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3화
783. 공모가 결정
“3만 5천 원이란다! 희망한 최대치보다 5천 원이 더 나왔어!”
굴렁쇠 엔터가 희망한 공모가는 최저 2만 원에서 최고 3만 원이었다.
이를 보통 공모가 ‘희망 밴드’라고 하는데 수요 예측에 참여한 기관 투자자들은 이 공모 희망가를 보고 주식 매입 가격을 적어 낸다.
하지만 주식 매입 가격을 적어 낼 땐 ‘희망 밴드’ 안에서 적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기 있는 주식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면 투자자들은 회사가 희망한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적어 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경우 최종 공모가가 이렇게 회사의 공모 희망가를 뛰어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었다.
인기 좋은 물건이 비싸게 팔리는 건 당연한 일.
잘 나가는 회사의 주식 또한 그와 같았다.
‘됐다!’
지난 한 달간 호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게다가 수요 예측에서 이런 결과라면 앞으로 10일 뒤에 있는 정식 상장 때는 상장과 동시에 상한가를 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던 도란희가 익룡이 우는 소리를 내며 팔짝팔짝 뛴다.
“아이고~ 하나님!!”
그리고 이영진은 살았다며 두 손을 모으고 하늘로 두 팔을 뻗었다.
머리털 나고 단 한 번도 신을 믿어 본 적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와 동시에 회의실에 있는 다른 정 실 매니저들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정 실의 경우 최대한 우리 사주를 긁어모은 터라 최소 5천만 원에서 최대 1억까지도 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와 진짜. 정 실장님 말 듣기를 잘했다.”
“난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우리 정 실장님이 어떤 분인데!”
“정 실장님. 감사합니다!!”
“아 나도 영진이랑 란희처럼 올인할걸!”
“정윤호 코인은 올인하라더니······ 아 진짜······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더 넣어야 했는데.”
“아 대출받았어야 했나?”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이영진과 도란희의 올인 전략에 부러움을 토로하며 흥분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는 한 번 더 있다.
공모가가 이 정도로 나왔다면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 정식 상장 첫날에는 주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있었다.
흔히들 주식시장에서 ‘따상’이라고 부르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상’은 ‘Double + 상한가’가 합친 말인데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두 배로 초기 가격이 결정되고 가격 상승제한폭인 30%까지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즉 굴렁쇠 엔터는 공모가가 35000원이니 따상을 하게 되면 91000원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니저들은 모두 지금 번 돈의 몇 배는 더 벌 수가 있게 된다.
다만······.
‘말려야겠군.’
겨우 공모가 3만 5천 원 정도로 이 정도 열띤 반응이라면 4월 1일 정식 상장일에 주식이 따상이라도 했다가는 다들 기절할 것같았다.
이게 다가 아니니까 진정 좀 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박인기 팀장이 웃으며 날 말린다.
“잠깐 즐기게 놔두시죠. 직장 생활에서 이런 큰돈을 한 번에 만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하하하. 저도 오늘 집에 가면 어깨에 힘 좀 주게 생겼습니다.”
하긴 나 역시 회귀 전에는 상여금 100만 원만 받아도 하늘을 날아갈 듯했으니까.
“아 그리고······ 저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박인기 팀장은 나보다 훨씬 선배로 회귀 후 잘 나가기 시작한 날 시기 질투해 잠시 김동수와 손을 잡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자 굴렁쇠 엔터를 관두려고 했고.
하지만 내가 그의 손을 붙잡고 설득해서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그 결과 지금은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정 실’의 기둥이 된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팀장님. 정 실로 제일 먼저 와주신 덕에 제가 믿고 밖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으니 이 정도 보상은 충분히 누리셔도 됩니다. 아 그리고 이게 끝은 아닌 거 아시죠?”
박인기 팀장 역시 5천만 원을 벌었기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연하죠. 이제 시작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예. 이참에 상장 때까지 좀 더 호재를 만들어서 모두에게 ‘따상’을 선물해야겠네요.”
공모가가 희망 밴드를 넘어선 이상 다음 계획은 무조건 ‘따상’이다.
정 실이 오기까지 힘든 그 시기를 나와 함께해 준 모든 이들이 다시 한번 웃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환호성이 그치기는커녕 커지기만 했다.
“근데······ 이제는 진짜 좀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채 도란희와 함께 제를 올리는 이영진을 가리켰다.
박인기 팀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렇네요.”
박인기 팀장은 헛기침하고선 이영진을 향해 말한다.
“영진아. 넌 인마 왜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아? 네 재물신은 여기 계시는데!”
이영진은 모든 것을 다 털어 넣은 올인 전략으로 1억이라는 돈을 손에 넣은 상황.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인 도란희도 올인으로 1억을 손에 쥐었다.
커플이 합쳐 현재만으로 2억을 번 것이다.
박인기 팀장의 말을 들은 이영진과 도란희가 하늘로 뻗은 손을 내린다.
그리고선 그 손을 앞으로 내밀고 마치 광신도처럼 내게로 달려온다.
어젯밤부터 감지 않은 떡 진 머리들을 하고서 말이다.
“실장님~~”
난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달려드는 두 사람을 피하기 위해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도 연소희 팀장 백희영 팀장 이미리 대리 채상우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와락.
난 졸지에 정 실의 팀원들에게 겹겹이 싸여 안겨 버렸다.
그리고 뒤늦게 다가온 도란희와 이영진은 내 손을 잡고 외치기 시작했다.
“따상~ 따상을 비나이다~”
“강남 아파트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만지면 돈이 나오는 재물신이라도 된 듯 모두가 날 꼭 붙든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조여 오는 터라 힘겹게 외쳤다.
“따상! 상장 첫날 따상이 나오게 제가 빡시게 뛸게요! 됐죠? 그러니까 좀 놓아주세요! 숨 막힙니다~~”
그때였다.
벌컥.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외친다.
“뭐? 따상도 만든다고?”
“크하하! 따상 예고야?”
“정 실장아~ 싸랑한데이~”
이번에는 구성철 실장을 비롯한 오덕구 팀장 주영훈 팀장 등 배우 2실 매니저들이 우르르 달려들고 있었다.
다들 정이 넘쳐서 좋은데 너무 넘쳐서 탈이다.
결국 난 날 껴안은 이들에게 벗어나려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들의 두 팔에 몸을 맡겼다.
매니저들의 흥분한 열기와 도란희와 이영진의 감지 않은 머리 냄새 각종 향수와 담배 커피 냄새들이 한데 섞여 나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웃음이 실실 나온다.
회귀 전과는 달리 나만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성공을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요. 다 같이 갑시다.’
난 날 껴안은 이들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들과 함께 굴렁쇠 엔터를 한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 * *
정 실의 회의가 끝난 이후 곧장 팀장급 회의가 열렸다.
공모가가 상한가를 넘어 버린 탓에 우리 사주 매입을 하지 않은 배우 3실 식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관우 엔터 출신들 역시도 우리 사주를 일부 매입한 터라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
강감찬 대표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매니저의 업무를 충실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비록 우리 사주로 이득을 봤다고 해도 우리는 매니저라는 걸 잊지 말라면서 말이다.
나 역시 강감찬 대표의 말에 동의하며 오늘 있을 유진이의 촬영 일정을 체크했다.
오늘 방송되는 <화란전> 21화가 시청률 35%를 넘게 된다면 10일 후의 주식 상장일에 ‘따상’을 노릴 수 있는 확률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는 매니저답게 움직여!
강감찬 대표의 그 지시를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났고 난 이영진을 데리고 경주 <화란전>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곧 첫 영화를 시작할 유진이를 위해 오복희 PD와 촬영 스케줄 조정에 관한 협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
<화란전>의 경주 현장 세트장에 도착했다.
“실장님 내리시죠.”
“잠깐만.”
난 이영진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 말하고 굴렁쇠 엔터 관련 기사가 올라오는 경제 뉴스 파트를 확인했다.
[굴렁쇠 엔터 희망 공모가 초과! 최종 3만 5천 원 확정!]
[굴렁쇠 엔터 코스닥 대박 주식으로 주목.]
[굴렁쇠 엔터 3월 29일~3월 30일 청약 4월 1일 상장.]
[굴렁쇠 엔터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 경쟁률 2123 대 1.]
[코스닥 엔터테인먼트 대장 주 TK 엔터에 이어 상장과 동시에 2위 확정?]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분 좋은 건 오래간만에 현장을 와서였다.
주차장에 대어 놓은 방송국 차량에서 FD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스태프들은 오늘 대규모 전쟁씬 때문에 바쁘게 뛰어가고 있다.
주차장 바닥의 자갈에서 나는 자박자박하는 소리마저 아름답게 들린다.
그때였다.
까톡!
까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사모(정윤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체 대화방 참여자 : (나 – 정윤호) 정유진(러블리♡유진) 정미소(미소천사♥) 이태풍 강하나 하루 김세리 유은아 우연희 양은비 박상규 최덕배.]
(대화)
[미소천사♥ : 삼촌! 경주에 엄마 보러 갔어요?]
미소가 보내온 까톡에 곧장 대답했다.
[정윤호 : 어. 오늘 유진이 촬영 보고 PD님이랑 촬영 스케줄 조정할까 싶어서. PD님이 유진이를 너~무~ 좋아해서.]
[미소천사♥ : 그렇구나~ 근데요 나도 내일 오후에 대본 리딩 해야 하는데요~ 거긴 안 올 거예요? (궁금)(갸웃)]
[정윤호 : 아뉘~ 우리 미소가 리딩을 하는데 당연히 가야지.]
영화 <실종 – 잃어버린 아이들>을 촬영 중인 미소는 내일 오후부터 KBC 드라마 <연무(煙霧)>와 관련된 일정에도 본격적으로 투입된다.
내일 오전에 유진이와 함께 LT 엔터에서 영화 미팅을 끝낸 뒤 달려가면 그 리딩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미소천사♥ : 아싸!! (포효) (엉덩이춤) (어깨춤) (관광버스춤). (윙크) (싸랑해요) (하트)]
미소는 온갖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자 나머지 정사모들도 까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태풍 : 미소 축하해~ 그리고 윤호 형. 공모가 초과 기사 봤어요. 상장일에 맞춰 주식을 사려면 진짜 빡시겠는데요?]
[세리 : 유노 오빠. 4월 1일에 돈 뽑아서 회사 가면 돼요?]
[양은비 : -_-; 세리야. 그렇게 하는 거 아냐.]
[세리 : 그럼 주식은 어떻게 사?]
[양은비 : 그냥 넌 부모님 모시고 와서 부모님에게 부탁드려. 어차피 미성년자라서 못 사니까.]
[세리 : 췟췟.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럼 내가 다 알아서 할 텐데!]
[양은비 : -_-;; 지금이 좋은 거 같은데······ 그냥 우리 세리는 노래만 열심히 해. (근엄)(진지)]
[세리 : 하긴 나도 그게 편하긴 해! (빠른인정)(수긍)]
[박상규 : 주식 가격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하나 : 저도 그냥 무지성으로 살게요~ (하트)]
유진이는 처음부터 굴렁쇠 엔터의 대리급 직원으로 강감찬 대표가 영입한 터라 ‘우리 사주’를 일부 배정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연예인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상장 첫날에 일반 공모로 주식을 사야 했다.
그렇기에 공모가가 높아진 이 상황은 약간의 부담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사지 않는다는 사람은 없었다.
[정윤호 : 고맙습니다 다들. (꾸벅)]
인사 이모티콘을 적자 갑자기 미소가 말한다.
[미소천사♥ : 삼촌 나도 살래요.]
[정윤호 : 응? 뭘?]
[미소천사♥ : 주식!]
[정윤호 : 미소야. 주식이 뭔지는 아니?]
[미소천사♥ : 응! 돈 나무! 잘 심어 두고 나중에 한 20년 지나면 그걸로 내 아파트도 살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다~ 살 수 있는 게 주식이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그리고 유노 삼촌이 내 돈 나무를 잘 키워 준다고 했어요! 맞죠? (뿌듯)(나똑똑해요?)(꺄앙>.<)]
돈 나무?
아파트?
유진이가 미소의 인생을 굴렁쇠 엔터 주식으로 세워 놓았을 줄이야.
옛날에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서 시집갈 때 혼수로 썼다고 하는데 유진이가 굴렁쇠 엔터 주식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굴렁쇠 엔터의 주식이 미소의 ‘돈 나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제까지와 다른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 ‘돈 나무’를 내가 키워야 한다는 것도.
그때였다.
[우연희 : ㅎㅎ. 미소 통장까지 걸렸으면 이번 상장 윤호 오빠가 목숨 걸겠는데? 나도 올인해야지~]
[양은비 : 하긴 윤호 오빠는 미소 일이라면 눈 돌아가시지. 나도 올인~]
[세리 : 나도 돈 나무 살래! (각오)(경례)(테이크마이머니)]
[양은비 : 세리야 근데 넌 주식 사는 거 엄마한테 말했어?]
[세리 : 울 엄마? 엄마는 유노 오빠 하자는 건 다 하라고 했어! 나보고 생각하지 말고! (파워당당)]
[양은비 : -_- 엄마는 참 현명하시구나······.]
[세리 : 응! 우리 엄마 현명······ 잠깐 언니 나 놀린 거 맞지? (발끈)]
[양은비 : 아니~ 전혀! 내가 널 왜 놀려~ (극한부정)(부정x부정)]
난 급히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정윤호 :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주식 상장일에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줄게. 그리고 세리는 부모님 중 한 분 올라오시라고 전하고.]
난 그렇게 아이들을 진정시킨 뒤 이영진과 차에서 내려 세트장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세트장 앞에는 이미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어! 정 실장이다? 잡아!”
“잡아!!”
갑자기 날 노리는 기자들 수십 명이 질문을 하려고 덤벼든다.
“정 실장! 개인 인터뷰 좀 해 줘!”
“오늘 굴렁쇠 엔터 주식 공모 결과 떴던데 봤어?”
“정 실장! 정유진 영화에 관한 정보 좀 더 풀어. 감독 정해졌어?”
난 그 즉시 옆을 보며 말했다.
“영진아 달려!”
저 인간 하이에나 떼에게 잡혔다간 오늘 스케줄은 엉망이 된다.
그렇기에 난 이영진과 함께 미친 듯 뛰어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 * *
<화란전>의 경주 평야 세트장.
눈앞에는 양쪽에 있는 동산 사이로 축구장 넓이만큼의 푸른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임시 잔디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이곳 평지에선 백제군과 신라군이 각각 300명씩 동원되는 대규모 전쟁씬을 찍을 예정이다.
“자 자. 백제군은 왼쪽 동산 쪽앞에 일렬로 서시고 신라군은 오른쪽 동산 쪽에 일렬로 서세요.”
스태프들의 지시에 보조 출연자들이 하나둘 창을 들고선 평지로 나가기 시작한다.
“이쪽으로 오세요.”
연출팀들이 앞에서 이끌자 단역 출연자들이 그 뒤를 따라 일렬로 움직인다.
그런데 아직 말을 타는 조연 연기자들과 유진이 그리고 덕배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난 그 틈에 스케줄 조정을 위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복희 PD를 찾았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내가 현장에 내려간다고 한 순간부터 회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촬영 스케줄 빼주기 싫을 때 PD들이 주로 하는 일이다.
‘연락을 피한다 이거지?’
하지만 그때 큐시트를 들고 움직이던 금은동 AD가 내 눈에 띄었다.
“금 AD님.”
금은동 AD가 화들짝 놀라서 두리번거린다.
난 그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서둘러 그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스케줄 조정 때문에 PD님한테 까톡 보냈는데 PD님이 보셨을까요?”
“아 예. 하하하······ 글쎄요?”
그런데 어색하게 웃는 금은동 AD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PD님도 영화 출연 허락해 주셨잖습니까?”
“아 예. 그렇긴 한데······.”
현재 유진이의 인기로 드라마 시청률 35%를 코앞에 두다 보니 약속해 놓고도 피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PD와 직접 말을 해야겠다.
잠시 후 촬영에 들어가게 되면 말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
“PD님. 어디 계십니까?”
“그 글쎄요?”
나와도 친한 금은동 AD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물겹게 PD의 위치를 숨긴다.
하지만 난 단번에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았다.
세트장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초가집이 바로 그녀가 있는 곳이다.
“저기 초가집에 계시는군요.”
놀란 금은동 AD가 당황해서 자백해 버렸다.
“그 그걸 어떻게······.”
난 초가집을 향해 걸어가며 답했다.
“스태프들이 저 앞만 피해 다니잖아요.”
스태프들은 빠르게 움직이다가도 본능적으로 세트용 초가집 입구에 다가가면 멀찍이 돌아가고 있었다.
웬만해선 직장 상사랑 부딪히고 싶지 않은 건 모든 직장인이라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
그러다 보니 스태프들이 오복희 PD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하······ 예. 맞습니다. 같이 가시죠.”
결국 포기한 금은동 AD가 날 따라온다.
‘그럼 오래간만에 실력 발휘 한번 해볼까?’
회귀 전 스케줄 조정의 마법사라 불린 실력을 오복희 PD에게 보여 줄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