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향시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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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퍽! 퍽!
“이런 쳐죽일 놈의 새끼! 기껏 상자수를 시켜주었더니 장난질을 쳐? 복룡당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배은망덕한 새끼!”
내공 실린 발길질 대여섯 번에 고중태는 피투성이가 되더니 정신까지 잃어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고중태를 때려눕힌 사내는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는 지 죽립과 경장 차림에 허리에는 대도를 찬 중년인이었다·
왼쪽 귓불에서 시작해 턱밑으로 길게 가른 칼자국이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사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함께 온 것으로 짐작되는 칼잡이들이 대여섯 명 정도 더 있었다·
모두 사내와 마찬가지로 경장 차림에 도검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사내는 이어 뒤돌아 고중태와 함께 일하던 쟁자수들을 쓸어 보며 외쳐 물었다·
“네 놈들도 한 통속이렷다?”
치켜뜬 눈깔 사이로 서늘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람 죽이기를 예사로 하는 무인들만이 낼 수 있는 진짜 살기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쟁자수들을 겁주어 입막음하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고중태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
쟁자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살려 주십시오· 장 표두님!”
“살려 주십시오· 장 표두님!”
“닥쳐라· 이놈들· 내 결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일단 네놈들은 전부 이번 표행에서 빠진다·”
모르긴 몰라도 저 쟁자수들은 앞으로 몇 달은 표행을 맡기 어려울 것이다· 표행을 맡지 못하면 월급도 반 토막으로 줄어든다·
집에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라도 있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장 표두라 불린 자는 표사들에게 일러 나머지 일들을 수습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사공자인 나를 보고도 말없이 지나치더니 전립성에게 다가가 더없이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 장궤님·”
“포장을 전부 바꾸고 표행단을 다시 꾸려오기 전까지 출표 승인을 보류하겠소· 더불어 나 역시 이번 일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알아두시오·”
표사와 쟁자수들을 차출해 표행단을 꾸리는 건 표두의 권한이지만 마지막 점검 후 표행을 떠나도 좋다는 승인을 하는 것은 장궤들의 권한이었다·
“이를 말씀입니까? 경력도 오래되고 무엇보다 쟁자수들을 잘 다루는 자인지라 믿고 맡겼는데 이리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뒤통수는 상자수가 맞은 것 같은데·”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모른 척한다면 그야말로 막가자는 거다·
장 표두라 불린 자가 뒤늦게 나를 돌아보며 아는 체를 해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사공자님을 뵙습니다·”
“나는 누구를 뵙는 것이오?”
“복룡당 소속 표두 장량기입니다·”
“귀하가 이번 표행의 책임자이시오?”
“그렇습니다·”
“옛말에 이르길 바람 불 때 불 지르고 깜깜한 밤에 살인하라고 했소· 일을 도모하려면 때와 기회를 살펴 가장 적절한 때에 크게 한탕 하고 빠져야 하는 뜻이지· 그러지 않고 푼돈 욕심에 계속 빼먹으려 드니 나 같은 얼치기한테 들키고 그러는 것이오·”
“공자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 라고 고중태가 깨어나면 전해주시오·”
“···!”
“왜 더 할 말이 있소?”
“아닙니다·”
시뻘게진 얼굴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사공자라는 신분만 아니면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내가 개망신을 주었으니 지금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를 것이다·
장량기는 내게 두 손을 맞잡아 가슴까지 올리는 강호의 인사법 이른바 포권지례를 한 후 돌아섰다·
함께 왔던 표사들도 그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호구 등신에 표국일이라곤 눈곱만큼도 몰랐던 내가 갑자기 노련한 상자수를 묵사발로 만들고도 모자라 표두 장량기까지 쩔쩔매게 했으니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조용히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모두 각자의 상관에게 보고하러 가는 거다·
그 상관의 상관의 상관을 따라가다 보면 국주가 나오고 일공자가 나오고 이공자가 나오고 삼공자가 나온다·
표국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은 각자의 정보망을 통해 그들에게 보고가 된다·
누가 더 빨리 듣느냐 누가 더 자세하게 듣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전립성이 내게 말했다·
“이번 일에는 신참 장궤들도 몇 명 연관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일단 목전의 일을 수습한 후 집법당에 고해 철저한 조사와 함께 징계를 받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 한 저도 물론이고요·”
“이만한 일로 무슨 집법당까지나· 저 그렇게 고지식한 사람 아닙니다···· 라고 하기에는 본 사람이 좀 많긴 하군요·”
잠깐 사이에 구경꾼은 백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대부분 쟁자수들이었지만 칼 찬 표사나 장궤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칼 찬 표사들은 가슴에 칼을 품은 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고 장궤들은 늦게 나타난 탓에 주변의 쟁자수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듣고는 입이 쩍쩍 벌어졌다·
“그건 그렇고 최근 1~2년 사이에 들어온 쟁자수들 중에 20대 초반의 절름발이가 있습니까? 이름은 조연생이라고 합니다만·”
나는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전립성이라면 확실하게 알 것이다· 바로 그가 나를 채용해 주었으니까·
“일하는 중에 절름발이가 된 경우는 있어도 처음부터 절름발이를 뽑는 경우는 특별한 재주가 있지 않고서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더구나 최근 1~2년 사이에는 확실히 없습니다· 조연생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요·”
이 정도면 확실히 안심해도 되겠다·
“한데 어찌 그러시는지요?”
“아는 사람의 먼 친척이 우리 표국으로 들어오고 싶대서 왔는지 한번 물어본 겁니다· 한데 안 왔나 보군요· 혹시라도 방금 말한 사람이 나타나거든 합격을 시키고 제게 귀띔 좀 해주시겠습니까?”
“합격시켜준다는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가 나타나면 공자님께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섭섭하군요· 고작 쟁자수 하나 꽂아 주는 게 무슨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리 망신을 주시다니· 전 장궤께서도 제가 그리 만만해 보이십니까?”
“그것이 아니오라····”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
당황해하는 전립성을 보자 배꼽이 빠질 것 같았다· 전생에서 표국일을 배울 때 그의 혼찌검에 눈물 콧물 쏙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마음으로 굴복하고 존경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사적인 감정으로 나를 괴롭힌 적이 없었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번엔 전립성이 내게 물었다·
“말씀하십시오·”
“상자수가 포장을 바꾼 걸 어찌 아셨는지요?”
순간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뚝 그치며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내 입을 향했다·
자신들도 궁금해하는 걸 전립성이 때마침 물어 주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긴 전생에서 고중태 놈이 저렇게 해 먹다 사고가 나서 표국이 크게 손해를 봤기 때문에 알지·
“냄새로 알았습니다·”
“냄새로요?”
“유포와 달리 종이에 기름을 바르면 고소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보통 한 달쯤 후에는 사라지는데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면 만든 지 얼마 안 된 유지인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군중 속 몇 곳에서 ‘아아’ 하는 탄성이 자그맣게 흘러나왔다· 주로 늙은 쟁자수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쟁자수와 표사 그리고 장궤들이 정말 그렇냐고 늙은 쟁자수들에게 물었고 늙은 쟁자수들이 과연 그렇다고 하자 다시 한번 약간의 시간차들을 두고 ‘아아’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너도나도 마차 주변의 냄새를 맡느라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기름을 광목천에 바르는 것과 달리 종이에 바르면 살짝 고소한 냄새가 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코를 아주 가까이 가져다 대야 비로소 맡을 수준이지 이렇게 길 가다 갑자기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한테 빚을 한번 지신 겁니다·”
나는 전립성을 향해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지고는 홀연히 인파 속을 걸어갔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 주었다·
다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들 말고 모두 자리로 돌아가라· 오늘 표행을 떠나는 마차들 전부 내가 직접 검수할 것인 즉!”
전립성의 일갈에 쟁자수들이 날벼락 맞은 개떼처럼 흩어졌다·
***
장원을 나온 나는 장삼과 함께 서호를 따라 난 길을 걸었다· 배가 한가롭게 떠 있는 호수와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수양버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침을 안 먹고 나왔더니 배가 출출하네·”
“그러게요· 크크크·”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좀 먹고 나올걸·”
“이를 말씀입니까· 크크크·”
“이게 그렇게 웃긴 말이냐?”
“너무 통쾌해서요·”
“뭐가?”
“아까 말입니다· 장 표두가 고중태의 싸대기를 날라 칠 때 대가리가 팍팍 돌아가는 거 보셨습니까? 십 년 묵은 체증이 한 방에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시건방진 쟁자수들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할 때는 또 어떻고요·”
“그게 그렇게 시원했어?”
“시원하다 말다요· 종놈 팔자는 주인 따라간다고· 그동안 제가 쟁자수들에게 얼마나 수모를 당하고 살았는지 공자님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뭘 그 정도까지나·······”
전생에서 쟁자수였던 나는 살짝 동의하기 어려웠다· 우선 나부터만 해도 이정룡이나 장삼을 괴롭힌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밑바닥 인생이긴 쟁자수가 더한데 괴롭힐 깜냥이나 되냐 말이다·
“공자님은 그래도 신분이 있기 때문에 쟁자수놈들이 면전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진 못 하죠· 하지만 저에게는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욕을 해댑니다· 저잣거리에서 오다가다 만나면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 돈을 빼앗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요·”
“돈까지 빼앗았다고?”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쟁자수 일이 워낙 고되고 험하다 보니 밑바닥 인생들이 주로 모이긴 한다· 그러다 보니 욕질에 싸움질에 크고 작은 범죄까지· 온갖 말썽이란 말썽은 다 일어난다·
나는 그런 인간들 속에서 무려 30년을 살았고·
“걱정하지 마라· 앞으로는 그들이 네 눈치를 볼 테니·”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속고만 살았어?”
“정말 옛날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군요·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싹 바뀐다고 하더니 지금 공자님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는데·”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언제나 항상·”
“좀··· 뻔뻔해지셨달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고요·”
나는 살짝 입맛을 다신 후 물었다·
“그래서 싫어?”
“천만의 말씀을요· 딱 지금처럼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인을 심부름 보낸 후 공자님께서 서호에 몸을 던지셨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진짜 이정룡이 아니었기에 장삼과 이렇게 오래 함께 있거나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무언가 깊은 정이 있는 것 같았다·
“너도 뻔뻔해 져라· 그래야 편하다·”
“공자님”
“응·”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는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여자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건 공자님이시지 제가 아니니까요· 다만 조금 불편할 뿐·”
순간 무언가 ‘욱!’ 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입으로 한 말이 있다 보니 터져 나오려는 화를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내 얼굴에 뭐 묻었니?”
“왜요?”
“아까부터 젊은 여자들이 나를 힐끔거려·”
“그게 어쨌는데요?”
“혹시 알아본 걸까?”
“뭐를요?”
“내가 이정룡이라는 거 말이야· 그럼 서호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했다는 것도 알 테고· 그래서 힐끔거리는 건가? 아 이건 좀 민망하긴 하네·”
“전혀 민망하신 표정이 아닌데요· 그리고 공자님 이름은 알아도 얼굴까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유흥가에서도 자주 가는 기루나 도박판에서나 알아볼까·”
“그런데 왜 자꾸 힐끔거리지?”
“나 참 처음도 아닌데 새삼스레 왜 그러실까?”
순간 나는 장삼이 하는 밀 뜻을 알아차렸다· 전생에서 내가 이정룡을 보았을 때도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잘생긴 얼굴로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두 다리가 멀쩡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잘생긴 얼굴까지 덤으로· 정말 나는 이제 더 바라는 것이 없었다· 딱 한 가지· 표사가 되는 것만 빼고·
“다 왔습니다· 공자님·”
걸음을 멈춘 곳에는 높다란 담장을 성벽처럼 거느린 대문이 나타났다· 향시가 치러지는 항주부 관아였다·
대문은 포졸들이 지키는 가운데 굳게 닫혀있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유생들도 아직은 많이 모이지 않은 상태였다·
“진짜 향시를 보실 겁니까?”
“뭐야 그 말투는·”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쓰시니 그렇지요· 10년 만에 처음 표국일을 배우겠다고 하셔서 좋아라했더니만 뜬금없이 거인 표사라니····”
“아주 확신을 한다?”
“당연하죠· 향주부에서 치르는 향시라면 만 명은 족히 모일 겁니다· 모두 청운의 꿈을 안고 평생 글공부에만 매진한 유생들이지요· 하지만 공자님은 평생을 기루와 도박에 매진···· 죄송합니다·”
“보퉁이 이리 줘·”
“예·”
전생에서 천룡표국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불편한 다리는 쟁자수가 되고 난 후에도 계속 문제가 됐다·
큰돈을 만지려면 반드시 위험과 고통이 따르는 표행에 뽑혀야 한다·
한데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떤 표두들도 나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전립성의 소개로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서점의 필사일을 돕게 됐다·
다행히 글공부는 어린 시절 꽤 했고 명필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세필로 병아리 발자국만 한 작은 글씨들을 깔끔하게 잘 썼다·
별의별 책들을 다 필사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한 건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한 사람들의 답문이었다·
특히 과거시험을 보는 철이 되면 그 수요가 폭증했는데 그때 필사한 글들만 족히 수천 장은 될 것이다·
당연히 나는 올해 장원급제한 놈이 쓴 답문을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참고로 그놈은 원래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유생이었다· 그리고 젊고 예쁜 마누라가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살며 무려 아홉 번을 도전한 끝에 기어이 장원급제를 한다·
이 아름다운 사연과 달리 놈은 벼슬길에 오르자마자 전무후무한 탐관오리가 되어 마누라와 함께 백성들의 고혈을 죽을 때까지 빨아 처먹는다·
그놈 때문에 파탄 난 집안이 한 둘이 아니요 억울하게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다 죽은 목숨 또한 한둘이 아니다·
워낙 유명한 놈인지라 아직도 이름이 기억난다· 양군벽이라고·
“정 죄송하면 내가 시키는 일이나 한 가지 해·”
“그게 뭔데요?”
“지금부터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서른 중반쯤 되는 나이에 하관이 뾰족하고 왼쪽 눈밑에 손톱만 한 흑점이 있는 유생을 찾아· 그리고 나는 소주에서 왔는데 귀하가 창촌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유씨의 남편 양군벽이냐고 물어·”
“양군벽이 누군데요?”
“누군지는 알 것 없고 무조건 물어· 그리고 맞다고 하면 세상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 ‘당신 부인이 푸줏간 방 씨와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문이 저자에 파다합디다·’라고·”
“예?”
“그러곤 더는 말을 섞지 말고 가버려· 만약 쫓아오면서 물어보면 그대로 도망치고· 애가 타서 미치도록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