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집으로 돌아오다(1)
———————–
이정룡이 실종된 지 20일 하고도 여러 날이 지났다·
그 사이 이종산은 총표두 곽석산을 필두로한 별동대 일백 명을 사건이 벌어진 귀곡성림으로 급파했다·
천룡표국에 재난급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동원되는 별동대는 최소 10년 이상 경력의 표사들로만 구성되었다·
말이 좋아 백 명이지 이미 의뢰를 받아 표행에 투입된 표사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표국의 운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동원 가능한 표사들은 전부 동원한 것이었다·
한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듣자하니 남궁세가에서도 영애를 찾기 위해 세가의 전력을 총동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궁세가에서는 사람을 통해 천룡표국에 분명한 경고의 목소리도 보내왔다·
“만약 본가의 영애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경우 이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입니다·”
혈족의 실종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억울하다· 억지로 표행에 딸려 보낸 것도 아니고 자기가 보내달라고 간청해서 간 것 아닌가· 그마저도 신분을 감추었고·
할 말은 많지만 일단 참는다· 아직 아이들의 생사조차 확인이 안 된 상황에서 섣부른 말들은 부정만 탈 뿐이다·
표행단이 출발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남장에 역용까지 하고 찾아온 풍진양의 정체에 대한 보고를 총표두로부터 받았다·
“놀라지 마십시오· 뇌검 남궁무룡 대협의 손녀라고 합니다· 진짜 이름은 남궁소소이고요·”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다시 묻겠네· 확실한가?”
“저도 믿기지 않아서 거듭 확인했습니다·”
“뇌검 선배께 영특한 손녀가 있다고 하더니 혹시····”
“바로 그 아이입니다·”
“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종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세상에 남궁세가라니·
현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천하십검(天下十劍) 중 한 명인 뇌검 남궁무룡이 그렇게 물고 빨고 한다는 손녀라니·
그 손녀가 자신의 아들 정룡에게 호감을 느끼고 졸졸 따라다닌다니·
만약 이것이 혼사로까지 연결된다면 정룡은 그야말로 용의 여의주를 물고 봉황의 날개를 단 격이 된다·
또 한 가지 천룡표국은 남궁세가와 사돈지간이 된다·
절강성의 패자와 남직예성의 패자가 혈연관계로 맺어지면 중원무림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혈맹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룡이 실종되었습니다!”
“자세히!”
“표행중 화조신옹이 나타났고 정룡과 남궁소소가 표사와 쟁자수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인질이 되어 끌려갔다고 합니다·”
“남궁소소도 함께?”
“소제가 화조신옹의 목을 비틀어 오겠습니다·”
“별동대를 데려가라!”
그러나 별동대를 이끌고 화조신옹을 추적 중인 곽석산은 전서구를 통해 절망적인 소식만 계속 보내왔다·
<비가 두 차례나 내렸습니다·>
<;종적이 모두 씻겨버렸습니다·>
<귀곡성림을 벗어났습니다·>
<생사가 확인되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놓친 것 같습니다·>
<진령을 뒤지는 중입니다·>
언제부턴가 강호엔 화조신옹이 이미 황하를 넘었으며 천룡표국과 남궁세가의 두 후기지수를 죽여 없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반대로 화조신옹이 황하를 넘은 건 사실이지만 두 아이가 황하를 건너기 직전 탈출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실 소문이야 백 가지도 넘게 나돌았다·
목격자나 신빙성 있는 제보를 주는 사람에게 후사한다는 소문을 듣고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 한입씩 보태고 갔기 때문이다·
이제 소문은 의미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구출을 위한 황금시간은 이미 넘겼다·
이제 복수를 준비할 때였다·
아직 살아있다면 이것 자체로 구출 작전이 되고 만에 하나 죽었다면 처절한 복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종산은 대장궤를 비롯해 오당(五堂)의 당주들과 십육각(十六閣)의 각주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국경의 장수들에게 금전 일천 냥의 현상금을 내걸고 검문검색을 강화해 달라는 전서를 보냈습니다· 화조신옹을 잡지는 못하겠지만 국경을 넘었다면 흔적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황룡당 당주 황자충이 말문을 열었다·
올해 쉰다섯 살인 그는 황실 금의위(錦衣衛)의 장수 출신이었다·
무언가 더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었지만 그건 오로지 국주인 이종산과 총표두 그리고 대장궤 손지백만 아는 내용이었다·
“섬서성과 산서성의 포의방(捕意幇) 지부에 금전 일천 냥의 현상금과 함께 모든 일에 우선하여 나서 달라고 협조요청을 했습니다· 역시 잡지는 못해도 흔적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적룡당 당주인 양진각이 말했다·
올해 쉰 살인 그는 중원을 통틀어 가장 많은 범죄자들을 잡아들인 기록을 가진 명포(名捕) 이른바 관부의 포두 출신이었다·
그는 곤술과 포박술만으로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가 말한 포의방은 포쾌들의 친목조직으로 현급 이상의 지방이라면 어디에나 지부가 있었다·
방도들은 죄다 포쾌 나부랭이에 불과하여 무공은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방 사정에 정통하여 나름의 막강한 힘을 행사했다·
특히 사람을 찾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심지어 포의방이 나선다면 무덤에 들어간 사람조차도 사흘 안에 찾아낸다는 말까지 있었다·
“개방과 하오문을 비롯해 중원 전역의 일곱 개 살수문파에 용모파기를 보냈습니다· 화조신옹의 소재를 찾아 주는 곳에 금전 일천 냥을 사례하겠다는 말도 보탰습니다·”
청룡당 당주 유지평이 말했다·
올해 마흔일곱 살인 그는 백도무림 최대의 연맹세력인 무림맹(武林盟) 군사부(軍師部) 출신이었다·
용혈인 이갑룡과 을룡을 제외하면 오당의 당주들 중 가장 젊고 무공도 낮았다·
대신 무공보다 무서운 두뇌와 방대한 인맥을 자랑했다·
이로써 군부 관부 그리고 무림이 전부 동원되어 화조신옹의 흔적을 찾는 셈이 되었다·
중원 전역에 천라지망이 펼쳐진 것이다·
한데도 이종산은 성에 차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조건이 하나 빠졌군·”
“···!”
“···!”
“···!”
“반드시 살아있는 화조신옹이어야 하네·”
그래야 잡아서 자신의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 아닌가·
이종산은 이갑룡 을룡 병룡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셋째인 병룡은 동생의 실종 소식에 북경으로 가서 회시를 보는 것도 포기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고 어차피 안 될 일을 핑계 삼아 가지 않았음을 안다·
그러나 정룡은 다르다· 그 녀석은 항주부에서 치러진 향시에서 당당하게 장원을 했다·
‘북경으로 가서 회시까지 치렀더라면····’
미련을 두어봤자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동생을 잃을 지도 모르는 이 아이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일단 얼굴은 모두가 침통하다·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오늘만큼은 진심이라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때 표왕부의 호위장 가뢰압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이을룡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항주부 지부대인이 찾아왔습니다·”
“지부대인이 왜요?”
“국주님을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답니다·”
“이런 물색 모르는 노인네 같으니라고· 귀가 있다면 지금 우리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알 것을!”
신중한 이갑룡이 조용히 보탰다·
“호위장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은 손님을 맞을 때가 아닙니다· 적당히 돌려보내시지요·”
“지난번처럼 말 탄 관병들을 잔뜩 이끌고 막무가내로 쳐들어 왔습니다· 한데 이번엔 기세가 아주 등등합니다· 당장 국주님을 뵈어야겠다며 생떼를 쓰고 있습니다·”
“이 늙은이가 정말!”
”예를 갖추거라· 그는 항주를 다스리는 관리다·“
이종산이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이을룡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가뢰압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알아서 대마장으로 관병들을 이끌더니 그곳에서 진을 진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고요·“
***
대마장에 도착하니 표사와 쟁자수들 수백 명이 모여 우글대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 과연 왕인탁이 휘하의 관병 삼십여 명을 이끌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간 강녕하셨소이까· 국주·”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합니다·”
“오늘 본관이 국주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화근덩어리를 깨끗하게 없애 드리겠소이다· 하면 지난번에 미루어 두었던 술 한 잔 낼 생각이 있으시오?”
“대인 용무가 무엇입니까?”
“본관이 장담하건대 국주께서 제아무리 본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도 오늘만큼은 본관을 향해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껄껄껄·”
왕인탁은 연신 웃음을 흘리더니 수하들을 향해 눈짓을 한 후 말에서 내렸다·
그러자 관병들이 우르르 따라서 내렸다·
그런 다음 재빨리 돗자리를 깔고 높다란 협탁을 가져다 놓았다·
마지막으로 황금빛이 도는 술주전자와 잔이 협탁 위에 놓였다·
준비가 끝나자 왕인탁이 돗자리로 올라갔다·
“시작하라·”
왕인탁이 말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관병 하나가 붉은 비단이 깔린 소반 위에 황금색 두루마리를 받쳐 들고 왕인탁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왕인탁은 무슨 의식을 치르듯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집어 천천히 풀었다·
이어 위엄이 가득한 소리로 외쳤다·
“병신년 칠월 초파일 항주부 동산평에서 태어난 이정룡의 아비 이종산은 앞으로 나와 황제 폐하의 교지를 받들라!”
“···!”
“···!”
“···!”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황제 폐하의 교지라니· 지부대인의 일갈이 대마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동시에 예전에도 본 적 있는 어떤 한 장면을 떠올렸다·
한데 오늘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갔다·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이종산은 한동안 왕인탁의 입을 뚫어지게 보았다·
이종산의 강렬한 눈빛에 압도된 왕인탁은 한순간 흠칫했다·
대장궤 손지백이 이종산에게 다가가 말했다·
“황제 폐하의 교지입니다· 우선 예를·”
이종산은 그제야 돗자리 위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였다·
“황제 폐하의 교지를 받드옵니다·”
그제야 왕인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조금 전 그가 공언한대로 과연 이종산이 그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병신년 칠월 초파일 항주부 동산평에서 태어난 이정룡은 당년 경사(수도인 북경을 지칭하는 말)에서 치러진 회시에서 장원급제를 하였다····”
왕인탁이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대마장은 그야말로 태풍을 맞은 것 같았다·
표사와 쟁자수 수백 명이 동시에 한입씩 내뱉기 시작한 말들이 모이고 모여 우박 쏟아지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도저히 왕인탁이 교지를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관병들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모두 조용히 하시오!”
“모두 조용히 하시오!”
방향을 바꿔가며 몇 번을 외쳐야 비로소 사방이 잠잠해졌다·
“험험·”
왕인탁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교지를 읽어내려갔다·
“이에 나라와 황실의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길러낸 이종산과 그의 가문에 금전 백 냥과 오만 평의 토지를 하사하노라!”
교지를 모두 읽은 왕인탁이 관병으로부터 황실에서 수결한 전표와 땅문서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교지와 함께 이종산에게 전해 주었다·
“축하드리오· 국주· 천룡표국에서 진사를 배출했소이다· 지난번에 내가 뭐라고 했소이까? 껄껄껄·”
이종산은 교지를 읽어내려간 왕인탁의 목소리가 흡사 벼락처럼 느껴졌다·
벼락은 그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와 온몸에 전율을 만들어 낸 후에도 아직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화조신옹에게 끌려가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 놈이 무슨 수로 회시를 보고 장원급제를 했단 말인가·
왕인탁의 교지 대독이 모두 끝났지만 오히려 대마장에 모여든 표사와 쟁자수들은 아까와 달리 조용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납득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바깥으로부터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열린 대마장의 정문 사이로 말을 탄 인영 십여 기가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놀란 표사들이 재빨리 장검을 뽑아 들고 달려가 기마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갑룡이 크게 외쳤다·
“적이 아니오· 모두 길을 트시오!”
표사들이 비켜났지만 인영들은 그대로 달려오지 않았다·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자가 다른 인영들을 향해 명령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존명!”
십여 명이 동시에 대답을 하는데 꼭 한 명인 것처럼 들렸다·
짧은 문례에서도 저들이 속한 곳의 기강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두머리 인영은 그대로 말을 달려 이종산 등이 서 있는 수뇌부의 코앞까지 달려왔다·
그러곤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는데 그 신법이 표표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장내에서 나지막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사내의 용모였다·
건장한 체구에 많아야 서른을 넘기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사내는 엄청난 미공자였다·
이갑룡이 사내의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인가?”
“국주님을 뵈러 왔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직접 말씀드렸으면 하네·”
“알았네· 잠깐 기다리게·”
이갑룡은 다시 이종산을 돌아보며 젊은 사내를 소개했다·
“저의 친구인 남궁세옥입니다· 현 남궁세가의 가주이신 뇌검 남궁무룡 대협의 손자로 두어 달 전부터 남궁세가에서 운영하는 항주의 다루로 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갑룡은 ‘저의 친구’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남궁세옥이 어디까지나 자신의 손님임을 분명하게 해두려는 것이다·
남궁세옥은 동년배의 다른 후기지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100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검술의 천재라는 그는 불과 서른의 나이에 벌써 북무림을 떨어 울리는 신진고수 소리를 들었다·
뜻하지 않은 거물의 등장에 거기다 하필이면 남궁세가 사람의 등장에 또 거기다 하필이면 실종된 남궁소소의 오라비의 등장에 표사와 쟁자수들 사이에서는 다시 태풍이 몰아쳤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남궁세옥이 이종산을 향해 공손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항주에 온 지 두 달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국주님을 찾아뵙습니다· 무림 후학의 무례를 크게 꾸짖어 주십시오·”
“지금은 우리가 한가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닌 듯하네· 우선은 급하게 나를 찾아온 용건부터 말해주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정룡 공자는 무사합니다· 천방지축 망나니 같은 저의 누이 역시 안전하게 본가로 돌아왔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
“화조신옹은 황하를 건너 북방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저의 누이와 정룡 공자는 화조신옹이 잠든 틈을 타 몰래 탈출에 성공했고요·”
“····!”
“이후 정룡 공자는 촉박한 날짜에 맞춰 회시를 보기 위해 북경으로 달려갔고 저의 누이는 내상을 치료하느라 동굴 속에서 닷새 동안 운기행공을 한 후에야 비로소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
“누이가 이르길 표행에 동참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였으며 천룡표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함께 인질이 되어 끌려가던 중에는 시종일관 정룡 공자가 목숨을 걸고 지켜주었다고까지 했습니다·”
“···!”
“이에 할아버지께서 제게 전서를 보내시어 서둘러 국주님을 찾아뵙고 소식을 전하라셨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국주님과 정룡 공자를 본가로 초대하고 싶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
“할아버지와 누이를 대신해 천룡표국에 감사드립니다·”
남궁세옥이 어느 때보다 공손하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포권지례를 올려왔다·
“정녕 이 모든 게 사실인가?”
“정룡 공자의 안부에 관한 물음이시라면 이미 지부대인께서 대답을 하신 것 같군요·”
말끝에 남궁세옥이 왕인탁과 관병들 협탁 술주전자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 이종산의 손에 들린 교지에서 멈추었다·
“천룡표국에 큰 경사가 생겼군요· 축하드립니다·”
남궁세옥이 또다시 포권지례를 올렸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남궁세옥은 벌써 세 번째 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국주님!”
또 한 명의 사람이 대마장을 가로질러 헐레벌떡 달려왔다·
중원 전역에 있는 천룡표국 분타와의 연락을 책임진 전서각(傳書閣) 각주 계종명이었다·
“자넨 또 무슨 일인가?”
“공자님께서 무사하시답니다·”
“···?”
“남궁세가의 영애께서 세가로 돌아오셨답니다· 그녀의 말이 정룡 공자께서도 무사하시다고 했답니다· 뒤늦게 남궁세가의 총관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 들은 총표두께서 별동대를 이끌고 귀환 중이시라고 전서를 보내오셨습니다·”
“알았네·”
“예?”
“가서 일보게·”
계종명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종된 이정룡과 남궁세가의 영애가 살아있다는 데도 아무도 놀라거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다들 앞서 이미 놀란 상태로 표정이 굳어버려 아직 풀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지부대인 왕인탁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제일 빨랐군요· 국주·”
전서구를 이용한 천룡표국의 연결망 남궁세가의 연결망 관의 파발이 경쟁하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관의 파발이 제일 빨랐다·
촌각의 승부를 결정한 것은 지부대인의 탐욕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큰돈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졌다·
화조신옹은 황하를 넘어 북방으로 도주했고 남궁세가의 영애는 무사히 세가로 돌아갔다·
이정룡은 북경에 가서 회시를 치르고 당당히 장원급제를 한 후 지금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고·
“축하드립니다· 국주님·”
“축하드립니다· 국주님·”
“축하드립니다· 국주님·”
“축하드립니다· 국주님·”
대장궤 손지백을 필두로 황룡당 적룡당 청룡당 당주들이 차례로 인사를 해왔다·
십육각의 각주들은 당주들의 인사가 모두 끝나길 기다렸다가 일제히 한목소리로 인사했다·
“축하드립니다· 국주님·”
왕인탁의 말이 맞았다· 화근 덩어리가 빠져나가면서 머릿속이 환하게 맑아졌다·
이종산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어 보지만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 어처구니없는 인사는 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답답하구나· 답답해·”
손지백이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렸다·
감히 사공자를 두고 ‘어처구니없는 인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오랜 세월 이종산과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의형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따져 손지백이 맏형이었고 이종산이 둘째였으며 총표두 곽석산이 막내인 셋째였다·
그때였다·
“사공자님께서 돌아오셨다!”
누군가의 외침에 대마장에 모인 사람들 전부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정문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과연 얼굴은 깨끗했지만 옷은 상거지 꼴을 한 이정룡이 제 몸집보다 조금 큰 조랑말을 탄 채 또각또각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대마장에 집결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우뚝 멈췄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그 순간 사람들이 천지가 떠나갈 듯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