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첫 단독임무(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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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과 청비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두 예기는 내실 끝에 마련된 작은 단 위에서 금(琴)과 슬(處)을 연주했다·
그 외에는 여흥을 돋우기 위한 기녀라곤 일절 없었다·
심지어 두 명의 예기들도 손님들과 대화하며 원하는 연주만 들려줄 뿐 저 단을 내려오는 법이 없었다·
손님들 또한 단을 올라가선 안 된다· 이는 녹원루의 오랜 규칙이었다·
덕분에 녹원루는 풍류를 즐기는 묵객들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남녀노소 전부가 즐겨 찾는 명소였다·
“매소옥을 만나러 왔다고?”
“그렇습니다·”
“왜?”
“개인호위를 좀 맡아볼까 하고요·”
매소옥의 개인호위를 맡으러 왔다는 내 말에 진금봉의 표정이 금방 변한다·
아마 속으로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다며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조영영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무언가를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녹원루는 복룡당에서 이미 관리를 하고 있는데 네가 왜 나서려는 거냐?”
“복룡당은 녹원루의 보호를 책임진 것이고요· 외출할 때 필요한 개인호위는 예기들이 따로 지정하거나 고용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는 항주의 다른 주루나 기루들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나도 알아· 흑백을 막론하고 매소옥의 호위가 되겠다는 무림 고수들이 줄을 섰다는 것도 알고· 한데 왜 너까지 거기다 한 발을 걸치냐 이 말이지· 복룡당에도 표사는 얼마든지 있는데·”
“지금도 매소옥의 개인호위는 다른 방파에서 맡아 하는 것으로 압니다· 복룡당을 뒷배 삼아 십칠각에서 매소옥의 호위까지 맡게 되면 서로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십칠각이 아니라 네가 하고 싶은 거겠지· 듣자 하니 십칠각으로 들어온 지명의뢰가 수십 건이라고 하던데 그것들 중에 매소옥의 개인호위 보다 돈 되는 게 한둘이었으려고· 안 그래?”
이 새끼가 또 슬슬 약을 올리네· 창밖을 보니 이제 막 해가 서산을 넘어갔다·
매소옥은 유(西)시가 깊어야 늙은 악공과 함께 올 거라고 했다·
아직도 반 시진은 이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자·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맞습니다·”
나는 시원하게 인정했다· 사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진금봉의 얼굴에 살짝 조소가 어렸다· 조영영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이병룡이 조영영을 슬쩍 곁눈질한 후 말했다·
“왜 남궁소소로는 성에 안 차?”
“무슨 뜻입니까?”
“최근 들어 무림인들 사이에 퍼지는 소문이 항주에는 네 명의 절세미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남궁소소라고 하더군· 한데 그 남궁소소와 가장 친하다는 사람이 알고 봤더니 내 이복 동생이더라고·”
“그래서요?”
“남궁소소 같은 귀한 신분의 여자를 놔두고 왜 한낱 기녀에게 관심을 보이냐는 거지· 그렇다고 남궁소소의 미모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옛날 버릇이 도진 것이냐?”
순간 칠현금 소리가 띠잉 하면서 살짝 튀었다가 이어졌다·
내가 비록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설향이라는 예기가 실수를 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녹원루의 예기들은 자신들의 분야에 대한 자긍심이 높기로 유명했다·
한데 방금 이병룡이 한낱 기녀들이란 말로 예기들을 시궁창에다 처박아 버린 것이다·
이병룡과 다른 남자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오로지 내가 당황하는 모습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전날 백선반점에서 내게 당한 이후 앙심을 품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이런 쪽에 민감한 여자들은 달랐다·
조영영과 진금봉의 얼굴이 대번에 불쾌한 기색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녹원루의 예기들을 정말 보통의 기녀 정도로 여겼다면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와선 안 되는 것이다·
이병룡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처음부터 미꾸라지로 태어났다면 절대로 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꾸라지는 미꾸라지의 수준에 맞추어 상대해 주어야 한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엎어 버려야겠다·
“듣자 하니 매소옥의 칠현금 연주를 들으려면 석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데 형님도 그러신 겁니까?”
“네 놈이 나와 매소옥을 어떻게든 엮어 망신을 주고 싶은 모양이다만 헛수고하지 마라· 이곳은 본래 영영이 자주 찾는 곳이고 내가 그녀를 위해 오래전부터 마련한 자리다·”
혼담까지 미뤄진 마당에 뜬금없이 조영영이 이병룡과 함께 나타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병룡은 어렵게 만든 자리이니 꼭 함께 가자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조영영이 녹원루를 자주 들락거렸다는 건 뜻밖이었다·
장삼의 말을 빌리자면 이정룡도 녹원루의 단골이었다는데 순전히 우연일까?
“무언가 오해를 하셨군요· 전 다만 무예와 학문에도 뛰어난 형님께서 음악에까지 조예가 있으신 것 같아 감탄했을 뿐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여기 너와 내가 얼마나 불편한 사이인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일전에는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형님께서 북경으로 가서 회시를 보지 않은 것이 저의 실종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그만····”
“지금 네가 회시에 급제를 했다고 나를 욕보이려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형님께서도 향시에 급제하셨는데 저 때문에 회시를 보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이야 돈으로 산 급제라고 쑥덕거리지만····”
“무슨 개소리야!”
“항주에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향시가 있기 전날 밤 형님의 외가인 만금전장에서 지부대인을 찾아가 은전을 바쳤다고요·”
부유한 집안의 자제가 과거에 급제하면 으레 따라다니는 소문이다·
전생에서도 이런 소문이 한동안 이병룡을 따라다니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그렇지만 이번 생에서 나는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거부들이 지부대인을 어떻게 부리고 다루는지를 본 후 그렇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이병룡의 실력을 더 적나라하게 알 것이다·
이들 중에 이병룡의 향시 급제를 실력이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쾅!
“이 놈이 미쳤나!”
이병룡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술병과 술잔이 엎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놀란 예기들이 연주를 뚝 멈추었다· 고요하던 술자리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볼일을 끝낸 나는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났다·
“불청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거기 서!”
이병룡이 한 손으로 탁자를 집고는 훌쩍 뛰어 넘어왔다·
이어 후다닥 도망치려는 나의 뒷덜미를 확 잡아채는 순간·
삐이이익! 삐이이익!
바깥에서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소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이쪽저쪽을 바쁘게 오고 갔다·
뒤이어 누군가의 고함도 울렸다·
“어서 천룡표국에 알려라!”
“빨리 무사들을 소집해라!”
천룡표국을 부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무언가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재빨리 달려나갔다·
밖으로 나와보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사이로 녹원루의 무사들과 일꾼들이 온천지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잠시 후 총관 염화상이 달려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매소옥이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병룡이 흥분해 외쳤다·
“객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도 나오질 않아 거처로 가보았더니 늙은 악공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가운데 매소옥만 사라졌습니다·”
“그 말은?”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
‘털썩!’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함께 뛰쳐나온 설향과 청비가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그녀의 거처가 어딥니까?”
“저기 보이는 전각의 삼 층입니다·”
“염려 마시오· 우리가 흉수들을 추적해 보겠소·”
이병룡은 호기롭게 외친 후 신법을 펼쳤다·
남자들도 뒤를 따랐다· 말하는 건 등신 같았어도 무림인은 무림인들이었다·
세 명이 약간의 차이를 두고 신법을 펼치는데 그 모습이 흡사 세 발의 화살이 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조영영과 진금봉은 남자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총관에게 물었다·
“악공은 어떻게 됐습니까?”
“잠시 기절했을 뿐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나는 총관을 따라 달려갔다· 조영영과 진금봉은 물론 설향과 청비까지 나를 졸졸 따라왔다·
노인은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점소이가 깨끗한 헝겊을 가져와 피를 닦고 머리를 감아 주었다·
“흉수를 보았습니까?”
“못 봤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매소옥과 음률을 맞추다 시간이 된 듯하여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이어 매소옥이 옷을 갈아입겠다고 했고 소인은 칠현금과 피리를 챙겨 먼저 자리를 뜨려고 했었지요·”
“그래서요?”
“그 순간 갑자기 뻑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노래지면서 쓰러졌습니다· 뒤이어 무언가 시커먼 것들이 창문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 같았고요 그게 제가 본 것 전부입니다·”
“그때 매소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옆에 있었지요·”
“흉수를 본 그녀가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창문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볼 정도로 의식이 남아있었다면 매소옥이 한마디 외치는 소리쯤은 들었을 것도 같습니다만·”
“들었습니다· 매소옥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라고 했습니다·”
놈들이 틀림없는 것 같다· 무언가 크게 어긋났다·
전생에선 분명 사나흘 후에 일어난 일이 지금 갑자기 일어났다·
달라진 것이라곤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생에선 이 시점에서 녹원루의 보호권이 이미 금룡표국으로 사실상 넘어간 상태였다·
한데 이번 생에서는 내가 이화원의 보호권을 금룡표국으로부터 빼앗아 오는 바람에 금룡표국의 월성교 진출이 무산되었다·
녹원루 역시 여전히 천룡표국의 보호 아래 있었고·
그게 놈들로 하여금 심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했을까?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다른 힘이 작용했을까?
“우리에게도 얘기 좀 해줘요·”
진금봉이 초조해하며 물었다·
“면식범인 것 같소·”
“그걸 어떻게 알죠?”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보통 ‘누구냐!’라고 했을 것이오· 한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라고 했다는 건 아는 사람들일 확률이 크오·”
“아!”
“하면 흉수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이번엔 조영영이 물었다· 오늘 처음으로 내게 거는 말이었다·
“매소옥의 개인 호위무사들이라고 생각하오·”
“용신방의 무사들!”
조영영의 입에서 용신방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염화상을 비롯해 설향과 청비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들은 매소옥을 호위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납치를 했다는 사실에 놀랐겠지만 나는 조영영이 매소옥과 용신방 흑도들의 관계를 안다는 것에 더 놀랐다·
“매소옥의 주변을 잘 아시는군요?”
“저의 벗이니까요·”
나는 이번에야말로 깜짝 놀랐다· 나란히 항주 삼대 미녀로 불리는 조영영과 매소옥이 서로 교분을 나누는 사이였다니·
이건 진금봉도 까맣게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갑자기 섭섭한 얼굴을 하고는 따져 물었다·
“언제부터?”
“일 년 전부터·”
“왜 내게 말 안 했어?”
“그녀가 부탁했어· 자신과 벗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나까지 경시할 거라고 그러면 내가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게 되고 자긴 상냥한 벗을 잃게 될 거라며 세상 사람 전부 몰라도 좋으니 오래오래 찾아와 달라고····”
말을 하는 중간에 조영영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눈물을 보자 진금봉도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는 함께 울기 시작했다·
나는 조영영이 어쩌다 매소옥과 벗이 되었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걸 물어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영영이 다시 내게 물었다·
“용신방 무사들이 매소옥을 납치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죠? 그래서 갑자기 개인호위를 해주겠다며 찾아온 것 아닌가요?”
염화상 설향 청비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영영이 이렇게 똑똑한 줄은 몰랐다·
어쩐지 무림문파의 여자가 유서 깊은 예당서원까지 가서 공부를 했더라니·
“흑도들의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충고를 해주었소· 용신방이 적교방과의 전쟁에서 패하면 그동안 자신들이 관리하던
것들 중 가장 돈 되는 걸 들고 다른 도시로 도망칠 것 같다고·”
“그게 매소옥이라고 생각했군요·”
“그렇소·”
염화상과 두 명의 예기들이 ‘아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유흥가에는 아예 발을 끊은 줄 알았던 내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바람에 이상하게 생각했다가 사정을 알고 놀란 것이다·
설향과 청비의 눈에서는 벌써부터 눈물이 어른거린다·
용신방은 원래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약과 재주를 팔던 마희단이었다·
매소옥은 바로 그 마희단에서 노래를 하고 비파를 연주하던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소문에는 길거리에서 또래의 패거리와 함께 소매치기로 먹고사는 매소옥을 마희단주가 데려다 가르친 것이라고 했다·
원래 상인이었던 녹원루주는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자였다·
그는 매소옥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마희단주는 거액을 받고 매소옥을 녹원루에 팔아넘겼다·
그 돈을 밑천으로 자신들처럼 떠도는 무리를 규합해 항주에 조그마한 흑도방파를 하나 세웠다·
그게 지금의 용신방이었다·
짐작건대 매소옥은 소매치기로 떠돌던 시절 자신을 거둬주고 악기를 연주하는 법까지 가르쳐 준 용신방주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여 선의를 꼭 악의로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
“이제 어쩔 거죠?”
“놈들을 찾아야지·”
“녹원루를 천룡표국에서 보호하고 있는 이상 최대한 빨리 항주를 벗어나려고 할 거예요· 한데도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호수가 아무리 넓어도 물고기가 다니는 길과 새우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는 법이오· 그 길을 손바닥 보듯 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소·”
나는 총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후면 복룡당에서 표사들이 올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둘째 형님께서 직접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방금 들은 얘기들을 그대로 전하십시오·”
“옛 인연을 잊지 않고 이렇게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자님께서 이런 마음으로 오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불러드렸을 것을·····”
“자책하지 마십시오· 저도 반신반의하고 온 것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달이 날줄도 몰랐고요·”
나는 옆에서 울고 있는 설향과 청비에게도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꼭 찾아서 안전하게 데려오겠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돕겠어요·”
갑자기 치고 나온 사람은 조영영이었다·
“날이 어두운 탓에 잠시 후면 병룡 형님이 십중팔구 허탕을 치고 돌아오실 거요· 정 돕고 싶다면 병룡 형님과 함께 있다가 복룡당의 표사들이 오면 합류하시오·”
“아뇨· 지금 정룡 오라버니와 함께 가겠어요· 어차피 십칠각에는 표사도 한 명밖에 없다면서요· 잊고 계신 것 같은데 저도 무림인입니다·”
“왜 꼭 날 따라가겠다는 거요?”
“다른 사람들은 매소옥을 못 찾을 것 같아서요·”
***
항주에서 말을 타고 하루 정도 달리면 거대한 호수를 끼고 들어선 수향의 도시 소주(蘇州)를 만날 수 있다·
서호삼견은 태호가 바라보이는 객점의 일 층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객원표사라니· 염병할·”
“둘째 형님 돼지고기 접시 이쪽으로 좀 밀어주십시오·”
“너는 아무렇지도 않으냐? 항주를 주름잡는 흑도인 우리가 천룡표국 십칠각의 객원표사가 됐는데 화가 나지도 않으냐고?”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공주를 욕보인 일로 진왕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니 일단 진왕의 총애를 받는 놈의 비위를 맞춰 줄 밖에요·”
“눈치 보고 살 거면 뭐하러 흑도를 해?”
“소나기는 피해가야죠· 흑도는 무슨 배에 칼이 들어와도 안 죽는 답니까? 그리고 꼭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닙니다· 돼지고기 참 잘 삶았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정룡은 향시에 이어 회시에까지 장원급제를 한 놈입니다· 언제 무슨 벼슬을 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거기다 아버지는 무려 표왕이고 말입니다· 친해 두어서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예 천룡표국으로 들어가자고 하질 그래? 이참에 우리 별호도 서호삼표로 바꾸고·”
“서호삼표라· 입에는 잘 붙네요·”
“이런 멍청한 놈!”
“정 그러면 기회를 봐서 없애버리시든가요· 그럼 우리한테 다시는 객원표사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못 하지 않겠습니까?”
“소주에 머무는 사흘 동안 내내 그 생각만 했다· 하지만 표왕의 눈을 속이는 게 쉽지 않아서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죠·”
“그러다 표왕이 눈치라도 채면?”
“서쌍교방은 하루아침에 항주에서 사라지고 우리 서호삼절은 표왕의 천무십검(굿武十劍)에 잘게 다져져서는 서호의 고기밥으로 던져 지겠죠· 하지만 눈치 보고 살 거면 뭐하러 흑도를 하겠습니까?”
“너 이 자식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둘 다 시끄럽다·”
일견 탁맹방의 일갈에 두 사람은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
그때 험상궂은 인상의 칼잡이 하나가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그는 서호삼견의 앞으로 달려와 허리를 꾸뻑 숙이고는 말했다·
“찾았습니다·”
“매소옥은?”
“함께 있습니다·”
“상태는?”
“싸대기를 몇 대 맞았는지 볼이 발갛게 부어오른 것 외에는 멀쩡합니다· 씻지 않아서 머리가 좀 헝클어져 있고요·”
“어디야?”
“호수 건너편 임옥촌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의 버려진 농가에 숨어 있습니다· 용신방주를 비롯해 잔당들의 숫자는 모두 열일곱이고요·”
“감시는 잘하고 있겠지?”
“아홉 명이 삼개조로 나뉘어 백여 장 밖에서 이중삼중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 합니다·”
“둘째야 연장 챙겨라· 셋째야 너는 위층에 올라가서 자고 있는 연놈들 깨워라·”
“연놈들요?”
“이정룡 가불염 조영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