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무저갱 (1) >
가불염은 심히 혼란스러웠다·
그가 모시는 당주는 지금 삼천여 명에 달하는 무림인들을 이끌고 벽호산을 향해 신나게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무슨 사파나 흑도연맹의 맹주 같았다·
일의 전말은 이렇다·
어제 낮 이정룡은 비룡당의 표사들로 하여금 두꺼운 통나무를 찍어다 반장 간격으로 사다리처럼 묶어 놓으라고 지시했다·
사방에서 자라는 칡넝쿨을 잘라 새끼줄처럼 꼬아 쓰면 되니 밧줄이 없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표사들이 열심히 나무를 찍는 사이 이정룡은 주강삼각주 최대의 도시인 광주로 가서 하오문 향주를 만나고 돌아왔다·
이정룡이 하오문과 각별한 사이라는 건 지난번 성도에서 돌아온 이후 호리독사에게 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다·
하오문 향주는 금전 열 냥의 수고비를 받고 불산과 화도를 비롯한 인근 네 개 도시에 있는 다른 향주들에게 전서구를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밤사이 다섯 개 도시의 무림인들 정확하게는 사파와 흑도인들 사이에 두 가지 소문이 들불처럼 번졌다·
“전설로 떠돌던 칠마총 중 한 곳이 발견되어 지금 음양쌍교와 천마성교의 잔당들이 벽호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북강의 곡평이라는 마을 건너편에 마교놈들을 추적 중인 천룡표국의 비룡당이 야숙하고 있다더라·”
밤새 곡평에는 온갖 종류의 무공을 익힌 사파와 흑도인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십여 명을 제외하고는 배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헤엄을 쳐 강을 건너는 것도 가능은 했다·
다만 그러려면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병장기까지 포기 해야 했다·
아주 잠깐이라면 모를까· 쇳덩어리를 차고 삼십여 장을 헤엄쳐 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아침이 밝아 올 무렵 이정룡은 밤새 묶어 놓았던 통나무를 북강에 띄우게 했다·
곡평에 모여든 무림인들은 말은 포기하고 병장기만 휴대한채 통나무 부교를 뛰어 밟으며 건너왔다·
그 과정에서 무공이 약한 자들은 물에 빠져 사실상 되돌아 가야했다·
강을 건넌 무림인들은 곧장 이정룡에게 마총으로 안내해 줄 것을 요구했다·
만약 거절하면 금방이라도 비룡당을 몰살시킬 것처럼 분위기가 흉악했다·
이정룡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 목숨은 알아서 챙길 것!”
이 말을 사파와 흑도인들은 ‘자기 몫은 알아서 챙길 것·’으로 들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지가 떠나갈 것처럼 환호성을 내지를 리 없었을 테니까·
사람들은 어느새 야트막한 언덕을 넘었다·
그때부터는 초원이 끝나고 울창한 숲이 시작되었다·
“표두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일각주 왕대표가 달리는 와중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이래도 되는 겁니까?”
“무얼 말이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요· 신입표사들도 자꾸 제게 묻습니다· 천룡표국은 원래 일을 이렇게 화끈하게 하느냐고요·”
“화끈하게?”
“뭐랄까· 산채 하나가 자꾸만 골탕을 먹이자 바람 불 때를 기다려 산기슭에다 불을 확 싸질러 버리는 느낌이랄까··· 라고 신입표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 합니다·”
가불염은 속으로 뜨끔했다·
방금 자신이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왼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남궁소소가 당군백 조영영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달리는 중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이정룡을 가장 잘 아는 이를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코 남궁소소였다·
객원표사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가장 많은 표행을 함께 했으니까·
한데 남궁소소에게선 두렵거나 초조해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이번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하고 살짝 기대하는 듯한 기색도 느껴졌다·
“그래서 뭐라고 했소?”
“비룡당에서 일을 하려면 간뎅이부터 키우라고 했습니다· 풍운비룡과 비룡당의 명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인 줄 아느냐면서요·”
“잘했소· 당주님께서 결정하시면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일· 앞으로도 당주님의 결정에 의문을 품지 마시오· 특히 신입표사들 앞에서는·”
“명심하겠습니다·”
칭찬같지만 사실은 경고였다·
왕대표는 금방 알아들었다·
그때였다·
선두에서 달려가던 이정룡이 우뚝 멈춰 섰다·
뒤따르던 삼천여 명의 무인들도 마치 무형의 벽을 만난 것처럼 뒤쪽으로 착착 붙어섰다·
그리고 모두가 눈 앞에 펼쳐진 기괴한 지형을 올려다보며 입이 떡 벌어졌다·
산꼭대기에서부터 시작해 발아래의 땅속까지 갈라진 이 기묘한 지형을 대체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던 번견 다섯 마리는 협곡도 아니고 무저갱도 아닌 그 미지의 공간을 향해 미친 듯이 컹컹 짖어대고 있었다·
“산하십곡!”
“팔대금지!”
“지옥문!”
몇 사람들의 외침을 시작으로 온갖 무시무시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리를 하자면 저 협곡의 이름은 산하십곡이고 남무림의 팔대금지 중 한곳이었으며 들어간 사람은 많으나 살아서 나온 사람이 없어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였다·
흑교방 야월방 우도방 잔월방 비응방 벽수채 용수채 등은 벌써부터 자기들끼리 모여 어찌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 시작했다·
독보강호 하는 자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삼삼오오 모여 각자가 지닌 정보들을 주고받기 바빴다·
팔대금지 중 한 곳으로 들어가는 일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룡의 주변으로도 비룡당의 표사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비룡당은 무조건 들어가야만 했다·
이정룡은 의논을 하는 대신 바위 위에 올라가 표사들을 향해 협곡 안에서의 행동강령을 말해 주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묵룡당주를 구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최대한 대오를 유지한 채 진입하되 부득불 무리에서 떨어지거나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지난 밤 지시한 대로 따르십시오·”
“존명!”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이정룡은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협곡 속으로 뛰어들었다·
가불염과 왕대표 중표 그리고 비룡당의 표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를 이었다·
***
협곡의 아래는 좁은 입구와 달리 마차 대여섯 대가 동시에 달려도 좋을만큼 넓었다·
다만 누군가 길을 닦아 놓은 것이 아니었기에 바닥은 울퉁불퉁했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사방에 널렸으며 낮은 경사면으로는 시냇물도 졸졸 흘렀다·
이 모든 것들은 머리 위 이백여 장 높이의 까마득한 꼭대기에서 쏟아져 들어온 한 줌의 햇빛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때문에 협곡 안은 사실상 천장이 뚫려 있는 거대한 동굴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잔뜩 협곡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파른 비탈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붙어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나는 번견들을 앞세운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은 초입이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벽에 표식을 해놓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번견들이 좌우를 왔다 갔다 하며 코를 킁킁대느라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번견을 책임진 탁중로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앞서 들어간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냄새가 한꺼번에 뒤섞이는 바람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바깥에서처럼 빨리 추적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숫자는?”
“몇백 명 수준입니다·”
“들어간 지는?”
“일각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천마성교의 잔당들이군·”
사람은 저마다의 체취가 있다·
그 숫자가 무려 삼백을 헤아리다 보니 강력한 천리추향 마저도 희석되어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죠· 진법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샛길이 존재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번견들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휘리릭!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에 있던 다섯 명이 비룡당을 제치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호리독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쩐지 얌전히 있더라니·”
“아는 사람들이오?”
“천면신투(千面神偏)라고 별호 그대로 천의 얼굴을 가진 대도입니다· 왕족이나 호족의 비고를 터는 게 전문인데 오늘 아침에 나타났더라고요· 뒤따라 들어간 네 명은 아마 제자들일 겁니다· 열심히들 사네·”
들어본 적 있다·
천면신투는 호리독사의 사부인 공령신투와 쌍벽을 이루는 전설적인 대도였다·
차이가 있다면 공령신투는 주로 북무림을 털었고 천면신투는 남무림을 털고 다녔다는 정도?
“역용을 했을 텐데 어떻게 알았소?”
“다 알아보는 수가 있습····”
휘리릭!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서 달려나갔다·
숫자는 좀 전보다 많은 십여 명·
그들의 돌발행동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린 것과도 같은 결과를 낳았다·
갑자기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급기야 삼천 명 전부가 함성까지 내지르며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와아아!”
“잠깐만· 개부터 들여보내야 하오!”
나는 협곡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사자후를 내질렀다·
하지만 한번 터진 봇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 비룡당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런 멍청한 인간들!”
이이제이(以美制美) 사악한 마교도들을 치기 위해 인의를 모르는 사파와 흑도인들 위주로 불러 모았더니 역시나 통제가 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일단 길을 재촉했다·
한데 고작 백여 장을 나아가자 앞서 질주했던 삼천 명의 무림인들이 모조리 멈춰서서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독고완 무슨 일인지 살피고 와라·”
“존명!”
인파를 헤집고 들어간 독고완이 잠시 후 돌아와 보고했다·
“갑자기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두 길 모두 볕이 잘 들지 않는 데다 바닥이 온통 돌밭이라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고요·”
“그래서?”
“천면신투를 비롯해 범상치 않아 보이는 고수들 십수 명이 열심히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길을 찾는다고 해도 앞에 있는 삼천 명이 전부 빠지려면 한참이 소요될 것 같았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인 양 조용히 끼어드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꽁지가 빠져라 뛰어가더니 꼴좋다·”
“굳이 번견을 앞세우지 않아도 되겠는걸·”
“나도 한나절을 쉬지 않고 뛰었더니 죽겠네·”
“잠깐만 앉아서 쉴까요?”
“휴식엔 죽엽청입죠· 한 모금 하시겠습니까?”
“입 대고 마신 거잖아요·”
“새것도 한 병 있습니다·”
“저는 이걸로 할게요·”
객원표사인 호리독사와 남궁소소와 당군백은 죽이 척척 맞았다·
그러더니 동시에 나를 돌아보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잠깐이라도 앉아 휴식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조영영이 외쳤다·
“저길 좀 보세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대여섯 장쯤 위 석벽에 큼지막한 요령이 박혀 있었다·
저 물건의 용도를 알아본 남궁소소가 뒤이어 소리쳤다·
“구곡미혼진!”
남궁소소는 몇 달전 칠량 협곡에서의 일을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나흘 전 나와 조영영이 본 것은 그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기문진이었다·
그마저도 구곡미혼진이라는 보장이 없었고·
뗑그렁~!
빌어먹을 요령 소리가 기어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동굴 벽 곳곳에 박혀 있던 요령들이 공명하며 울어댔다·
순간 협곡의 저 안쪽으로부터 시커먼 연기가 일어나 사람들을 집어삼키며 달려왔다·
그 모습이 흡사 해안 동굴 속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채앵!
나는 급히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모두 내 뒤에 사열로 선다· 앞 사람과의 거리는 반 장· 지금부터 나타나는 것들은 무조건 베어 넘기면서 전진한다· 남궁소소는 내 옆으로 올 것·”
지난날 구곡미혼진에 갇혔을 당시 진은 내가 뚫었어도 길은 남궁소소가 안내했다·
기문진에 대해서는 그녀가 나보다 몇 수 위였다·
뗑그렁~!
뗑그렁~!
요령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고 시커먼 연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삼천의 무림인들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한데 무슨 일인지 나와 비룡당의 앞에서 뚝 멈추더니 더는 다가오질 못했다·
시커먼 연기 속에서는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꽈르르릉! 꽝꽝!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어두컴컴하던 협곡 전체가 한순간 대낮처럼 밝아졌다·
천둥번개가 치는 사이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소리들이 섞여 들려왔다·
그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악에 받친 고함과 뻥뻥 터져대는 격장음이었다·
진 속에 갇힌 삼천 명의 사파와 흑도인들이 마물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나는 온갖 종류의 소리들인 것 같았다·
뗑그렁! 뗑그렁! 뗑그렁!
요령 소리가 점점 짧고 다급하고 가팔라졌다·
아무래도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전음으로 남궁소소에게 물었다·
[이 위험한 곳엔 대체 왜 온 거요?]
[칠마총을 또 언제 구경해 보겠어요·]
[그러다 죽으면·]
[귀하보다는 오래 살 걸요·]
[무슨 근거로·]
[만박귀자(萬博鬼子)가 단언했으니까요·]
[만박귀자가 누구요?]
[항주 최고의 복자(卜者)죠·]
[복자라면 점쟁이 말이오?]
[맞아요·]
[점쟁이를 찾아가 소저와 나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는지를 물어봤단 말이오?]
[누가 자꾸 절 위험한 일에 꼬여내니 불안해서요· 한날한시에 죽는다고 하면 앞으로는 표행에 따라가지 않으려고 그랬죠· 다행히 제가 10년은 더 살 거라고 하더군요·]
[더는 객원표사로 고용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 같소만·]
[이번처럼 자의로 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번엔 오지 말지·]
그때였다·
꽈과광! 꽝!꽝!꽝! 꽈앙!
협곡이 통째로 무너져 내릴 듯한 굉음이 연달아 일곱 번이나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시커먼 연기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져 갔다·
잠시 후 사람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명이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다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 몇 배의 달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병장기를 꼬나 쥐고 사방을 노려보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마물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한바탕의 격전을 각오했던 나와 비룡당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어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한참만에 호리독사가 말했다·
“그 무시무시하던 천마성교의 기문진도 삼천 마리의 개떼들 앞에서는 소용이 없군·”
저렴하지만 너무나 절묘한 표현이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요사스러운 복장의 술법사 다섯 명을 잡아서 끌고 나왔다·
그리곤 협곡 한복판에서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해가며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거의 정신을 잃어 갈 때쯤 한 사내가 술법사 중 한 명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물었다·
“우리는 광동칠살(廣東七殺)이라고 한다· 한 사람당 딱 한 번씩만 물을테니 신중히 대답해라· 삼뇌는 어느 쪽으로 들어갔지?”
“네 놈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알았으니 목이나 쭉 뽑아라·”
그러더니 술법사의 옆으로 가서 섰다·
칼로 목을 내리치려는 것이다·
나는 황급히 뛰어가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뭐지?”
“살인은 허락할 수 없소·”
“누가 허락을 구하기는 하고?”
“광동칠살 정도라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소만·”
“무어?”
가불염을 비롯한 사십여 명의 표사들이 내 뒤쪽으로 달려와 섰다·
그들의 손에는 아직 집어넣지 않은 도검들이 시퍼렇게 날을 번뜩이고 있었다·
광동칠살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천면신투 일당이 오른쪽 협곡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다른 십여 명은 왼쪽 협곡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자 모두가 하던 짓을 멈추고 제각각의 방향을 골라 또다시 광란의 질주를 펼치기 시작했다·
광동칠살도 술법사들을 내팽개치고는 그 대열에 합류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협곡엔 아직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앞서 달려간 사람들을 따라갔다·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드러누운 술법사들에게 다가갔다·
“아는지 모르겠으나 내 목표는 음양쌍교의 잔당들이오· 따지고 보면 우린 같은편이라고 할 수도 있지· 군사부주께서도 무림인들을 꺼릴지언정 나를 꺼릴 이유는 없을 것이오·”
“혓바닥이 길군·”
“음양쌍교의 잔당들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만 가르쳐 주시오· 하면 당신들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겠소·”
“구태여 우리가 왜?”
“보시다시피 아직 수백 명이 쓰러져 있소· 나중에라도 저들이 깨어나면 열에 아홉은 광동칠살처럼 당신들부터 잡아 족칠 것 같소만· 더 지독한 놈들이 있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자기가 물어 보려고 우릴 살려줬군·”
“잘 생각해 보시오· 배신하는 것도 아니면서 살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죽을 이유가 있는지· 기회는 다섯 명 모두 합쳐 딱 한 번만 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