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강시 아홉 구를 운송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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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요령 소리는 뭐죠?”
“놀라지 마시오· 이제부터 아주 기괴한 광경을 보게 될 거요·”
요령 소리가 한순간 뚝 그쳤다·
전립성을 비롯해 장궤 몇 명이 서둘러 달려나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들은 대장궤에게 다가가 무언가 귀엣말을 전했다·
대장궤 손지백은 평생 표국에서 잔뼈가 굵은 칠순 노인으로 삼박군(三博君)이라는 괴상한 별호를 가졌다·
이는 그가 세 가지에 정통하기 때문인데 첫 번째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두 번째 세상에서 모르는 물건이 없었으며 세 번째 하늘아래 모르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닥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윽고 손지백이 말했다·
“문을 열어라·”
천룡각의 문이 활짝 열렸다·
끊어졌던 요령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싶더니 하얀 도복을 입고 머리에는 태극건을 두른 말라깽이 중년 도사(道士)가 요령을 흔들며 들어왔다·
그의 뒤로 ‘그것들’이 나타났다·
이마에는 붉은 부적을 붙이고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뻗은 채 줄지어 쿵쿵 뛰어 들어오는 존재들·
남궁소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목소리를 쥐어짰다·
“저 저건!”
도사가 이끌고 온 강시는 모두 아홉 구· 하나같이 무릎 아래쪽의 옷자락이 찢어지고 헤져 있었다·
죽은 후에도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나이는 적게는 20대 후반에서 많게는 50대 초반까지 있었고· 남자 강시가 일곱 구에 여자 강시가 두 구였다·
이윽고 요령이 멈추었다· 도사가 자신의 소개와 저간의 사정을 짧게 설명했다·
“빈도는 모산파(茅山派)의 제자로 이름은 도홍경이라 합니다· 닷새 전 절강성 남서쪽 선하령(仙霞嶺)에서 관병과 양민 백여 명을 학살하고 도망친 마두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인근을 지나던 많은 무림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마두를 추격해 협공하다 그만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돌아가신 고인들 중 일부를 함께 있던 무림인들의 요청에 따라 각자의 사문으로 모셔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표국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 몸은 천룡표국의 대장궤 손지백이라고 하오· 표국을 대표해 의로운 일을 하시는 모산파의 도우(道友)께 삼가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짧은 인사가 끝나고 모산파 도사와 손지백 사이에 긴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은 음성에 멀기까지 해서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망자들의 신원을 묻고 정확한 목적지를 묻고 조건을 확인하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갈 것이다·
아까부터 왠지 조용하다 싶어 돌아보니 남궁소소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많이 놀랐소?”
“강시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어서요· 저렇게 산 사람과 똑 같을 줄 몰랐습니다·”
“놀랄 것 없소· 진짜 산 사람이 무섭지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소· 강시라고 해도 그저 사람이 부리는 술법에 따라 뛰어다니는 시체일 뿐이오·”
“혹시 강시도 표물인가요?”
“독립적인 표물은 아니고 같은 방향으로 떠나는 표행이 있다면 마차 한 대를 더 추가해서 실어다 달라는 뜻이오· 물론 고인들은 관속에 모시고·”
“이런 의뢰가 자주 있나요?”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전쟁이 터지거나 무림인들끼리 큰 싸움이 벌어지거나 하면 밥 먹듯이 보는 풍경이오· 하지만 지금처럼 평상시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왜 도사들이 직접 데리고 가지 않는 거죠?”
“숫자가 많아서 힘에 부치거나 부패가 진행될 조짐이 보이거나 기상이 좋지 않거나 비록 죽은 사람일지언정 고생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한 가족들이 요청하거나· 이유는 많소·”
“정말 별의별 게 다 표물이 되는군요·”
“강시는 시체 특유의 악취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다 가는 내내 꿈자리까지 뒤숭숭해 다들 꺼리는 표물이오·”
“대신 비싸게 받겠죠?”
“거기다 표비도 싸고·”
“그건 또 왜죠?”
“첫 번째는 기존에 있던 표행에 마차 한 대를 더 붙이는 것일 뿐이고 두 번째는 망자들을 상대로 큰 이문을 남기면 3년 동안 재수가 없다는 속설 때문이오·”
“모산파의 도사가 도움을 청한다고 한 말이 겸손의 의미가 아니었군요· 정말로 도움을 청하는 거였어요·”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천룡표국에선 절차를 거쳐 이 표행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표행을 떠났던 십수 명의 표사와 쟁자수들이 몰살을 당한다·
그걸 막는 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 의뢰를 거절하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
이윽고 협상을 끝낸 손지백이 좌중에 앉은 각 당의 당주와 각주와 표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 표국에선 고인들의 호송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소· 최종 목적지는 남직예의 감악산(紺岳山)이오· 모산파의 도우께서 닷새 전 세 개 문파로 전서구를 띄웠다고 하니 감악산까지만 가면 세 문파에서 마중 나올 것이오·”
손지백은 손에 들고 있는 장부를 잠시 확인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비슷한 방향으로 떠나는 표행단들 중 한 곳에 맡기기로 했소· 내일 아침 남직예로 출발하는 표행단은 모두 열두 곳이오· 자 어떤 표행단이 맡아 주시겠소?”
그때부터 지루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차라리 그냥 시체면 낫다· 방술과 단약으로 부패를 막은 강시는 말만 시체일 뿐 생전의 모습과 똑같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다·
게다가 매일 밤 관뚜껑을 열고 단약을 뿌리고 부적을 점검하는 등 손 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는 내내 코를 썩게 만드는 지독한 악취는 또 어떻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밥을 먹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표행 중에 쓰러지기도 한다·
개고생하는 것에 비해 떨어지는 수당은 거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표행을 책임진 표두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뿐 좀처럼 나서는 이가 없었다·
“관 아홉 개면 마차 한 대만 더 추가하면 될 일· 선선한 가을이니 부패할 염려도 없고 멀지도 않은 길이오· 정녕 지원하는 표행단이 없단 말이오?”
손지백이 거듭 물으며 사방을 쓸어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이대로 의뢰를 거절하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억지로 거절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막 손을 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이 의뢰는 거절해야 합니다·”
돌연 이병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는 사사롭게는 천룡표국의 삼공자였지만 동시에 표사를 삼십여 명이나 거느린 칠각(七閣)의 각주이기도 했다·
이병룡은 다시 말했다·
“모산파의 선인(仙人)께서는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망자들께서 속한 문파로 다시 한번 전서구를 보내 직접 걸음을 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갑자기 이병룡이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이종산과 친우들이 보는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럴 듯하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바보가 되고 만다·
모산파의 도사가 물었다·
“의뢰를 거절하시려는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소?”
“말씀을 빌리자면 저 망자들께선 전부 무림인들이고 망자가 된 사연 또한 무림인들 간의 싸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천룡표국이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릴까 우려됩니다·”
일단 물꼬를 제대로 텄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귀하께서는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구료· 저 망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흉악한 마두를 잡으려다 목숨을 잃었소· 무림인들 간의 싸움이라는 건 사건을 너무 단순화 한 것이오·”
“여러 명이 한 명을 공격한다고 해서 무림인들 간의 싸움이 아닌 것은 아니지요· 상대가 흉악한 마두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나마도 전적으로 모산파에서 오신 선배님의 말씀이고요·”
본래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한 마디에 담는 법이다·
이병룡은 지금 갑자기 모산파의 도사 차림을 하고 나타난 당신과 당신의 말을 어떻게 다 믿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제법 그럴듯한 주장이고 천룡표국의 누군가는 반드시 짚었어야 할 내용이었다·
한데 이병룡이 말을 할 때마다 옆에 앉은 후기지수들의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거렸다·
전음술로 해야 할 말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이상하게 말을 잘한다 했다·’
하지만 이것도 능력이다· 어떤 면에선 매우 무서운 능력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변의 똑똑한 친우들을 이용하는 것이니까·
유비가 적벽대전에서 이기고 형주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제갈량을 비롯한 휘하의 인재들을 잘 활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지 결코 유비 그 자신이 무적의 고수여서가 아니었다·
이병룡이 다시 손지백에게 말했다·
“대장궤께서도 재고해 주십시오·”
손지백은 대답 대신 주변을 보며 물었다·
“모두 칠각주와 같은 생각들이오?”
지금 이 자리에는 당주와 각주를 포함해 표두가 무려 사십여 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이렇다 저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병룡의 말에 찬성을 하자니 너무 매정한 것 같고 반대를 하자니 자신더러 그 표행을 맡으라 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모산파의 도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남궁소소가 내게 물었다·
“어차피 돈도 안 되고 다들 꺼리는데 그냥 거절하면 되지 않나요? 왜 이렇게 고민하는 거죠?”
“망자들의 호송의뢰는 그 비용이 얼마가 됐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거절하지 않는 것이 천룡표국의 오랜 관례였소·”
“그건 왜죠?”
“강시술이란 본래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시체들을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옮겨주기 위해 탄생한 술법이오· 그들이 없었으면 나라도 없고 나라가 없으면 표국도 없소· 그때 전사자들을 헐값에 호송하던 것이 지금은 전통이 되었소·”
“하지만 저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자가 아니잖습니까· 전통이나 관례라는 이유로 무조건 밀어붙일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관병과 양민 백여 명을 학살하고 도망친 마두를 무림인들이 추적해 협공하다 목숨을 잃었소· 전사자는 아니나 이들 역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친 사람들이오· 백성이 곧 나라니까·”
그렇지만 거절해야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을 고향에 데려다주려다 그 두 배나 많은 생목숨을 잃을 순 없으니까·
한데 무언가 이상하다·
이종산은 물론이고 총표두 곽석산 대장궤 손지백을 비롯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나와 남궁소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것 같소만·”
“우리가 아니라 정룡 공자인 것 같은데요·”
“나를? 왜?”
“방금 정룡공자가 한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한 얘기를 어떻게?”
“아무래도 다들 일류고수들이시니까요·”
“이런 망할!”
뒤늦게 목소리를 죽여 보지만 이미 들을 사람은 다 듣고 난 후였다·
나는 애초부터 고수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일류고수라면 이 정도 소리를 듣는다’하는 감이 없었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건만·
그때 손지백이 말했다·
“여기 계신 모산파의 도우께서는 나와도 일면식이 있는 분이시오· 나는 이 분의 말을 전적으로 믿소· 그리고 내 대답은 사공자가 방금 그의 친우분께 한 말로 대신하겠소·”
“···!”
이종산도 손지백도 곽석산도 모산파의 도사도 그제야 흡족한 얼굴을 했다·
특히 이종산에게선 아내를 잃고 홀로 아들을 잘 키운 아비의 은근한 자부심까지 엿보였다·
졸지에 강호의 도의도 모르는 졸장부가 되어버린 이병룡은 나를 향해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자리에 앉았다·
반대로 협의에 가득 찬 유생이 된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 이게 아닌데···’
당주와 각주들이 조용하게 술렁이는 가운데 손지백이 일갈했다·
“망자들은 복룡당의 장 표두가 이끄는 표행단에게 맡기겠소· 장 표두는 표행을 하는 동안 망자들을 모심에 있어 한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라·”
갑자기 장량기를 지목해 버렸다·
얼마 전 고중태가 표물에 장난을 치는 일로 나와 작은 신경전이 있었던 바로 그 표두였다·
대장궤가 한번 정해버린 이상 국주가 나서도 바꿀 수 없다·
장량기는 썩은 표정을 감추며 일어나서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른 표두들은 그제야 안심을 했다·
이로써 모든 표행이 정해졌다·
파장 분위기가 짙어지던 그때 이을룡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이런 식의 일방적인 통보라면 좀 곤란합니다·”
손지백의 눈매를 좁혔다·
“복룡당주는 내게 할 말이 있소?”
“장 표두가 이끄는 표행단은 목적지가 양주입니다· 망자들은 그로부터 닷새나 더 걸리는 감악산까지 가야 하고요·”
“그래서요?”
“아시다시피 저희 복룡단은 보름 후 만포상방의 쌀 일천 섬을 복건성으로 운송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복룡당의 표사와 쟁자수들이 모두 나서서 전력을 쏟아야 하는 일로 장 표두가 이끄는 표행단 역시 속히 귀환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내 모르는 바 아니나 사정은 모두에게 있소· 예정에 없던 표물이 추가되었으니 다른 각의 표사와 쟁자수들을 조금 더 보충해 줄 테니 그리 아시오·”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건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표행을 막을 수 없다면 내가 표행을 따라가 참사를 막으면 된다·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또 한 번 내게로 집중되었다·
모두가 뜨악했다· 회시가 한 달 후인데 난데없이 표행에 따라가겠다고 하니 다들 놀랄밖에·
그것도 강시 운반조로·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이종산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를 더할나위 없이 뿌듯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가 지금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휴우 승부의 시간이 온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