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 표사들을 모으는 고수(6) >
남궁세가에 잡혀있는 왜인 무사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석불원과 함께 다선초당을 찾았다·
한데 남궁세옥은 출타 중이었고 남궁소소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후원에서 초상지풍(草上之風)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점혈법을 수련하다 말고 황급히 달려와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부유해 보이는 뚱보 장년인이 그 유명한 사대명표 중 한 명인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석불원은 석불원대로 남궁소소의 빼어난 용모에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림의 한참 선배인 데다 점잖은 사람이었던 탓에 함부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궁소소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그는 단순한 왜구가 아니에요· 우리로 치면 무벌호족가문의 유력한 후계자라고나 할까· 검술은 절정의 반열에 든 것이 거의 확실하고요·”
“그걸 어떻게 아시오?”
“세옥 오라버니가 왜국의 검술을 견식하고 싶은 마음에 할아버지께 허락을 득하고 뇌옥으로 들어가 그와 세 번을 겨루었어요· 한데 한 번밖에 이기지 못했죠·”
“세옥 형님이 두 번이나 졌다고요?”
나도 석불원도 깜짝 놀랐다·
남궁세옥이 누군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검술의 천재이자 불과 서른의 나이에 북무림을 떨어 울리는 신진고수가 아닌가·
그런 그가 왜구와 세 번을 싸워서 두 번을 지고 고작 한 번을 이겼다니·
“두 번은 무승부였어요·”
“음?”
“초저녁부터 시작해 자정까지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죠· 그 때문에 호승심이 생긴 오라버니가 두 번이나 더 뇌옥을 찾아간 것이고요·”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하지만 창룡검 남궁세옥을 상대로 무려 두 번이나 무승부를 거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왜국에도 무시무시한 검술들이 존재한다는 애긴 들었지만 그 정도였을 줄이야·
나는 석불원을 돌아보았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합격이었다·
그때 남궁소소가 물었다·
“어떻게 그를 빼내려고요?”
“가서 가주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부탁을 드려야겠지·”
“쯧쯧· 이러니 안 나설 수가 있나·”
“뭐가 말이오?”
“당주님도 보아서 아시겠지만 왜인 수하들이 남궁세가로부터 그를 빼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께서 그를 억류하고 계시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풀어주면 또다시 수하들을 규합해 노략질하고 다닐까봐 그러신 것 아니오?”
“그것도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수하들이 더는 해안마을에 상륙해 양민들을 상대로 약탈을 하고 다니지 못하도록 억누르기 위함이에요· 한 마디로 인질이죠· 그러니 할아버지께서 쉽게 내어 주실 리가 없죠·”
“그럴 듯하군·”
“할아버지는 한 번 안 된다고 하시면 당신이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집을 꺾는 법이 없으세요· 대충 부딪히려 들지 말고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접근해야 해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대체 무슨 표행인데 그래요?”
“말했다시피 알려 줄 수 없소·”
사실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남궁소소 앞에서 그대로 말하자니 너무 자존심 상했다·
그래도 명색이 천룡표국 비룡당주인데·
내가 쟁자수로 고용된 것까지 알면 아마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구를 것이다·
석불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모른 척 딴청을 피웠다·
남궁소소의 말이 이어졌다·
“선물 같은 거라도 하나 준비하는 게 좋겠어요·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것 말고 소소한 거라도 정성이 보이는 걸로요· 하면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질 거예요·”
“어떤 선물이 좋겠소?”
“최근 우연히 들른 항주의 어느 전당포에서 할아버지께서 매우 좋아하실 만한 물건을 발견해 사둔 게 있어요· 양주로 갈 일이 있으면 선물로 드리려고요·”
“전당포에는 왜 간 거요?”
“그냥 구경하러요·”
“무슨 구경거리가 있다고?”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요· 할아버지께서 이 물건을 선물로 받으시면 같은 무게의 황금이 공짜로 생긴 것보다 더 좋아하실 거라고 장담해요·”
“대관절 무슨 물건인데 그러오?”
“그건 얘기가 길어지니 가는 동안에 차차 하기로 하고요· 이 물건을 구입한 금액에 그대로 넘겨 드릴 테니 가지고 가도록 하세요·”
“가는 동안에?”
“선물은 경계심만 누그러뜨릴 뿐 본격적으로 설득을 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게 소저란 말이오?”
“할아버지께선 아직 내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으세요· 그래서 아버지도 세옥 오라버니도 어려운 부탁을 드릴 땐 꼭 날 데리고 찾아뵈셨죠· 열에 아홉은 성공했고요·”
“소가주님과 세옥 형님이 쓰셨던 전술이라·”
“그렇게 말하니 정말 그럴듯하네요·”
“좋소이다· 해봅시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안되오·”
“내가 뭐라고 할 줄 알고요?”
“표행에 따라가겠다는 말을 하려는 거 아니오?”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그건 안되오·”
“왜요?”
“무슨 일인지도 모르잖소·”
“당주님이 알잖아요·”
“물론 나는 알고 있지·”
“그럼 됐어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가서 표행복으로 갈아입고 올게요·”
“표행복?”
“한벌 맞췄어요·”
“소저! 소저!”
다급해진 나는 목을 쭉 빼면서까지 불러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남궁소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그녀가 후원 쪽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얼른 석불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주시죠·”
석불원이 품속에서 사슴가죽으로 만든 붉은 전낭을 꺼냈다·
하오문주가 자신은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도로 내놓은 금전 스무 냥이었다·
석불원은 남궁세가에 있다는 왜인이 적임자라는 걸 확인한 후에야 내게 주겠다며 잠시 맡아둔 상태였었고·
석불원이 전낭을 내 손바닥 위에 떨어뜨리려다 말고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빨리 물어봐 주십시오·”
“둘이 어떤 사인가?”
“동업자입니다·”
“동업자?”
“비룡당으로 독립을 할 당시 남궁 소저가 제게 투자를 좀 했습니다· 그 바람에 사사건건 이렇게 참견을 하려고 합니다· 비룡당이 커지면서 자신의 몫도 점점 커졌거든요· 돈맛을 본 것이죠·”
“그렇군·”
“그나저나 데려가도 되는 겁니까?”
“나야 딱히 상관이 없네만 뇌검께서 금쪽같은 손녀를 위험한 일에 딸려 보내실지 모르겠군·”
“그건 문제없을 겁니다·”
“어째서?”
“할아버지 말을 잘 안 듣거든요·”
“···!”
나는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는 전낭을 확 낚아채서는 얼른 품속에 챙겨 넣었다·
***
한 시진 후 나는 석불원과 함께 관도를 타고 양주로 향하고 있었다·
옆에는 예쁘게 생긴 혹이 하나 붙어서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 혹의 이름은 남궁소소였다·
그녀가 내게 전음으로 물었다·
[표행비로 얼마를 받았어요?]
[얼마 안 되오·]
[그러니까 얼마냐고요·]
[그건 왜 자꾸 묻는 거요?]
[얼마 받았는지를 알아야 나도 기준을 잡고 협상을 하죠· 당주님의 절반 정도만 달라고 하면 속으로 도둑년이라고 욕할까요?]
이걸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기왕에 동참하는 거라면야 그녀도 돈을 좀 만져야 하지 않겠나·
현재 그녀의 무공 실력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일류· 순수하게 무공으로만 놓고 보자면 천룡표국 내에선 표두급의 고수였다· 천군만마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무인 열 명 몫은 충분히 해낼 것이다·
다만 내게는 좀 특별한 사람이다 보니 안전이 걱정되어 그러는 것일 뿐·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니 기다려 봅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궁세가에 있는 왜인을 고용한 후에라야 소저도 함께 고용하는 조건이오·]
[알았어요· 귀에 딱지 앉겠네·]
그러면서 입술을 삐죽 내미는데 확 잡아당기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남궁소소의 올해 나이 벌써 스물다섯이었다·
앞에 남궁세옥이 버티고 있어서 그렇지 그녀 역시 혼인 적령기를 넘겨도 진작에 넘겼다·
만약 이씨 가문의 사남이자 서자인 내가 자신의 금쪽같은 손녀와 만난다는 걸 알면 남궁유룡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금에야 그가 사용하던 패왕궁(顯王弓)도 하사할 정도로 내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나와 남궁소소의 사이를 알고도 여전히 그렇게 대해줄까?
‘에라· 모르겠다·’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설사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전생보다는 나을 것이다·
최소한 남궁소소 같은 여자와 한번 사귀어 보기는 했으니까·
전생에서는 남궁소소보다 백 배쯤 겸손하게 생긴 여자와도 말 한마디 못해 본 내가 아니었던가·
‘보름 후면 한 달이군·’
***
“산동성에서 온 석불원이라고 합니다· 가주님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천둥소리 듣듯 듣고 있었습니다· 평소 한번 뵙기를 고대했사온데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과공은 비례라고 했소· 황금장표의 명성은 나 또한 익히 듣고 만나보고 싶었던 바· 그렇게 겸양할 것 없소이다·”
“무림 말학 이정룡 대가주님을 뵙습니다· 그간 별래무양하시옵고 서하(暑夏)에 존체(尊體) 평안하시온지요?”
찔리는 게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과 몸이 납작 엎드려진다·
“그게 아니지·”
“예?”
“‘천룡표국의 비룡당주 이정룡입니다·’ 앞으로는 어딜 가서도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게· 그래야 더욱 당당함이 느껴지지 않겠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당주가 된 걸 축하하네· 그것도 형님들이 당주로 있는 다른 당들과 달리 운영의 독립성까지 보장받은 당이라지?”
“부끄럽습니다·”
“축하할 일이 그것뿐만이 아니던데·”
“예?”
“고대의 마교 놈들이 숨겨둔 보물을 찾아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들었네· 금전 십만 냥은 족히 챙겼을 거라고들 하던데·”
“그걸 어떻게 아시고····”
“어떻게 알긴· 돈벼락 맞은 풍운비룡에 대한 소문이 이곳까지 자자하니 알지· 금전 십만 냥이면 거부가 많다는 양주에서조차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일 걸세· 그것도 불과 스물세 살에· 껄껄껄·”
실제로는 삼십 만 냥이다·
호리독사가 남궁소소에게 무슨 이유에선지 금전 십만 냥이라고 대충 말한 것을 다선초당의 누군가가 들어서 그대로 본가에도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한데 남궁유룡은 자신의 손녀가 투자 한번 잘한 덕분에 금전 일천 냥을 날로 먹게 생겼다는 것까지는 까맣게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남궁소소가 불쑥 끼어들었다·
“범선 다섯 척도 있어요·”
“음?”
“정룡 공자가 회시에 장원급제하고 받은 상금으로 국주님 몰래 목장을 운영했었다고 해요· 한데 최근에 북방에서 전란이 일어나 말값이 폭등했고 말을 팔아서 남긴 거액으로 항주의 유명한 선방에다 범선 다섯 척을 주문했다더라고요·”
“우리도 알고 있느니라·”
인자한 웃음과 함께 조용히 끼어든 사람은 소가주이자 남궁소소의 아버지인 남궁중백이었다·
그의 옆에는 어머니 연화부인도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본래 남자들의 만남에 부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녀까지 동석해서는 우아한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로 남편보다도 더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남궁중백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찾아온 것처럼 요리 뜯어보고 조리 뜯어보았다·
남궁유룡이 진지한 음성으로 내게 물었다·
“조운을 개척할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범선을 띄울 요량이면 당연히 장강일 것이고·”
“그렇습니다·”
“장강을 통한 조운업으로의 진출은 대륙의 어느 표국도 하지 못한 일이네· 표왕이라고까지 불린 자네의 부친께서도 마찬가지고·”
“잘 알고 있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육로로의 확장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습니다· 효율도 많이 떨어지고요· 해서 장강의 조운을 개척한 다음 호광의 광활한 곡창지대에서 나는 미곡을 강동으로 운송할 작정입니다· 동시에 강동의 소금과 풍부한 물자들을 호광으로 운송하고요·”
“누구나 태산의 꼭대기를 볼 수 있지만 직접 오르기는 어려운 법이라네· 아무도 가지 못한 그 길을 정녕 갈 수 있으리라고 보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확신도 없이 그런 큰일을 벌였다고?”
남궁유룡이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잔뜩 호기심 어린 얼굴로 지켜보던 남궁중백도 한숨 비슷한 숨소리를 내는 기척이 느껴졌다·
연화부인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수백 년 전 천룡표국의 태조사님께서 달랑 검 한 자루와 깃발 하나만 들고 항주로 오셨을 때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살벌한 항주무림에서 과연 혼자 표국을 열 수 있겠는가 하고요·”
“그래서?”
“사람들의 우려대로 태조사님께서는 실패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평생 쌓으신 인맥과 신뢰를 바탕으로 다음 대의 조사님께서 비록 세 칸짜리일 망정 전각을 세우고 천룡표국이라는 현판을 거는 데 성공하셨지요· 그렇게 일곱 번의 대를 거쳐 지금의 천룡표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첫걸음을 떼야지 않겠습니까· 만약 제가 성공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음 대의 누군가는 제가 걸어가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을 할 겁니다· 가업이란 본디 그렇게 100년을 내다 보고 가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별것 아닌 질문으로 시작된 내 대답이 한참 만에야 끝이 났다·
그러자 좌중이 무슨 소낙비라도 지나가고 난 숲처럼 고요해졌다·
남궁유룡은 물론이거니와 남궁중백 연화부인 남궁소소 그리고 심지어 왜놈을 달라고 찾아온 석불원까지도 석상이 되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남궁유룡이 내게서 시선을 거두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손으로 하얗게 센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무가 이리 바른데 어찌 달그림자가 비뚤어진 것을 걱정할 것인가· 내 평생 누구도 부러워 한적 없지만 오늘만큼은 표왕과 어떤 늙은 거지가 더할나위 없이 부럽군·”
남궁중백과 연화부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이 정도면 한고비는 충분히 넘긴 것 같았다·
그나저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노인네는 좀처럼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눈치 빠른 남궁중백이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석 대협께서 귀한 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선물?”
남궁중백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시비 하나가 비단 방석 같은 곳에다가 검 한 자루를 받쳐 들고 왔다·
검갑에 다닥다닥 붙여 놓은 황동 장식에서 고태미가 좔좔 흐르는 것이 누가 보아도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었다·
석불원이 말했다·
“유림일검(儒林一劍) 남악비 대협께서 사용하셨다는 송문고검(松紋古劍)입니다· 안타깝게도 소생에게는 진품을 알아볼 안목이 없어 큰 결례를 저지르지나 않을까 저어됩니다·”
남악비는 유림일검이라는 별호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유학에 조예가 깊은 검사였다·
공맹을 배운 사람이어서 그런지 불의를 참지 못해 협객으로도 잘 알려졌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무당파의 제자를 구해준 일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무당파의 제자가 답례로 그에게 송문고검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후 송문고검은 남악비의 성명병기가 되었다·
사실 검수로서 남악비의 명성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일류의 끄트머리에서 죽을 때까지 절정의 경지를 보지 못했으니 실력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지만 남궁유룡의 눈에는 까마득한 하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소소가 전당포에서 이 검을 보는 순간 바로 사들인 것은 사십 세 나이에 요절한 남악비가 바로 남궁유룡의 죽마고우였기 때문이다·
남궁소소는 이 검을 금전 열 냥을 받고 석불원에게 넘겼다·
장담하건대 전당포에서 그녀가 사들일 때는 은전 열 냥도 안 줬을 것이다·
검을 유심히 살펴보던 남궁유룡이 두 눈을 부릅떴다·
검을 알아본 것이다·
“이걸 어떻게·”
“지인의 도움으로 우연한 기회에 얻었습니다· 다행히 진품이었나 보군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
남궁유룡은 죽은 친구가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반가운 표정으로 검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불현듯 석불원에게 물었다·
“소가주에게 듣자 하니 본가에서 억류하고 있는 왜인무사를 데려가고 싶어 한다지요? 모종의 표행을 하는 데 쓰실 거라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구려·”
“예?”
“···!”
“···!”
“데리고 있자니 안 그래도 귀찮았는데 잘 됐소이다· 황해에서 활동하던 놈의 수하들도 다들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같고· 한데 그자가 순순히 객표 노릇을 하려나 모르겠군·”
허무하게도 그게 끝이었다·
남궁소소가 나서서 설득하거나 손녀 필살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나도 석불원도 남궁소소도 한동안 벙 쪄서 할 말을 잃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궁유룡은 죽마고우가 썼다는 검은 뽑아보지도 않고 시비에게 일러 자신의 방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그리곤 나를 돌아보며 살짝 달아오른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도화곡 옮긴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듣자 하니 복마산에서 녹림맹 서열 세 번째 고수인 파산신권을 때려눕혔다지?”
“할아버지 그건 제가 다 말씀드렸잖아요·”
위기감을 느낀 남궁소소가 뭐라도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남궁유룡은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마교놈들이 숨겨둔 보물을 찾아 남만으로 갔던 얘기나 좀 들어볼까나? 듣자 하니 물이 차오르는 암동에서 거대한 문짝을 떼어내 뗏목을 만든 다음 거기다 보물을 싣고 탈출했다던데·”
연화부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버님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저는 나가서 술과 음식을 좀 준비하겠습니다·”
남궁중백도 한입 보탰다·
“술은 주고(酒庫)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봉황명주(風恩銘酒)로 내오시오· 정룡이가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는데 마땅히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오·”
”그렇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