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 바다 건너 동쪽으로(2) >
아침나절에 희끄무레한 점으로만 보이던 해적선은 오후가 되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모양은 전체적으로 흑룡선과 비슷했다·
대신 고래의 앞지느러미 같은 판자가 옆으로 튀어나와 있고 선체가 두 배나 컸으며 돛이 모두 합쳐 무려 일곱 장이나 되었다·
호리독사에게 물어 보았다·
“무슨 배가 저렇게 생겼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돛은 또 왜 저렇게 많고·”
“전 두 척이 겹쳐 보이는 줄 알았습니다·”
“해적들도 많이 탔겠죠?”
“아무래도 크기가 크니까요·”
“선원들 말이 해 질 무렵이면 저 배가 앞을 막아설 거라던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요?”
“글쎄요·”
“귀하가 장강에서 수적질 할 때는 어떻게 했소?”
“일단 대거리를 좀 하다가 상대가 항복하지 않으면 갈고리를 사방에서 던져 배를 끌어당기죠· 그런 다음엔 도끼며 칼이며 몽둥이 등을 꼬나쥐고 우르르 건너가 선상백병전을 펼치고요·”
“이번에도 그럴 것 같소?”
“해적들이라고 크게 다를까요?”
“···?”
“···?”
우리는 잠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다와 범선에 대해 무지렁한 것들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자니 딱히 얻는 것도 없고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조금 떨어진 옆에서는 남궁소소와 미나토모가 왜국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선’이군·)”
“(그게 뭔데요?)”
“(대륙 북쪽 지방에서 주로 건조해 타는 범선의 한 종류를 부르는 말이오· 저건 그중에서도 특히 덩치가 커서 ‘대사선’이라고도 부르지·)”
“(우리나라의 배를 잘 아시네요?)”
“(바다에는 국경이 없고 해적들에게는 나라가 없소· 오직 어느 바다에서 활동하는 누가 어떤 배를 가지고 있으며 수하들은 또 얼마나 거느렸는지가 중요하지·)”
“(우리가 탄 흑룡선은 어떤가요?)”
“(흑룡선은 ‘조선’이오· 조선은 배의 밑바닥 용골이 날카롭게 물살을 가르는 침저선인데다 선체가 좁고 길어서 새처럼 빠르게 항해를 할 수가 있지·”
“(그래서 흑룡선을 제일 빠른 배라고 했군요·)”
“(반면 대사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데다 좌우의 선체까지 볼록한 곡선을 이뤄 속도가 느린 편이오· 해월단의 해적선들은 돛의 숫자를 늘려 어느 정도 속도를 끌어 올리긴 했지만·)”
“(해적질을 하려면 빠른 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요· 구태여 느린 사선에다가 저렇게 많은 돛을 달 필요가 있나·)”
“(평저선은 침저선에 비해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 전환이 쉽고 밑걸림이 적어 얕은 바다도 쉽게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소· 무엇 보다 화포를 쏴도 반동으로 인한 흔들림이 적어 재발포시 정확도가 매우 높지·)”
“(화 화포라고요?)”
“(해월단에는 모두 일곱 척의 범선이 있는데 저건 그중에서도 화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화룡선(火龍船)이오· 좌우 각 열두 문씩 무려 스물네 문이나 장착되어 있소·)”
“맙소사!”
“왜 무엇 때문에 그러오?”
“저 배의 이름이 화룡선이래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화포가 스물네 문이나 있고요·”
“뭐요!”
“뭐라고요!”
흑룡선은 본래의 항로를 따라 북동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반면 화룡선은 훨씬 앞쪽 하고도 항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서 방향에서 직각을 이루며 달려오는 중이었다·
때문에 배의 속도는 흑룡선이 빨랐어도 해 질 무렵이면 화룡선이 앞을 막아설 거라는 게 흑룡선 선원들의 계산이었다·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해가 반 뼘쯤 남았을 때 화룡선은 선체를 옆으로 한 채 항로를 칼로 토막 치듯 자르며 버티고 서 있었다·
놈들과의 거리는 불과 삼백여 장·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갑판을 분주히 오가거나 난간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해적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이백 명은 될 것 같았다·
갑판 아래의 선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들까지 포함하면 삼백 명은 될 거라는 게 미나모토의 설명이었다·
한데도 황해노경은 흑룡선의 돛을 전부 올리게 하고는 성벽처럼 버티고 선 화룡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대체 어쩌려는 거지?”
“들이 받으려는게 아닐까요?”
“그 전에 화포가 작렬할 텐데·”
“화포의 사정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끼리 이야기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나와 호리독사는 동시에 남궁소소를 바라보았다·
남궁소소가 미나모토에게 우리를 대신해 물어본 후 통역해 주었다·
“최대사거리는 삼백여 장인데 보통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백여 장 정도까지 가까워진 후에야 쏘기 시작한대요· 하지만 지금은 오십 장까지 접근해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그건 또 왜?”
“파도 때문이래요·”
나와 호리독사는 동시에 난간으로 달려가 파도를 살폈다·
오늘 아침 황해노경은 관천망기를 통해 남쪽으로부터 태풍이 북상할 거라고 예언했었다·
과연 오후가 되자 남쪽 하늘이 거뭇거뭇해지더니 바람이 불고 파도가 하얀 포말을 토해낼 정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백파(白波)!”
내가 비록 선원은 아니지만 바다에서 백파가 치기 시작하면 모든 배가 운항을 멈추고 가까운 항구로 피신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태풍의 전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덕분에 전속력으로 달리는 흑룡선도 그렇고 삼백여 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화룡선도 그렇고 널을 뛰고 있었다·
배가 아무리 빨라도 태풍보다 빠를 수는 없다·
아무래도 황해노경은 지금의 이 상황을 아침에 이미 머릿속으로 그려 놓았던 것 같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어느새 이백여 장이 되었다·
분주하게 오가던 선원들은 어느새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경직된 어깨에서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잠깐 사이에 다시 백여 장 정도로 좁혀 졌다·
그때였다·
흔들리는 화룡선의 측면에서 포문 네 개가 열리더니 시커먼 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원하게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뻥!
“이찌·”
뻥!
“니·”
뻥!
“싼·”
뻥!
“시·”
화룡선에서 화포를 쏠 때마다 미나모토가 숫자를 세는 것 같더니 네 번째에서 둘 다 뚝 그치고 멈추었다·
네 발의 대포알은 흑룡선을 전혀 위협하지 못했다·
죄다 동서남북으로 십여 장 밖에서 퐁당거리며 빠져 버렸다·
나와 호리독사가 낄낄거리며 비웃는데 옆에서 미나모토가 심각한 표정으로 뭐라고 했다·
남궁소소가 그의 말을 통역했다·
“본격적으로 포를 쏘기 전에 방향과 거리를 재는 거래요· 노련한 포잡이들을 구했는지 이 정도면 엄청나게 정확한 거라고· 아마 오십 장까지 다가가면 본격적으로 불을 뿜을 것 같다고요·”
“···!”
“···!”
잠깐 사이 배는 오십여 장까지 가까워졌다·
화룡선 갑판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해적들의 생김새까지 모두 식별할 정도였다·
그때 화룡선 오른쪽 갑판 아래의 포문 열두 개가 일제히 열렸다·
이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뻥 뻥 뻥 뻥 뻥····
날아오는 화살도 잡는 무림고수에게 고양이 머리통만한 포탄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포탄은 흑룡선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포탄이 떨어진 지점의 물줄기가 십여 장씩 솟구쳤다·
한데 그중 두 발이 선체를 직격했다·
쾅! 쾅!
포탄을 맞은 측면의 판자 조각들이 튀어 오르며 구멍이 뻥뻥 뚫렸다·
아직 한 발이 더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쏘아진 포탄은 조금 높아서 갑판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나는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줄곧 선수에 서 있던 석불원이 쇠닻을 머리 위로 휘둘러 포탄을 쳐낸 것이다·
깡!
귀청을 찢는 소리와 함께 포탄과 닻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육중한 쇠닻을 혼자 들고 휘두른 것도 경악할 지경인데 날아오는 포탄까지 쳐내다니·
이른바 절정고수의 듣도보도 못한 신기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선원들 전부가 아연실색했다·
화룡선의 난간에서 지켜보던 해적 이백여 명도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때쯤엔 화룡선의 포신들이 세 번째 불을 뿜었다·
뻥 뻥 뻥 뻥 뻥····
쾅! 쾅! 쾅!
이번엔 무려 세 발이 갑판과 난간에 떨어져 구멍을 냈다·
그나마 석불원이 돛대 쪽으로 날아드는 한 발을 또 쳐내는 바람에 심각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저 새끼들이!”
나는 패왕궁의 궁간을 두 다리 사이에 넣고 꺾은 다음 시위를 걸었다·
이어 혹시라도 흔들림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전통 속에 단단히 고정해 놓았던 철전 세 발을 뽑아 아래로 확 뿌렸다·
뚜두둥!
철전이 갑판에 보기 좋게 꽂혔다·
남궁소소가 물었다·
“이런 강풍에 화살이 제대로 날까요?”
“이건 평범한 화살이 아니오· 철전이지·”
“하긴 할아버지라면 틀림없이 맞췄을 거예요·”
나와 천하십검 중 한 명을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 사이 철전 하나를 뽑아 시위에 건 나는 선미 상갑판의 두령으로 보이는 놈을 한참이나 겨누다가 쏘았다·
펑!
아뿔싸·
시위를 놓기 직전에 배가 크게 흔들리더라니 철전은 한참 위쪽을 날아 저 멀리 바다로 사라져 버렸다·
화룡선에 타고 있던 해적놈들이 죽겠다고 웃어댔다·
텅!
두 번째 철전은 굉음을 내며 선체의 측면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그게 끝이었다·
화룡선의 해적놈들은 더욱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소리만 들으면 배가 부서진 것 같은데 말이죠·”
옆에서 호리독사가 말했다·
나는 호리독사를 날카롭게 쏘아 보고는 세 번째 철전을 시위에 걸었다·
이어 무릎을 살짝 굽혀 흔들리는 배의 충격을 몸으로 흡수하는 한편 선미 상갑판의 두령놈을 다시 겨누었었다·
팡!
굉음과 함께 날아간 철전은 엉뚱하게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주돛에 구멍을 뻥 뚫어 버렸다·
그러자 거대한 돛이 바람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퐈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둘로 찢어졌다·
그런 다음 통제력을 잃고 제멋대로 펄럭이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펑펑 울려대는 소리가 마치 거대한 북소리 같았다·
당황한 화룡선의 갑판장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해적놈들이 밧줄을 잡고 이리저리 뛰고 날아다녔다·
반면 흑룡선의 선원들 사이에서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고작 돛을 찢어 놓았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소리 지르고 좋아할 일인가?
우연히 눈이 마주친 석불원과 황해노경도 잘했다는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와 호리독사와 남궁소소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선미 상갑판의 황해노경으로부터 천둥같은 대갈일성이 터져 나왔다·
“우현으로 최대한 꺾어라!”
황해노경의 바로 옆에 있던 범주가 키를 힘차게 꺾었다·
하갑판 위에서는 돛과 연결된 밧줄을 잡고 있던 선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천지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화룡선에서는 화포가 네 번째 불을 뿜었다·
뻥 뻥 뻥 뻥 뻥····
그러나 배가 급격하게 선회를 시작하면서 포탄은 전부 빗나가고 말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물닻을 던져라!”
황해노경의 일성에 오른쪽 갑판에서 대기 중인 선원들이 갑자기 이상한 물건들을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굵은 대나무를 둥글게 휘어 뼈대로 삼고 광목을 튼튼하게 붙여 만든 거대한 주머니였다·
얼마나 컸던지 마차도 통째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주머니 세 개가 단 하나의 밧줄에 굴비처럼 연결되어 차례로 바다를 향해 던져졌다·
주머니는 순식간에 가라앉는가 싶더니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다시 수면 근처로 올라왔다·
수중에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주머니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닻이 되었다·
순간 흑룡선이 쓰러질 것처럼 기울더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빠른 속도와 짧은 반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돛대를 잡아!”
석불원이 일성을 내질렀다·
화들짝 놀란 나와 남궁소소와 호리독사는 바다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갑판 위를 달렸다·
그때쯤엔 배가 사정없이 기울었기 때문에 꼭 미끄러운 절벽을 오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미끄러지면 그냥 바다에 빠져 죽는 거다·
나는 천금풍의 경공술을 펼쳐 가까스로 돛대를 부둥켜안는 데 성공했다·
순간 남궁소소가 양팔로 내 목을 휘감으며 등에 올라탔다·
호리독사는 돛대를 코앞에 두고 철퍼덕 자빠지며 미끄러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겠다는 일념으로 내 두 다리의 발목을 양손에 하나씩 덥석 나눠 잡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미나모토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호리독사의 허리를 양팔로 안아 조이며 마지막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흑룡선은 계속해서 비스듬히 누운 채로 선회를 했고 나와 남궁소소와 호리독사와 미나모토는 하나로 엮여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얼핏 발밑을 보니 바다가 시커멓게 넘실대고 있었다·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 같았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나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남궁소소가 무서웠는지 내 귓구멍에다 대고 소리를 빽 질렀다·
“돛대를 놓치면 안 돼요!”
“목이 조여 죽을 것 같소!”
“죽어도 혼자는 안 죽을 테니까 내 걱정은 말고요!”
“그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고!”
호리독사는 호리독사대로 자신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미나모토를 발로 툭툭 걷어차며 소리쳤다·
“떨어져· 이 왜구 새끼야!”
“다마레· 코노 빠가야로!”
“너 때문에 나까지 죽는다고!”
“싯카리 츠카마에테!”
“둘 다 닥쳐!”
흑룡선은 원래 침저선이었고 최대한 키를 꺾고 돛의 방향을 바꾸어도 선회하는데 한참의 시간과 긴 회전반경을 필요로 했다·
한데 물닻인지 뭔지 하는 저 기괴한 물건이 시간과 반경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었다·
흑룡선은 잠깐 사이에 애초의 항로를 기준으로 완벽한 직각이 될 때까지 방향을 틀었다·
“밧줄을 끊어라!”
황해노경의 일성이 터졌다·
선원들이 갑자기 도끼로 물닷의 밧줄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흑룡선은 금방 똑바로 섰고 그때부터는 순풍을 타고 냅다 내빼기 시작했다·
화룡선과의 거리를 불과 이십여 장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그 사이 화룡선에서는 화포를 계속해서 쏴댔지만 쓰러질 것처럼 누운 채로 선회하는 흑룡선을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화룡선이 뒤늦게 모든 돛을 부풀어 올리며 추적의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시원하게 찢어져 버린 주돛의 부재로 말미암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였어!’
나는 그제야 황해노경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화룡선의 해적들은 다잡은 흑룡선이 눈앞에서 도망치는 광경을 얼빠진 듯한 얼굴로 지켜보아야 했다·
반대로 흑룡선의 선원들은 그런 화룡선의 해적들을 향해 평생 듣도보도 못한 욕지거리들을 해대며 실컷 비웃어 주었다·
그리고 바다가 떠나가라 함성을 질러댔다·
“와아아!”
석불원은 선미 상갑판에 서 있는 황해노경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탁월한 판단과 오랜 경험에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었다·
나도 석불원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저 노인네 욕심난다·’
한식경쯤 지나자 화룡선을 완전히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턴 여유를 두고 천천히 좌현으로 방향을 튼 후 본래의 항로를 따라 항해를 이어갔다·
한숨 돌리자 선원들은 부서진 배들을 수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오고 갔다·
그러면서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호의적인 표정과 함께 씨익씨익 웃어댔다·
미나모토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주돛이 찢어지면 새로 교체하려는 돛과 활대들을 일일이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사흘은 꼬박 고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태풍을 만났다·
동남쪽으로 우회하지 않았기에 태풍을 정면으로 만나지만 않았을 뿐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와 남궁소소와 호리독사는 지옥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