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백 명의 호송단(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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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이 시작되었다·
이번 일을 위해 무림맹이 동원한 전력은 총군사 사마옥을 필두로 혈검대(血劍隊)의 고수 칠십이었다·
여기에 용봉지회의 후기지수 열 명과 삼 개 표국에서 온 표사 열아홉 명이 더해지니 똑 떨어지는 백 명이었다·
중무장한 무인이 백 명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급을 위한 수레조차 없었다·
여정에 필요한 물건들은 각자의 말 안장에 최소한의 양만 묶어 갈 뿐이었다·
덕분에 기동성만큼은 원정을 떠나는 기마대 수준이었다·
한데 이것은 호송을 하는 물건이 매우 작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 물건이 무엇인지 지금 누구의 수중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대략의 방향만 말해 줄 뿐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용병에 불과했지만 무림맹의 중요한 호송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나는 감개가 무량했다·
오후에는 설인탁으로부터 백 장 정도 앞서가며 척후를 살피라는 명령까지 받고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그건 귀하 생각이고요·”
“음?”
“일이 끝나면 두 당 곤장 스무 대씩을 맞아야 하는 우리는 지금 억장이 무너진다고요·”
“옳습니다!”
“게다가 우린 정규표사도 아니고 임시로 고용된 객원표사에 불과해요· 내 사문도 아니고 남의 표국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일할 수는 없어요·”
“옳습니다!”
“무슨 목숨까지나·”
“그건 귀하가 무림맹 집법당의 물 곤장을 안 맞아봐서 그래요· 세 대면 살갗이 터지고 다섯 대부터는 피가 튀기 시작해요· 열 대쯤 되면 아무리 독종이라도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죠· 그걸 우리더러 스무 대씩이나 맞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옳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오·”
“사과하지 말고 돈으로 줘요·”
“음?”
“저울에 달지도 못하는 사과는 받아서 뭐해요· 어차피 맞아야 할 곤장이라면 돈이라도 챙길래요· 돈으로 줘요·”
“현실적이군·”
“누구랑 어울리다 보니·”
“얼마나 원하오?”
“한 대당 금전 한 냥씩 쳐줘요·”
“무슨 그런 터무니 없는!”
“저도 안 받고 안 맞고 싶어요·”
남궁소소와 호리독사는 나란히 서서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의 곤장이 무섭기는 하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들의 진짜 목적은 곤장을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추가수당이라는 것을·
“둘은 언제부터 한편을 먹은 거요?”
“작은 이치는 큰 이치에 복종하는 법이죠·”
작은 손해 정도는 큰 이득 앞에서 눈을 감는 거겠지·
“알았소· 그렇게 하겠소·”
남궁소소와 호리독사의 굳게 다문 입술이 쩍 벌어졌다·
한바탕 설전을 각오했다가 흔쾌히 주겠다고 하자 당황한 모양이었다·
“정말요?”
“그렇소·”
“금전 스무 냥씩을 주겠다고요?”
“어떻게든 보상은 할 생각이었소· 처음부터 내가 고집을 피워서 이렇게 된 것이고 두 사람이 그것까지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 금전 나도 좀 주면 안 되나?”
갑작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십여 장 앞 너럭바위 뒤에서 한 사람이 쑤욱 일어섰다·
한쪽 눈에 동전으로 만든 안대를 붙이고 허리에는 대도를 찼는데 그 모습이 거대한 체구와 어울리어 흉성이 대단해 보였다·
그를 시작으로 산비탈의 여기저기에서 병장기를 꼬나 쥔 인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산짐승 같은 용모와 기세를 풍기는 자들이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서른 명이나 되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나는 바싹 긴장했다·
너럭바위 뒤에서 나타난 외눈박이 거인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려는 듯 마른 풀까지 꺾어 입에 물고 있었다·
“안녕들 하시오· 난 독안귀도(獨眼鬼刀)라고 하오·”
남궁소소를 돌아보았다· 들어본 별호인지 묻는 것이다· 남궁소소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몇 가지 부탁 좀 하려고·”
“부탁?”
“하나 말에서 그대로 내린다· 둘 전낭을 사타구니에 숨겨 놓은 것까지 전부 꺼낸다· 셋 전낭과 말과 행낭을 놔두고 조용히 떠난다· 어떻소? 들어 주겠소?”
“그냥 산적들 같은데요”
“벌써?”
“원래 개봉을 둘러싼 산의 고개마다 전부 산채가 있어요· 무림맹이 가까운 만큼 이렇게까지 탈탈 털진 않는데 이상하군요· 한탕씩 하고 자리를 옮기는 뜨내기들인가?”
그러면서 남궁소소는 손가락 끝으로 죽림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서늘한 눈매와 함께 아름다운 용모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독안귀도를 비롯해 서른 명의 산적들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한참이 지난 후 독안귀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풀잎을 ‘퉤!’ 뱉고는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여자도 놔두고 가라·”
“그건 좀 곤란하오만·”
“이것 봐 젊은 친구· 호위무사까지 거느린 걸 보면 돈푼깨나 있는 집 자식 같은데 마누라는 언제든지 새로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목숨이 붙어 있을 때 얘기겠지?”
“···!”
“···!”
슬쩍 돌아보니 남궁소소와 내가 나란히 가고 그 뒤를 호리독사가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나와 남궁소소는 도검을 안장 뒤쪽의 행낭 아래에 꽂아 놓아 잘 보이지 않는 반면 호리독사는 등에 가로질러 멘 상태였다· 남궁소소는 얼어붙은 채로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끼고는 도로 죽림을 내려 썼다·
“뭣들 하느냐! 전부 말에서 끌어 내려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른 명의 산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다 갑자기 뚝 멈추더니 노래진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백여 명에 달하는 무림맹 본대가 산모퉁이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독안귀도는 안대까지 옆으로 제치고 다시 한번 앞쪽을 살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안대 안쪽엔 멀쩡한 눈이 숨겨져 있었다·
인상을 강하게 보이려고 애꾸눈 행세를 한 모양이었다·
“저 저건 또 뭐야?”
“무림맹의 타격대요·”
“뭐?”
“소개가 늦었소· 나는 천룡표국의 이정룡이라고 하오· 방금 귀하가 끌고 가려고 한 아가씨는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금지옥엽으로 아끼시는 손녀이고· 참고로 우리는 지금 무림맹 타격대의 길잡이가 되어 척후를 살피며 가는 길이오·”
독안귀도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와 남궁소소와 산모퉁이에서 말을 타고 오는 백여 기의 인마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냅다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호리독사!”
“존명!”
나와 남궁소소 사이로 무언가 휙 하고 날아갔다·
퍽!
“크헉!”
영사신법에 이은 회심의 등판 찍기· 독안귀도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그때부터 호리독사의 본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퍽! 퍽퍽! 퍽!
두령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수하들이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칠 수가 있나·
서른 명의 산적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줌 서 있기만 했다·
그 사이 독안귀도의 사지는 골병이 들어갔다·
보다 못한 남궁소소가 말했다·
“적당히 해요·”
***
무림맹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 호송단은 작은 강마을에 도착했다·
강폭은 좁지만 수심이 깊어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싣고 갈 만큼 큰 배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 말을 들으니 원래는 두 척이 있었단다·
한데 어제 오후 소 떼를 몰고 온 상단이 오십 리 아래의 포구까지 운송을 부탁해 떠나는 바람에 내일 오후나 되어야 돌아올 거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사마옥이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사마옥을 필두로 혈검대주 팽문룡 용봉지회 후기지수들의 조장인 황보중악 유성표국의 설인탁 용문표국의 엽천문 그리고 천룡표국의 대표로 내가 참석했다·
“표국들은 이 길이 막히면 보통 어디로 가오?”
사마옥이 물었다·
설인탁은 지도 위에서 검게 칠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중산(天中山)입니다·”
“예상되는 문제는?”
“누군가 일부러 손을 쓴 것이라면 우리가 천중산으로 향할 걸 예상하겠지요· 천중산은 숲이 울창한 데다 바위가 많고 능선이 널을 뛰어 대낮에도 적들이 매복을 하고 기다리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다른 길은?”
“천중산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중으로 작은 강을 두 번이나 더 건너야 합니다·”
“발목을 계속 잡히겠군·”
사마옥과 설인탁은 배가 없어진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의 등장에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지도 위로 엽천문의 손가락이 불쑥 올라왔다·
그리고 현 위치에서 쭉 미끄러지다 천중산을 삼 대 일의 비율로 가르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선 위에서 뚝 멈췄다·
“칠량(七標) 협곡입니다· 협곡으로 들어가면 천중산을 넘는 것보다야 늦춰지겠지만 다시 본래의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협곡이면 물이 흐를 터인데·”
“7년 전 겨울 두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을 때 칠량 협곡을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협곡이 바닥을 드러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 마을 노인들 얘길 들으니 두 달 넘게 비가 오지 않은 상태라고 하더군요·”
사마옥이 설인탁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엽 표두의 말이 맞습니다· 칠량 협곡은 겨울 가뭄이 심해지면 건천(乾川)으로 변하는 곳입니다· 덧붙여 비탈이 가팔라 나무가 자라지 못 합니다· 적들은 매복을 할 수 없는 반면 우리는 좌우의 지형을 훤히 살피며 갈 수 있죠·”
“게다가 앞뒤가 모두 트였으니 울창한 산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낫겠군· 설사 적들이 뒤를 따라 오더라도 곡을 막고 싸우면 지리도 얻을 수 있고·”
“문제는 지금부터 서둘러 가더라도 협곡의 중간에서 밤을 맞을 거라는 점입니다· 하면 비탈 전체가 암흑으로 변하면서 낮에는 유리했던 지형이 오히려 사지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낮에 적들이 매복하고 기다리는 산으로 들어가느냐 밤에 협곡에서 진을 치고 야습해 오는 적들을 맞느냐의 문제로군·”
사마옥이 팽문룡과 황보중악을 차례로 돌아보며 눈빛으로 의견을 물었다·
두 사람은 전혀 입을 떼지 못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사마옥은 그나마 내게는 눈빛으로도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일대의 지리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알지만 나는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칠량 협곡의 길이가 얼마나 됩니까?”
“이십 리쯤 된다고 들었네·”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뜻밖에도 황보중악이 불쑥 대답했다·
그는 뭐라도 아는 척을 할 수 있게 되어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동 시간을 반 시진 정도만 더 늘이는 것으로 충분히 협곡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깜깜한 밤에 횃불을 밝힌 채 길도 없는 협곡을 반 시진이나 이동하자고? 아예 화살비를 퍼부어 달라고 하지 그래·”
“어두 지기 전에 협곡을 빠져 나간다는 얘기입니다· 간단히 말해 저녁을 반 시진 정도 늦출지언정 협곡을 나간 후에 먹자는 것이죠·”
표국의 금언 중에는 해뜨기 반 시진 전에 일어나고 해지기 반 시진 전에 이동을 멈추라는 말이 있다·
해지기 반 시진 전에는 이동을 멈춰야 야영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지형을 충분히 숙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매복이 있는 지도 확인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야습을 대비해 요소요소에 경계병도 세울 수 있다·
해가 진 후에야 이동을 멈추면 금방 칠흑 같은 밤이 되어버려 주변의 지형을 충분히 살필 수가 없다·
이는 만약 표물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에도 설인탁은 이런 규칙을 반드시 지켰다·
그리고 이 정도는 굳이 노련한 표사가 아니어도 웬만큼 강호의 경험이 있는 무인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는 지식들이었다·
“협곡을 빠져 나가자고 야영 시간을 반 시진이나 늦출 수는 없지· 그건 또 다른 위험을 야기할 뿐이야·”
“척후병들이 먼저 협곡의 출구에 도착해 적당한 장소를 골라 주변 지형도 살피고 요소요소에 경계병도 세우면서 본대를 기다리면 어떻습니까? 하면 본대는 해가 지기 직전까지도 이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 협곡의 끝에 도착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본대가 함께 가지 왜 구태여 늦게 간단 말인가·”
황보중악의 지적은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정곡을 찔렀다·
팽문룡과 엽천문의 입가에 미세하게 어리는 것은 분명 조소일 것이다·
사마옥과 설인탁도 비웃지는 않았지만 의아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엔 내 손가락이 지도 위의 현 위치를 짚었다·
이어 천중산을 그대로 쭉 가로지른 후 칠량 협곡의 출구쯤에서 뚝 멈추었다·
“우리 중 일부가 천중산을 가로질러 가면 놈들은 당연히 척후를 살피는 별동대라 여기고 매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보내줄 것 입니다· 천중산은 지름길이니 반 시진 정도는 일찍 칠량 협곡의 출구에 도착할 수 있을듯 싶은데 아닌가요?”
사마옥 설인탁 엽천문 팽문룡 황보중악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 와중에 나를 바보 취급하며 몰아붙였던 황보중악은 혈색까지 창백해졌다·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흐르길 잠시 사마옥이 설인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별동대가 유인책 역할까지 할 겁니다· 놈들이 속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본대가 칠량 협곡을 절반이나 지나간 후가 되겠지요·”
“하면?”
“묘수입니다·”
비로소 사마옥의 굳었던 얼굴이 펴졌다· 그가 황보중악을 향해 말했다·
“후기지수들과 함께 천중산을 건너라·”
“존명!”
사마옥은 이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별동대를 이끌게·”
“예?”
“용봉지회의 후기지수 열 명이면 야영지를 살피고 만들기 위한 인원으로는 충분할 걸세· 아 공령신투의 제자는 두고가게· 내가 따로 쓸 일이 있으니·”
“존명!”
슬쩍 돌아보니 황보중악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졸지에 내 명령을 들을 생각하니 지금쯤 머릿속이 하얘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