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가자· 무림맹으로(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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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룻배라 함은 사공 한 명이 삿대를 찍거나 노를 저어 가는 작은 배를 말한다·
하지만 장강에서 그런 배들은 촌로들이 강기슭을 따라 오르내리며 고기를 잡을 때에나 쓰인다·
대신 십여 명 이상이 노를 젓거나 돛을 매단 나름 대형 선박들이 나룻배 역할을 한다·
“이런 배 하나 가지고 있으면 평생 먹고 살겠지?”
“먹고 사는 게 다 뭡니까· 우리보다 훨씬 부자일걸요·”
“뭘 그 정도까지나·”
“둘째 형님은 장강에선 나룻배 한 척당 첩이 하나라는 말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쉽게 말해 세 척의 나룻배를 거느리면 첩도 세 명 정도는 거뜬히 거느릴 수 있다· 뭐 이런 뜻입니다· 하물며 말과 마차를 운반하는 이런 대형 나룻배의 선주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렇게나 돈이 된다고?”
“괜히 강하방(江河常)까지 만들어 걸핏하면 칼부림을 벌이는 게 아니라니까요·”
강하방은 장강을 중심으로 나룻배의 권리를 독점한 방회였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만큼 폐쇄적이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다·
“에잇 갑자기 입맛이 확 떨어지네·”
이견이 만두를 먹다 말고 술병을 잡아갔다·
나와 서호삼견은 갑판 한가운데 켜져 있는 선등(船燈) 아래에 둘러앉아 객점에서 사 온 돼지고기와 만두로 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내가 말했다·
“뭍에 닿으면 한동안은 입에 뭐 넣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배를 채워 두세요·”
삼견이 듣고 있다가 말했다·
“걱정 말게· 이미 혼자서 돼지고기까지 두 그릇 뚝딱 하셨다네· 속이 느끼해서 술을 찾으시는 것일세·”
그러나 나는 말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모두가 사람 밥을 먹고 소처럼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제야 사람들은 내 말이 이견을 향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선등 아래에는 후기지수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술이나 홀짝일 뿐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두소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표행을 할 뿐입니다·”
“하면 표주로서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무림맹까지 갈 자신이 있습니까?”
“왜 저를 고용했습니까?”
“질문은 제가 했습니다만·”
“대답을 하기 위해 물은 겁니다· 금전을 이백 냥씩이나 주고 저를 고용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군백과 조광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
“아시다시피 나는 이미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이러다가 두 사람까지 위험에 빠뜨릴 것 같아서 나를 대신해 줄 다른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금전 이백 냥은 백발노성을 무림맹까지 호송해주는 대가가 아니라 군백과 조광의 안전을 위해 내가 지불하려는 돈입니다·”
당군백과 양조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소부가 두 사람을 생각하는 만큼 두 사람 또한 두소부의 상처받은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두 사람이 안전하길 바란다면 만두를 먹으십시오· 조장이 뭘 먹어야 조원들도 눈치 보지 않고 배를 채울 것 아닙니까?”
“···?”
“백발노성이 무림맹까지 산 채로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실히 갈 겁니다· 시체라도 갖고 가서 검시를 해야 귀하들이 방만한 태도로 호송에 임했다는 걸 증명할 테니까요·”
계약을 하기 직전 두소부에게서 받아둔 약속이 한 가지 있었다·
후기지수 세 사람은 표주이자 호송단의 일원으로서 전력을 다해 도울 것·
다시 말해 세 사람이 명백히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생긴 실패에 대해서 나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애초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할 생각이 아니었기에 두소부도 흔쾌히 수락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계약서의 조항을 빌미로 실패하면 당신들 탓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당신들이 도와주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지수들은 내 말을 알아듣고도 남을만큼 충분히 똑똑했다·
두소부를 시작으로 세 사람이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당군백이 나를 향해 미세하게 묵례를 해왔다· 고맙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건가요?”
“사라질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병법의 가르침도 있지 않습니까· 싸우지 않으려면 사라질 수밖에요·”
“우리보다 앞서 강 건너 무양포구로 간 나룻배가 열 척도 넘을 거예요· 아무리 밤이라지만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지켜보는 눈이 많을 텐데 어떻게 사라진다는 거죠?”
어느새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장강은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하필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이라 더 그랬다·
잠시 후 삼견이 세 명의 뱃사공을 내 앞으로 데려왔다·
둘은 젊었고 하나는 오십 줄의 초로인이었다· 셋 다 닮은꼴로 못생긴 것이 누가 봐도 삼부자였다·
아들 둘은 겁에 질려 있었고 늙은 아버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장강의 뱃사공답게 담담했다·
나는 늙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무양포구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깜깜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노련한 사공께서 그걸 모를 리가요·”
“십 리는 더 가야 할 것입니다·”
“딱 절반쯤 왔군요·”
“노련하기는 표사님께서 더 하신 것 같습니다만·”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반시진 넘게 배를 타고 왔는데도 아직 십 리나 남았다는 말에 놀라고 그게 딱 절반이라는 걸 알아맞힌 나 때문에 또 놀랐다·
“지도에 그렇게 씌어 있더군요·”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목적지를 바꾸어야겠습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무양포구에서 십 리 정도 위쪽에 있는 여강촌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선등을 모두 끄고 잠항을 해주십시오·”
“달도 뜨지 않은 캄감한 밤입니다· 이 밤에 어디가 어디인 줄 알고 방향을 잡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장강을 오가는 뱃사공들은 밤에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해 모두 별자리를 읽는 것으로 압니다만 모르시면 제가 가르쳐 드릴 수도 있고요·”
전생에서 30년 동안 장강을 넘어 다녔다·
항상 면양 포구를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장강의 사정은 어디나 다 비슷했다·
늙은 사공이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왜 그러는지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장강에서 나룻배를 끄는 뱃사공들은 원래 눈치가 빠르고 바가지를 잘 씌우기로 악명 높았다·
하물며 쉰 살이나 먹은 강하방도라면 반쯤 요괴라고 봐야한다·
“꼭 방향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런 밤에 잠항을 하다가는 다른 배들과 부딪혀 가라앉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얼마나 고수들이신지 모르나 장강 한 가운데서 빠지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밤에도 배가 뜹니까?”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일단 늙은 뱃사공의 입을 통해 지금 장강의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이 시간에도 장강엔 적지 않은 배들이 떠 있습니다· 선등은 내가 탄 배의 크기와 위치와 방향을 다른 배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선원들간의 약속입니다· 밤중에 다른 배들과 충돌해 물고기 밥이 되지 않으려면 선등은 필수입니다·”
“말한 필을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마차 두 대도 드리겠습니다·”
잘 만든 마차 한 대는 소 한 마리 값에 육박한다·
천룡표국의 마차는 중원 전역을 누비도록 만들어진 만큼 튼튼하기가 이를 데 없다·
말 한 필에 마차 두 대까지· 뱃사공은 지금 횡재를 한 것이다·
반면 나는 어차피 사정상 버려야 하는 물건들을 돈 대신 지불하고 원하는 걸 얻는 셈이다·
“우리가 선등을 끄더라도 다른 배들이 켜 놓았을 테니 일찍 발견해서 피해 가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쯤 하시지요· 천룡표국의 표기를 못 보신 것도 아닐 텐데 더 욕심부리다간 큰 단골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천룡표국의 사공자입니다·”
“정말 이십니까?”
“딱 보면 얼굴이 다를 텐데요·”
“헛! 제가 사람을 몰라뵙고·”
늙은 사공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옆에 있는 두 아들도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여강촌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세 번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는 내가 목적지를 바꾼다는 것에 놀라고 두 번째는 말과 마차를 버린다는 것에 또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된다고 열변을 토하던 뱃사공이 순식간에 돌변하는 것에 놀랐다·
선등을 모두 끈 채 잠항이 시작됐다·
늙은 뱃사공의 말대로 깜깜한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장강엔 배들이 적지 않게 떠 있었다·
일부러 밤중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고기 그물을 내리는 배들에서부터 강을 따라 며칠째 오르고 내려가는 상선들까지·
늙은 뱃사공은 그런 배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며 운항했다·
그사이 나와 후기지수들과 서호삼견은 마차에 있는 짐들을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 사람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운 가운데서 필요한 짐과 불필요한 짐들을 나누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귓가에 스치는 바람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목구멍부터 쥐어짰다·
“모두 조용히!”
나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모두 하던 일을 뚝 그치고 숨소리조차 죽였다·
누군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모기만한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나?”
일견이었다·
“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습니다·”
“우린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양조광 백발노성의 마혈을 짚으시오· 어서!”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누군가 후다닥 일어나서는 쇠창살 우리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느껴졌다·
이어 투다닥 하는 소리가 들렸고 ‘캑!’하며 쓰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진 침묵·
한참이 지난 후 배의 오른쪽 전방 저만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부터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소?”
“슬슬 보일 때가 됐습니다만·”
“너무 멀어서 그런 것 아니오?”
“면양포구에서 말과 마차를 실을 수 있는 배는 딱 두 척밖에 없는데 그것들 모두 밝은 선등을 열 개씩 매달고 운행합니다· 나타나기만 하면 여기서도 충분히 보일 것입니다·”
“한데 왜 안 보이는 것이오?”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대화는 두 사람이 나누는 것이었다· 한데 그중 한 명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낮에 면양포구에서 백발노성에게 술 호리병을 건네줘도 되냐고 물었던 바로 그 사내였다·
대화는 또 이어졌다· 나는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문제없겠소이까?”
“뭐가 말입니까?”
“명문대파의 후기지수들이 호송 중이라고 했잖소이까? 거기에 천룡표국의 젊은 표두와 늙은 표사들도 세 명이 있었다고·”
“천룡표국의 표두와 표사들이야 신경 쓸 것이 없고 문제는 청성 점창 당문의 후기지수들인데 이 깜깜한 밤에 장강 한가운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과연 녹산귀도(綠山鬼지) 형의 말씀이 맞소이다· 깜깜한 밤에 사람이 사라졌는데 물귀신에게 홀려 죽었는지 도깨비에게 홀려 죽었는지 알 턱이 없지요· 껄껄껄·”
“말조심하십시오!”
“아 그렇지· 서로 별호를 부르지 않기로 했지·”
“수하들에게도 다시 한번 단단히 일러두시고요·”
“다들 들었겠지? 모두 조심하도록!”
술 호리병 사내의 별호가 녹산귀도인가 보다·
짐작하건대 그는 낮의 일이 있고 난 후 빠른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너 무양포구로 갔다·
이어 평소 알고 지내던 인근 흑도방파의 우두머리를 설득해 흑도들을 잔뜩 이끌고 온 것이다·
대체 몇 명이나 끌고 왔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까·
그사이 대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저들의 배는 가만히 서 있었지만 우리가 탄 배의 돛이 부풀어서 저절로 나아가며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십여 장 앞 허공에서 갑자기 미세한 빛을 내는 물줄기가 생겨나서는 호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누군가 선미쯤에 서서 오줌을 싸는 모양이었다·
주워듣기로 소갈병에 걸린 사람이 한밤중에 오줌을 누면 종종 저렇게 빛이 난다고 했던 것 같다·
‘위험할 텐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선미에 서서 강으로 오줌 눌 생각을 하다니·
십중팔구 술에 취했거나 아니면 이런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수적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푸르르!
우리 쪽 배에 타고 있던 말 한 마리가 갑자기 투레질을 했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놈들이 듣지 못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머리끝이 쭈뻣 섰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속삭였다·
“당군백 독없는 암기를 쏘아 선미에 있는 놈을 쓰러뜨릴 수 있겠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거의 동시에 저쪽 배에서는 오줌 줄기가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며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엇! 누가 빠졌다!”
“누가 빠진 거야?”
“사람 살려!”
“독사 형님이 물에 빠지셨다!”
“어디야? 어디에 빠지신 거야?”
“횃불을 밝혀라!”
“안 돼!”
마지막 날카로운 소리는 녹산귀도와 대화를 나누던 두령 놈의 것이었다·
놈이 거듭 소리쳤다· 빛과 달리 어지간한 소리는 바람 속에서 멀리까지 나아가지 못 하니 상대적으로 덜 조심하는 것이다·
“빠진 쪽 난간을 작게 두들겨 소리를 내줘라·”
퉁! 퉁! 퉁! 퉁!
“독사 소리가 들리느냐?”
“예 들립니다·”
“너 또 술 처먹었냐?”
“갑자기 무릎이 따끔해서 그만·”
“소리가 나는 쪽으로 헤엄쳐 온 다음 알아서 기어올라라· 그리고 갑판에 올라오는 즉시 대가리 박고 있어라·”
“복명!”
“한심한 새끼·”
“공기가 축축한 것이 아무래도 안개가 끼어 선등 불빛을 가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매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다른 배들에게 신호를 주고 백 장 정도만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부터는 큰소리가 나지 않게 각별히 조심하도록·”
마지막 두 사람의 대화는 녹산귀도와 흑도방파의 두령이 나눈 것이었다·
그러자 놈들이 탄 배에서 ‘탁!’ 하고 작은 불꽃이 터졌다·
불꽃이라고 해봐야 두어 걸음 안을 겨우 밝힐 정도로 작았다·
누군가가 화석(火石)을 치는 모양이었다·
한데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탄 배의 왼쪽 하고도 앞뒤 서너 곳에서 화답하듯 탁탁 불꽃이 터졌다·
놀랍게도 배는 모두 다섯 척이나 되었고 우리가 탄 배는 그 배들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미친!’
나도 모르게 똥구멍에 힘이 팍 들어갔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말은 않지만 여기저기서 꼴깍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왔다·
그것보다 훨씬 더 먼 사방에서는 첨벙첨벙 노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림잡아도 배 한 척당 십수 명이 동시에 노를 젓는 것 같았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반 각쯤 지나자 아무리 공력을 끌어 올려도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됐습니다·”
“휴우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사방에서 화석을 칠 때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배가 다섯 척이라면 대체 몇 명이나 탄 거야?”
“백 명은 확실히 넘을 겁니다·”
“고작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백 명이나 찾아오다니· 이거 누구 말대로 선등을 끄고 잠항을 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했겠군·” 이견과 삼견이 주고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다들 여기저기서 한숨을 쉬어댔다·
그 와중에 일견이 내게 물었다·
“대체 배가 다가오는 건 어떻게 안 건가?”
“실은 제 단전에 공력이 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형님들 몰래 영약을···· 아무튼 좀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속으로는 꽤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먼저 적들의 소리를 들었을 줄이야·
공력이 있고 없고 혹은 높고 낮음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어찌 되었든 천만다행이네· 자네가 기지를 발휘하고 배도 일찍 발견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네·”
“그것보다 녹산귀도가 누군지 아십니까? 짧은 시간에 백여 명을 동원하는 수완도 그렇고 강에서 매복하고 기다릴 생각을 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나도 처음 들어보는 별호네·”
“선배께서 모르는 흑도의 인물도 있습니까?”
“흑도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천하의 흑도들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고수가 나타나는 법이니까·”
“애석하군요· 어떤 자인지를 알면 다음에 찾아올 때 대비를 하기가 훨씬 수월할 터인데 말입니다·”
그때였다·
“저기요·”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사람들의 대화가 뚝 끊어졌다·
잠시 후 어둠 속으로부터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당신들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