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백 명의 호송단(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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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궁소소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적 진영으로부터 누군가 말을 탄 채 앞으로 나왔다·
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체구에 등에는 두 자루 판부를 가로질러 멘 장년이었다·
그가 사마옥을 향해 말했다·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함부로 받을 수는 없지 않겠소?”
“후후 아직 숨이 붙어 계신 걸 보니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모양이군요· 이를 어쩐다 상대가 선물을 받아야 나도 달라고 청할 수가 있을 터인데·”
“천마성교의 잔당 중에 흑산적웅(黑山赤能)이라는 역사가 있어 두 자루 판부를 귀신같이 다룬다고 하더니만· 오늘 보니 과연 기도가 출중하구려·”
“백도무림의 지낭이라는 만박노군께서 이리 미천한 것의 이름까지 알고 계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만한 용력과 무공을 지니고도 스스로 미천하다고 하는 걸 보면 천마성교에서의 대접이 시원찮은 모양이오· 차라리 무림맹에 신변을 의탁해 보는 것은 어떻겠소? 내 좋은 자리를 마련해 보리다·”
“소생이 숨통을 끊어 놓은 백도무림인들의 수가 백 명이 넘사온데 그래도 무림맹의 맹도가 될 수 있겠는지요?”
“내 말을 오해했구려· 귀하가 있을 곳은 맹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철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 뇌옥이외다·”
“하하하! 과연 듣던 대로 강단이 대단하시군요· 아무렴· 무림맹의 총군사라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기개를 잃지 말아야지요·”
“근자에 사이한 무리가 천마성교의 후예들을 자처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소· 한데 이렇게 무림맹에 정면으로 도전을 해올 정도로 간담이 커진 줄은 몰랐소이다·”
“아직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처지에 저희가 어찌 감히 무림맹에 맞서겠습니까? 하지만 귀맹에서 본교의 성물을 운송 중이라고 하니 교도 된 도리로서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나설 수밖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마도 종파들이 자신들의 성물이라고 주장했었지· 이 몸이 보기엔 천마성교 역시 그런 무리 중 하나일 뿐이외다·”
“역시 선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대화가 어렵군요· 그래도 이 몸은 총군사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꼭 받아서 돌아가야겠습니다만· 순순히 내주실 생각은 정녕 없으신 건지요·”
“말귀를 못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새겨듣지도 않는군· 하긴 그러니 되지도 않을 마교 재건에 허송세월하고 있는 거겠지만·”
사마옥이 옆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팽문룡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자 길이의 대나무 통을 풀어 바닥에 힘차게 찍었다·
휘우우우우웅···!
대나무 통 속에서 신호용 폭죽이 솟구쳤다·
크기부터 범상치 않더라니 폭죽은 수백 장 높이까지 솟구치다가 ‘뻐버벙!’ 소리를 내며 터졌다·
밤하늘에 한순간 거대한 민들레 홀씨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저 멀리 사방의 산꼭대기들로부터 화답하듯 작은 폭죽들이 솟구쳤다가 뻥뻥 터져댔다·
그 숫자가 무려 일곱 개나 되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적아를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웅성거렸다·
사마옥의 불호령 같은 말이 이어졌다·
“본 맹의 맹주께서 오백의 고수들을 이끌고 십 리 밖으로부터 천라지망을 좁혀 오시는 중이오· 예상되는 시간은 한 식경 이게 내가 준비한 선물이오·”
“와아아!”
무림맹 쪽 진영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하나보다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전세가 역전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우리를 유인한 것입니까?”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마교 잔당들을 끌어내 한곳에 모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소· 삼백 명이면 생각했던 보다 숫자가 적구려· 대신 범털이라도 몇 명 섞여 있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마차도 필요 없을 정도로 작은 물건을 옮기면서 호송단을 백여 명씩이나 꾸린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하남성의 표국들을 죄다 불러다 대대적으로 입찰을 한 것도 적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계획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몸을 사리라고 하더라니·
가만 호송도 가짜 아냐?
그건 아닌 것 같다· 무림맹 내부에 어떤 간자들이 있을지 모르니 적들을 속이려면 호송도 물건도 진짜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이 몸 정도면 어떻소이까?”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적 진영이 쩍 갈라지며 사인교가 횃불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건장한 가마꾼들이 멘 사인교 위에는 백발에 쭈글쭈글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는 죄다 빠졌는지 합죽이가 따로 없고 불그죽죽한 얼굴에선 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눈빛만은 펄펄 살아 있었다·
그를 본 사마옥의 낯빛이 노래졌다·
“삼뇌 (三腦)!”
전생에서 들었던 바에 의하면 천마성교가 멸문지화를 당하기 직전 세 명의 군사(軍師)가 있었다고 한다·
삼뇌는 그중 세 번째인 뇌천자(雷天子)의 또 다른 별칭이었다·
그는 사실상 천마성교의 마지막 군사였다·
이건 범털 정도가 아니라 범 대가리 급이었다·
전생에서도 전설로만 들었던 노마 중의 노마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잘 있었소이까?”
“이미 관속에 들어간 사람도 불러내는 걸 보니 마공의 세계가 가히 넓긴 넓은가 봅니다·”
사마옥이 말은 하는 동안 설인탁이 등 뒤로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이 보였다·
모든 표국의 표사들이 공통으로 주고받는 수신호의 일종이었다·
‘활을 잡아라?’
혈검대의 뒤쪽에 있던 유성표국과 용문표국의 표사들이 가만히 도검을 거두고 강궁을 잡아갔다·
나와 남궁소소도 활을 잡고 화살을 재었다·
“노사의 솜씨도 여전하외다· 본래 천중산이나 칠량 협곡에서 만날 거라 생각했건만· 덕분에 고생을 좀 했소이다·”
“그건 제가 아니라 후학들이 한 일입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하더니만 머지않아 저도 초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노 선배께선 언제 저승으로 가실는지요?”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귀 맹의 맹주께서 천라지망을 좁혀 오시니 더 늦기 전에 이만 본교의 성물을 챙겨 가야겠소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적 진영이 또 갈라지며 울긋불긋 요사스러운 복장을 한 아홉 명의 사내가 반 장 간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설인탁이 일갈을 내질렀다·
“발시!”
열일곱 명의 표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화살을 쏘았다·
투두두두둑!
그때쯤엔 아홉 명의 사내들이 이미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며 요령을 흔들고 있었다·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순간 어둠을 뚫고 적진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이 허공에서 펑펑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동시에 야영지 전역에서 사이한 안개가 빠르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사마옥의 일갈이 터졌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백의 호송단이 함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순식간에 안개가 야영지 전역을 집어삼켜 버렸다·
잠시 후 안개를 뚫고 나갔을 때는 삼백을 헤아리던 적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낯선 협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것이 꼭 칠량협곡 같았다·
그러나 단언컨대 칠량협곡은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하늘엔 저녁노을처럼 붉게 빛나는 구름들이 떠 있었는데 그곳으로부터 꾸릉꾸릉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이따금 벼락까지 번쩍이고 있었다·
그 바람에 지상에서는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몽환적인 세상이 펼쳐졌다·
“기문진이다!”
“진속에 갇혔다!”
“위치를 지켜라!”
모두가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 협곡의 상류 쪽으로부터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엄청난 것이 오고 있었다·
좌우는 절벽이나 마찬가지였고 뒤로 도망치는 건 한계가 있을 것이다·
도망치다 당하느니 여기서 뭐라도 준비를 하는 게 낫다·
하지만 어떻게?
“혈검대는 철익진(鐵翼陣)을 펼쳐라! 나머지는 혈검대의 뒤쪽으로 숨는다!”
사마옥이 일갈을 터뜨린 후 비도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이어 뚝뚝 떨어지는 피로 혈검대가 검진을 펼치는 앞쪽 땅바닥에다 황급히 무언가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협곡의 상류로부터 거대한 수마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은 수마와 함께 굴러오는 바윗덩어리들이 내는 소리였다·
“발벽(情壁)!”
사마옥이 일갈을 외치자 갑자기 바위로 된 땅바닥이 일어나 커다란 석벽이 되었다·
딱 혈검대가 철익진을 친 길이만큼이었다·
그 순간 수마가 석벽을 덮쳤다·
콰콰콰콰쾅!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물과 함께 굴러온 바위들이 석벽을 두들겨 대는 소리가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모두 잘 들어라! 이 벽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각자도생하되 살아남은 이들은 하늘에 뜬 북두칠성을 따라가라· 모두 건투를 빈다!”
이제 와서 각자도생하자고?
이런 씨발!
무림맹만 믿고 있다가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일단 당면한 과제부터 해결하고 보자·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온통 돌바닥인 가운데 욕조처럼 움푹 팬 작은 탕이 보였다·
나는 남궁소소의 손을 잡아 그쪽으로 이끌었다·
순간 석벽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안하오!”
다짜고짜 남궁소소를 움푹 팬 곳으로 밀어 넘어뜨린 후 재빨리 그녀를 덮쳤다·
이어 좁은 공간 안에서 사지로 좌우의 벽을 밀어내며 버텼다·
수마가 모두를 집어삼켰다·
숨을 쉴 수 없는 가운데 돌덩어리들이 등짝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지나갔다·
옷이 쫙쫙 찢어 나가는 것 같았지만 정통으로 맞는 것이 아닌 데다 용린신갑을 입고 있었기에 견딜만했다·
문제는 머리통이었다·
주먹만 한 돌에 한 방만 맞아도 이 작은 탕은 나와 남궁소소의 돌무덤이 될 것이다·
그 순간 아래에 깔린 남궁소소가 자신의 품으로 내 머리통을 확 끌어당겼다·
동시에 깍지 낀 양손으로 내 뒤통수를 꼭 감싸주었다·
내가 온몸으로 그녀를 지켜주려는 것처럼 자신의 손을 희생해 내 뒤통수를 지켜주려는 것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물살이 잦아들고 주변이 잠잠해졌다·
“푸아악!”
“어푸푸!”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백여 명의 사람들은 전부 휩쓸려 가고 나와 남궁소소만 남아 있었다·
협곡도 좀 전의 그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뀐 상태였다·
당연히 그 많던 물도 없고 사방엔 요사스러운 안개만 자욱했다·
“이건 또 뭐야?”
“두 번째 관문이에요·”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침묵·
나도 남궁소소도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금 전 탕 속에서의 일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손은 괜···?”
“등은 괜···?”
“내가 먼저 말하겠소·”
“그러세요·”
“손은 괜찮소?”
“운이 좋았어요· 그쪽은요?”
“간만에 용린신갑을 써먹었소·”
“다행이에요·”
“혹시 진법에 조예가 있으시오?”
“어려서부터 각종 술법서들을 탐독했어요· 하지만 죄다 책으로만 읽은 것들이라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책으로도 읽은 적이 없소· 아는 만큼만 얘기해 주시오· 도대체 지금 어떤 상황인 거요?”
“누군가 야영지 곳곳에 미리 결계를 펼쳐 놓은 것 같아요· 이후 술법사들이 나타나 요령과 주문으로 진을 발동한 것이고요·”
“그 간자 새끼를 좀 더 일찍 잡았어야 했는데· 한데 기문진이라면 어차피 환경(幻景)에 환영(幻影)들 아니오? 대체 뭐가 이렇게 생생한 거요?”
“저도 이렇게 강력한 기문진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나가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폭약을 터뜨려 결계에 구멍을 내거나 진축(陣軸)을 찾아 무너뜨리면 가능해요· 그러나 우리에겐 폭약이 없고 진축은 오직 기문진을 설계한 당사자만 알 수 있죠· 설사 진축을 찾는다고 해도 이 정도로 강력한 기문진이라면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도 안 할 거예요·”
“한 식경 후 맹주께서 도착하시면 어떻소?”
“술법사를 아홉 명이나 동원해야 발동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진이에요· 아무리 맹주님이라고 하셔도 쉽지 않을 거예요· 최악의 경우 맹에서 술법사들을 불러와야 할 수도 있고요·”
“그때까지 살 수는 있소?”
“시체만 남겠죠·”
“···!”
짐작하건대 놈들은 맹주와 오백의 병력이 전부 진을 깨는데 몰두하게 만들어 유유히 천라지망을 빠져나갈 속셈인 것 같았다·
삼뇌는 처음부터 사마옥의 유인책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두칠성이 떴어요!”
남궁소소의 외침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먹구름들 사이로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 사이로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보였다·
“저건 또 무슨 조화요?”
“북두천구(北斗天□)· 총군사님께서 진속에 다시 천공진(券孔陣)을 세워 북두칠성이 보이는 하늘에 임시로 구멍을 뚫어 놓으신 거예요·”
“왜?”
“진속에 갇힌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게요· 안 그러면 진이 파괴되거나 소멸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 맴돌다 죽을 테니까요·”
“그럼 나갈 수 있는 거요?”
“그건 전혀 다른 얘기고요·”
“그게 뭐요?”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면 최소한 진의 가장자리인 결계의 벽에는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수(幻獸)들과 싸워서 살아남는다면·”
“환수?”
그때 어디선가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다·
동시에 지축이 쿵쿵 울리기 시작하더니 안개가 걷히면서 무언가 나타났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되 두 배나 크고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온 눈과 거대한 입에 이마에는 뿔이 돋아 있었다·
한 손에는 황소도 단숨에 꿰뚫어 버릴 만큼 무지막지한 크기의 삼지창을 들었다·
그런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괴수 십여 마리가 수십 장 밖에서 나와 남궁소소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야차예요!”
“어떻게 해야 하오?”
“도망쳐요·”
북두칠성이고 뭐고 냅다 돌아서 한참을 도망쳤다·
어느 순간 협곡이 칼로 토막 친 것처럼 뚝 끊어졌다·
그 너머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이었다·
“제기랄!”
“빌어먹을!”
채앵!
채앵!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있나·
나와 남궁소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검을 뽑아 들고는 돌아섰다·
야차들은 어느새 이십여 장 밖까지 쫓아온 상태였다·
크기도 그렇고 숫자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무작정 싸우다가는 둘 다 개죽음만 당할 것 같았다·
“남궁세가의 경신공이 기가막히다던데·”
“무슨 말을 하려고요?”
“내가 시간을 끌테니 어떻게든 도망쳐 보시오·”
“이제 겨우 두 번째 난관인데 혼자 도망치면 잘도 살아 남겠네요· 딴 소리 말고 내 뒤로 숨어요· 아무래도 저 야차가 수상하니까·”
그러면서 남궁소소가 슬그머니 내 앞을 막아섰다·
야차들 중 한 놈이 십여장 앞에서 삼지창을 던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무슨 짓이오?”
“사기치는 건 몰라도 무공은 아직 내가 한 수 위일 거예요·”
야차가 기어이 삼지창을 던졌다·
초식의 고절함은 몰라도 공력은 내가 그녀보다 월등히 앞설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절초보다 공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이능력이 발동되었다·
나는 그녀의 뒷무릎 즉 오금을 발로 차서 무릎 꿇게 했다·
동시에 지척까지 날아온 삼지창을 노려보며 사력을 다해 칼을 옆으로 휘둘렀다·
꽝!
육십 년의 공력이 담긴 일도가 무색하게 삼지창은 칼날을 가운데 끼운채 그대로 나를 찔러왔다·
돌진해 오는 소뿔에 받힌 듯한 충격과 함께 나는 뒤로 꽈당 넘어졌다·
“커헉!”
오장육부가 뒤집힌 것처럼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손으로 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다행히 삼지창에 뚫린 건 아니었다· 용린신갑이 이번에도 나를 살렸다·
‘살아서 나가면 광 한번 내줘야겠다·’
나는 벌떡 일어서며 칼을 고쳐 잡았다·
순간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불길이 솟구쳐 올라왔다·
야차의 삼지창이 한동안 잠잠하던 부적의 기운을 깨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옷이 불타거나 빛이 뿜어져 나오진 않았다·
용린신갑이 열기와 빛을 모두 차단하고 있는 탓이었다·
그때 지척까지 다가와 남궁소소를 삼지창에 꿰어 버리려던 야차들이 뚝 멈췄다·
그러곤 나를 보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왜 저러는 거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
설마 부적 때문에?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부적의 힘이 저 환수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들을 놀라게 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확한 건 시험을 해보면 된다·
“죽여 버리겠다!”
나는 칼을 왼쪽 어깨 위로 세우고는 미친놈처럼 놈들을 향해 냅다 뛰어갔다·
그러자 야차들이 깜짝 놀라서는 뒤돌아 쿵쿵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귀영무의 보법을 펼치며 전속력으로 달리자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진각(震脚)을 밟으며 메뚜기처럼 튀어 올랐다·
이어 힐끗 뒤돌아보는 야차의 등을 사선으로 쭉 그었다·
놀랍게도 그 큰 야차의 몸뚱어리가 그대로 갈라졌다·
두 쪽으로 분리된 야차는 순식간에 반쯤 타다만 두 개의 장작으로 변해 버렸다·
“되네!”
뒤 따라온 남궁소소가 물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그냥 세게 내리쳤소·”
“설마!”
“왜 그러시오?”
“용린신갑 때문인 것 같아요·”
“····?”
“잊었어요? 용린신갑은 천마성교의 교주가 착용하던 보갑이에요· 아무래도 용린신갑에 어떤 공능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안쪽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적이 그려져 있을지도 모르고요·”
“용린신갑의 안쪽에 부적이 하나 있기는 하오·”
“그것 봐요!”
“그럼 이 빌어먹을 기문진을 벗어날 수 있는 거요?”
“설마!”
“또 왜 그러시오?”
“아홉 명의 술법사 요령 골짜기 수마 환수···· 아무래도 구곡미혼진(九曲速魂陣)인 것 같아요· 아홉 골짜기에 갇혀 환영과 환수의 공격에 시달리다 끝내 죽음에 이른다는 천마성교 최강의 절진·”
“그래서 나갈 수 있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우리는 나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골짜기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점점 죽어 나갈 거예요· 그들을 구해서 함께 데리고 나가야 해요!”
“어떻게 말이오?”
남궁소소는 먼저 북두칠성을 올려다보고 방위를 살폈다·
다음엔 땅바닥에 팔괘를 그리고 무언가를 한참 계산하더니 왼쪽에 있는 석벽의 한 지점을 향해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
꽝!
고작 돌멩이를 던졌을 뿐인데 무슨 대포알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저길 뚫고 들어가요!”
“저긴 그냥 석벽인데?”
“교주는 귀문(鬼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귀하가 교주예요· 적어도 이 기문진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