· 만약 막아서는 자가 있다면 너희는 오늘 타키히로의 시체를 성주에게 가져가야 할 것이다!”
남궁소소가 통역을 하는 동안 호리독사와 미나모토가 재빨리 놈들에게서 말 여섯 필을 빼앗아 왔다·
그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한 놈에게 타키히로를 담장에 빨래 널 듯 엎드려 태운 다음 나도 올라탔다·
석불원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한 마리씩 골라 탔다·
모모카는 자신의 앞쪽에다 왕자를 앉혔다·
그때까지도 시마즈 가문의 기마무사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의식은 가물가물한 데다 얼굴에선 피가 철철 흐르며 팔까지 빠져 축 늘어진 타키히로를 보고 감히 시비를 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발하려는데 낭인무사들이 아직 길을 비키지 않고 있었다·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타키히로의 뒷목에 칼끝을 겨누며 말했다·
“비켜!”
시마즈 가문의 기마무사들 중 장수쯤으로 보이는 자가 뭐라고 빽 소리를 질렀다·
낭인무사의 우두머리는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결국 물러났다·
그의 수하들도 썰물처럼 갈라졌다·
두두두두두·
놈들 사이를 여섯 필의 말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튀어 나간 나는 놈들에게서 횃불 하나를 빼앗아 챙겼다·
***
마침내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한데 드넓은 모래사장엔 우릴 범선까지 태우고 갈 비조선과 흑룡선의 선원들이 없었다·
석불원이 십리경을 뽑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다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리 깜깜해도 별은 총총 빛났기에 저 바다 어딘가에 범선이 있다면 수평선 위로 불쑥 솟아오른 그림자가 보이기 마련이었다·
“이곳이 맞나요?”
“틀림없이 이곳이에요·”
“한데 왜 아무도 보이지 않죠?”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한 것 같아요·”
모모카와 남궁소소의 대화였다·
목숨을 걸고 왕자와 함께 탈출한 모모카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빠져나온 숲 앞 해변에는 뒤를 쫓아온 시마즈 가문의 무사 일천여 명과 낭인무사들이 진을 진 채 지켜보고 있었다·
배가 없으면 끝장인 것이다·
사실 자정을 훨씬 넘기긴 넘겼다·
이윽고 눈에서 십리경을 뗀 석불원이 말했다·
“범선도 보이지 않네·”
그 한 마디에 남궁소소와 모모카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남궁소소가 그 예쁜 얼굴로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행낭을 두고 내리는 게 아니었어요·”
“무슨 말이오?”
“그때 황해노경이 그랬잖아요· 바다를 무사히 건넌 후 목적지에 다다르면 행낭들을 전부 배에 두고 내리라고요· 특히 금전과 전표가 든 가죽 주머니를·”
우리를 흑룡선에 태워 왜국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을 때 황해노경이 마지막으로 내세웠던 조건이었다·
석불원이 이유를 묻자 황해노경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에 정해진 시간까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면 여러분이 남긴 행낭 속 돈들은 모두 우리가 가지도록 하겠소이다·’라고·
남궁소소는 황해노경이 행낭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정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호리독사가 말했다·
“이상하다· 우릴 두고 갈 리가 없는데·”
“아직도 그 흑도놈들을 믿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제가 뭘 좀 훔쳤거든요·”
“뭘 어쨌다고요?”
“커다란 해도랑 나경(羅經-패철·나침반)이랑 각도기랑 그 외 이것저것요· 선장실 책상에 있는 건 모조리 쓸어 담았습니다· 특히 나경은 다른 선원들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탈탈 털었습니다· 전부 아홉 개나 되더라고요·”
“그것들을 다 어쨌는데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겨 두었지요· 혹시 그걸 찾았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만약 그걸 찾으면 당장 직업을 우리 쪽으로 바꿔야 하는데·”
남궁소소는 기가 막히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십리경을 들고 있는 석불원도 모모카로부터 설명을 들은 미나모토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왕자 쇼고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누가 와요!”
바다가 아니라 해변의 동쪽 숲에서 대여섯 개의 그림자가 기다란 비조선 세 척을 양쪽에서 잡아든 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석불원이 재빨리 십리경을 눈에 붙이고 동쪽 해안가 모퉁이를 살폈다·
이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범선이 나타났네·”
***
마침내 모두가 범선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비조선에 남은 나는 타키히로의 팔을 다시 끼워 주며 말했다·
“닷새 동안 신세 많이 졌소·”
“(이름을 알려다오·)”
“피차 지난 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간직합시다· 그리고 훗날 성주가 되면 아비처럼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그러지 마시오· 크게 당하는 수가 있으니까·”
“(반드시 너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타키히로의 한쪽 눈에 아직도 박혀있는 비격쌍뇌창을 쑥 뽑았다·
장담컨대 이 눈알은 이제 쇳독이 올라서라도 못 쓴다·
이어 비격쌍뇌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허공에 둥둥 띄웠다·
그 모습을 본 놈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잠시 손바닥 위를 빙빙 돌던 비격쌍뇌창이 돌연 놈의 남은 한쪽 눈을 향해 돌진했다·
“끄흡!”
깜짝 놀란 놈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슬그머니 눈을 떴다·
비격쌍뇌창은 그의 눈앞 한 치 앞에서 성난 생명체처럼 바르르 떨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만약 복수할 생각이 있다면 내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다가 꼭 찾아와라· 그땐 남은 눈깔도 먹물을 쪽 뽑아줄 테니까·”
“(···!)”
나는 비조선을 박참과 동시에 밧줄을 잡고 범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황해노경을 비롯해 낯익은 흑룡선의 선원들이 보였다·
“돛을 올려라!”
전속력으로 서진한다!
***
바닷바람이 차다·
나와 석불원은 갑판에 서서 조금씩 밝아오는 동쪽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생했네·”
“그래서 돈값은 했습니까?”
“차고 넘치도록·”
“이래도 제가 쟁자수입니까?”
“그 말이 자존심 상했나 보군·”
“이해가 안 돼서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쟁자수 노릇을 해야 했는데 나 빼고는 자네가 제일 잘할 것 같았네· 애초 점 찍어 둔 왜인은 표행에 문외한이었거든· 알다시피 황해노경은 배만 태워 주는 걸로 끝이고·”
“한데 왜 저는 이천 냥이고 미나모토에게는 사천 냥을 제시했습니까? 제가 미나모토보다 더 쓸모가 없어 보였습니까?”
“자넨 이천 냥만 제시해도 덤벼들 것 같았으니까· 대저 표사의 몸값이란 그가 지닌 가치에 달린 게 아닐세· 얼마면 움직이느냐 하는 것에 달렸지· 후후·”
“예에?”
“너무 실망하지 말게·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왜인은 무공만 뛰어나면 누구로도 대체할 수 있었네· 하지만 자네는 처음부터 대체가 불가능한 표사였지· 그래서 자네를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이고· 자네가 없으면 표행 자체를 할 수가 없었으니까·”
이미 충분한 돈이 있는 그리고 명표가 되고자 하는 내게 딱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꽁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풀어졌다·
“저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소문으로도 듣고 있던 차에 두 사람이 추천을 해주었지· 한 명은 하오문주였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
“뭐라고요?”
“왜국행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표행이고 어떤 상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위기 상황에서의 신기묘산한 임기응변이라면 내가 아는 한 천룡표국의 풍운비룡만한 표사가 없다···· 라고·”
“부끄럽습니다·”
“갑자기 겸손해지는군·”
“앞으로 더 겸손해지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추천 이유는 직접 만나서 확인하시게· 표행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자네를 꼭 데려오라고 하셨다네·”
“···?”
누가 무슨 이유로 추천했는지는 모르지만 석불원의 말만으로도 나에 대한 호의가 잔뜩 느껴졌다·
더불어 ‘하셨다네·’라고 말하는 거로 보아 석불원 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분인 것 같았다·
“한가지 여쭈어도 됩니까?”
“지금까지 계속 물었네만·”
“표행이 시작되면 항상 그렇게 파격적인 행보를 하십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위기가 생기면 일단 앞뒤 재지 않고 지르고 보는 유형이시냐는 거지요·”
“한 조직의 수장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건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는 거라네·”
“만약 그 결정이 잘못되었으면요·”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결정을 내린 후에라도 일을 끝낼 때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또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네·”
유비가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싸움을 잘하거나 지략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덕(德)이 있었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쓸 수 있는 용병술이 있었다·
석불원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살 수 있는 돈이 있었고 그렇게 산 표사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어서라도 전력을 뽑아내게 만드는 용병술이 있었다·
사실 무모하기로 따지자면 나도 석불원 못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명성보다는 위험한 표행 자체를 즐기는 변태고 나는 명표가 되고 싶어 환장한 미치광이라는 것 정도·
문득 명표가 되는 길은 하나가 아니며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명표라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그랬을 것이다·
“잠깐만요· 말로 하자고요!”
다급한 소리에 나와 석불원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뿔투구를 뒤집어쓴 호리독사가 몽둥이를 꼬나 쥔 선원들에게 쫓겨 선미의 갑판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나왔는지 남궁소소 미나모토 모모카도 보였다·
이윽고 호리독사의 등이 난간에 닿아 더는 도망칠 곳이 없어지자 선원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황해노경이 앞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불이라도 난 것처럼 화가 나 있었다·
석불원이 짐짓 모르는 척 끼어들며 물었다·
“무슨 일이외까?”
“이미 짐작하실 텐데요·”
“역시 그 일 때문이군요· 화가 나신 것은 충분히 알겠으나 저의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소이까?”
“표행단에서는 이럴 때 그냥 넘어가외까?”
“물론 그렇진 않지요·”
“길게는 한 달씩 바다를 떠도는 범선 위에서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예사로 일어나외다· 그때마다 저 거친 선원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엄격한 규칙과 자비 없는 징벌뿐이오·”
“어떤 벌을 내리 실 거외까?”
“대륙으로 돌아갈 때까지 철창 속에 가두고 물과 음식을 일절 주지 않을 것이오· 이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호의요· 선원이었다면 손목을 잘랐을 것이오·”
“그 정도만 해도 감사하지요·”
그 한마디를 던지고 석불원은 발을 쏙 빼버렸다·
뱃사람들의 엄격한 율법을 잘 아는 것이다·
표두의 허락도 얻었겠다 선원들은 더욱 기고만장해했다·
마침내 황해노경이 일갈을 내질렀다·
“저놈을 잡아라!”
“당주님이 시켰습니다!”
호리독사의 입에서 갑자기 터져나온 외침에 모두가 동작을 뚝 멈추었다·
이어 약속이나 한 듯 나를 돌아보았다·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져야 한다·
나는 심장이 철렁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소리쳤다·
“내가 언제!”
“당주님께서 선장실로 들어가 책상 위에 있는 건 모조리 훔쳐 오라고 했잖습니까· 안 그러면 제가 어떻게 그런 기가 막힌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거야 선원들이 우릴 놔두고 도망칠지 모른다며 당신이 하도 걱정을 하니까 이런 방법도 있다며 예를 들어준 거지·”
“망은 왜 봐주셨습니까?”
“귀하가 날마다 달걀을 훔쳐 먹는 걸 보고도 내가 모른 척해주었는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사람을 이렇게 모함해도 되는 거요?”
“당주님과 남궁소저와 저 이렇게 셋이서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먹었잖습니까· 해풍 맞고 낳은 달걀이라서 그런지 비리지도 않고 고소하다며 잘만 드시더니·”
“가만히 있는 나는 왜 끌어들여요!”
“모두 멈춰!”
누군가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의 고개가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황해노경의 일갈에 뚝 멈추었다·
“세 명 다 처넣어라!”
***
네 평 남짓한 감옥은 말이 좋아 감옥이지 큰 닭장이었다·
다만 쇠창살이 굵다 보니 닭장으로 쓰기엔 조금 아까울 뿐·
“젠장 좁아 죽겠네·”
“날달걀 몇 개 때문에 감옥에 갇힐 줄이야·”
“닷새만 참으면 되니 너무 걱정 마시오·”
“정말 물과 음식을 하나도 안 줄까요?”
“두고 보면 알겠지·”
나는 턱으로 미나모토를 힐끗 가리키며 물었다·
“저 인간은 왜 따라 들어온 거요?”
“글쎄요·”
미나모토는 쇠창살에 기대어 어디서 주워 온 헝겁 쪼가기로 피묻은 칼을 쓱쓱 닦고 있었다·
인간의 피에는 소금 성분이 많기 때문에 빨리 닦아내지 않으면 녹슬기 딱 좋았다·
그는 왜국의 무사답게 본능적으로 칼을 아끼는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한쪽 구석에서는 호리독사가 쭈그리고 앉아 쇠뭉치로 뿔투구를 탕탕 두들기고 있었고·
“아까부터 뭘 하는 거요?”
“찌그러진 곳을 펴고 있습니다·”
“그건 대체 왜 빼앗은 거요?”
“기념으로 가져가려고요·”
“쓸데도 없는 걸 뭐하러·”
“그러는 당주님은 그게 뭡니까?”
“뭘 말이오?”
“옆에 세워 둔 칼 말입니다·”
감옥에 갇힐 때 미나모토가 난데없이 칼을 갖고 들어가겠다고 극구 고집을 피웠다·
너는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자의로 들어가는 데다 달리 도망갈 데도 없으니 황해노경도 까다롭게 굴지 않고 허락해 주었다·
그러자 표행도 끝나가는 마당에 잠든 사이 미나모토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던 나와 호리독사도 칼을 갖고 들어 온 터였다·
“타키히로랑 싸울 때 빼앗은 것이오·”
“어쩐지 칼집이 안 맞더라니·”
“원래 부러진 내 칼집에 타키히로의 칼을 꽃았으니까 잘 안 맞을 수밖에·”
“그런데 도신이 어째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렇소?”
나는 무심코 도갑을 잡고는 칼을 쭉 뽑아 보았다·
스릉!
쇠를 수십 번 접고 두들겨서 만든 칼에는 특유의 물결 문양이 가득했다·
그리고 예광(銳光)이 있었다·
경박하게 번쩍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광채를 속으로 머금은 것이 보기만 해도 서늘했다·
그런가 하면 도신의 아래쪽에는 천일단(天日鍛) 만일련(萬日鍊)이라는 여섯 글자가 비범한 필체로 새겨져 있었다·
미나모토가 깜짝 놀라며 목구멍을 쥐어짰다·
남궁소소가 통역했다·
“아무래도 시마즈 가문의 가보를 가져온 것 같대요·”
“가보라니·”
“오래전 왜국에 적수가 없었던 전설적인 검객이 있었대요· 한데 무슨 이유에선지 죽기 전 자신이 평생 쓰던 보도(寶刀)를 시마즈 가문에 선물했고 이후 시마즈 가문에선 그 보도를 가보로 삼아서 전해 내려왔다고요·”
“가보를 왜 타키히로가 갖고 있었지?”
“천수각에 불이 나자 성주가 보도를 챙겨서 나왔고 때마침 자신을 찾아온 타키히로에게 가문의 원수를 갚고 오라며 잠시 빌려준 것이 아닐까요?”
“그럴 듯한데·”
손가락으로 도신을 한번 살짝 튕겨 보았다·
지이잉!
뭐라 말할 수 없이 맑은 쇳소리가 울린다·
내친김에 앞에 있는 굵은 쇠창살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까가강!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굵은 쇠창살 세 개가 거짓말처럼 싹뚝 잘려 나가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때 소리를 듣고 선원 대여섯 명이 우당탕탕 달려왔다·
이어 대나무 치듯 싹둑 잘려나간 쇠창살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죄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