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9화
779. 오만의 대가 2
동영상 조회 수가 상위인 1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1층 제1 연습실로 향했다.
그런데 이미 박선녀 안무가 팀에 소속된 정예정 안무가의 고성이 들려왔다.
-고은서! 다시 안 해?
-선생님! 벌써 열 번째예요. 왜 같은 것만 반복시키는 거예요?
-못하니까 다시 하라고 하지!
-제가 못해요? 진짜 선생님 눈이 잘못된 거 아니고요?
고은서가 오만한 태도로 정예정 안무가에게 대서고 있었다.
그러자 팀 리더인 한소원이 고은서를 혼낸다.
-은서야 그만해. 군무를 추는데 계속 너 혼자 따로 놀잖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맞아.
고은서가 입술을 삐죽이며 답한다.
-야. 한소원. 내가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데 왜 끼어들어? 나 진짜 안 틀렸다고. 너희가 다 틀렸나 보지 뭐.
‘역시 우리 은서네.’
고은서는 지난 1주일간은 내게 혼쭐이 나고 나름 얌전히 지냈었다.
언제나 빽이 되던 부모들이 오디션에서는 아무런 힘도 못 썼고 굴렁쇠 엔터 매니저 누구도 그녀의 떼를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서운 어른이 없는 자리에선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난 그 즉시 연습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은서. 지금 뭐 하니?”
고은서가 날 보고선 급히 입을 다물었다.
단호하게 감점 10점 처분을 내린 당사자가 바로 나였기에 현장의 그 누구보다 날 신경 쓰고 있었다.
“아니에요 실장님. 안녕······하세요.”
보자마자 인사라니.
변하긴 변했군.
고은서가 먼저 인사를 하자 고은서를 말리던 1팀 리더 한소원과 양빙빙 쿠도 미나츠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쓸데없는 군기를 잡는 건 내 취미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대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어떤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지도 알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데뷔 후 방송국에서 이랬다간 기자들에게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가령 ‘예의 없는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기라도 하면 아이돌로서 인생이 끝나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 연예계 매니저들은 데뷔 전의 아이돌을 군대만큼이나 혹독하게 관리한다.
그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래서 난 단호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는 안녕했는데 지금은 안녕하질 못하네. 우선 고은서. 넌 왜 선생님이랑 싸우고 있어?”
고은서가 말꼬리를 흐린다.
“싸운 거 아니라······ 그냥 선생님이 하시는 지시가 이해되지 않아서 목소리가 좀 높아진 거였어요.”
“이해?”
“예. 전 분명히 똑같이 췄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다시 추라고 하시잖아요. 벌써 10번이나 췄단 말이에요.”
박선녀 선생님의 안무팀 소속인 정예정 안무가가 다급히 말한다.
“아 그게요 정 실장님······.”
<프로젝트 I.O.A>의 1팀 애들은 곧 회사 소속의 연예인이 될 아이들이지만 본인은 굴렁쇠 엔터 소속이 아니다 보니 내 눈치를 보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안무가들의 위치부터 분명히 정립해 줘야겠다.
난 정예정 안무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안무가님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지시를 내렸을 거라 믿습니다.”
박선녀가 데리고 온 3명의 안무가는 다들 엄청난 실력자들이다.
회귀 전에도 개인 안무팀을 갖추고 박선녀 안무가와 함께 해외를 돌며 거물급 스타들의 안무를 짜 주던 실력자들이니까.
“그리고 전 안무가님들을 같은 팀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안무가님들의 소속을 박선녀 선생님의 팀에 놔둔 건 안무가님들의 미래를 위해 그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겁니다. 만에 하나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굴렁쇠 엔터로 모실 테니까 절 믿고 앞으로도 과감하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정예정 안무가의 얼굴에 안도와 함께 각오가 어린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다시는 이런 약한 모습 보여 드리지 않겠습니다.”
일단 안무가에 대한 위치를 잡았으니 이젠 고은서에게 인성 교육을 할 차례다.
“고은서. 10번씩이 아니라 10번밖에 안 했으면서 무슨 엄살이야? 너희들보다 한발 앞서 I.O.A에 뽑힌 링링과 서희주는 하루에 같은 춤을 100번도 더 춰.”
그 순간 고은서가 당황해 말실수를 해버렸다.
“그 그건 두 사람한테 재능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링링과 서희주의 실력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회사가 숨기는 걸로만 아나 보다.
그때 함께 따라온 백희영 팀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외친다.
“야 햇병아리! 네가 어디서 감히 잘난 척이야! 이번 주 PR 영상 조회 수가 좀 나오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갑작스럽게 지적을 받은 고은서가 당황해서 빽 하고 외친다.
“제 제가 뭘요!”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 난 그녀를 고슴도치란 별명으로 불렀다.
지적받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발끈거려서였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그때처럼 똑같이 발끈하고 있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회귀 전과는 달리 이번 생에서는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어쨌건 고은서를 가르쳐야 하니 우선은 백희영 팀장을 진정시켰다.
“팀장님. 진정하세요.”
“후우~ 예. 죄송해요.”
이어서 난 연습실 천장을 가리켰다.
“고은서. 이곳에 있는 모든 카메라가 네 일거수일투족을 다 담고 있다고 내가 말했지? 지금 네 행동이 방송을 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엉?”
고은서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다.
“그리고 링링이랑 희주가 재능이 없다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아니다. 그냥 네가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난 태블릿으로 오늘 아침 서희주와 링링이 보여 준 영상을 연습실에 있는 대형 LCD로 전송했다.
[로딩 중······.]
대형 LCD에 파일이 전송되고 있다는 아이콘이 나온다.
“지금 보는 영상은 링링이랑 희주가 오늘 새벽 5시 연습실에 나와서 10시인 지금까지 추는 영상이야. 10번? 얘들은 지금 1절 안무만 60번째 추고 있어. 한번 봐봐!”
그때였다.
-I’M YOUR IDOL.
간주의 시작과 동시에 체리블라썸의 가이드 피처링이 나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링링과 서희주가 안무를 춤추는 영상이 나왔다.
두 사람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인데도 힘든 기색도 잊은 채 활짝 웃으며 힘차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데도 춤을 추는 둘의 동작은 마치 거울에 비친 서로를 보는 듯했다.
춤 선은 재능의 영역이었지만 칼군무의 각은 흘린 땀방울 수만큼 맞아 들어간다.
즉 노력이면 노력.
실력이면 실력.
링링과 서희주는 그 모든 것이 이곳에 모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나았다.
덕분에 더는 세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연습실에 있던 모두는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영상을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까.
* * *
-헉헉. 희주 언니 나 몇 번 틀렸어?
-후~ 12번?
-헉헉. 그중에 6개는 나도 알겠는데 나머지 6개는 어디야?
-첫 소절 부를 때 턴 할 때. 폴짝 뛸 때 왼쪽 발끝 덜 굽혀진 것······.
-알았어. 그럼 다시 한번 해보자.
-후우~ 그럼 바로 갈까?
링링과 서희주는 61번째 안무를 쉬지 않고 그대로 시작했다.
고은서와 달리 두 사람은 힘들다 어렵다고 투덜대지 않았다.
오히려 완벽을 향해서 끝없이 달려가는 무서운 집념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달칵.
난 버튼을 눌러 영상을 종료시켰다.
링링과 서희주의 실력을 눈으로 목격한 고은서와 아이들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봤지?”
고은서가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답했다.
“······예.”
“언제나 대답은 크게 하라고 했지? 고은서. 봤어?”
“봐 봤어요!”
“그래. 네가 오늘 동영상 조회 수 보고 어깨에 힘 들어간 거 충분히 이해해. 인기투표 1위나 다름없으니까 자신감도 생겼겠지. 하지만 지금 네 수준은 아직 프로도 아닌 링링과 희주한테도 못 따라갈 수준이야. 알겠어?”
고은서가 이를 꽉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예······.”
“그리고 언니들한테 높임말 써. 소원이가 네 친구야?”
고은서가 입술을 삐죽이며 답한다.
“죄송······해요.”
난 이어서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를 똑바로 바라봤다.
두 사람 역시도 거만을 떨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빙빙이랑 미나츠 역시도 마찬가지. 너희들이 오만하게 구는 거 카메라에 다 찍혔어. 그거 방송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내가 장담하건대 내일 당장 비호감 1위 찍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다시는 헛바람 들어서 거들먹거리지 마!”
아이들이 그제야 침을 꼴딱 삼키고 고개를 팍 하고 숙인다.
“죄 죄송해요.”
난 이어서 한소원에게도 팀장의 자세에 대해 말했다.
“소원아. 팀장은 때론 단호하게 움직여야 할 때도 있어. 그리고 만약 네 힘으로 안 되겠다 싶을 땐 이동민 실장님이나 안예음 이사님께 면담 신청해서 상황을 해결해야지.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고 못 하는 게 뭔지 깊이 생각해.”
“예. 실장님.”
난 일일이 아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가르침을 내렸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난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어리다고 아직 뭘 몰라서 그런 변명으로 봐주는 건 여기까지! 2주 차라서 적응 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여유를 줬는데 내가 착각한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이 넘치니까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프로의 기준에 맞춰 대해 줄게.”
겉멋이 든 아이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데는 프로 수준의 연습만 한 게 없다.
그리고 네 사람 중 한소원은 겉멋을 부린 적이 없었지만 그동안 체력이 약해서 연습이 부족했기에 난 나머지 셋과 함께 연습하게 할 생각이었다.
“안무가님. 지금부터 트레이닝 수준을 링링과 희주가 하는 정도로 맞추세요.”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데······ 괜찮을까요? 얘들 이따가 방송도 해야 하는데요?”
“어차피 앞으로 애들이 경험하게 될 일이잖아요. 그리고 박선녀 선생님께는 제가 따로 말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굴.리.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온 힘을 다해 제대로 가르칠게요.”
“예.”
순간 정예정 안무가가 눈빛을 번뜩이며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다들 세트 포지션. 지금부터. 논스톱으로 갈 거야. 방송 전까지 휴식 없어.”
당황한 아이들이 날 쳐다본다.
난 흔들리는 아이들의 눈빛을 태연히 받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프로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얘들아.”
아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다.
* * *
“다시! 은서 혼자만 스텝이 반 박자 늦잖니! 하나 둘 셋! 은서 동작 대충 마무리하지 말고 힘줘서 뻗어! 빙빙 턴 더 빨리! 미나츠! 눈 풀렸잖아! 표정 관리 안 해?”
정예정 안무가의 디테일한 지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5번을 연속으로 쉬지 않고 안무를 맞추자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비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여섯 번째 안무를 출 땐 흐느적거리기만 했고.
“서 선생님. 무 물 좀······.”
“고작 이 정도로 쉰다고? 체리블라썸 애들은 20번도 쉬지 않고 출 수 있어!”
역시 프로 레벨의 레슨을 한번 경험해 보면 겸손함이 절로 몸에 새겨지지.
본인이 동방예의지국 소속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깨닫게 되고.
“한 번만 더 춘 다음에 3분간 휴식 줄게. 엄살 그만 떨고 일어나!”
오늘 밤 생방송이 있는데도 아이들 체력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태도에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땀을 한 방울 흘릴 때마다 몸에 깃든 오만함도 쭉쭉 빠지고 있었다.
레슨 1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그때 백희영 팀장이 귓속말로 속삭인다.
-애들 좀 괜찮아졌는데요?
-재능은 있는 애들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생방도 있는데 계속 굴리실 거예요?
-아뇨. 이제 쉬게 해야죠.
아이들의 군무도 많이 좋아졌고 태도도 바뀌었다.
정혜정 안무가의 지시도 쏙쏙 받아들이고 있었고.
교육을 하려는 것이지 학대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태블릿에다가 글씨를 써서 정예정 안무가만 볼 수 있게 들어 올렸다.
[지금 나갈 테니까 우리가 나가면 오늘 연습은 여기서 끝내세요. 그리고 안무가님이 책임지고 저한테서 커버해 준다고 하시고요.]
내가 악당이 되었으니 이제 정예정 안무가가 아이들의 편이 되어야 했다.
정예정 안무가가 태블릿에 적은 글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정예정 안무가에게 그렇게 힘을 실어 준 뒤 백희영 팀장과 함께 나왔다.
* * *
탁.
문을 닫고 나오자 백희영 팀장이 한숨을 내쉰다.
“하~ 실장님. 은서 쟤가 저러고서 1등 하면 실장님이 한 교육이 다 물거품이 되는 거 아닐까요?”
“설마 백 팀장님도 은서가 오늘 1위 할 거라 보세요?”
“당연하지 않아요? 동영상 조회 수 1위잖아요.”
난 고개를 저었다.
“오늘 1차 투표 때 두고 보세요. 1팀에 들기 만만치 않을걸요?”
“은서 PR 영상을 50만 넘는 사람이 봤는데도 1팀에 못 들어갈 수가 있다고요?”
“이것 보세요.”
난 태블릿에 떠 있는 PR 영상의 ‘싫어요’ 부분과 댓글을 가리켰다.
1. 고은서 PR 영상
(조회 수 : 557238 / 좋아요 23623 / 싫어요 10382) (댓글)
-고은서 예쁘고 실력도 좋은데······ 왠지 정이 안 감.
-장난해? 고은서만 한 애가 어디 있다고.
-얘 얼짱 출신인데 예전부터 연예인 한다더니 진짜 데뷔하겠네.
-학교 다닐 때도 왠지 자기는 좀 다르다는 듯한 포스를 팍팍 풍기고 다녔음. 다른 애들과는 말도 잘 안 섞고.
-그래도 얘가 제일 예쁘지 않음? 난 얼굴만 봄.
-혹 일진?
-아냐. 데뷔해야 한다고 자기 관리는 철저했음. 일진 애들이랑은 안 어울렸고. 그냥 좀 재수가 없었을 뿐이야.
고은서의 외모와 실력을 비하하는 댓글은 거의 없다.
모두가 예쁘고 실력이 좋다는 것만큼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돌을 지망하는 이상 때론 통통 튀는 발랄함을 과시하고 낯간지러운 귀여운 행동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하지만 고은서는 그런 행동을 질색했다.
그러다 보니 PR 영상에서도 대중을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의 영상과는 달리 싫어요가 1만을 넘기고 있었다.
“아······ 진짜네요?”
“이번 투표 은서한테 쉽지 않을 겁니다.”
그제야 백희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아이돌은 실력만큼이나 캐릭터가 중요하죠. 그러면 이대로 놓아두실 거예요? 실장님 말씀대로라면 안 좋은 성적을 받을 거 같은데 아깝잖아요. 얼굴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고쳐 주려면 고칠 수는 있는데······ 이제부터는 본인이 해결해야죠. 더 하면 매니징이 아니라 개입이 되어 버리니까요.”
회귀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고은서 정도는 충분히 바꿔 놓을 힘과 능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바꿔 놓는다고 해도 그건 임시 대책일 뿐.
진짜 아이돌로 성공할 마음이 있다면 고은서 스스로가 바뀌어야 했다.
“자자. 은서는 잊고 이제 다음 애들도 보러 가시죠. 올라온 영상들을 보니까 전부 다 한 소리를 해야겠어요. 조회 수 하위인 애들한테는 자신감을 가지라고도 해야 하고요.”
난 시작도 전에 미리 성공과 실패를 재단한 아이들의 정신 상태 개조를 위해 곧장 옆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정윤호가 밖으로 나가자 정예정이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여기까지! 정 실장님한테는 니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테니까 다들 숙소 가서 씻고 잠깐 자고 일어나.”
정예정 안무가의 말에 고은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예. 선생······님.”
“그래. 은서도 끝까지 잘 버텼어.”
정예정은 고은서가 끝까지 버틴 것에 조금은 놀라워하며 밖으로 나갔다.
딸랑.
문이 닫힌 순간 고은서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웁!”
난생처음 해보는 혹독한 연습에 아침에 먹은 것이 올라오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은 누구나 자신을 예쁘다고 했고 가벼운 노력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프로젝트 I.O.A>에 왔을 땐 엄마와 아빠의 도움을 받지 못해 긴장했지만 동영상 조회 수 1위가 되자 다시금 자신감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 그 모든 자신감이 무너져 내렸다.
프로의 트레이닝을 한번 받은 것만으로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정윤호 실장이 보여 준 링링과 서희주의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걔들이······ 연습생이라고······?”
연습생이 그 정도면 무대에서 뛰는 프로들 수준은 또 얼마나 높을지.
“하아~”
고은서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한지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정윤호 실장을 비롯한 매니저들이 왜 자기를 아이처럼 대한 건지도.
자신은 그저 아이돌 워너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리더인 한소원이 본인도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다가와 음료수를 내밀었다.
“은서야. 자 이온 음료.”
고은서는 숨을 헐떡이며 한소원을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이제······ 소원 언니라고 부를게. 그동안 이름 막 불러서 미안.”
한소원은 갑자기 바뀐 고은서의 태도에 조금은 당황했다.
“어 어. 그 그래.”
“그런데 소원 언니. 언니는 나 안 싫어? 왜 늘 챙겨 줘?”
언제나 혼자에 익숙한 고은서였다.
엄마와 아빠가 ‘넌 남들과 다르다’라고 한 말을 당연하게 느꼈기에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고.
그런데 한소원은 리더가 된 이후로도 이렇게 매번 자신을 챙기고 있었다.
지금처럼 죽을 만큼 힘들고 다 같이 혼났는데도 말이다.
한소원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음료수를 건넨다.
“같은 팀이잖아. 난 그 팀의 리더고.”
“겨우 그것 때문에?”
한소원이 피식 웃는다.
“사실은······ 네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고은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가 외로워 보인다니! 누 누가 그래?”
“너 빼고 다 알아.”
고은서는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아니라고 말할 힘이 없었다.
대신에 입술을 삐죽이며 음료를 확 낚아채며 불만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한소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너 예쁘고 잘해. 근데 이런 식이면 사람들한테 미움받을 거야. 우리 ‘팀워크’도 점점 더 엉망이 될 거고.”
“······.”
“그러니까 오늘만이라도 다 같이 힘 모아서 잘해 보자. 우리 4명이 팀으로 지내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잖아.”
고은서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한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정 실장님은 나 싫어할걸?”
한소원이 빙그레 웃으며 고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은서. 애기네 애기. 너 아직도 정 실장님을 모르는구나?”
“내가 뭘 몰라? 정 실장님이 여기서 제일 힘 세고 제일 무서운 사람이잖아!”
“그래. 그것도 맞는데 내가 아는 정 실장님은······.”
한소원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윤호에 대해서 말해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