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오지산 천지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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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곡 협도를 통과한 다음 날 표행단은 첫 번째 목적지인 양주에 도착했다·
마차 다섯 대에 실린 비단을 상단에 넘겨주고 나자 표물은 이제 감악산까지 가는 강시 아홉 구만 남았다·
남궁소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일행 전부가 처음으로 객잔에서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감악산이라는 말을 들은 어느 상방이 그곳까지의 양곡 운송을 의뢰해 왔다·
천룡표국의 명성이 높다 보니 표행 중에 깃발만 보고도 찾아와 의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의뢰를 ‘편승표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여섯 대의 마차에 양곡과 아홉 구의 강시를 나눠 싣고 출발했다·
그때부터는 남궁소소가 선두에서 길을 잡았다· 그 뒤를 가불염과 내가 차례로 따랐다·
장량기가 다가와 물었다·
“가신 일은 잘되었습니까?”
“무슨 일 말입니까?”
“볼 일이 있다시며 아침 식사로 나온 국수도 거르시고 가불염 풍진양과 함께 어딜 바삐 가셨다가 오셨지 않습니까····”
“아 잘 처리하고 왔습니다·”
“옷에 잔뜩 닭고기 냄새를 묻히고요·”
“···!”
이 인간이 말을 할 거면 한 번에 쭉 이어서 할 것이지· 중간에 끊었다 하고 지랄이야 지랄은·
“지나는 길에 거지들이 병든 닭을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 먹고 있더군요· 날씨가 쌀쌀해 잠시 곁불을 쬐었는데 그때 냄새가 뱄나 봅니다·”
“아직도 입가에 기름이 묻어 있습니다만·”
앞서가던 가불염과 남궁소소가 저도 모르게 얼른 소매로 입술을 훔쳤다가 뒤늦게 속았다는 걸 깨닫고 등짝이 어색하게 굳었다·
저런 멍청한 인간들 좀 보소·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을 데리고 요릿집으로 가서 지네와 대추를 넣고 황토로 싸서 구운 특제 닭고기를 사 먹고 왔다·
양주가 고향인 남궁소소가 하도 맛있는 집이 있다고 그래서· 안 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솔직히 나도 먹고 싶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전낭은 잘 전달이 되었겠지요?”
“전낭? 무슨 전낭?”
“이틀 전 대별채와 교룡채의 분쟁을 해결하겠다고 하셔서 전낭을 세 개나 드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잘 해결했잖소· 뭐가 문제요? 설마하니 염왕도와 독각망이 돈도 받지 않고 합심해서 우리를 건네줬을까 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전 그냥 궁금해서···”
“장 표두는 그게 문제요· 차라리 밥을 많이 먹을지언정 말을 좀 줄이시오· 만 가지 시비가 말에서 비롯되는 법이오· 방금 그 말도 날더러 전낭을 가로챘냐고 물은 거잖소·”
“그렇게 들리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만합시다· 표행도 끝나가는 마당에 나도 이젠 지치오· 장 표두와 더는 싸우고 싶지도 않고·”
그러면서 나는 이제는 능숙해진 솜씨로 말을 재촉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어 남궁소소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며 물었다·
“길은 잘 잡고 있는 거요?”
“물론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양주에서 감악산까지 가려면 원래 닷새는 걸립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을 가로지르면 사흘로 단축할 수 있죠·”
“도대체 그곳이 어디오?”
“귀곡성림(鬼哭成林)입니다·”
귀곡성림이라는 말에 나도 가불염도 표정을 굳혔다· 뒤를 돌아보니 장량기도 안색이 굳었다·
양주에서 감악산으로 가는 길에 나오는 귀곡성림은 오랜 경력의 표사나 쟁자수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모른 척 물었다·
“귀곡성림이 어떤 곳인지 아시오?”
“하늘을 향해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로 울창한 곳입니다·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숲에 봄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지금처럼 가을에는 밤과 개암 같은 온갖 열매들이 땅에 떨어져 있어 그걸 주워 먹으며 가는 재미도 있고요·”
“아름다운 숲에 시간까지 단축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원래는 상단이며 표국들 전부가 이쪽 길로 다녔습니다· 그러다 20년쯤 전이었나? 용화교(龍華敎)의 교도 천여 명이 들어와 촌락을 이루고 살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어찌하여?”
이 질문에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장량기가 대답했다·
“좋게 말해 용화교지 실제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을 섬기는 사교 집단입니다· 자기들끼리 무슨 짓을 하는지 온갖 괴질에 시달리는데 아픈 곳과 병치해서 정상인의 그것을 떼어다 삶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 때문에 걸핏하면 지나가는 사람을 사냥하기 때문이지요·”
“사람을 사냥한다고요?”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척후병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가 외부인들이 나타나면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촌락에 있던 모든 사교도들이 일을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뛰쳐나와 인간 사냥을 시작합니다· 오로지 잡아먹기 위해서·”
“식인종이 따로 없군요·”
“적지 않은 상단과 표국 사람들이 그렇게 당했습니다· 성난 인근의 표국들이 연합하여 몇 차례 토벌전도 벌이고 했지만 귀곡성림이 워낙 광활한 데다 교주라는 자의 용병술과 진법술이 신출귀몰해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장량기는 다시 남궁소소에게 물었다·
“감악산까지 가는 시간을 사흘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귀곡성림 옛길로 지나가는 것이었소? 그렇다면 이 표행을 당장 멈출 것을 요청하는 바이오·”
“용화교의 교도들이 귀곡성림으로 들어오는 외부인을 사냥해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제가 함께 간다면 아무 일 없을 테니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귀하가 무슨 수로?”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저희 할아버지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상 귀곡성림의 교도들이 저희 할아버지를 매우 두려워한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날 저녁 표행단은 귀곡성림에서 저녁을 맞았다·
운이 좋았는지 아직까지 사교도들의 낌새는 없었다·
남궁소소 말로는 귀곡성림이 워낙 광활해서 용화교도들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곳곳에 그렇게 많은 척후병들이 숨어 있는 것이고·
사실 귀곡성림은 나도 계산에 있었던 곳이다·
다만 여길 어떻게 통과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남궁소소가 알아서 인도해 주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장사곡 협도를 통과하면서 시간을 하루나 줄였다· 그리고 이곳 귀곡성림을 통과하면서 또 하루를 줄일 것이다·
합치면 전생의 여정에 비해 이틀이나 줄어드는 셈이다· 게다가 가는 길도 완전히 달라졌다·
전생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이틀 후 밤중에 청마산(淸馬山) 입구에서 문제의 고수가 나타나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몰살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현생에서는 내일 밤이면 최종 목적지인 감악산에 도착해 버린다·
시간으로 따져도 장소로 따져도 문제의 고수가 나타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본래 예상되는 만 개의 일이 무서운 게 아니고 만에 하나가 무서운 법이다·
표두의 권한을 위임받은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표사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경계는 어떻습니까?”
먼저 가불염에게 물었다·
“주변 백여 장을 살폈지만 수상한 흔적은 없습니다· 두 명의 표사와 세 명의 쟁자수를 일조로 해서 반 시진씩 돌아가며 번을 서기로 했습니다·”
“횃불이고 모닥불이고 작은 불씨 하나라도 피웠다가는 경을 칠 거라는 말도 모두에게 전하셨겠지요?”
“물론입니다·”
얘기를 듣고 있던 남궁소소가 불쑥 끼어들었다·
“누차 말씀드렸습니다만 용화교도들이 나타나면 제가 무조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용히 갈 수 있는 길을 구태여 떠들며 갈 필요도 없지 않겠소? 게다가 휘영청 보름달까지 떠서 앞을 보는 데도 큰 지장이 없고·”
나는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 숲을 통과하고 싶었다·
특히 목격자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귀곡성림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다·
“불 없이 밤을 보내기엔 날이 너무 춥습니다·”
“하루만 참으시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나는 다시 가불염에게 말했다·
“표사를 네 명으로 늘려 동서남북 사방을 살피십시오· 첫 번째 번은 저도 함께 서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충직한 가불염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질문 자체가 내 권위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지키는 사람의 위엄까지 고려하는 건 정말 좋은 태도다· 이 사람은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
“쟁자수들 말타기는 좀 성과가 있었습니까?”
늙은 상자수 왕삼보에게 물었다· 오늘은 쟁자수들을 대표해 그를 특별히 참석시켰다·
“다들 이제 곧잘 탑니다·”
“고작 사흘 만에요?”
“고작 사흘이라고는 하나 해가 뜰 때부터 시작해 저녁까지 종일 탔으니까요· 따로 한 달 동안 연습한 사람들보다 낫습니다·”
“다행이군요·”
“다들 말 타는 걸 배워 두어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비용에 시간에 좀처럼 마음을 먹지 못했는데 사공자님께서 이렇게 기회를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개는 밥 주는 사람을 따르고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따르는 법이다·
단 열흘 만에 쟁자수들은 전부 내 편이 되어 버렸다·
쟁자수들이 좋아하면 할수록 표사들의 얼굴은 반대로 일그러졌다·
쟁자수들이 편한 만큼 자신들은 개고생을 해야 했으니까·
“인사는 제가 아니라 표사님들께 하셔야죠· 지난 사흘 동안 일곱 표사들의 배려를 쟁자수들은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표사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왕삼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표사들에게 공손히 포권지례를 했다·
나도 얼른 숟가락을 얹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사흘 동안 얼뜨기 거인표사의 터무니없는 명령에도 모두 군말 없이 따라주어 고맙습니다· 언젠가 이 신세는 꼭 갚도록 하지요· 특별히····”
나는 장량기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장 표두께는 그동안 짓궂게 굴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제가 성질이 고약한 탓입니다·”
“···?”
“약속대로 내일부터는 장 표두께서 다시 표두가 되십시오· 그리고 표사와 쟁자수들을 잘 이끌어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표국으로 데려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내 태도에 장량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쁜 말이 아니니 멋쩍어만 할 뿐 달리 이유를 묻지 않았다·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 분위기를 틈타 조용히 장량기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선하령에서 있었다는 무림인들 간의 싸움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싣고 가는 저 강시 아홉 구가 만들어진 원인이 된·”
“말씀하시지요·”
“그 사정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본래 표두들에게는 표사들은 접할 수 없는 정보들까지 제공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강호인들은 정보가 뛰어난 무림문파를 말할 때 개방(匃幇)과 하오문(下午門]을 쌍벽으로 꼽는다·
정보의 방대함에 있어서 이들 두 방파를 따라갈 곳은 단언컨대 없다·
그러나 정확성만을 놓고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는 표사들의 입과 귀를 통해 모아진 표국의 정보는 정확도라는 측면에서 개방과 하오문보다 오히려 나을 때가 많다·
“갑자기 그건 어찌···?”
“아침에 객잔에서 무림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선하령에서 있었던 혈사가 단순히 협객들이 흉악한 마두를 때려잡으려다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요·”
장량기는 잠시 뜸을 들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표사들도 모두 비슷한 얘길 들은 모양이다·
이미 파다한 이야기를 숨길 이유는 없었다·
“오래전부터 해남도 오지산(五指山)에 천지령(天地靈)이라는 천년 묵은 영물 지렁이가 산다는 소문이 전해져 왔습니다·”
“지렁이라고요?”
“낮에는 땅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밤만 되면 밖으로 나와 달빛을 쬐는데 그 기운이 얼마나 응축되었는지 잡아먹으면 100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겁니까?”
“존재하는 걸로만 따지면 그보다 더 놀랍고 영험한 영물들도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의 손에 잡혔다는 것이지요·”
“···!”
“이는 5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로 무림인의 그것도 일류고수의 손에 들어가면 천하십대고수의 명단이 바뀔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100년 공력 천하십대고수····
연이은 흘러나온 두 강력한 단어에 사람들은 모두가 불 속에 던져진 조개처럼 입이 쩍 벌어졌다·
“한데 그게 선하령 혈사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