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화
디레트는 오늘 느꼈던 황당함 중 가장 커다란 황당함을 느꼈다·
저걸 말이라고 지껄인단 말인가??
“글 글쎄· 왜일까?”
“흐음·”
유크벨티레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5학년이었고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와 같은 학파였다·
‘모르겠군· 왜지?’
이 정도 공통점이라면 후배가 똑같이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인데·
“···조금 더 생각해봐·”
“푸른 용의 탑과 검은 거북이 탑이라는 차이점이 있군·”
“그게 꼭 중요하진··· 아니다· 계속해봐·”
“혹시 내가 황족이라 그런 건가? 후배의 가문이 귀족파였었나···”
“····”
“디레트? 디레트?”
고민하던 유크벨티레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까마귀 수인 친구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유크벨티레는 친구의 무례한 태도를 안타까워했다·
그녀가 너그러운 사람이라 망정이지 다른 마법사였다면 분명 디레트에게 화를 냈으리라·
‘저런 무례한 태도는 디레트에게도 좋지 않을 텐데···’
* * *
4학년 황동 골렘은 다른 예지 마법 학파 학생들과 같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교수님을 쳐다보았다·
원래 학파 특성상 파셀레트 교수는 광증이 잦은 편이었다·
예지 마법은 마법사의 정신에 작용하는 맹독 같은 것이라 오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광기에 빠져들기 쉬웠다· 교수의 인격이 괜히 여러 갈래로 나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다·
“오오오오온다! 오오오오온다고!”
“저런 인격이 있으셨나?”
“글쎄···”
“그보다 선배님· 계속 골렘으로 계실 건가요?”
“응? 응·”
“안 답답하세요?”
다른 후배들은 선배가 왜 골렘으로 변신해있는지 잘 알았다·
위험한 불운을 피하고 견뎌내기 위해서였다·
예지 마법사들의 적은 찾아오는 광기뿐만이 아니었다·
관측 탓에 뒤틀린 미래 그로 인해 덮쳐오는 불운 가끔씩 찾아와서 제국의 내년 산출량을 예지해달라고 징징대는 관료들까지 모두 예지 마법사의 적이었다·
골렘 선배는 그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예지 마법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학생이었고 덕분에 수많은 불운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걸 막고 피하기 위해 골렘으로 변신한 건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그렇지·
“답답하지· 그래서 재질을 바꿨잖아· 청동에서 황동으로·”
“···그 그렇군요·”
예지 마법 학파 내에서도 광기의 서열은 있는 법·
다른 후배들은 괜히 골렘 선배한테 캐묻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선배님· 교수님은 왜 저러시는 겁니까? 새 인격인가요?”
“아니··· 아주 불길한 미래를 보신 것 같은데·”
“종말이 오오오오오온다!”
파셀레트 교수는 안락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로 비명을 질러댔다·
아무리 봐도 새 인격보다는 불길한 미래를 보고 일시적인 광란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제국 멸망의 미래라도 본 걸까요?”
“교수님께서 그런 미래를 그냥 쉽게 보시진 않지·”
파셀레트 교수 같은 마법사라도 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준비와 작업 그리고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그런 예지를 갑자기 이런 때에 진행하지는 않았다· 기껏해봤자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미래일 터였다·
“1 2일 안에 일어날 법한 일들 중에 저렇게 위험하고 불길한 일이 있나요?”
“잘 모르겠군· 하지만 미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니까···”
골렘 선배도 짐작이 가는 게 없었다·
앞으로 하루 이틀 사이에 교수님이 저렇게 충격을 받을 일이 일어날 게 있단 말인가?
“혹시 제국에서 내려오는 지원금이 깎이나?”
“깎이더라도 흑마법 학파가 깎이지 우리는 깎일 이유가 없을 텐데·”
“그러면 혹시 교수님 신상에 관한 문제인가? 에인로가드 교수 직위가 연장됐다거나···”
“우리 학파는 대신할 마법사 적어서 애초에 교수님도 알고 계셨을 텐데? 이제 와서 충격 받을 이유가 없잖아·”
학생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교수가 충격 받을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는 사이 황동 골렘 선배가 박수를 쳤다·
“다들· 강의 들을 준비해라· 오늘은 내가 진행해야겠군·”
“교수님도 쓰러지셨는데 쉬면 안 됩니까?”
“오· 안 돼· 내가 미래를 엿보니 오늘 강의를 안 하면 후배들이 낙제를 하더라고·”
엄격한 선배의 대답에 학생들은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끼이익-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아직 시작 안 했다· 앉아라· 후배·”
황동 골렘은 문을 열고 서둘러 들어오는 후배의 모습에 괜찮다는 듯이 손짓했다·
“오늘은 교수님이 편찮으셔서 내가 진행할 거다·”
“저런· 괜찮으십니까?”
“곧 회복하실 거야· 이상한 미래를 보셨는지 자꾸 종말이 온다고··· 종말이 오오오오온다!!!”
골렘 선배는 이한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기겁해서 외쳤다·
인간 형태의 해골 교장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와· 선배· 잘 따라하시는데요·”
“정말 저렇게 외치셨습니까?”
“응· 저거랑 거의 똑같아·”
후배들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떠드는 동안 황동 골렘 학생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종말이 오오오오오온다!”
“선배님· 그만 하셔도 되는데요·”
“왜 두 번이나···?”
“뒤 뒤를 보라고!”
“?”
예지 마법 학파 학생들은 고개를 돌렸다·
대부분은 미친 분신을 보고서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애초에 해골 교장의 인간 형태라는 게 생각보다 보기 드문 모습인 것이다·
그 중 우연히 해골 교장의 인간 형태를 본 적 있는 학생은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종말이 오오오오오오오온다!”
“???”
“무 무슨 마법이야? 대체 다들 왜 이래?”
“···죄송합니다·”
이한은 대신 사과했다·
사실 미친 분신이 자꾸 따라오는 게 이한 잘못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사과해야 하지 않겠는가·
후배가 최선을 다해(물론 어느 정도 각색은 들어갔다) 설명하자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 교장은 아니고 해골 교장의 분신 같은 건데 에인로가드 마법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갑자기 방문하셨다···
‘교수님이 왜 저렇게 되신 건지 알겠군!’
마음 같아서는 학생들도 종말이 온다고 소리치며 미친 척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해골 교장이나 해골 교장의 분신이나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대마법사가 옆에 앉아 강의를 지켜보는 건 똑같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뭐하나· 시작해라·”
“···앗 예·”
황동 골렘 선배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뻣뻣하게 돌아서서 칠판으로 걸어가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쿵!
“불운 때문입니까!?”
“아 아니· 방금 건 그냥 긴장해서 발 꼬인 거다·”
“····”
이한은 깊이 반성했다·
‘죄송합니다!’
“그보다 후배· 저번 예언은 어땠지? 불운을 피하는 데에 도움이 좀 됐나?”
골렘 선배는 후배의 모습을 보자 저번 일이 떠올라서 물었다·
저번에 이 후배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강한 예언을 받아갔었다·
‘황족과 접촉하지 말라는 예언이었지·’
그 예언을 떠올린 골렘 선배는 이윽고 다른 곳에도 생각이 도달했다·
생각해보니 그 때도 해골 교장의 미친 분신한테 탈출한 다음 피하려고 예언을 받은 것 아니었나?
뒤에 저렇게 있다는 건 그 예언이 별 효과가···
“···제가 잘 못 지킨 것 같습니다·”
“그 그래 보인다·”
후배의 표정에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상념은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후배들도 힘든 일을 자주 겪었지만 지금 눈앞의 후배가 드러내는 감정은 그 차원이 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럼 강의를 시작하··· 겠습니다· 저번에 천문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죠·”
천문 혹은 천상 마법이라 불리는 이 마법은 별의 힘을 빌리고 이용하는 마법이었다·
예지 마법사들은 필연적으로 천문 마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령이나 악마의 힘을 빌려서 미래를 예측하려면 몸이나 영혼이 백 개여도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별들은 천상의 법칙으로 움직입니다· 덕분에 뛰어난 마법사들은 그 움직임의 힘을 빌려 미래를 엿볼 수 있죠· 이런 관측은 마법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광기를 막아줍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린다면 직접 별과 계약할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 그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설마 오늘 이 자리에서 별과 계약하겠다는 욕심 많은 사람은 없겠죠?”
학생들은 선배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웃지 못했다· 이한과 미친 분신이었다·
이한은 뭐라도 씹은 것처럼 음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던 미친 분신이 이한에게 말했다·
“겁쟁이들이로군·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하다니·”
“···앗· 그럼 스승님께서 따끔하게 훈계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너희들도 별과 계약하라고·”
“왕족의 제자도 아닌 자들에게 불필요하게 간섭할 이유가 없지·”
‘칫·’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여기 선배들을 별과 계약하라고 떠밀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오늘 강의에서는 별들의 움직임을 읽고 미래를 엿보는 훈련을 할 겁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지 마법은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이런 천문 마법으로 미래를 엿보는 건 더더욱 적성이 중요했다·
어느 마법사는 푸른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다보면 미래에 대한 영감이 찾아오는데 다른 마법사는 같은 별을 몇 년 관찰해도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과 영성이 일치하는 별을 먼저 찾는 게 중요했다· 징조와 점괘 규칙은 그 뒤였다·
“그··· 어떠셨는지···”
황동 골렘 선배는 설명을 마친 뒤 공손한 자세로 미친 분신 앞에 섰다·
해골 교장이든 해골 교장의 분신이든 ‘교장’은 똑같지 않은가·
당연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난하군·”
“감··· 감사합니다!”
황동 골렘 선배는 뛸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다·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그 태도가 지나치게 안일하군·”
“···죄송합니다·”
선배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수준을 감안해봤을 때 그런 안일한 태도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모든 이들이 왕족의 밑에서 배울 수는 없을 테니까·”
“감 감사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변화가 없다는 건 마법사로서 반성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 죄송합니다만· 대마법사님· 제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쉽게 설명해주도록 하지·”
미친 분신은 선선히 대답했다·
“다른 마법사들은 안일하고 나태하게 가르쳐줘도 되지만 여기 이 제자는 그렇게 대하지 말도록· 새로 탄생하는 별의 열화처럼 강한 의욕으로 가르쳐라·”
“알 알겠습니다!”
미친 분신은 너그럽고 관대한 태도로 목표를 제시했다·
객성 아르나와 계약한 만큼 이 제자는 다른 떠돌이별들을 읽는 데에도 뛰어난 자질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읽기 쉬운 혜성이나 신성(新星) 중 한두개의 움직임을 지금 외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예지 마법을 익힐수록 마법사는 불운에 대비하기 쉬워지고 앞일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게 가능해졌으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미친 분신의 기준이었지 이한의 기준은 아니었다· 이한은 그냥 선배들하고 같이 달의 움직임이나 푸른 별 붉은 별이나 찾고 싶었다·
“····”
졸지에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은 꼴이 된 이한은 침묵했다·
그러다가 미친 분신이 안 보는 사이 조용히 골렘 선배한테 속삭였다·
“혹시 스승님이 무슨 말을 지껄일지 미리 예측하는 마법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