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Escort Warrior Chapter 41

You can change the novel's language to your preferred language at any time, by clicking on the language option at the bottom left.

41화·  공주의 호위무사(2)(내용추가)

—————————–

황자충과 함께 말을 타고 이화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표두 세 명과 중무장한 표사 서른 명이 역시나 말을 탄 채 따르고 있었다·

“섭섭하지 않았나?”

“무엇이 말입니까?”

“어제 장로회의에서 있었던 일 말이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나는 우리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제법 교감을 했다고 생각했었네· 한데 이렇게 울타리부터 치는 걸 보니 확실히 섭섭했나 보군·”

“울타리는 당주님께서 먼저 치지 않으셨던가요?”

“섭섭했네· 했어·”

“섭섭했다기보다 솔직히 좀 실망했습니다· 이화원이 탐나셨다면 차라리 제게 먼저 털어놓으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다면 그림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장로회의가 열리기 전날 밤 자화부인께서 날 찾아오셨네· 자네의 둘째 형님인 복룡당주에게 힘을 실어 달라더군·”

“···!”

이종산에게는 세 명의 정실부인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은 배꽃을 좋아해 본인의 거처에 배나무를 잔뜩 심고 스스로 이화각(梨花閣)이라 이름까지 지었다·

그러자 이종산이 그녀에게 이화부인이라는 별칭을 주었다·

그 후 이화부인은 그녀를 부르는 공식 호칭이 되었다·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의 거처에는 특정한 꽃보다는 각각 자줏빛 꽃과 사철 푸른 나무들이 주로 심겨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두 사람 모두 처음엔 하인들로 하여금 이것저것 잡다하게 꽃을 심고 가꾸게 했단다·

그러나 다른 부인들의 전각에 핀 것과 같은 색의 꽃이 피는 꼴을 못 봤고 급기야 세 번째 부인은 아예 꽃이 없는 대신 사철 푸른 나무들로만 심었다고 했다·

이후 천룡표국 내에서 그녀들의 공식적인 호칭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화부인과 청화부인이 되었다·

첫 번째 부인이 일종의 규칙을 만든 것이다·

전날 밤 황자충을 찾아갔다는 자화부인은 이을룡의 친모였다·

그녀의 친정은 소흥 일대에서 명성을 날리는 자강상단(紫江商團)이었다·

자강상단은 또한 대륙 제일의 상인집단이라는 휘상(徽商) 즉 휘주상인들 중 한 곳이었다·

“아는지 모르겠네만 황룡당의 일 년 수입 중 2할이 강남의 휘주상인들에게서 나오네· 나로서는 자화부인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회유를 한 줄 알았더니 협박을 했군요·”

나는 장로회의 때 황룡당주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만 감고 있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부인들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언제라도 지금처럼 물밑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세 명의 부인들이었다·

이갑룡 을룡 병룡의 진짜 힘은 어머니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외가에서 나온다·

절강성을 주름잡는다는 천룡표국의 장남 차남 삼남의 힘이 외가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세 명의 부인들께서 자네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하네· 조심하게· 그분들이 마음을 먹어서 하지 못한 일이 아직까지 없었다네·”

“이런 얘기를 왜 제게 해주시는 겁니까?”

“이화원을 잘 포장해서 통째로 건네준 것에 대한 값이라고 해두지· 사실 자네의 두뇌라면 내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충분히 짐작했겠지만 말일세·”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았다·

자화부인이 밤에 직접 찾아가 협박을 해야 할 정도라면 황룡당주는 아직 이을룡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화원에 도착했을 때는 노지량이 일찌감치 진왕의 처소를 찾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자객은 잡았소이까?”

노지량이 대뜸 황자충에게 물었다· 자기가 무슨 진왕의 측근이라도 되는 양 하문하는 모습이 꼴불견이었다·

“소 떼의 주인을 찾아 소를 산 자들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화살도 회수해 궁시장(弓矢匠-화살 만드는 장인)도 알아보고 있고요· 화살은 아무래도 항주의 것이 아닌 듯합니다·”

“너무 애써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내 목숨을 노린다면 언젠가 제 발로 또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자객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노지량이 물었다·

“자객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황족으로 살다 보니 일상처럼 되어 버린 것이지요· 하하·”

용은 동굴 안에 웅크리고 있어도 그 기운이 온 호수에 뻗친다고 했다·

진왕이 딱 그랬다· 그는 젊고 영민한 데다 대범하기로 황족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용이 있으면 이무기도 있는 법· 진왕의 그런 인물됨을 위험하게 여기거나 나아가 대립하는 정적들도 많다고 들었다·

이틀 전 찾아온 자객도 아마 그런 정적들 중 누군가가 보냈을 것이다·

한데 진왕은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추측하건대 진왕은 자객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 자객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짐작하는 것 같았다·

적을 알면 두렵지 않은 법이다·

“밤하늘에 북극성이 있어 모든 별들이 주변으로 모여든다고 하더니 과연 호방하십니다· 전하·”

노지량이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계에서 평생을 갈고닦은 혓바닥이 재주를 부리는 순간이었다·

한데 진왕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남경상단주께서는 말을 조심하십시오· 북극성은 황제의 별 다른 사람을 함부로 북극성에 비유하는 것은 황상께도 그리고 당사자에게도 매우 결례가 되는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노지량이 살짝 놀라는 척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 노인네가 그걸 몰라서 혹은 진왕이 화낼 거라는 걸 모르고 저런 소리를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황자충이 분위기도 바꿀 겸 화제를 돌렸다·

“오늘부터 제가 이끄는 황룡당의 노련한 표사 서른 명이 이화원에 머물며 전하와 두 분 마마를 모실 것입니다·”

“여러모로 폐를 끼치게 됐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전하를 멀리서만 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럼 이 공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도 당분간은 함께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하·”

“나야말로 잘 부탁하겠네· 두 사람이 이렇게 힘을 써주겠다고 하니 든든합니다· 하하·”

“그런데 서른 명이면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갑자기 끼어든 사람은 노지량이었다·

눈동자가 뱀처럼 번뜩이는 것이 왠지 불길했다·

황자충이 웃으며 말했다·

“표두도 세 명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10년 이상 경력의 노련한 표사들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서른 명이라고 해도 밤낮으로 나누어 교대를 해야 할 터이니 실제로 번을 서는 표사는 열다섯 명에 불과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전부가 이화원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언제든 호각 소리가 울리면 휴식을 취하던 표사들이 재빨리 합류할 수 있게 말이지요· 해서 말씀인데 표사들의 숙소를 전하와 마마들의 숙소와 최대한 가까운 전각으로 마련해 주십시오·”

“천룡표국에 이화원의 보호를 맡긴 첫 번째 목적은 자객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와 두 분 마마께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사전에 경계를 철저히 해달라는 것이지요· 한데 호각이 울리면 잠자던 표사들이 재빨리 합류할 거라고요?”

노련한 황자충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 했다·

하지만 더 노련한 노지량은 꽉 붙들고 놔주지를 않았다·

“금룡표국에서도 표사는 서른 명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단주님의 우려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거야 자객의 기습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지요· 지금은 불과 이틀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말입니다· 아직 자객이 돌아다니는 데다 심지어 전하께서 이끌고 오신 사병들 중 상당수가 부상까지 당했습니다· 당연히 증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본래 상단에도 무사가 있다· 다만 표국이나 무림문파처럼 칼을 생업으로 하지 않다 보니 대단한 고수가 필요치 않을 뿐이다·

표국의 보호를 받을 걸 알면서도 진왕이 사병을 대동하고 온 것처럼 남경상단에서도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이화원 경호를 위해 상단의 무사 스무 명 정도를 파견시켜 놓는다·

이들의 무공수준은 대부분 이류에 불과하고 이화원 내의 여러 길목을 지키거나 횃불을 들고 밤에 번을 도는 정도로 쓰인다·

천룡표국에서 표사들을 서른 명으로 확정한 것은 이런 상단 무사들의 배치들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경상단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꽤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다른 곳에 쓰여야 할 무사를 이화원으로 데려다 놓으니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외부의 무사들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수전노 같은 노인은 지금 그 비용을 아끼려고 은근슬쩍 표사들의 증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보호비를 더 받으면 된다·

하지만 황자충의 입장에서는 옛친구를 자처하며 차마 진왕이 보는 앞에서 돈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노지량은 그걸 또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고·

똥 누러 갈 때와 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더니· 금전 백 냥을 아끼게 해준 게 불과 이틀 전인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알겠습니다· 증원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역시 이해하실 줄 알았습니다· 껄껄껄·”

“남경상단주께서 저를 걱정해주시는 마음에서 그런 것입니다· 황 노야께서는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전하· 남경상단주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선은 이대로 진행하되 상황을 보아 증원토록 하겠습니다·”

사실 몇 명 더 증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왕이라는 간판을 이용해 얻을 이득에 비하면 크게 손해날 일도 아니고·

다만 앞으로도 계속 저 상계의 늙은 독사에게 놀아날 생각을 하니 약이 바짝 오른다·

금룡표국은 진왕비와 혈연관계로 맺어진 터라 제아무리 노지량이라고 해도 함부로 어쩌질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룡표국은 그런 끈끈한 유대가 없으니 얕잡아 보고 저러는 거다·

오늘은 표사들의 증원을 요구하지만 다음에는 또 무엇을 트집 잡아 제 잇속을 챙기려 할지 모른다·

‘저 영감탱이 입을 어떻게 틀어막는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바마마· 소녀이옵니다·”

“들어 오너라·”

잠시 후 공주가 시비들을 잔뜩 앞세우고 들어왔다·

시비들의 양손에는 사람들의 머릿수에 맞춰 소반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게 다 무엇이냐?”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다고 하여 소녀가 만두를 조금 만들어 보았습니다· 술은 북경에서부터 가져온 즉묵노주(卽墨老酒)입니다· 날씨가 쌀쌀하여 은근한 숯불에 데웠고요·”

“즉묵노주도 공주가 직접 빚은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이 늙은이가 복이 많아 올해도 어김없이 공주마마께서 손수 빚으신 술을 맛볼 수 있게 되었군요·”

노지량이 말했다· 놀랍게도 공주는 해마다 직접 빚은 술을 가져온 모양이다·

직접 빚을 정도면 그 솜씨가 어떨지 매우 기대됐다·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각자의 자리에 즉묵노주 한 병과 만두가 놓였다·

진왕을 시작으로 모두가 술부터 한 잔씩 따라 마셨다·

그 모습을 공주는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술잔을 꺾고 따뜻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나는 속으로 움찔 놀랐다·

하지만 공주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그대로 꿀꺽 넘겼다·

‘이건 그냥 따뜻한 물인데·’

진왕도 황자충도 조용히 마시기만 했을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노지량이 겨우 짧게 한마디 하고 말 뿐이었다·

“으음 좋군요·”

“만두도 한 점씩 드셔 보세요·”

모두 젓가락을 들고 만두를 집었다·

만두를 입안에 넣고 한입 씹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그대로 뱉을 뻔했다·

확 하고 터져 나오는 돼지고기 노린내가 너무 역했다·

아무래도 돼지고기를 충분히 익히지 않은 것 같았다·

진왕과 황자충은 이번에도 표정의 변화 없이 오물오물 잘 씹어 먹었다·

나는 두어 번 씹는 척하다가 꿀꺽 삼켰다·

만두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는데도 노린내가 식도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은은한 고기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군요· 맛있습니다· 공주마마·”

“감사합니다·”

공주는 노지량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왠지 내가 대답을 해야만 놓아줄 것 같은 분위기다·

“아침을 미처 못 챙겨 먹었는데 마침 잘 됐군요· 술과 함께 먹으니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마마·”

배가 고프니까 먹는 거다· 술이 없으면 못 먹을 것 같다· 술의 힘을 빌려 겨우 삼키는 거다···· 대충 이런 뜻이다·

그러자 공주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아직 식전이셨군요· 제가 몇 점 더 빚어올까요?”

“아닙니다· 공주마마·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잠깐만 기다리셔요· 그렇지 않아도 재료가 많이 남았는데 잘됐네요· 기왕 빚는 거 다른 손님들 드실 것까지 넉넉하게 빚어오겠어요·”

그러더니 얼른 일어나 잰걸음으로 나갔다·

남은 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맛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노지량은 윗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어려서부터 저택에 갇혀 지내서 그런지 어느 순간 요리에 취미를 붙이더군요· 황족의 여자가 그러면 법도에 어긋난다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데 보시다시피 소질이 영····”

나도 황자충도 노지량도 차마 아니라는 말은 안 나왔다·

“북경에서도 유명 반점들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맛보고 평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흉내 내 만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또 황실 종친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 열두 살 이후로는 일절 바깥출입을 못 하게 했습니다·”

열두 살 이후로 저택 안에만 갇혀 있었다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공주의 삶이 얼마나 단조롭고 답답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일 년에 한 번씩 항주로 오면 바깥출입을 허락해 줬더니 그때부터는 겨울이 오기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지 뭐겠습니까· 항주의 유명 반점들을 찾아다니며 강남의 음식들을 섭렵할 생각에 말이지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하필 왜 음식에 꽂혔는 지는 모르겠지만·

“해서 황 노야께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명하시지요·”

“공주가 안전하게 항주의 반점들을 구경하고 다닐 방법이 없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자객의 기습이 있고 보니 매우 조심스럽군요·”

“필요하면 숙수들을 불러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시는 건 어렵습니다· 전하·”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꼭 밥만 먹기 위해서겠습니까? 그리고 쉬운 일이면 부탁이라고 했겠습니까?”

“이틀 전에도 무장한 병력이 오십 가까이 있었지만 궁수 하나가 부리는 재주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직 자객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시내를 돌아다니시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

진왕의 눈빛이 바뀌었다· 실망의 빛이 아니라 노기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이건 부탁이 아니다· 명령이다·

진왕이 황자충을 친구로 대한다고 해서 내가 공주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해서 모든 걸 좋게좋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왕이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인물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 또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옳고 그름· 공명정대 이런 건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백성들에게 강요되는 덕목일 뿐· 진왕은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초월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무조건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장원에서 지내는 것만큼이나 안전한 상태에서 시내를 돌아다닐 방법을·

하지만 어떻게? 공주의 요릿집 탐방을 위해 표사를 수십 명씩 증원할 수야 없지 않겠나·

아무리 진왕이라는 간판이 필요해도 그건 미친 짓이다·

황자충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팼다·

“난 지금 방법이 없냐고 물은 것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공주를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주를 사지로 보내려고 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송구합니다· 전하·”

황자충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공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 지금 당장의 진노를 감당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절로 굽혀진 그의 상체가 측은하다· 지금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를 것이다·

황자충을 굽어보는 진왕의 눈동자가 매서웠다·

“알겠습니다· 황노야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따라야지요· 내가 왕비와 함께 공주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천만다행으로 진왕이 한발 양보해줬다· 이번엔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 번엔 어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달랐다·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가선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왕과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옆에서 좋은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지켜보는 노지량이 너무 얄밉다·

황자충과 천룡표국에 대한 진왕의 신뢰가 옅어질수록 저 늙은 독사가 끼어들 여지는 많아진다·

진왕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천룡표국에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

“방법이 있습니다·”

황자충과 노지량이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진왕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황 당주의 말처럼 아직 자객이 잡히지 않았으므로 함부로 외출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을 크게 낮출 수는 있습니다·”

“호오·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하오문이 운영하는 흑점(黑店)에 귀물(貴物)이 하나 있습니다· 은린갑(銀鱗甲)이라는 흉갑인데 어떤 도검이나 화살로도 뚫을 수가 없지요· 얇고 가벼운 데다 약간의 신축성이 있어 공주마마의 체형에도 얼추 맞을 것입니다·”

은린갑은 당연히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용린신갑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다만 용린신갑은 귀물 중의 귀물이라 알려지면 노리는 사람이 있을까봐 은린갑이라고 고쳐 말했다·

“옷 속에 흉갑을 입어라? 고작 그 정도로 공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얘기였다면 실망이네만·”

“거기다 역용에 뛰어난 자를 불러다 얼굴을 남자의 그것으로 바꾸고 유생처럼 변복까지 시켜 누구도 알아볼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건 남궁소소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다·

“성별을 바꾼 역용에 변복까지?”

“마지막으로 암기나 철편(鐵鞭) 혹은 연검(軟劒) 같은 비노출 병기를 귀신처럼 다루는 표사 다섯을 역시 유생으로 변장시켜 동행인 것처럼 밀착 호위케 할 것입니다·”

“삼중의 보호막이라· 이제야 좀 그럴 듯하군· 황 노야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객이 공주마마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 사후약방문격이지요· 만약 제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역용을 완벽하게 한다면 호위의 총책임자로서 허락하겠습니다·”

“이렇게 깐깐하셔서야 원· 하하하·”

됐다· 일단 진왕의 기분은 완전히 풀린 것 같다·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가능하겠는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최고의 솜씨를 지닌 역용술사를 찾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표사의 증원은 황 당주가 공주마마께서 손수 빚으신 술을 드셨으니 술값이라 생각하고 감당하실 것이고 역용술사의 비용은 역시 제가 맡겠습니다· 문제는 은린갑을 빌리는 값인데····”

나는 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노지량을 곁눈질했다· 내 시선이 가니 진왕과 황자충도 자연스럽게 노지량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노지량이 서둘러 말했다·

“그건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 얼마면 되겠나?”

“금전 한 냥입니다·”

살짝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노지량은 호쾌하게 말했다·

“알겠네· 염려 말게·”

“하루에 그렇습니다·”

“···!”

노지량도 이번에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게 무언가 생각이 있음을 눈치챈 황자충이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닷새면 금전 닷 냥이란 말인가?”

“그런 셈이지요·”

“단지 빌리기만 할 뿐인데도?”

“목숨을 구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경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만에 하나 은린갑 때문에 공주마마께서 횡액을 피할 수 있다면 금전 백 냥도 적은 돈이지요·”

“술은 나도 마셨으니 그건 내가 준비하겠네·”

진왕이 말했다· 여기서 진짜 진왕이 그 돈을 내도록 하면 노지량은 지금껏 들인 공까지도 전부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린다·

“전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화원에 머무시는 동안에 드는 비용은 모두 소인이 감당할 것이니 전하께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마십시오·”

“이토록 아름다운 원림에서 지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것까지 부담 지울 수야 없지요·”

“부담이라니요· 공주마마를 기쁘게 모시는 일에 고작 금전 몇 냥이 무슨 그리 큰돈이라고· 소인 역시 공주님께서 하사하신 술값으로 흔쾌히 내놓겠습니다· 껄껄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머리에서 쥐가 날 것이다·

공주가 이화원에 머무는 날만 무려 석 달이다·

그동안 외출을 고작 다섯 번밖에 안 하겠나·

하루 이틀 나가보았다가 별일 없으면 사흘 나흘 나가려 할 것이다·

사흘 나흘 나가서 아무렇지도 않으면 엿새 이레 나가려 할 것이고·

설사 자객이 나타나도 문제다· 만약 자객이 나타나고 그 자리에서 표사들이 잡아버리기라도 한다면?

근심이 사라졌으니 그때부터는 시도때도 없이 나가려 들 것이다·

노지량의 입장에서는 자객을 잡았다고 은린갑을 입지 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노지량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린다·

나도 지지 않고 노려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표사를 증원하려면 돈을 내야지!’

그때 밖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렸다·

“아바마마 만두를 가져왔습니다·”

If you have any questions, request of novel and/or found missing chapters, please do not hesitate to contact us.
If you like our website, please consider making a donation:
Buy Me a Coffee at ko-fi.com
Reincarnated Escort Warrior

Reincarnated Escort Warrior

Score 8
Status: Ongoing Released: 2022
My dream is to become an escort warrior that rides on a cool horse and transports goods. But I’ve got a limp leg and I’m unable to learn decent martial arts. I’ve lived as a porter working odd jobs for the entirety of my life. Until I died because of the mountain bandits that I met during an escort mission. But… ‘I became the fourth young master, Lee Jungryong?!’ When I died and woke up, I was reborn as the Heavenly Dragon Escort Agency’s infamous good-for-nothing youngest son. The weakling, Lee Jungryong, will become the best escort warrior in this lif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