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나는 표사다(2)<유료연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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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랏! 끼랏!”
두 마리 말이 갈대숲 옆으로 난 길을 질풍처럼 내달렸다·
바퀴가 돌부리를 타고 넘을 때마다 철갑마차가 요동쳤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진 앞쪽에서는 초로인이 말을 탄 채 척후를 살피며 달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었다·
물론 나는 끝까지 따라갈 생각이 없었지만·
쿵!
우당탕탕!
“이놈아 천천히 가자!”
마부석과 연결된 작은 창문을 통해 진왕이 빽 소리 질렀다·
돌부리에 걸린 마차가 튀어 오르면서 한 바퀴 구른 모양이다·
나는 달리는 와중에도 주변을 열심히 살폈다·
초로인은 북경이 있는 북쪽으로 갈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동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전단강 하구가 나온다·
항주의 모든 호수와 운하가 꽁꽁 얼어붙었지만 짠물이 들고나는 전단강 하구는 얼지 않았을 것이다·
‘바다로 빠져나갈 생각이군·’
십중팔구 전단강 하구 어디쯤 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광활한 바다로 빠져나가 버리면 누구도 이들을 찾을 수가 없다·
‘서둘러야겠구나·’
나는 마차의 속도를 표나지 않게 늦추며 초로인과의 거리를 조금씩 벌렸다·
쿵!
우당탕탕!
“이런 무식한 놈을 봤····”
나는 얼른 뒤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마마께선 무사하십니다!”
“뭐?”
“지금쯤 자객들은 전부 제압당하고 공주마마께선 천룡표국과 남궁세가의 보호아래 안전하게 계실 겁니다· 하니 안심하십시오·”
“네 놈은 누구냐?”
“이정룡입니다·”
“천룡표국의 이정룡?”
“그렇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시다시피 역용을 하는 바람에 황건을 벗어도 알아보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진왕은 쉽게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평생 황족으로 살면서 몸에 밴 습관일 것이다·
그때였다·
쒜애액 깡!
귀청을 찢는 파공성에 이어 강렬한 금속성이 터졌다·
동시에 마차의 지붕에서 불똥이 튀었다·
황급히 뒤쪽을 돌아보니 백여 장 밖에서 궁수가 말을 전속력으로 달려오며 화살을 쏘고 있었다·
“저런 미친!”
“무슨 일이냐?”
“이화원에서 보았던 젊은 여자 궁수가 백 장 밖에서 말을 달리며 쏜 화살이 마차 지붕에 맞았습니다·”
“그녀가 왜?”
“제가 마구간에서 살수를 한 명 때려눕힌 후 대충 짚으로만 덮어 놓고 왔는데 말을 훔치러 갔다가 그걸 발견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마차는 철갑을 둘러 화살이 뚫지 못합니다·”
“정녕 자네가 이정룡이란 말인가?”
그 순간 ‘쒜애액’ 하며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며칠 전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재빨리 상체를 납작 엎드렸다·
깡!
화살은 또다시 마차 지붕에 불똥을 일으킨 후 왼쪽으로 튕겨 나갔다·
나는 서둘러 앞쪽을 살폈다· 화살이 마차의 강철 지붕을 연거푸 두 번이라 때리고 울렸으니 엄청난 고수인 초로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말을 달리는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엔 활을 쏘는 자가 천룡표국의 지원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다 백여 장 밖에서 달려오는 자신의 수하를 알아보고는 황급히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때쯤엔 초로인과 마차의 거리가 삼십여 장으로 벌어져 있었다·
때마침 갈대숲 사이로 난 샛길이 코앞에 나타났다·
“이제부터 제가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마차의 왼쪽 벽에 최대한 꽉 붙어 서십시오· 그리고 뭐라도 좀 잡으시고요· 끼럇! 끼럇!”
말 두 필이 왼쪽으로 거의 직각에 가깝게 방향을 꺾었다·
질주하던 마차의 한쪽 바퀴가 번쩍 들리면서 넘어지기 직전이었다·
순간 나는 마부석의 가장 왼쪽 가장자리를 잡고 매달리다시피 하며 마차가 뒤집히지 않도록 찍어 눌렀다·
쿵!
우당탕탕탕!
들려 올라갔던 바퀴가 다시 땅을 찍으면서 마차는 갈대숲 사이로 난 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그때부턴 웃자란 갈대 때문에 궁수도 초로인도 보이지 않았다·
쒜애액! 쒜애액!
화살이 연거푸 두 대나 날아들었지만 한참이나 빗나갔다·
놀란 꿩이며 참새들 떼들만 푸드덕 푸드덕 날아올랐다·
“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서호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서호는 왜?”
“건너려고요·”
“닷새나 이어진 한파로 호수가 꽁꽁 얼었다는데 무슨 수로· 혹시 걸어서 갈 것인가? 하면 금방 따라 잡힐 텐데·”
“마차를 타고 건널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
쿵!
우당탕탕!
“괜찮으십니까? 전하·”
대답은 한참 있다가 나왔다·
“내 걱정은 말고 전속력으로 달리게· 지금쯤 앗 뜨거라 하고 있을 늙은이의 얼굴을 생각하니 아파도 아픈 줄을 모르겠네· 음하하!” 한참을 미친 듯이 달려가다보니 수십 장 앞에 꽁꽁 얼어붙은 서호가 나타났다·
나는 달리는 말의 속도를 절반 정도로 늦추었다·
이히힝!
이히힝!
얼어붙은 호수를 처음 본 말들이 달리는 와중에도 투레질 해댔다·
나는 말들이 놀라지 않도록 살살 다독이며 얼어붙은 호수 위로 진입했다·
덜컹하며 마차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이럇! 이랏!”
인간과 달리 사족보행을 하는 말은 눈밭에서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빙판이 눈밭과 같을 리 없겠지만 인간보다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
나는 전생에서 한겨울에 산동으로 표행을 갔다가 그곳 표사들이 얼어붙은 호수 위를 마차를 끌고 지나가는 걸 보았다·
그때 말이 빙판 위를 달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말들은 미끄러운 빙판 때문에 처음엔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계속 앞으로 굴러가려는 마차의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곧 중심을 잡고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마차를 끌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말과 마차를 연결하는 네 개의 견인목이 말들로 하여금 균형을 잡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 나의 노련한 솜씨가 가미되었다·
“맙소사! 정말 마차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있군·”
진왕이 옆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끼럇! 끼랏!”
나는 좀 더 속도를 냈다· 일단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게 되니 말들도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그러자 따그닥 따그닥 하며 빙판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부터 달라졌다·
물론 땅 위를 전력 질주하는 것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이 빙판 위를 달리는 것보다는 몇 배로 빨랐다·
“곧 놈들이 호숫가에 나타날 걸세·”
“놈들 앞에는 얼어붙은 호수가 나타날 겁니다·”
“따라오지 못할 거라고 보는 건가?”
“훨씬 속도가 줄 겁니다·”
말과 달리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은 빙판 위에 오르는 순간 달리는 속도가 땅 위에 비해 십 분의 일 정도로 확 줄어 버린다·
그건 달리는 게 아니라 걷는 거다·
경공의 고수라면 어떨까?
내가 비록 무림의 고수는 아니지만 경공의 원리가 어떤 건지는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땅을 세 번 밟고 달릴 때 경공의 고수는 한 번만 밟고 상대적으로 긴 거리를 비상한다·
그만큼 한 번 디딜 때 도약하는 힘이 강하다·
도약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은 발끝을 통해 지면을 튕기는 힘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데 만약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라면?
제아무리 상승의 경공술을 익혔다고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호수 위를 이십여 장 정도 나아갔을 때 호숫가 쪽에서 ‘이히힝!’ 하고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늙은이가 도착했네!”
진왕이 옆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척후를 살피고 있다가 재빨리 알려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 얼어붙은 호수를 처음 본 말이 머뭇거리며 들어오지 않으려고 했다·
초로인이 고삐를 거칠게 잡아채며 강제로 말을 몰아 호수 위로 뛰어들었다·
말은 처음엔 제법 빠르게 쫓아오는 듯 했다·
급기야 성질 급한 주인이 뱃가죽이 찢어져라 박차를 가하자 통제하기 힘든 수준까지 속도를 올렸다·
그러다 그만 크게 미끄덩하더니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벌러덩 자빠져 버렸다·
쿵! 하며 울리는 충격파가 어찌나 큰지 호수의 얼음 전체가 출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말은 육중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늪에 빠진 것처럼 버둥대기 바빴다·
그 바람에 내가 탄 마차는 무려 삼십 장 넘게 거리를 벌리며 도망칠 수 있었다·
“으하하!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재밌는 구경은 처음이구나· 으하하!”
진왕이 죽겠다며 웃어댔다·
초로인은 말을 포기하고 혼자 달려오기 시작했다·
한데 그 속도가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크게 도약하지도 않고 짧은 보폭으로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달려오는데 놀랍게도 마차만큼이나 빨랐다·
진왕이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저런 괴물 같으니라고!”
“아까는 맨손으로 화살도 잡았습니다·”
“나도 봤네· 한데 저건 대체 무슨 경공인가?”
“경공을 펼치지 못하니 임기응변으로 저러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저렇게까지 빠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이대로 가면 호수를 절반쯤 건넜을 때 따라잡힐 것 같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고삐를 마부석에 잠시 감아 두었다·
이어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품속에 챙겨왔던 물건들을 전부 꺼냈다·
닳아서 얇아진 편자에는 각 열 개씩 못 구멍이 나 있었다· 그곳으로 못을 전부 끼웠다·
안장에 가죽을 고정할 때 박는 못은 장식을 위해 대가리는 널찍한 데 반해 길이가 새끼손가락 끝 한마디를 채 넘지 않는다·
이걸 편자의 못 구멍으로 통과시키자 반대쪽으로 열 개의 뾰족한 침이 나온 듯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런 다음엔 못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해서 신발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가죽끈으로 편자와 발등까지 전체를 친친 묶었다·
충격이 가해질 때 빠지거나 유격이 생기지 않도록 발목까지 감아가며 최대한 단단하게 묶었다·
그렇게 양쪽 신발 모두에 편자를 묶었을 때 척후를 살피고 있던 진왕이 외쳤다·
“궁수도 나타났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를 찢는 화살 소리가 들렸다·
쒜애액!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빨리 상체를 납작 엎드렸다·
거리가 있다 보니 파공성만 일찍 들으면 피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깡!
화살은 마차의 지붕에 불똥을 튀긴 후 귓불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황급히 뒤쪽을 돌아보니 어느새 호숫가에 도착한 궁수가 말에서 내려 두 번째 화살을 재고 있었다·
철갑마차를 뚫을 수 없으니 나를 노린 모양이었다·
자세가 안정된 만큼 정확도 높아졌다· 그러나 말을 노릴 생각은 못 했다·
철갑마차가 달리는 말의 궁둥이를 완벽히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나?”
“끄떡없습니다·”
“활 솜씨 한번 기가 막히군·”
“전하 도끼를 좀 건네주십시오·”
진왕이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통해 도끼를 건네주었다·
나는 도끼를 받음과 동시에 마부석에 묶어둔 고삐를 풀어 창문 속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이걸 받으시고요·”
“어쩌라는 건가?”
“마차를 끄는 말들은 고삐를 통해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으면 멈춰 버립니다· 말을 타실 때처럼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면서 계속 소리쳐 재촉하십시오· 그렇게 호수를 다 건널 때쯤이면 천룡표국의 표사들이 마중을 나올 것입니다·”
“자넨 어쩌려고?”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
“늙은이는 감당하기 힘든 고수네· 차라리 마차를 조금 더 빨리 달려 나와 함께····”
“이게 제 일입니다·”
“···!”
“이런 상황에서 외람되지만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만약 소생이 오늘 전하를 무사히 지켜낸다면 훗날 작은 부탁 한 가지만 들어 주십시오·”
“협박 보다 무서운 청이로군·”
“내키지 않으시면 없던 일로···”
“그렇게 하겠네·”
“제가 무슨 부탁을 드릴 줄 알고요·”
“자네는 이미 공주와 나의 목숨을 구했네· 부탁이 무엇이든 우리 두 사람의 목숨값만큼 비싸지는 않을 걸세·”
나는 사실 혹시라도 이부시랑이 벼슬을 내리며 강제소환을 하면 진왕에게 바람막이가 되어 달라고 부탁할 작정이었다·
한데 진왕이 이렇게까지 화통하게 나오자 살짝 당혹스러웠다·
만약 이부시랑이 중간에 죽거나 하면 다른 걸 요구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쒜애액 까강!
말을 하는 와중에도 또 한 발의 화살이 불똥을 일으킨 후 나를 비껴갔다·
그때쯤엔 초로인이 어느새 이십여 장 뒤까지 따라잡은 상태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품속에서 신호용 폭죽을 꺼내 마차가 달려가고 있는 호수 건너편의 하늘을 향해 쏘았다·
슈슈슈슉··· 펑!
저 폭죽은 지금쯤 취선루에서 이화원으로 달려오고 있을 남궁가의 남매와 표사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잠시 후 뵙겠습니다· 전하·”
폭죽이 충분히 높이 올라갔음을 확인한 후 나는 달리는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아직 낙법을 익히지 못한 탓에 그대로 자빠지며 십여 바퀴나 데굴데굴 구른 후에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무운을 비네!”
멀어져 가는 마차에서 진왕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을 때는 십여 장앞까지 달려온 초로인이 보였다·
부릅뜬 두 눈에서는 두 줄기 화염이 폭사되고 있었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것이다·
나는 그가 대여섯 장 앞까지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왼쪽으로 질풍처럼 내달렸다·
척 척 척 척 척 척 척!
귀영무의 보법을 펼치며 정확히 일곱 걸음을 달려간 다음 딱 멈춰섰다·
달리고 멈추는 것이 땅 위에서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멈추는 것은 오히려 더 용이했다·
반면 내가 자신의 진로에서 갑자기 벗어나자 초로인은 두세 장을 쭈욱 미끄러진 다음에야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노려 보았다·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그 순간 ‘쒜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대의 화살이 허공을 찢으며 날아들었다·
척 척!
나는 두 걸음을 재빨리 물러나는 것으로 간단하게 화살을 피했다·
화살은 십여 장을 더 날아간 다음 얼음을 한뼘이나 뚫고 들어가 박혔다·
“화살 좀 그만 쏘라고 하십시오· 수하들이 곡주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고작 표사 하나 상대하는 데도 옆에서 저렇게 화살을 빵빵 쏘아댑니까?”
초로인이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궁수가 화살을 재다 말고 막 도착한 수하들과 함께 얼어붙은 호수 위를 가로질러 건너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들은 초로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차는 저 멀리 달아나지 마음은 급하지 달리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니고 우왕좌왕하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였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내가 가장 공들여 수련한 것이 있다면 단연코 귀영무의 보법이었다·
월성교 아래에서 북해투왕이 선보인 첫날의 충격을 잊지 못해서다·
어느 날 북해투왕이 내게 말했었다·
“천하의 모든 무공은 제각각의 약점이 하나씩은 반드시 있다· 한데 어떤 무공을 익혔든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는 약점도 있느니라·”
“그게 무엇입니까?”
“발을 묶으면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발을 어떻게 묶습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런 엉터리 같은 대답이 어딨습니까?”
“그럼 이건 어떻느냐? 네가 그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보법을 갖는 것이다· 마치 어른과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차이만큼· 하면 그들의 발을 묶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느냐?”
“···!”
나는 아직까지 세상의 무림인들을 압도할 만큼 보법을 익히지 못 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저 초로인의 발은 확실하게 묶었다·
이제 지난 한 달 동안 죽으라고 수련한 귀영무의 보법을 써먹어 볼 차례였다·
“네 놈은 누구냐?”
“천룡표국의 표사입니다·”
“고작 표사 따위가 감히!”
“귀하는 백백곡의 곡주이시지요?”
“···!”
“놀라시는 걸 보니 맞군요·”
“어떻게 알았느냐?”
“죽립을 눌러 쓰고 시체 썩은 냄새를 풍기는 귀신이 수하들을 잔뜩 이끌고 찾아왔었습니다· 백인도법에 백라검법 이것들 죄다 백백곡의 무공이지요?”
백백곡주의 눈동자가 어느 때 보다 커졌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지금쯤 죽거나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을 겁니다· 확실한 건 그들의 목숨은 이제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체 네 놈은 누구냐?”
“방금 해드린 말도 기억을 못 하셔서야 원· 그쯤 되면 바깥출입을 삼가고 뒷방으로 물러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많은 업보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취선루에서 보았던 남궁세옥을 한번 흉내 내봤다·
“이노옴!”
그가 쌍수를 뻗으며 나를 덮쳐왔다· 그러나 신법이며 보법을 사실상 전혀 펼칠 수 없었던 탓에 금방이라도 찢어 죽일 것 같은 기세와 달리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그에 반에 나는 다섯 걸음을 옆으로 척척척척척 달려간 다음 뚝 멈춰 서는 것으로 백백곡주와 또다시 대여섯 장의 거리를 유지했다·
반면에 백백곡주는 이번에도 반 장이나 쭉 미끄러진 후에야 겨우 멈춰설 수 있었다·
그러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 얼굴과 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정하십시오· 덫에 걸린 범이 발버둥을 치면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제 발목만 계속해서 상하는 법입니다·”
“무어?”
“잠시 후면 마차가 달려가는 건너편 호숫가에 천룡표국의 일급표사 열다섯 명과 남궁세가의 무시무시한 고수 한 명이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지나온 갈대숲 쪽으로는 천룡표국의 국주님께서 수십 기의 지원조를 이끌고 무거운 철갑마차의 발자국을 추적해 따라오다 나타나실 거고요· 한데 귀하와 귀하의 수하들은 전부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저러고들 있군요·”
말끝에 나는 갈대숲이 있는 호숫가 쪽을 힐끗 가리켰다·
젊은 여자 궁수와 네 명의 살수들이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잰걸음으로 호수를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에서의 잰걸음이었다·
땅 위에서라면 도저히 달린다고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백백곡의 작전은 실패했고 귀하와 남은 살수들은 완벽히 포위당했습니다· 어디 도망칠 곳도 마땅히 없고요·”
백백곡주의 얼굴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야광주처럼 노랗게 변한 눈동자에서 두줄기 화염이 폭사되었다·
북해투왕의 말이 뼈저리게 실감났다·
발을 묶는다는 것이 이토록 압도적인 영향을 끼칠 줄이야·
그러나 방심해선 안 된다· 단 한 번이라도 그의 손에 잡히는 순간 내 목숨은 끝장난다·
“신발에 못을 박은 모양인데 고작 그 정도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손에 잡히는 순간 네 놈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니라·”
“손에 잡힐 일이 없으니까 문제지요·”
이제 진짜 사냥꾼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줄 때다·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양손으로 고쳐 잡았다·
“이제부터 제가 곡주님의 주위를 뛰어다니며 얼음장을 깨부술 것입니다· 잘 통제가 안 돼서 그렇지 힘 하나는 장사거든요· 그러니 이 추운 겨울날 호수에 빠져 얼어 죽지 않으시려면 발을 빨리 놀리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