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5화
“왜 그러냐?!”
“석공 클럽 의뢰가 취소됐다니···”
“그 그렇게 좌절할 필요까진 없지 않나?”
선배들은 당황해하며 이한을 위로했다·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석공 클럽은 의뢰 취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법사 카드 수집 클럽 같은 곳이라면 의뢰 취소 때문에 외출까지 날아가면 땅이 꺼져라 펑펑 울고 에인로가드 본관에 방화를 시도하겠지만 석공 클럽은 애초에 클럽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의뢰를 받는 곳이라 취소되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의뢰들도 쌓여 있을 거고 거기 놈들은 오히려 외출 안 해도 되어서 좋아할걸?”
“···그렇습니까?”
이한은 살짝 솔깃해했다·
완전히 믿기지는 않았지만 죄책감 때문에 조금 믿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이야· 그··· 안파곤이었나?”
“아· 안파곤 선배님· 맞습니다·”
부여 마법 학파이자 그나마 학파 내에서 사교적인 학생 역할을 맡고 있는 안파곤·
이한도 만나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걔는 저번에 외부 의뢰 받아서 나가야 했는데 나가기 싫다고 에인로가드 지하 광산으로 숨어버렸잖아· 데스 나이트들이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
에인로가드 지하 광산을 지적해야 할지 아니면 숨어버린 걸 지적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한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여하튼 너무 신경 쓰지 마· 워다나즈·”
“맞아 맞아· 그리고 네 잘못도 아니잖아?”
“···크흑!”
“!??”
* * *
-와아아아아!
-귀환을 환영합니다!
봉사가 끝나고 이한은 주방 클럽 학생들과 같이 에인로가드 성문으로 귀환했다·
석공 클럽의 의뢰도 취소됐고 워낙 외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억지로 더 버틸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멀리서 학생들이 환영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클럽 외출 주간에는 이런 배웅이나 환영도 해주나?’
“어· 원래 이런 것도 해줍니까?”
“푸흐· 아냐· 우리가 나갔다 오면 식재료 받아오니까 그거 기대하고 기다리는 거야·”
“····”
자세히 보니 학생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내놓으라는 듯한 의도가 역력히 느껴졌다·
팔크리우스는 껄껄 웃으며 식량 자루의 입구를 열었다·
“자 받아가라! 여기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가 챙겨 온 식량이다!”
“와··· 와아아아아!”
“설 설마 진짜 뿌릴 줄이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후한 반응에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보통 빵 반 개나 치즈 정도를 얇게 썰어서 뿌리던 주방 클럽이 이렇게 후하게 뿌릴 줄이야?
갓 구운 뜨끈뜨끈한 롤빵이 넉넉하게 던져지고 남부산 치즈 복숭아와 사과 등등이 척척 내밀어졌다·
“팔크리우스 선배! 정말 받아가도 되는 겁니까?”
“우하하· 속고만 살았나? 말했듯이 여기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가 넉넉히 챙겨왔다·”
“혹시 세뇌 마법을 썼나요?”
“무슨 미친 소리를··· 잠깐· 워다나즈 혹시 썼냐?”
부정하려던 팔크리우스는 혹시 몰라서 고개를 돌렸다·
광경을 다시 떠올려보니 후배가 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그러나 워다나즈는 옆에 없었다· 깜짝 놀라서 주변을 찾아보니 저 멀리 가르시아 교수와 함께 걸어가는 후배가 보였다·
“푸흐· 인기도 좋다니까·”
후배가 다급하게 팔을 흔들자 팔크리우스도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
인사성도 참 좋구나!
* * *
“앗· 워다나즈 돌아왔구나!”
“응·”
“근데 뭐하고 있는 거야?”
“반성문 쓰는데·”
이한은 염동력으로 깃펜을 움직여 종이 위에 글씨를 남겼다·
앞으로 악신숭배자를 만나도 직접 싸우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악신숭배자를 만나도 직접 싸우지 않겠습니다·
···
“····”
푸른 용의 탑 친구는 경악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클럽 때문에 외출한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그러나 친구의 경악과 달리 이한의 마음은 평온과 감사로 가득했다·
이 정도면 매우 관대한 처벌이었던 것이다·
‘역시 가르시아 교수님은 에인로가드 제일 아니 제국 제일의 교수님이시다·’
가르시아 교수도 이제 이한의 마법 실력 정도라면 이런 반성문 정도는 쉽게 복제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런데도 반성문으로 끝내줬다는 건 감사할 일이었다·
이한은 알아서 움직이는 깃펜을 내버려두고 책을 펼쳤다· 거의 2주일 동안 외출한 만큼 이번 주말에 강의 복습을 좀 해둬야 했다·
‘<지팡이 재료와 마법 증폭>··· 음· 이건 지팡이 다 만들었으니까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겠지? 패스· <식물과 함께하는 마법사의 삶>··· 이것도 생각해보니 저번에 끝내놨었군· 패스· <심화 환상 마법과 영체학 이론> 이것도···’
그러나 생각보다 복습 과정은 빨리 끝났다·
워낙 중간고사 이전에 치열하게 달린 탓에 1 2주 빠진다고 늦춰질 게 없었던 것이다·
‘···어라?’
이한은 혹시 빼놓은 게 있나 다시 훑어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머쓱해진 기분으로 이한은 책을 덮었다·
‘음· 석공 클럽 의뢰나 생각해야겠군·’
이한을 납치 아니 데리고 가서 혼을 낸 가르시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악신숭배자와 정면대결하지 마세요!!!!
-넵!
-스테달 나고라는 신분으로 악당들 습격하지도 말고요!!!!
-넵···
-참· 이한 학생· 석공 클럽 학생들이 자룬 학생을 찾고 있더군요· 이한 학생한테도 도움 되는 일일 테니까 같이 찾아보세요·
‘너무 감정 변화가 극심하신 거 아닌가?’
반성은 반성이고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하는 데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석공 클럽에 소속된 학생들은 각자 받은 의뢰 때문에 대부분 바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이번처럼 외부 의뢰가 취소되어도 학생들은 ‘그래? 그런가보군’하고 넘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석공 클럽 학생들은 보기 드물게 뭉쳐서 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이한도 잘 아는 선배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
이 변환 마법 학파의 드워프 선배는 교우 관계가 좁고 황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찌나 황금을 좋아하는지 강의를 맡아서 올라가야 할 시간에도 자기 지하 공방에 처박혀서 채굴에만 몰두했다·
덕분에 교수한테 붙잡혀 징벌방으로 끌려가기도 했고·
-다들 자룬 선배님은 왜 찾으시는 거죠? 그리고 저한테 도움이 된다는 건··· 마법 이야기십니까? 지금 배우고 있는 변환 마법도 아직 남아서 더 추가로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한 학생· 모든 걸 다 마법과 관련해서 생각하는 버릇 좀 버려요· 그러다 진짜 몸 상하겠어요·
‘아니!’
이한은 억울했다·
방금 대화를 논리적으로 추측했을 때 마법 가능성이 높아서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람을 무슨 마법 광인처럼 이야기하다니·
-자룬 학생도 석공 클럽이거든요·
-과연··· 예? 들어본 적 없는데요?!
-모든 클럽 회원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아니니까요· 여하튼 자룬 학생은 거의 이름만 올려놓고 따로 활동 중이었는데 이런 신청서를 낸 거예요·
신청서
강철구두 가문 자룬
위 학생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청서를 작성함·
-오리하르콘 채굴을 위한 광업용 아티팩트 필요
-에인로가드의 지원을 받아 오리하르콘을 채굴하면 드워프를 위한 명예로운 헌신에 이름을 남겨주겠음(금화 지불은 현실적으로 무리)
-외부 마법사 초빙도 괜찮지만 본인의 지시를 따라야 함(따르지 않을 경우 즉시 추방)
···
‘혹시 가이난도가 썼나?’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에인로가드 쪽에 자신이 오리하르콘 채굴할 건데 광산용 아티팩트를 빌려달라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비용을 이름을 남겨주는 명예로 퉁치려는 욕심이 황당할 지경이었다·
가이난도도 저 정도로 욕심 넘치는 신청서는 안 쓸 것 같은데···!
게다가 외부 마법사를 초빙해서 전력으로 쓰겠다는 생각도 기가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에인로가드까지 올 마법사가 뭐가 아쉬워 저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이한이 보기에 저런 무례한 제안을 받고 올 마법사는 속으로 칼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룬을 뒤에서 습격한 다음 오리하르콘을 독차지하려는···
-잠깐· 교수님· 그럼 설마 자룬 선배가 오리하르콘 광맥을 찾은 겁니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그러니까 석공 클럽 학생들이 찾고 있는 거겠죠·
-···!
이한은 놀랐다·
에인로가드가 아무리 지하에는 괴물이 산맥에는 고대의 대마법사가 기숙사에는 드래곤이 있다지만 광산에서 오리하르콘 광맥까지 나올 줄이야·
-저는 못 들었습니다만··· 아· 제가 외출한 상태라서 소식이 늦은 모양입니다·
-음···
가르시아 교수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뜸을 들인 교수는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아마 외출 안 했어도 다들 말 안 해줬을 것 같···
-····
-···사실 석공 클럽 학생들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다들 소식을 숨기려고 해서요·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다들 냉정했다·
자룬 선배가 오리하르콘 광맥을 찾았다면 조용히 쫓아가 나눠 가져야지 널리 알려져 봤자 자신의 몫만 줄어드는 것이다·
-여하튼 이한 학생도 나중에 아쉬워하지 말고 생각 있으면 자룬 학생을 찾아보세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런데 교수님은 이걸 어떻게 아신 건가요?
-···그건 비밀이에요· 하 하하· 하하하·
가르시아 교수는 매우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피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군·’
회상을 끝낸 이한은 살짝 의아함을 느꼈다·
아무리 가르시아 교수님이 뛰어난 마법사라 하더라도 학생들 사이의 일을 이렇게 잘 파악하는 건 좀 이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아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석공 클럽의 의뢰였다·
이걸 의뢰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살코가 있었으면 같이 하자고 했을 텐데· 징벌방 갔으니 무리고· 안파곤 선배한테 접촉해봐야 하나?’
“헉 허억· 이한· 돌아왔어?!”
휴게실 문이 열리더니 가이난도가 가쁜 숨과 함께 뛰쳐들어왔다·
“그래· 잘 지냈냐?”
“후욱 후· 사실 나도 외출했었어!”
“뭐? 정말?”
정말 짐작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이한은 깜짝 놀랐다· 가이난도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들어봐! 믿지 못할 테니까· 마법사 카드를 도둑질해서 팔아넘기는 놈들이 있다길래 꼬리를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옆의 건물에서 폭발이···”
“잠깐· 미안하다· 가이난도· 내가 지금 할 일이 있어서· 이야기는 다음에 들을게·”
“이거 진짜 놀라운 이야기인데! 나중에 들으면 후회할 걸?! 이한! 진짜 후회한다니까!”
매몰차게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에 가이난도는 투덜댔다·
새로 나타난 무시무시한 마법사가 그랑덴 시 곳곳을 습격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 * *
“안파곤 선배· 계십니까?”
버두스 교수의 마탑 성각관을 방문한 이한은 낯익은 선배가 옆에 한 명 더 있는 걸 보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흠· 혼자 찾아봐야겠군· 생각해보니 오리하르콘이 꼭 필요하지도 않다·’
저런 최고급 시약은 고학년일 때 필요하지 아직 2학년인 이한은 있어도 별 볼 일 없을지도 몰랐다·
“왜 돌아가는 거지?”
옆에 있었던 낯익은 선배 유크벨티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안파곤이 여기 있는데 왜 후배가 그냥 가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다른 선배님 찾으러 온 겁니다· 안 계셔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다른 선배 누구?”
“····”
이한은 순간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성각관에서 아는 선배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른 한 사람이 눈앞의 사람이었는데 그걸 고르면 본말전도였고···
‘절대 이 사람하고 같이 움직이고 싶지 않다·’
능력이야 확실했지만 소(小) 버두스 선배하고 같이 움직이는 건 사양이었다·
어차피 방학 때도 연구 도와야 하는데 학기 도중에라도 조금···
“선배님은 모르시는 분입니다·”
“그런가? 알겠어· 그보다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 네게 할 제안이 있는데·”
“····”
이한은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설마?
“혹시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이라고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