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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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꿀떡 좀 드십시오·”
“어디서 났어?”
“식당에서 새로 만들고 있기에 몇 개 슬쩍했습니다·”
“입에 넣어줘·”
꿀떡 하나가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한입 깨물자 터져 나오는 꿀맛이 기가막혔다·
“또 파리 잡고 계십니까?”
“파리 잡는 게 아니라 무공수련 하는 거야· 마침 잘 왔다· 도로 식당에 가서 비린내 나는 거 좀 훔쳐와라· 오늘따라 파리가 귀하네· 몇 번만 더하면 금방 동나겠어·”
방법을 좀 바꿔 보았다· 이번엔 젓가락을 찔러 파리를 잡는 게 아니었다· 대신 파리를 허공에 띄워 놓고 양손을 빠르게 놀려 가상의 공간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핵심은 파리들이 날아가는 각기 다른 궤적과 방향 움직임 등을 빠르게 간파해 미리 손을 뻗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새로 생긴 ‘이능력’을 활용해 안력(眼力)을 기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전생에서 포두 가불염이 표행 중 쉬는 시간을 이용해 신입 표사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 옆에서 찢어진 신발을 고치며 엿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싸움은 눈이 칠이다·]
현재 내 능력은 파리 세 마리를 허공에 띄워 놓고 반 식경 정도 붙잡아 두는 수준이었다·
조금 익숙해 지면 벌집 앞에 앉아 벌을 상대로 해볼 작정이었다· 벌에 쏘일까 쪼는 맛도 있고· 그러나 결국에는 권법에 접목을 시켜야 한다·
“오늘 보름인 건 아시죠?”
“어쩌라고?”
“매달 보름에는 표왕부에서 용혈들만 배석하는 저녁 식사가 있지 않습니까? 때마침 일공자님도 어제 표행에서 돌아오셨다고 하니 국주님을 비롯해 네 분 공자님 전부가 모이시는 건 참으로 오랜만인 듯합니다·”
“뭐? 매달 한 번씩 아버지를 모시고 형님들과 함께 표왕부에서 밥을 먹는다고?”
내가 동작을 멈추는 바람에 품 안에서 우왕좌왕하던 파리 세 마리가 부웅 하고 흩어졌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언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들었는데요·”
“하아····”
***
표왕부(鏢王府)는 천룡표국 내에서도 가장 웅장한 전각으로 국주인 이종산이 수십 명의 호위무사를 거느리며 홀로 기거하는 곳이었다·
사흘 만에 또다시 표왕부를 찾은 나는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종산만으로도 살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인데 갑자기 생긴 세 형들까지 있으니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특히 이병룡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삼공자님과 조영영 소저와의 혼인이 잠정 보류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청양 부인께서 표왕부를 찾아가 따지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네요· 불똥이 공자님께로 튈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표왕부로 오기 전 장삼에게 전해 들은 소식이었다·
어쩐지 백선반점에서의 일이 있고 난 후 보복이라도 해올 줄 알았는데 잠잠하더라니· 믿었던 조영영과의 혼인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공황상태에 빠진 모양이었다·
며칠 전 보았던 그 어리고 예쁜 조영영의 얼굴을 생각하면 나도 십분 이해가 갔다· 오죽하면 진짜 이정룡은 죽으려고까지 했겠나·
‘그나저나 오늘쯤 방이 붙었어야 하는데····’
본시 향시를 치르고 나면 사흘째 되는 날 관아를 비롯해 도시의 주요 길목에 급제자 명단을 적은 방이 나붙는다·
한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오늘만 해도 장삼이를 시켜 세 번이나 관아를 다녀오게 했다·
“강서성에서 사람을 백 명 가까이 죽이고 사라졌다는 흉신악살의 용모파기(容貌疤記-용모와 특징을 적은 글)만 잔뜩 붙어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수많은 유생들이 방을 보고 내려가기 위해 지금도 항주 어딘가에서 머물고 있다·
관아에서도 언제까지 미룰 수 없으니 늦어도 내일 아침쯤에는 방이 나붙을 것이다·
그나저나 상차림 한번 휘황찬란하다· 울긋불긋 소채류부터 시작해 각종 해산물이며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고기들까지·
‘이런 걸 먹고산다고?’
다시 한번 사공자로 환생하게 해준 부적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복룡당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식사가 시작되자 이종산이 말문을 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정룡이 복룡당의 오랜 폐단 중 한 가지를 찾아내 바로잡았으니 말입니다·”
일공자 이갑룡이 점잖게 덧붙였다· 올해 서른 살로 당당한 풍채에 용모까지 준수한 그는 언제 보아도 묵직한 멋이 있었다·
한데 말 속에 뼈가 있었다· 분명 나를 칭찬하는 말 것 같은데 방점은 ‘복룡당의 오랜 폐단’에 찍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다시 말했다·
“제가 정룡에게 일을 좀 가르쳐볼까 합니다· 정룡의 나이도 벌써 스물두 살입니다· 놀 만큼 놀았으니 이제 이 형을 도와 표국 일을 하나씩 배워야지 않겠습니까?”
“마치 형님께서 표국 일을 혼자 도맡아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도 계시는데 듣기 민망합니다”
갑자기 끼어든 사람은 이공자이자 복룡당의 당주인 이을룡이었다·
이갑룡의 눈동자가 고요한 호수를 닮았다면 이을룡은 맹수의 그것을 닮았다· 그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 말투에도 호전적인 기질이 그대로 드러났다·
“네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고?”
“갑자기 정룡에게 관심을 쏟으시는 것도 당황스럽군요·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더니 말입니다·”
“정룡에게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동안 맏형으로서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하여 이제부터라도 챙겨줄까 한다· 너도 각별히 신경 좀 쓰거라·”
“그렇지 않아도 정룡은 제가 데려다 가르칠 생각이었습니다· 형님은 늘 그래오셨던 것처럼 표국 일에 매진하십시오·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많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너도 평소 같지는 않구나·”
“평소와 달리 이 녀석이 하필 제가 관리하는 복룡당의 문제를 들추는 바람에 망신을 제대로 당했지 뭡니까· 결자해지라는 말도 있거니와 이 기회에 정룡을 데려다가 아예 자리를 하나 맡겨 볼까 합니다·”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인데 내 눈에는 칼과 검이 오고 가는 것 같았다·
한데 이들은 왜 갑자기 날 가지고 싸우는 걸까? 정말 나를 가르치고 키워줄 생각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전생에서 이정룡은 호수에 빠져 죽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살아났다·
동생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내버려 둔 것에 대해 강호의 인심이 흉흉하다는 얘길 장삼에게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강호의 소문 따위를 신경 쓰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이들이 신경 쓰는 사람은 하늘아래 오직 한 사람 아버지 이종산밖에 없었다·
고로 나를 가르치니 어쩌니 하는 말들은 전부 눈앞에 있는 이종산을 의식한 말이다·
상사병으로 목숨까지 끊으려 한 동생을 아주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 이제라도 슬슬 챙기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딱!
내공이라도 실었는지 이종산의 젓가락 놓는 소리가 흡사 천둥처럼 들렸다·
순간 이갑룡과 이을룡의 살벌한 신경전도 칼로 토막 치듯 뚝 끊어졌다·
아버지가 젓가락을 놓았는데 아들들이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나· 세 형제가 모두 음식을 먹다 말고 차렷자세가 되었다·
“왜 그랬느냐?”
이종산이 무심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야기도 다시 원점인 복룡당으로 돌아왔다·
나는 노릇노릇하게 구운 양꼬치를 간장에 적셔 막 한입 베어 물다가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쟁자수들이 포장을 유지로 바꿔치기하는 걸 우연히 알아차렸기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왜 그랬는지를 묻는 것이다· 너는 한 번도 표국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쟁자수들과 시비가 붙은 적 또한 없고·”
이건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이다· 전립성도 장삼이도 쟁자수며 표사들도 전부 내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았는지만 궁금해 했지 왜 표국 일에 나서고 쟁자수들과 시비가 붙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예전엔 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싸우고 싶고?”
“시비를 걸어 오는데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요·”
“표사 셋과 쟁자수 아홉 명이 치도곤 삼십 대씩을 맞고 풀려났다· 이들은 앞으로 일 년 동안 표행을 나가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처자식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네가 잠깐의 화를 참지 못하고 복룡당에서 벌인 일의 결과다· 할 말이 있느냐?”
이종산은 지금 무슨 생각에선지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야 모르겠지만 나를 가늠해 보려는 일종의 시험이라는 건 알겠다·
시험은 언제나 출제자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걸 모를 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아버지의 계산은 틀렸습니다·”
이갑룡 을룡 병룡이 아연실색했다· 자신들 중 누구도 아버지의 면전에서 ‘당신이 틀렸다’고 말한 적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이 천룡표국의 주인과 정면으로 맞서는 짓이었다·
“정룡 무슨 무례한 짓이냐!”
이갑룡이 낮게 호통을 쳤다·
“이 자식이 미쳤나!”
이을룡도 조용히 한 입 보탰다· 이종산이 한 손을 들어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다시 내게 물었다·
“너의 계산은 무엇이냐?”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일은 제가 벌인 일이 아니라 그들이 벌인 일입니다· 자업자득이라고 하지요· 제가 벌린 일의 결과는 천룡표국이 언젠가 입었을 큰 손실을 작은 손실로 미연에 방지한 것입니다· 하니 그들에게 치도곤이라는 벌을 주셨다면 제게는 상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상벌이 분명해집니다·”
이갑룡 을룡 병룡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이종산은 횃불 같은 눈빛으로 한참이나 내 눈을 지지더니 말했다·
“이제서야 한 걸음을 내딛었구나· 스물두 살에·”
됐다· 이건 칭찬이다· ‘스물두 살’에라는 말은 아쉬움의 표현이지 질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멈추면 나에 대한 평가도 딱 이 정도에서 끝나 버린다· 저 아쉬움을 기대로 바꿔 주어야 한다·
“두 걸음은 어떤 것입니까?”
이종산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내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이종산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했다·
“너는 표왕의 아들이다· 다른 곳도 아닌 천룡표국 안에서 쟁자수 따위가 어찌 감히 표왕의 아들에게 시비를 건단 말이냐? 네 형들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쟁자수의 목을 비틀어 죽였을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얼핏 들으면 내가 용혈들의 위엄을 손상했다고 질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좀 과하지 않은가·
반면 세 형제의 얼굴에선 의기양양함이 느껴졌다· 마치 너와 우리 사이에는 이만큼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난번엔 절더러 죽으라고 하시더니 이번엔 상대를 죽였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항상 둘 중의 하나여야 합니까? 내가 죽거나 상대가 죽거나·”
“너도 살고 상대도 사는 법도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네가 스스로 사자가 되는 것· 그리하여 모든 이들로 하여금 네가 사자임을 알게 하는 것· 하면 아무도 너를 상대로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고 너 또한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느니라·”
“제가 한 일도 그런 것입니다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집법당을 이용했다는 것뿐이죠· 쟁자수들은 강도가 아니고 이곳 역시 강도가 돌아다니는 노상이 아니라 엄격한 규범과 질서가 존재하는 천룡표국이니까요·”
“···!”
“···!”
“···!”
세 형제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종산은 아까보다 훨씬 오랫동안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말했다·
“좋은 한 걸음이다·”
이갑룡 을룡 병룡은 그야말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무언가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 다른 전개가 펼쳐지니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나는 이종산의 입꼬리에 살짝 우물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저건 분명 미소다· 됐다· 이 정도면 오늘 밥값은 했다· 남은 식사시간은 편안하게 먹어도 되겠다·
한데 또 다른 방해꾼이 나타났다· 인기척과 함께 옆구리에 장검을 찬 해골바가지처럼 생긴 장년인이 들어왔다· 표왕부의 호위장 흑살객(黑殺客) 가뢰압이었다·
“아까부터 바깥이 왜 이리 시끄러운 겁니까?”
이을룡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시끄러운 소리라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이종산은 물론이거니와 이갑룡 병룡도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호위장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들었던 것이다·
‘시간을 느리게 흐르도록 하는 이능력을 지녔지만 정작 무림고수들의 평범한 힘은 하나도 가지지 못 했구나·’
나는 무공 특히 내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최대한 빨리 상승의 내공심법을 익혀 고수가 되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항주부 관아에서 지부대인이 통판을 비롯해 무장한 관병 이십여 명을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막아서는데도 기필코 말을 타고 들어와야겠다고 하여 지금 대마장(大馬場)에 억류해 두었습니다·”
“지부대인이 무슨 일로 왔다는 겁니까?”
“그건 국주님을 뵙고 직접 말씀드리겠답니다·”
“이런 물색없는 늙은이를 봤나· 지부대인이면 지부대인이지 감히 누구더러 나오라 마라· 게다가 말을 타고 무장까지한 채 천룡표국으로 들어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말을 타고 문턱을 넘겠다며 고집을 피우긴 했지만 그 태도가 매우 공손한 것이 시비를 걸러 온 건 아닌 듯합니다·”
“걸려면 걸 수는 있답니까?”
“약속 없이 온 손님입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 시간을 정한 다음 다시오라 전하십시오·”
이갑룡도 한 입 보탰다· 성질이 불같은 이을룡과는 달리 확실히 명분부터 갖다 붙이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앗!”
방정맞은 외침과 함께 이병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리자 그는 얼른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러곤 무슨 이유에선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넌 또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 혹시 무슨 사고 쳤어?”
“그게 아니라· 실은 어제 항주 관아에서 향시가 있었습니다· 본시 향시의 급제자 명단은 시내 곳곳에 방(榜)을 써 붙여 알립니다만 3등 안에 든 급제자들은 관리가 직접 찾아가 교지를 전해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래서?”
“소제가 어제 향시를 보았습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듯 이병룡은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봐라· 네 놈이 어제 그렇게 잘난 척을 했지만 결국엔 내가 급제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는 듯·
다음에는 이종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보세요· 아버지 이래도 제게 장가를 가지 말라고 하실 겁니까?’라고 항변하는 듯·
나는 향시에서 3등 안에 들면 관리가 직접 찾아가 교지를 전해준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지부대인이 직접 오는 건 아닐 텐데?
“한데 아버지는 왜 만나려 한단 말이냐?”
“그거야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아버지를 뵙고는 이참에 점수 좀 따놓으려는 수작이겠지요· 항주부 관아의 높은 벼슬아치들 열에 일곱은 아버지 손으로····”
“말이 많구나!”
이종산의 나지막한 일갈에 이병룡이 움찔했다· 이어 이종산은 호위장에게 지시했다·
“잠시 기다리라 이르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장한 관병 이십여 명을 이끌고 온 지부대인을 기다리라고 하면서도 아비나 아들들이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나는 천룡표국과 소위 용혈이라 부르는 표왕의 혈족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전생에서 쟁자수로 살며 지켜보았을 때는 상상조차 못한 세상이었다·
그건 그렇고 사람들은 지부대인이 이병룡에게 교지를 전해주러 왔을 거라는 기대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그랬다· 전생의 기억으로 이병룡이 향시에 거의 말석으로 급제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저 지부대인은 최소한 이병룡을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탁자 밑에서 조용히 손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