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부적의 힘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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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 번 해볼까?
에라 모르겠다·
쫙!
손바닥 가득히 전해오는 찰진 타격감· 동시에 고개가 홱 돌아가며 휘청거리는 이병룡· 그야말로 방심한 틈에 내지른 불의의 뺨따귀였다·
“···!”
“···!”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때린 나도 맞은 이병룡도 공방을 멈춘 채 석상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이 이런 쳐죽일!”
분기탱천한 이병룡이 신형을 쏘았다· 한데 이번엔 장법이나 권법이 아니다· 양손이 기기묘묘하게 뻗고 꺾이고 휘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금나수(擒拏手) 같다·
단 일격에 때려눕히는 대신 잡아서 바닥에 메다꽂은 다음 뼈를 부러뜨릴 속셈인 것이다·
나는 발작적으로 물러나는 한편 손발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형(形)도 없고 식(式)도 없는 그야말로 마구잡이 초식이었다·
한데 단 한 번도 통하지 않았다· 분명 이병룡이 펼치는 금나수가 한동작 한동작 전부 눈에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내 손의 움직임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천만다행인 건 상대의 동작이 느리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궤적과 방향을 미리 읽어 어찌어찌 피하는 것까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어 번을 더 피하며 도망치다 보니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식탁을 등지고 서게 됐다· 더는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손모가지를 꺾어주마!”
순간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볶음콩 한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나는 콩접시를 손으로 ‘탁’ 쳐서 엎어 버렸다·
한 발을 내디디며 내 멱살을 잡아 오던 이병룡이 콩을 밟고 앞으로 미끄러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이병룡은 양손의 방향을 바꿔 바닥을 치려고 했다·
전생에서 본 적이 있다· 쌍장으로 바닥을 쳐 반탄력을 이용해 다시 일어나는 수법이다· 이름이 반장수(反掌手)라던가?
한데 그가 엎어지는 방향에서 한 뼘 정도 앞쪽에 하필 내 무르팍이 위치했다·
내게는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무르팍을 구부려 쓱 밀어 넣었다·
펑! 이병룡이 쌍장으로 바닥을 치는 동시에· 뻑! 그의 인중 또한 내 무르팍에 정확히 찍혔다·
멋들어진 낙법은 온데간데없고 이병룡은 자빠지던 방향까지 바꿔 하늘을 향해 벌러덩 누워 버렸다·
“엇!”
그때쯤엔 나 역시도 콩을 밟아 앞으로 미끄러졌다· 순간 나는 오른쪽 팔꿈치로 누워 있는 이병룡의 인중을 다시 한번 세게 찍었다·
뻑!
두 번이나 인중을 찍힌 이병룡은 눈동자가 확 풀어져 버렸다· 의식을 잃고 숨만 쌕쌕거리는 그의 양쪽 콧구멍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짝! 짝!
“형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으으···!”
뺨을 왔다갔다 두 번 때리니 이병룡의 의식이 조금 돌아왔다· 그때 다급하게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금 이 모습은 누가 봐도 동생이 형님을 피칠갑으로 때려 눕힌 형국이다·
형수될 여자 때문에 서호로 뛰어들었다는 말이 도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형님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면····
‘한데 내가 때렸다고 믿을까?’
발걸음은 점점 가까워졌다·
에라 모르겠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나는 이병룡의 가슴에 올라타서 멱살을 움켜잡았다·
“내 멱살을 함께 잡아요· 어서!”
말 때문이라기 보다 내가 올라타 멱살을 잡으니 본능적으로 이병룡도 함께 내 멱살을 잡았다·
서로가 서로의 멱살을 잡은 상태에서 나는 힘차게 몸을 뒤로 뒤집으며 누워 버렸다·
그러자 이병룡이 자연스럽게 내 가슴에 올라탄 모습이 되었다· 나는 이어 이병룡의 코피를 양손으로 죄다 쓸어모아 내 코에 문질렀다·
계단을 뛰어 올라온 사람은 아까 내려갔던 남자들과 여자들이었다· 3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자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올라온 모양이었다·
때마침 이병룡도 완전히 의식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나와 이병룡을 번갈아 보더니 기겁을 했다· 특히 여자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병룡이 나를 올라타 주먹으로 때려 코피가 나고 내가 피 묻은 손을 필사적으로 휘젓는 바람에 이병룡의 얼굴에도 피가 조금 묻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패륜아라는 소리를 피하고 이병룡은 나한테 맞아 까무러쳤다는 소리를 피하고· 서로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임기응변이었다·
남궁소소가 빽 소리쳤다·
“병룡 공자 그쯤 하시죠!”
“그 그게 아니라····”
“좋은 자리라고 해서 왔는데 솔직히 실망입니다· 사람들을 앞에 두고 동생에게 유치한 면박을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코피를 쏟도록 두들겨 패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요?”
“소저 그게 아니고····”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길 손님들 앞에서는 개에게도 화풀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병룡 공자께서는 정녕 우리가 안중에도 없는 건가요?”
“소저 잠시만 진정을····”
“집안싸움인지 사랑싸움인지 내 알 바 아니지만 이런 건 당사자들끼리만 있을 때 했으면 좋겠군요· 괜히 바쁜 사람 불러내 이러지 마시고요· 전 그만 가겠어요·”
그러면서 남궁소소는 쌩하니 사라졌다·
“이보시오· 소저!”
다급해진 이병룡이 황급히 그녀를 부르며 뒤쫓아갔다· 그의 친구들과 조영영도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러자 3층엔 뒤늦게 사람들을 따라 올라온 장삼과 나만 남게 되었다·
“공자님!”
놀란 장삼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와서는 쓰러진 나를 부축하려 했다· 나는 녀석을 휙 밀어낸 후 엉덩이를 탈탈 털면서 일어났다·
“괘 괜찮으세요?”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추호의 거짓말도 없이 바른대로 말해야 해· 알았지?”
“예?”
“내가 무공을 익혔어?”
“익히다 마셨죠·”
“얼마나?”
“열두세 살 때쯤인가? 무공을 가르치던 교두들께서 더는 못 가르치겠다면서 두손 두발을 다 들었지 않습니까? 이후로는 담을 쌓고 지내셨고요·”
“네가 볼 때는 내 무공실력이 어느 정도····”
나는 말을 하다 말았다· 불과 오늘 아침 장삼이 내게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도 공자님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이 한 마디가 모든 걸 말해주는데 무얼 더 묻겠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먹다 남은 음식에 잔뜩 날아와 앉은 파리들을 발견했다·
“후우····”
한차례 길게 숨을 내쉰 후 아까처럼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 손을 휘젓자 파리 떼가 부웅 하고 날아올랐다·
순간 보이는 파리들의 선명한 움직임 궤도 날갯짓···· 셀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날갯짓이 보였다·
나는 무슨 몽유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한 손에 젓가락을 들고 쭉쭉 뻗어 파리들을 잡기 시작했다·
한 젓가락에 정확히 한 마리씩· 열 번에 두어 번은 끄트머리로 파리를 때려 떨어뜨리긴 했지만 나머지는 전부 성공했다·
‘이게 어떻게···!’
아까 이병룡과 싸울 때처럼 내 손 역시 똑같이 느려졌는데도 불구하고 파리를 잡을 수 있었다·
궤적을 미리 알고 손을 뻗기 때문이다· 동시에 느린 손과 달리 머릿속 계산은 두 배나 빠르게 하고·
날갯짓 하는 파리 나의 젓가락질 도대체 어떻게 하시는 거냐고 묻는 장삼의 늘어지는 목소리····
음? 늘어지는 목소리?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
이런 미친!
온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왜 어째서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시간이 느리게 흘러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솜털이 곤두서는 충격에 털썩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그제야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물!”
“예?”
“물 좀 가져와· 빨리·”
“차가운 거요?”
“그래· 차가운 거!”
장삼이 탁자 위에 누가 먹다 남은 물 주전자를 집어 주둥이에 입을 대고 후루룩 마셨다· 이어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쾅 하고 내려놓고는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장삼마저 사라지자 이제 3층엔 나만 남게 되었다·
정리를 좀 해보자·
전생의 내겐 이런 능력이 없었다· 하면 이정룡의 능력일까? 하지만 이정룡은 사실상 무공을 거의 익히지 않았다·
게다가 집중을 하면 시간이 느려지는 요술은 무공과 같은 육체적 능력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그때였다· 갑자기 가슴 쪽에서 화르르 불길이 일어났다· 놀란 나는 재빨리 상의를 모두 벗어 던져 버렸다·
그러자 훤히 드러난 맨살의 내 가슴에서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복잡한 가운데 무언가 정교한 법칙이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문양이 빛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옷을 태울 정도로 강력한 빛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가슴이 뜨겁거나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빛은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마치 몸속 어딘가 깊은 곳으로 꺼져 드는 것처럼·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죽간본!”
틀림없다· 전생에서 죽기 직전 내 손으로 태워버린 공자의 죽간본이 그 속에 새겨져 있던 고대의 부적이 화염 속에서 나와 함께 타들어 가는 동안 몸속으로 들어와 각인된 모양이었다·
3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환생한 것도 집중을 하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도 모두 이 부적이 지닌 미지의 힘 때문임에 틀림없었다·
“대체 무슨 부적이기에···!”
때마침 장삼이 물그릇을 갖고 올라왔다· 그는 웃통을 벗고 있는 나와 저만치 탁자 아래에서 불타고 있는 상의를 차례로 보고는 후다닥 달려가 갖고 온 물을 홱 끼얹어 버렸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빽 소리질렀다·
“왜 멀쩡한 옷은 벗어 태우고 그러세요?”
“장삼아·”
“예!”
“나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요?”
“···대박 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