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무저갱 (4) >
나무통을 앞쪽으로 짊어진 장한이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나왔다·
나는 나무통 속에 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재주가 좋소이다?”
“문을 열어주는 대신 나는 목함을 갖고 사람들은 보물을 나눠 가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지· 우리는 대충 그렇게 정리를 했는데 안쪽에선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모르겠군·”
“늙은 생강이 역시 맵군요·”
“목함과 보물을 넘기고 조용히 물러들 가시는 게 어떤가? 원한다면 금붙이 하나씩은 기념으로 가져가도록 해주지·”
“우린 아직 정리를 못 해서 말이오·”
나는 연소교를 돌아보며 말했다·
“목함은 당신이 보물은 내가 가진다·”
연소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신형을 날려 석대 위로 올라갔다·
이어 목함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후 비단보자기로 싸는 순간 석대가 갑자기 아래로 쑥 꺼졌다·
깜짝 놀란 연소교는 재빨리 신법을 펼쳐 물러났다·
꾸구구 꿍!
작은 탁자만한 석대는 계속해서 보다 깊은 땅속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기어이 굉음을 내며 멈췄다·
그것을 시작으로 어딘가 먼 곳으로부터 산발적인 폭발과 그로 말미암은 진동이 느껴졌다·
폭발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커지다가 급기야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지진으로 바뀌었다·
꽝! 꽈과과과강!
천장에선 돌과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위로 올라가 있던 성문도 다시 꽝 하고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지지하고 있던 좌우의 벽체가 떨어져 나가면서 앞쪽으로 굉음을 내며 넘어졌다·
꽈왕!
거대한 충격파가 공동을 휩쓸었다·
“동굴이 무너진다!”
누군가 외쳤다·
동굴이 무너지면 빨리 나갈 생각을 해야지 이 미친 종자들은 갑자기 불길을 뛰어 넘어와 보물을 닥치는대로 챙기기 시작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한몫은 챙겨 나갈 생각인 것이다·
그 와중에도 땅은 계속해서 흔들렸고 천장에선 돌덩어리들이 쉴새 없이 떨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돌덩이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나름대로 보법을 펼치며 피한다고 피했지만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름 항아리들은 깨져 사방에서 불길이 일었고 먼지는 팔방으로 날려 자욱한 안개를 방불케 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나는 보물 더미 속에 있는 작은 방패만한 크기의 요발(鏡紋- 원반형 타악기)을 들어 떨어지는 돌멩이들을 쳐냈다·
동시에 사람들 틈에 끼어 보물을 챙기는 이병룡의 뒷덜미를 잡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미처 보호하지 못한 등과 어깨에 날카로운 돌조각들이 떨어지면서 옷자락이 쫙쫙 찢어졌다·
용린신갑 때문에 다칠 일은 없는데 바로 그 용린신갑이 드러나는 게 문제였다·
빨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넘어진 성문 위로 훌쩍 올라가는 순간 지진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동굴이 통째로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보물을 챙겨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려던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어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비켜!”
“이건 내가 먼저 집었어!”
“오늘 발견한 보물에 임자가 어딨어!”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 더 크고 많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선 천마성교의 잔당들과 음양쌍교의 잔당들이 목함을 놓고 결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병룡은 그 와중에 눈앞에서 칼을 맞고 쓰러진 두 놈의 품속에서 금쟁반이며 금수저 등을 챙겨 품속에 쑤셔 넣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조용히 구석진 곳으로 간 다음 돌멩이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자와 옷을 바꿔 입었다·
동시에 인피면구도 벗어 던져 버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얼른 이병룡에게 다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너 언제 들어왔어?”
“이천 명이 들어올 때 함께요·”
“나랑 함께 있던 청삼인 못 봤어?”
“지진이 일어난 이후로 못봣습니다·”
“이 인간이 혼자 내뺐군·”
“빨리 나가시죠· 언제 또 지진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기다려 봐· 여기까지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너도 멍청하게 서 있지만 말고 뭐라도 좀 챙겨!”
그러면서 아귀다툼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저런 멍청한 새끼!
어쩔 수 없었다· 기절을 시켜서라도 데리고 나가려는 순간 바깥으로부터 수백 명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비룡당의 표사들이 오백여 명의 생존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들이닥쳤다·
가불염을 향해 말했다·
“여긴 왜 들어온 겁니까!”
“협곡이 전부 무너졌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방에서 폭발음이 들리더니 협곡 전체가 무너져 나가는 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무너지는 협곡을 피해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이고요·”
“부상자는?”
“전원 무사합니다·”
남궁소소와 당군백 등을 비롯해 나를 바라보는 수십 쌍의 눈동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에서도 고초를 치렀는지 다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다·
가불염의 한마디는 보물을 놓고 싸우던 이천여 명의 동작을 그대로 멈추게 해버렸다·
삼뇌가 이끄는 천마성교와 연소교가 이끄는 음양쌍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하동굴에 갇혀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지금 싸움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사람들이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다른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걸 발견했다·
공동은 눌러 놓은 호리병 모양으로 위는 점점 좁아지고 아래는 선반 아래처럼 안쪽으로 푹 파고 들어가며 넓었다·
그 바람에 아래쪽의 가장자리는 상대적으로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한데 지금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돌아다녀 보니 마차 하나가 통째로 드나들 정도의 동굴이 십여 개나 뚫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많은 동굴들 중 하나쯤은 외부와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자갈을 잔뜩 싫은 마치 수십 대가 한꺼번에 비탈을 굴러가며 나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 십여 개의 동굴 속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이런 제기랄!”
“이런 빌어먹을!”
수압으로 미루어 인근의 호수나 강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인 것 같았다·
애초 지하로 한참을 내려왔으니 지하공동은 물론 협곡 전체를 수장시켜 버리고 말 것이다·
탈출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동굴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이천오백여 명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절망적인 상황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분노는 곧 희생자를 필요로 했다·
“이게 다 저 마녀 때문이야!”
“저 마녀가 기관장치를 건드렸어!”
대경실색한 음양쌍교의 잔당들이 황급히 검진을 펼치며 연소교를 보호했다·
호전성이라면 마인들도 흑도와 사파인들에 따를 바가 아니었다·
급기야 불똥이 내게로 까지 튀었다·
“풍운비룡도 족쳐야 해!”
“그가 우릴 이곳으로 이끌었어!”
“우리를 칼받이로 이용할 생각이었어!”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저 연놈들부터 죽이겠다!”
가불염을 비롯해 표사들 전부가 조용히 나를 에워쌌다·
소리 내어 명령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 것은 행여라도 저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건 뭔가 상황이 딱 들어 맞지를 않는다·
일단 연소교가 석대에 올라감으로써 기관장치를 건드린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많은 보물과 성보가 누군가를 위한 안배라면 그를 이렇게 수장시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 남궁소소가 내게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물이 정강이까지 차올랐어요· 공동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물로 가득 차는데 최대 한나절을 넘기지 않을 거예요·”
순간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깜깜했기 때문에 천장으로 막혔다고만 생각했지 위쪽을 살펴볼 생각을 못 했다·
“가 표두· 신호용 폭죽 세 개만 모아 주세요·”
잠시 후 내 손에 폭죽 세 개가 쥐어졌다·
그걸 들고 물살을 헤치며 공동 한 가운데로 달려갔다·
좀 전까지만 해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보물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와중에도 보물을 챙긴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폭죽 세 개를 각각 다른 크기로 자른 후 동시에 불을 붙여 천장으로 쏘아 올렸다·
슈슈슈슉 펑! 펑! 펑!
폭죽은 각각 십 장 이십 장 삼십 장 높이에서 차례로 터졌다·
그때마다 잠깐에 불과했지만 주변을 대낮처럼 밝혔고 덕분에 공동 전체의 지형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높이 올라간 폭죽이 터졌을 때 나를 비롯한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호리병처럼 좁아진 석벽에 수직으로 커다랗게 뚫려 있는 동굴을·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저 동굴로 들어가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이 동굴엔 막대한 양의 보물과 성보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훗날의 연자를 위한 안배였고 그렇다면 당연히 나가는 길 또한 만들어 두었을 것입니다· 제 눈에는 저 동굴이 이 공동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것 같습니다만·”
“저기까지는 어떻게 올라가지?”
“물이 차오를 때 함께 올라가면 됩니다·”
“청삼인이 저리로 사라진 모양이군!”
“대체 저길 어떻게 올라간 거지?”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꺼멓게 죽어가던 얼굴은 순식간에 환희로 가득 찼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 추측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보물은 어떡 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제자리로 돌아가 비룡당의 표사들과 함께 무너진 성문을 딛고 올라가서 서 있었다·
그리고 가불염을 비롯한 표사들에게 여섯 명씩 한 조가 되어 펼치는 육검진(々劍陣) 일곱 개로 주변을 에워싸라고 은밀히 지시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보물이 왜?”
“저 꼭대기까지 물이 차오르려면 최소 한나절은 걸릴 것 같은데 그때까지 쇳덩어리를 들고도 떠 있는 것이 가능할까?”
“석벽에 달라붙어서 조금씩 올라가면 되지 않나?”
“방금 폭죽이 터질 때 못 봤어? 아래도 아래지만 위쪽으로도 점점 좁아지며 동굴 전체가 삼각형 모양으로 심하게 경사졌어· 저런 경사라면 강조(鋼爪)가 있다고 해도 쇳덩어리를 주렁주렁 매단 채 한나절을 버티기란 쉽지 않을 거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살고 싶다면 보물을 버려야지·”
“그렇다면 풍운비룡의 말이 틀리게 되잖아· 그는 보물이 누군가를 위한 안배라면 이걸 옮길 방법도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아마 방법을 찾은 듯하군요·”
마지막 말은 연소교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와 비룡당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연소교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와 비룡당의 표사들은 지금 전부 커다란 뗏목 위에 올라가 있어요· 누군가가 뗏목을 탈취할까 봐 도검을 뽑아 들고 검진까지 펼치고 있군요·”
나와 비룡당의 표사들이 딛고 서 있는 성문은 오 장 높이의 아름드리 통나무 수십 개를 연결해 만든 것이다·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뗏목인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때 성문이 가장 먼저 무너지더라니 이런 용도로 쓰이도록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이천오백여 명의 사람들은 부글부글 끓어 올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모두 도검을 뽑아 들고 당장이라도 돌진해올 기세였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시작을 끊는 자가 없었다·
표사들 각각의 기세와 완벽한 육검진의 진세에서 좀처럼 빈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처음 들어오는 자들 백여 명 정도는 무조건 죽는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자들답게 모두가 그걸 간파했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당주께서는 어차피 보물이 없으니 뗏목도 필요 없지 않나?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양보를 해주는 게 어떠시오?”
“한밑천씩 잡게 해주었더니 죽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양보를 하라니· 아무리 내키는 대로 사는 흑도와 사파인들이라지만 너무 양심이 없군·”
“그래서 우리가 꼴 보기 싫어 뗏목을 내놓지 않겠다는 건가? 그러다 정말 죽는 수가 있소만·”
“나는 천룡표국의 표사요· 나를 움직이려면 협박과 회유를 하지 말고 의뢰를 하시오· 참고로 표비는 무조건 선불이오·”
“우릴 뗏목에 태워 주겠다는 건가?”
“천만에· 적재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뗏목엔 보물만 실을 것이오· 나와 비룡당의 표사들은 물속에서 뗏목 가장자리를 잡고 함께 부상할 것이고·”
“그런 다음엔?”
“하늘이 보이는 곳까지 무사히 운송한 다음 돌려주겠소· 표주들은 각자가 알아서 따라오시면 되고·”
“당신이 그걸 들고 도망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나 천룡표국의 비룡당주 이정룡이오· 심각한 모욕감을 느끼지만 지금은 참도록 하겠소·”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사람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면서 성문이 오십여 명을 태우고도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연소교가 다가와 물었다·
“우리도 이용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내가 포로로 보이시오?”
“표비는 두둑이 지불하죠·”
“표물은 목함이오?”
“그래요·”
“그런 귀한 물건을 맡겨도 되는 거요?”
“천룡표국이라면 안심하고 표물을 맡겨도 된다고 들었는데 특히 풍운비룡이 직접 운송하는 표행은·”
저 만치에서 이리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삼뇌를 발견했다·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던 그의 눈동자가 지금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과 이리떼로부터 지켜달라?”
“안되나요?”
“목함은 소저가 직접 들고 타시오·”
“왜죠?”
“천룡표국은 표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오· 보시다시피 지금은 따로 방수 처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단 분실하거나 훼손이 되면 소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조건이오·”
“표비는 얼마나 드리면 되죠?”
“내가 사파와 흑도인들을 불러들여 마총을 탈탈 털어 먹은 것으로 갈음하겠소· 대신 귀하가 내 형을 납치해 죽도록 두들겨 팬 것은 수하들로 하여금 목숨걸고 뗏목을 호위하게 하는 것으로 갈음하시오·”
“그렇게 하죠·”
연소교가 뗏목 위로 올라왔다· 그녀의 수하 이십여 명은 자연스럽게 합류해 뗏목의 앞을 막아섰다·
연소교와 목함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쪽의 전력이 되어 버렸다·
연소교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남궁소소가 얼른 뛰어 내려가며 외쳤다·
“줄을 서세요· 줄을!”
잠시 후 털북숭이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나도 맡기겠소?”
“표물이 무엇입니까?”
사내가 내가 딛고 선 뗏목의 끄트머리에다 포댓자루에 든 것을 풀어놓았다·
금은 수저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식기가 잔뜩 나왔다·
그중 황금으로 된 촛대를 집어 들었다·
이어 바닥에 놓인 금은 식기들을 절반으로 뚝 가른 다음 약간 적어 보이는 쪽을 내게로 쓰윽 쓸어오며 말했다·
“표비는 이걸로 받겠소·”
“이런 순 날강도 같으니라고!”
“싫으면 갖고 가시고·”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소?”
“누가 보면 당신이 쓰던 물건인 줄 알겠소· 그리고 당신을 이리로 데려와 한몫 잡게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잊지 마시오·”
“알았소· 그렇게 합시다·”
“별호가 무엇이오?”
“흑명귀(黑命鬼)요·”
“계약서는 생략하겠소· 물건을 잃어버렸을 경우 배로 보상을 하겠소· 만약 귀하가 살아서 공동을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이 물건은 내것이오·”
“후우···· 알았소·”
“요대를 좀 풀어 주시오·”
“그건 또 왜?”
“뗏목에 고정하려면 밧줄이 있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것도 없어서 말이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무림인들은 비단이나 광목을 여러 겹으로 접어 허리를 세 번 정도 감아둔다·
여기에 여러 가지 간단한 물건들도 숨기고 필요한 경우엔 찢어서 상처를 동여매는 데 쓰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밧줄로 쓰기에 딱이었다·
흑명귀가 요대를 풀어 주었다·
나는 요대와 함께 표물을 담은 포댓자루를 가불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고 흑명귀라고 적어 놓으세요· 휴대용 필묵은 항상 가지고 다니시지요?”
“물론입니다·”
보물을 맡기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뗏목이 둥둥 떠오르기 시작하자 흑교방 야월방 우도방 등등의 흑도방파에서도 대량의 보물을 맡기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 성문을 넘어뜨려 만든 뗏목에는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물론 그중의 절반은 내 것이었다·
‘이게 웬 횡재야·’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당군백과 조영영 그리고 세 명의 여자 신입표사들은 이 상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넋 나간 표정으로 어리바리하게 서 있기만 했다·
반면 남궁소소는 체면도 잊은 채 호리독사를 이끌고 이쪽저쪽으로 신나게 뛰어다니며 표물을 뗏목에 묶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여간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