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바다 건너 동쪽으로(7) >
방 안으로 들어온 사내아이는 마치 믿을 사람은 세상에서 그녀가 유일하다는 듯 젊은 여자에게 착 달라붙어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품 있는 얼굴 맑은 눈동자 예사롭지 않은 복장까지·
누가 보아도 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해선 안 된다·
시마즈 일족의 아이가 호기심에서 찾아왔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동적 연주를 듣고 싶다고요?”
“안 되나요?”
나는 사내아이를 보며 말했지만 당연히 젊은 여자가 통역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대답은 엉뚱하게 사내아이에게서 바로 튀어 나왔다·
그것도 제법 그럴듯한 발음으로·
“우리 말을 잘하시는군요·”
“모모카에게 배웠어요·”
그러면서 젊은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
여자의 이름이 ‘모모카’인 모양이었다·
“대륙어를 왜 배우셨는지요?”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해요?”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팔짱을 끼고 사내아이를 뚫어지게 보았다·
네가 대답하지 않는 것도 자유지만 우리가 동적을 연주하지 않는 것 또한 자유라는 듯·
사내아이는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우리 유구국은 오랜 세월 대국과 많은 교류를 해왔어요· 해서 왕자들은 어려서부터 모두 대륙어를 배워야 해요·”
“하면 존성대명이····”
“쇼고·”
뒤를 돌아보니 석불원 남궁소소 호리독사 미나모토가 숨을 죽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내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왕자로 하여금 우릴 찾아오게 만든다는 내 작전이 성공한 셈이었다·
나는 석불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석불원이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귀한 분께서 왕림하셨군요·”
“그럼 연주를 들을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말과 함께 석불원이 품속에서 동적을 꺼냈다·
이어 연주를 하기 위해 파지를 하고 취구를 입에 붙이는 순간 왕자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왜 그러십니까?”
“동적이 낯익어서요·”
“자세히 보시겠습니까?”
동적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피던 왕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나는 호리독사와 남궁소소에게 얼른 눈짓을 했다·
호리독사는 재빨리 창가에 붙어 바깥을 감시했고 남궁소소는 출입문에 붙어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들은 누구죠?”
모모카가 살기를 끌어 올리더니 왕자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가 자신들을 감금하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데 모모카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인?
석불원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대륙에서 온 표사들이오·”
“그게 뭔가요?”
“돈을 받고 물건이나 사람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고 호송해 주는 사람들이오· 내가 표행단의 우두머리이고·”
“한데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죠?”
“이 동적의 원래 주인이 우리를 고용했소· 사쓰마로 가서 볼모로 잡혀 있는 유구국의 어린 왕자를 구해 대륙으로 데려와 달라고·”
모모카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고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왕자는 기어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석불원이 예의를 갖추어 왕자에게 물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왕자는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모모카를 올려다 보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시녀인 듯한데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그녀를 친누나처럼 따르고 의지한 것 같았다·
모모카도 망설이기는 매한가지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혼란스럽기도 할 것이다·
거기엔 낯선 대륙인들에 대한 경계심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때였다·
삐이이익!
어디선가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왕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모모카가 말했다·
“돌아가야겠어요·”
“무슨 일이시오?”
“시마즈 가문의 시비들이 왕자님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부는 호각이에요· 저 소리가 울리면 왕자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든 일각 안에 처소로 돌아가야 해요·”
“일국의 왕자를 호각으로 부른다고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소소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요·”
“만약 일각 안에 도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시비들에게 고초를 당하시게 돼요·”
“어떻게요?”
“방 안에 가둬 놓고 사흘 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아요· 씻는 것에서부터 대소변을 보는 일까지도 모두 방안에서 해결해야 하고요·”
“이런 돌로 쳐죽일 년들이!”
나와 호리독사는 깜짝 놀라서 남궁소소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저런 노골적인 욕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남궁소소도 경연쩍은 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쭈뼛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왕자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순간 남궁소소가 왕자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여튼 영악하다니까·
슬그머니 전음을 보내 보았다·
[욕이 아주 찰지오·]
[처음 해본건데 잘 했어요?]
[살인나는 줄 알았소·]
그 사이 호각소리는 다른 여러 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댔다·
처음에 울린 호각소리를 듣고 곳곳에서 번을 도는 무사들이 함께 왕자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내일 다시 오겠어요·”
“그건 안돼요!”
말과 함께 왕자의 손목을 잡아 끄는 모모카를 남궁소소가 불러 세웠다·
그리고 얼른 덧붙였다·
“오늘 밤 자정을 기해 왕자님을 모시러 온 배가 대륙을 향해 떠날 거예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배를 타야 하고요· 그러니 이 미친 곳에서 탈출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요·”
모모카와 왕자가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이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모모카가 왕자를 대신해 말했다·
“지금쯤 성 밖으로 나가는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었을 거예요· 해자와 연결되는 외성벽 위에도 감시병력이 증강되었을 거고요·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여길 나가는 건 불가능해요· 반면 한 번이라도 들키면 인근에 있던 무사들이 전부 몰려들면서 모든 게 끝이에요·”
“어려운 결정을 해주어 고맙소·”
석불원은 모모카의 경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짧게 했다·
이어 창가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런 다음 문에 바른 종이를 쭉 떼내더니 그걸 다시 수십 개로 잘게 찢어 허공에 휙 던졌다·
남궁소소가 내게 착 달라붙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뭐하시는 거죠?”
“바람을 살피는 거요·”
“풍향이야 창밖으로 손만 내밀어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건물에 부딪혀 생기는 돌풍이 아니라 육지에서부터 바다를 향해 부는 큰바람을 보려는 것 같소·”
“바람은 본래 바다에서 육지로 불지 않나요?”
“밤이 되면 반대로 바뀌오·”
“왜요?”
“자연의 섭리가 그렇소·”
“잘 모르는군요·”
“엇 저것 보시오!”
석불원이 뿌린 수십 개의 종이 쪼가리는 한참을 솟구쳤다가 돌연 방향을 바꿔 바다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강풍이 불고 있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석불원이 말했다·
“세 번째 작전을 그대로 감행한다· 단 표물을 이미 손에 넣었으므로 판을 좀 더 키우고 각자의 역할도 다시 정해주겠다· 먼저 이정룡·”
“하명하십시오·”
“자넨 나와 함께 호리독사를 따라 본성까지 들어간다· 그런 다음 천수각을 시작으로 사방의 건물마다 불을 질러 적들을 유인한다·”
“알겠습니다·”
“미나모토·”
“···?”
“자넨 남궁소소와 함께 왕자님을 모시고 적당한 곳에 숨어 대기하다가 무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 본성으로 모여드는 틈을 타 성밖으로 탈출한다· 그래도 여전히 막아서는 무사들이 적지 않을 걸세·”
남궁소소가 그대로 통역하자 미나모토가 뭐라고 얘기를 했고 그걸 다시 남궁소소가 석불원에게 통역해 주었다·
“괜찮대요· 천 명을 백 명으로 줄여 주시는 게 어디냐고요·”
평소답지 않은 미나모토의 반응에 모두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일하게 나만 놈의 시커먼 속을 꿰뚫어 보았다·
우리를 사지에 남겨두고 남궁소소와 함께 뛰어가며 그녀 앞에서 혼자 멋지게 무공을 보여줄 생각에 신바람이 난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허세라니·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저 인간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럼 시작하지·”
“맹화유(猛火油)가 있는 곳을 알아요!”
불쑥 끼어든 사람은 모모카였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녀를 보았다·
석불원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양이 어느 정도요?”
“성 전체를 태워버리고도 남을 만큼요·”
“위치는?”
“중성의 서쪽 창고에 있어요·”
“본성이 아니라?”
“맹화유는 발화 위험이 커서 전시에 적들이 중성까지 침투해온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본성으로 들이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항아리의 크기는?”
“어린아이 하나가 들어가 앉을 정도요·”
“그건 너무 큰데·”
맹화유는 석유를 정제해서 얻는 기름으로 수성전에서 성벽에 달라붙어 오르는 적들을 그슬러 버릴 때 쓴다·
불도 잘 붙지만 한번 붙으면 좀처럼 꺼지질 않아서 당하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옥불을 만난 것같다·
하지만 맹화유가 아무리 많은들 그 크고 무거운 항아리를 들고 본성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수는 없다·
호리독사도 홀가분한 몸으로 세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한번 성공할 만큼 본성의 경계는 삼엄했다·
내가 불쑥 말했다·
“오히려 잘 됐습니다· 덕분에 어쩌면 힘들게 본성으로 침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맹화유를 작은 호리병에 나눠 담은 다음 중성의 높은 전각 지붕에 올라가 본성 쪽으로 던지는겁니다· 내공을 끌어 올리면 본성에 있는 전각들 전부 사정권에 들게 할 수 있습니다·”
“호리병이 어디서 나서?”
나는 호리독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당에 술호리병이 몇 개나 있었소?”
“백 개는 족히 될 것 같았습니다·”
“딱 좋군 ”
그제야 내 의중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남궁소소는 가슴이 복받쳐 오른 나머지 ‘하아!’하고 탄성까지 내질렀다·
석불원은 꼭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시 모모카에게 물었다·
“사당에서 맹화유가 있는 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이백여 장 정도예요·”
“생각보다 멀군·”
“본성으로 침투하는 것보다는 몇 배나 쉬울 거예요·”
“사당에서 맹화유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을 지도로 그려 줄 수 있겠소?”
“물론이죠·”
운 좋게도 방 안엔 작은 좌탁과 함께 지필묵이 놓여 있었다·
잠깐 사이에 중요한 지형지물만 대충 그린 지도가 완성되었다·
그중에서 사당과 맹화유 창고를 잇는 크고 기다란 구조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해자예요·”
나는 눈동자를 빛내며 석불원에게 말했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니 물속에 반쯤 잠겨 천천히 이동하면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 겁니다· 설사 누군가 횃불을 비춰 본다고 해도 잠시 물속으로 숨어버리면 그만이고요· 우리 때문에 작은 물결이 일기는 하겠지만····”
“강풍이 만든 물결에 모조리 감춰 지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호리병에 불을 붙여 던지기 시작하면 그 즉시 우리의 위치가 발각되고 수많은 적 궁수들이 사방에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할 걸세·”
“궁수들은 우릴 찾지 못할 겁니다·”
“어째서?”
“가면서 설명해 드리죠·”
“좋아· 가세·”
“저도 함께 가겠어요·”
불쑥 끼어든 사람은 모모카였다·
“귀하가 왜요?”
이번에 남궁소소가 끼어들었다·
“길도 잘 알고 호리병을 하나라도 더 옮겨야죠· 그리고 여러분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대륙의 도법과 경공술을 조금 익혔어요·”
“왕자님은 어쩌고요?”
“본성의 전각들이 불타면 불탈수록 그걸 끄기 위해서 많은 병력이 동원될 거예요· 그러면 두 분께서 왕자님을 모시고 성을 탈출하기도 훨씬 수월해 질 테고요· 제가 없는 동안 왕자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모모카가 갑자기 남궁소소에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남궁소소도 얼떨결에 마주 포권을 쥐었다·
석불원이 마지막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이제 진짜로 시작하자고·”
***
타키히로는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일각 전의 일이었다·
새로 들인 첩과 모처럼 허심탄회한 시간을 가지려는 찰나 수하 놈 하나가 큰일 났다며 처소로 들이닥쳤다·
별일 아니라면 저놈의 목을 쳐버릴 것이라 다짐하며 따라나섰다·
한데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과연 자신을 부를만한 일이었다·
“언제 발견했나?”
“반 식경 전입니다·”
중성의 어느 전각 모퉁이 으슥한 곳에 쓰러져 있는 놈들의 숫자는 다섯· 모두 목이 꺾인 채 죽어 있었다·
그중 네 명은 옷이 홀라당 벗겨져 있었고·
시체를 살펴보니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즉사했다·
“성문은 굳게 잠갔겠지?”
“물론입니다· 또한 요처마다 경계병을 배로 증강하고 신명조(神命組)의 무사 삼백을 동원해 성안을 샅샅이 뒤지는 중입니다·”
“놈들은 아직 성안에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삐이익 하는 호각소리가 울렸다·
신명조의 무사들이 신호를 주고받을 때 쓰는 호각소리가 아니었다·
“왕자는 아직 처소로 돌아오지 않았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속히 확인하겠습니다·”
마사토 부장의 눈짓에 가까이 있던 무사 하나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어둠 속으로부터 다른 무사가 튀어 나왔다·
“대륙 놈들이 사라졌습니다·”
“마사토!”
“말씀하십시오·”
“병력을 천 명으로 늘려라· 외성의 성벽 전체에 일장 간격으로 경계병을 세우고 동원되는 무사들은 모두 활을 지참하게 시켜라·”
“알겠습니다·”
마사토가 휘하의 장수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십여 명의 장수들이 각자의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쏜살같이 사라졌다·
순간 어디선가 퍽퍽 하고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타키히로는 재빨리 신형을 쏘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삼층 전각의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이어 정신을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놀랍게도 본성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때마침 본성의 경계를 책임진 무사들이 호각을 빽빽 불어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라· 어서!”
마사토가 알아서 명령을 내렸고 지붕 아래에 대기 중이던 무사 한 명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퍽퍽 깨지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잠시 후 본성으로 뛰어 들어갔던 무사가 돌아와 보고했다·
“맹화유가 가득 든 호리병이 천수각을 향해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답니다· 한데 어디서 날아오는 지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주님은·”
“급히 피신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흉수들을 빨리 찾아라· 어서!”
석단 위에 나무로 지어 올린 칠층 높이의 천수각에는 세 개의 부속 건물이 달려 있었다·
그곳엔 성주를 비롯해 쉰여 명에 달하는 시마즈 가문의 직계혈족들이 기거했다·
저곳에다 맹화유가 든 병을 던져 깨트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천수각을 통째로 불태워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한데도 놈들이 어디에서 호리병을 던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한 장소에서만 던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불길한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천수각 아래쪽에서 작은 불길이 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위로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이 삼층쯤 올라가자 허공이 밝아지며 호리병 날아오는 것이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마다 핑핑 소리와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화염은 잠깐 사이에 거대한 화마로 변해 천수각을 통째로 집어 삼켜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천수각을 사실상 끝장내버린 흉수들은 이제 본성의 다른 전각들을 향해 호리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전각들 중에는 자신의 마누라와 첩들과 아이들이 거주하는 별채도 있었다·
“신명조를 제외한 모든 병력을 본성으로 집중시켜라· 함지박이든 뭐든 주워 들고 가서 해자의 물을 길어다 불을 끄도록 하란 말이다!”
적들은 여전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불어 달조차 뜨지 않은 이 칠흑 같은 밤에 어떻게 정확히 목표물을 향해 던지는 지도 의문이었다·
“창문!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본성의 모든 전각에 창문을 닫고 등잔불을 끄라고 전해라· 어서!”
마사토가 지붕 아래에 있는 수하들에게 그대로 명령을 전달했다·
하지만 적들이 더 빨랐다·
수십 장의 간격을 두고 세 곳의 큰 전각에서 불이 난 것이다·
그러자 천수각을 비롯해 동서남북에서 불타는 네 개의 전각이 거대한 횃불 역할을 하며 본성의 절반을 환하게 비추었다·
얼굴을 시커멓게 그을린 무사 하나가 헐레벌떡 나타나서는 지붕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웬 미친놈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활을 쏘아 잡으려고 했지만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천수각에 불을 지른 놈도 그 놈인 듯 합····”
보고하던 무사가 이마에 정통으로 수리검을 맞고는 픽 쓰러졌다·
타키히로가 마사토를 노려보며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다·
“이제 보고는 필요 없다· 남은 병력을 전부 동원해 불을 끄고 흉수들을 잡아라!”
나와 석불원과 호리독사와 모모카는 외성 경내를 가로질러 신나게 도망치고 있었다·
본성의 전각들을 향해 퍼부은 호리병은 도합 칠십여 개 그중 절반이 천수각에 집중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발 이게 되네!”
“확신도 없이 일을 벌렸다고?”
“표두님 시키는 대로 했다가는 죽을 것 같으니 뭐라도 해봐야죠·”
“그래서 금전을 이천 냥씩나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말이 됩니까?”
“자네 같은 표사는 처음 보네·”
“피차일반입니다·”
“그래도 수고했네·”
“표두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