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집으로 돌아오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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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왕부를 찾았을 때는 이종산과 곽석산에 이어 대장궤 손지백까지 모여 한가롭게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손지백은 국주가 술을 잘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업무차 외에는 표왕부 출입을 거의 안 한다고 들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충분히 쉬었느냐?”
“예 편히 쉬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은 모두 들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표행 중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 할 말이 많다만 표사와 쟁자수들의 간곡한 청도 있고 하여 그냥 묻어 두겠다·”
“감사합니다·”
“남궁소소에게서는 연락이 없느냐?”
예? 갑자기요?
순간 나는 곽석산과 손지백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아직 없었습니다·”
“언제 온다는 말도 없었고?”
“올 때가 되면 오겠지요·”
“당분간 항주에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으냐? 동굴에서 홀로 남아 내상을 치료했다고 들었다· 안부도 물을 겸 네가 먼저 전서구를 보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만·”
그러면서 이종산이 수염을 살살 쓸었다· 손지백은 옆에서 침을 꼴딱 삼켰다·
손지백만큼은 아니었지만 곽석산도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
이 노인네들이 갑자기 왜 남궁소소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그러실까?
“안 오진 않을 겁니다·”
“어째서?”
“제가 단검을 빌려줬거든요·”
“단검이라면?”
“지난번 아버지께서 제게 하사하신 그 단검 말입니다· 황금으로 된 손잡이에 부엉이 눈깔만한 야광주가 박힌·”
“운철검을 빌려주었다고?”
“그렇습니다·”
“잘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끼어든 사람은 손지백이었다·
그는 뒤늦게 실태를 깨닫고는 ‘험험!’ 헛기침을 했다·
다시 이종산이 말했다·
“실은 네가 돌아온 그 날 남궁소소의 오라비인 남궁세옥이 전한 말이 있다·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우리를 가까운 시일에 세가로 초대하시겠다더구나·”
“혹시 그 소식을 기다리시는 겁니까?”
“너도 알다시피 현 남궁세가주이신 남궁무룡 대협은 내게도 한 배분 높은 무림의 선배님이시다· 무림첩을 보내오시면 아무리 바빠도 거절을 할 수가 없느니라·”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열일을 제치고 달려갈 눈치인데·
그제야 나는 곽석산과 손지백이 이렇게 긴장한 이유를 손지백이 갑자기 표왕부에 출몰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들은 남궁소소가 할아버지인 뇌검의 무림첩을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궁세가를 예로써 대하는 것처럼 남궁세가 역시 천룡표국의 수장을 초대하면서 전서구 하나 달랑 날릴 수는 없을 테니까·
한데 이종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여 우리도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 같구나· 그래야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표국의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을테니까 말이야·”
“준비라시면?”
“우선 정성 어린 예물부터 준비해야겠지· 대협의 검소한 성품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비싼 것은 오히려 실례가 될 것이다·”
“예물이라고요?”
“우리 중 누가 몇 명이나 갈지도 정해야 하느니라· 이건 한 가문의 수장이 다른 가문의 수장에게 하는 초대이니만큼 방문객의 숫자와 면면에도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점점 어리둥절해졌다· 전생에 천하게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과도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거나 내게는 하늘 같았던 세 사람이 잔뜩 긴장하는 걸 보면 천하십검· 뇌검 남궁세가주····
이런 단어들이 주는 힘과 위압감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남궁세가로 가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빨리 표행을 하나라도 더 따라가기 위해 제대로 된 무공이나 좀 배우고 익혔으면 좋으련만· 특히 내공심법 위주로·
“해서 우리끼리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다· 일단 여기 계신 곽 숙부와 손 백부 중 한 분만 함께 가셔야 할 것 같구나· 너도 당분간 먼 곳으로 출타할 생각은 말아라· 특히 표행은·”
“국주 이게 어째서 고민거리가 되는 것입니까? 당연히 천룡표국 내에서도 가장 연장자인데다 정룡의 백부이기도 한 제가 함께 가는 것이 그림도 좋고 남궁무룡 대협께서도 예우를 받는다고 생각지 않겠습니까?”
손지백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림으로 보자면 총표두인 제가 국주님을 보좌하고 가는 것이 더 낫지요· 그리고 저는 이미 남궁세가의 총관과도 친분이 있습니다· 남궁세옥도 그날 떠나기 전 제게 총표두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여력이 되신다면 꼭 함께 오십시오···· 라고 분명히 얘기했고요·”
곽석산도 지지 않았다·
비겁하게 인맥을 걸고 들어가자 상황이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한 손지백은 이종산을 붙잡고 감정에 호소했다·
“국주 평생 천룡표국을 위해 일해왔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늙은이의 부탁 하나 못 들어 주시는 겁니까?”
“저도 30년 넘게 천룡표국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기 전에 뇌검을 꼭 한번 뵙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총표두는 도객이 아니오· 뇌검은 검사이시고·”
“대장궤 보다는 도객이 검사에 훨씬 가깝지 않겠습니까? 분명 대화도 잘 통할 것이고요·”
“석산이 너 정말 이렇게 나올래?”
“이번엔 형님께서 양보하시죠·”
“너는 젊으니 기회가 많잖아·”
“언제 또 초대를 할 줄 알고요·”
“정룡이 남궁소소랑 혼인할 때 보면 되지·”
“뇌검께서 남궁소소를 정룡에게 주겠습니까?”
“손녀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줬는데 줘야지· 그럼· 이렇게 초대를 하는 것도 다 무슨 꿍꿍이가 있으신 게야·”
“그럼 그때 형님께서 가셔서 실컷 보십시오· 저는 이번 초대에 가서 뇌검을 뵙겠습니다·”
“이익···!”
손지백이 무언가 욕을 하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꿀꺽 삼켰다·
곽석산도 어린 조카 앞에서 티격태격한 것이 민망했던지 얼른 신색을 고쳤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참이나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혼인이라니·
내가?
남궁소소와?
앞서 나가도 한참을 앞서 나간 말이다·
여기서 극구 부인을 해봐야 노인네들이 생각을 고쳐먹을 리도 없다·
오히려 말려 들어가기만 하고 나를 설득하려 할 것이다·
대신 똥이나 한 덩어리 던져 줘야겠다·
“제 생각에 그건····”
“···?”
“···?”
“무림첩이 오고 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뇌검께서 어떤 식의 초대를 할지 모르니까요· 가령 후기지수들의 지속적인 왕래와 교분을 원한다고 하시면 세분 형님들이 함께 가셔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갑룡은 이미 남궁세옥과도 친분이 꽤 있다고 들었고·
곽석산과 손지백의 얼굴이 노래졌다·
내가 간단하게 두 사람의 논쟁을 정리해 버리자 이종산의 입가가 미세하게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이종산이 화제를 돌렸다·
“본래 회시 급제자들은 몇 달 후 황궁으로 입궁해 황제 폐하께서 지켜보는 가운데 전시(殿試)를 치른다고 하던데·”
“황제폐하의 병환이 깊으시어 이번 회차에는 전시가 없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여 회시에서 이미 등수를 가린 것이고요·”
“그렇군·”
표정을 보니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하다· 회시에서 장원급제까지 했으면 됐지 뭘 전시까지 바라고 그러실까·
“애썼다·”
“감사합니다·”
평소 이종산의 성격으로 미루어 이 정도면 특급 칭찬이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손지백이 말했다·
“국주 속하가 한 말씀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자고로 한 문파의 기강은 분명한 상벌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룡표국에서 지원한 거인표사가 진사(進士)가 되어 돌아왔는데 설마 애썼다는 한마디로 때울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껄껄껄·”
“표국에서 거인표사를 지원하는 건 회시에 급제하여 현령이 되면 덕을 좀 볼까 해서입니다· 한데 벼슬길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고 하니 이래도 상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면 표사와 쟁자수들의 목숨을 구한 상은 어떻습니까? 기지와 용기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렸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표행에 실패한 벌도 함께 주어야 상벌이 분명해지겠지요· 마차 다섯 대 분량의 양곡을 사교도들에게 털리는 바람에 두 배로 물어 주었습니다·”
곽석산이 조용히 한입 보탰다·
“대장궤의 말씀에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비록 양곡을 잃고 배상은 했지만 망자들을 되찾아 무사히 호송하는 바람에 표국의 신뢰도는 오히려 향상되었습니다·”
“그거야 자네가 별동대를 이끌고 사교도들을 찾아가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지· 그나마도 한 구는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고· 그러니 상을 주려면 오히려 자네에게 주어야겠지·”
나를 도와주려다 외려 공을 가로챈 모양새가 된 곽석산이 살짝 당황해 했다·
보다 못한 손지백이 말했다·
“국주의 말씀이야 늘 옳습지요·”
그러면서 조용히 혀를 차고는 돌아앉아 버렸다·
이종산은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지부대인께서 다녀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종산이 봉투 두 개를 탁자 위에 올려 척 놓았다·
하나는 금전 백 냥짜리 전표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만 평의 땅문서일 것이다·
“이걸 내놓으란 소리더냐?”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전 다만 저 때문에 방을 붙인다는 핑계로 돈이라도 뜯기지 않으셨나 걱정이 되어서요·”
손지백이 듣고 있다가 또 불쑥 참견했다·
“네 녀석도 참 순진하구나· 네 아버지께서 어디 누구한테 돈이나 뜯기고 다닐 분이시더냐· 만약 지부대인에게 돈을 주었다면 그 몇 배로 뽑아 먹으셨을 테니 아무 걱정 말거라· 껄껄껄·”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가져가거라· 황제 폐하께서 비록 나와 내 가문에 하사하셨으나 내가 한 일이 없으므로 이건 전부 네 것이다·”
“감사합니다·”
“한 번을 사양하지 않는구나·”
“주는 건 사양하지 말자는 주의라서요·”
“그리고····”
이종산이 탁자 위에 큼지막한 열쇠를 하나 올려놓았다·
열쇠에는 천룡표국을 상징하는 황룡 한 마리와 함께 십칠(十七)이라는 숫자가 음각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미 돈도 땅도 충분히 있으니 나는 작은 각(閣)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
“하면 십칠이라는 숫자가····”
“너는 이제부터 천룡표국 제 십칠각의 각주다· 하지만 자만하지 말거라· 직위는 각주이나 직책은 여전히 표사이다· 너도 알다시피 천룡표국의 각주들은 전부 표두다· 내가 각주의 직위를 줄 수는 있으나 표두로서의 자격과 신망은 네 스스로 동료들에게서 얻어야 한다·”
“···!”
“각을 채울 표사와 쟁자수들도 일거리도 모두 네 스스로 찾고 만들고 따내야 한다· 미리 말해두건대 만약 너에게 조금이라도 각주로서의 자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든 열쇠를 다시 회수할 것이니라·”
손지백과 곽석산이 옆에서 빙그레 웃었다· 이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상을 주니 벌을 주니 실랑이를 한 것은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다·
이번 표행의 무엇이 잘 됐고 잘못됐는지를 내가 다시 한번 따져 단순한 표사가 아니라 표국을 경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눈을 기르기를 바라면서·
더 무서운 건 고작 내게 가르침을 주려고 미리 입을 맞추진 않았을 거란 점이다·
결국 즉흥적으로 이심전심 주고받았단 얘기다·
수십 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오늘의 천룡표국을 지켜낸 세 노인의 힘이 느껴졌다·
나는 등이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탁자 위에 놓인 황동열쇠를 바라보았다·
조롱박 호리병이 표두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황동열쇠는 천룡표국 십육각 각주들의 권위를 상징한다·
아마 천룡표국 내 어딘가에 새로 꾸민 전각이 하나 있고 거기 대문은 십칠(十七)이라고 새겨진 자물통으로 굳게 잠겨 있을 것이다·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쟁자수에 불과했던 내가 표사를 넘어 어느새 각주의 자리에까지 오르다니·
그러나 좋다고 넙죽 받아서는 안 된다·
세상에 공짜 만찬이란 없는 법 기왕에 먹으려면 생선의 뱃속에 든 낚싯바늘을 제거하고 먹어야 한다·
나는 열쇠를 다시 밀어 놓으며 말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이종산 손지백 곽석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종산이 물었다·
“주는 건 사양하지 않는 주의라더니?”
“제가 이 열쇠를 받는다면 앞으로 십칠각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전부 보고 드려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시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건 온전히 저의 각이 아닙니다·”
“내가 왜 그럴 것이라 생각하느냐?”
“형들이 모두 그러고 있으니까요·”
이갑룡은 강룡당을 이을룡은 복룡당을 그리고 이병룡은 칠각을 각각 이종산으로부터 사실상 하사받았다·
그 결과 그들은 당과 각을 이용하여 표국 내에서 각자의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고 또 다져가고 있다·
아마 세 사람은 강룡당 복룡당 칠각이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회계를 일일이 보고하고 표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표왕부로부터 재가받는 한 그것들은 절대로 세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
옆에서 지켜보던 손지백과 곽석산의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인다·
내 대답이 완전히 뜻밖이었던 것이다· 손지백이 옆에서 나지막이 읊조렸다·
“장원급제를 확실히 노름으로 딴 게 아니었군·”
이종산이 다시 내게 물었다·
“네 눈에는 형들이 불쌍해 보였느냐?”
“부럽진 않았습니다·”
세 사람은 또다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천룡표국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무림인들 특히 젊은 후기지수들이라면 힘 있는 외가에 잘 나가기까지 하는 이갑룡 을룡 병룡을 부러워했다·
반면 허구한 날 기루에 노름방이나 들락거리는 나는 호구 반푼이라 손가락질하며 멸시했다·
한데 내가 그런 형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고 하니 놀랄밖에·
“상금으로 받은 금전의 용처 역시 내게 가르쳐 줄 생각이 없겠구나·”
“외람되지만 그렇습니다·”
“금전 백 냥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아느냐?”
“항주 시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루를 통째로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설마 기루를 살 생각이더냐?”
“물론 아닙니다·”
“용처가 있기는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세 사람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특히 이종산의 눈빛과 얼굴에선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놀람 당혹 배신감 기특함 신기함 이런 것들이 하나로 모이면 저런 눈빛과 표정이 될까?
한참 만에 이종산이 말했다·
“돈은 곧 주인의 행적을 말해주는 법이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돈이 흐르고 모이는 곳을 보면 다 알 수 있지·”
“···”
“네가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참견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곽 숙부를 시켜 그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찾아내고 지켜볼 것이다· 이것은 아비로서의 관심이다·”
“···”
“하니 네가 만약 무언가 숨겨야 할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숨기거라· 금전 백 냥의 흐름조차 숨기지 못한다면 너는 언제까지고 각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게 큰돈이 생겼다는 걸 알았으니 이갑룡 을룡 병룡도 똑같이 뒤를 캐고 추적하려 들 것이다·
이종산은 지금 내게 자신을 감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나랑 내기를 해보겠느냐?”
“····?”
“반년 후 내가 금전 백 냥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땐 십칠각에 대한 그 어떤 간섭도 영구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너 또한 아무리 큰일이라도 내게 보고할 필요가 없느니라·”
“···”
“그러나 만약 내가 금전의 행방을 모두 찾아낸다면 너는 앞으로 형들처럼 십칠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게 보고하고 회계장부까지 감사를 받아야 하느니라·”
한마디로 이종산은 십칠각을 걸고 나는 금전 백 냥을 걸고 내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종산이 이기면 새로 만든 십칠각과 금전 백 냥은 사실상 자기가 가지는 것이고 내가 이기면 반대로 형들과 달리 철저하게 나만의 숨겨진 힘을 기를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좋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내일부터 곽 숙부께 다시 무공을 배우거라·”
그러면서 이종산은 다시 황동열쇠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제야 열쇠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