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6화
776. 감독을 찾아서 3
룸 밖으로 나가 보니 사방에 전채요리 접시가 흐트러져 있다.
성여진은 바닥에 앉아 접시를 그러모으고 있고 안길태 서예종 총무처장은 성여진에게 삿대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명품 정장의 앞섶에 전채요리 소스가 튄 것을 가리키며 말이다.
“씨X. 야! 너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이 옷이 얼마짜리인 줄이나 알아? 네 반년 치 월급을 모아도 살까 말까야!”
성여진이 접시를 모으는 걸 멈추고 냅킨을 꺼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처장님! 일단 좀 닦으시고······.”
“닦긴 뭘 닦아? 야 너 일부러 이랬지? 내가 최근에 너희 남편 불러서 일 좀 많이 시킨 게 기분이 나쁘셨어?”
“아 아니에요······ 처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그보다 일단 옷부터 닦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하긴 이 레스토랑은 서예종 출신 교수들이 자주 드나드니 당연한 일이겠지.
놀란 성여진이 냅킨으로 안길태 총무처장의 옷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려 한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게 어디서 더러운 손을 가져다 대!”
안길태 총무처장은 버럭 화를 내고 성여진의 뺨을 내리치려는 듯 손을 들어 올린다.
그 순간 난 빠르게 달려가 안길태 총무처장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옷에 소스 좀 튀었다고 사람을 때리려 하시다니 너무한 거 아니십니까? 급한 대로 닦고 명품 세탁 가게에 맡기면 될 일 같은데요?”
40대 중반인 안길태 총무처장이 뒤를 돌아보며 외친다.
“XX 넌 뭐야?”
그는 흥분해서 처음에는 욕을 하다 내 얼굴을 뒤늦게야 보고 알아차린다.
“정윤호 실장?”
공학범 감독을 박살 낸 후 서예종에서 정윤호 세 글자 모르는 사람이 없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군.
난 안길태 총무처장의 손목을 잡은 채 성여진에게 말했다.
“성여진 씨 되시죠? 따로 드릴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혹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남편분 이야기입니다.”
성여진이 눈을 끔뻑거린다.
“저희 남편요?”
“예. 좋은 제안이니 들어 보셔서 손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내 기억에 따르면 성여진은 남편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유독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힘든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았고 남편에게 좋은 조건으로 연출을 맡긴다고 하면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 안길태 총무처장이 팔을 흔들어대며 날뛴다.
“야! 이 손 놔! 안 놔?”
아무래도 안길태 총무처장의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
“여진 씨. 이따가 이야기하시죠.”
난 안길태 총무처장의 손목을 잡은 채로 곧장 최은태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 소리가 두 번 정도 울리자마자 최은태 회장이 전화를 받는다.
-정 실장. 무슨 일인가?
“서예종의 총무처장이 제가 스카우트하려는 분의 가족에게 갑질을 해대는데 혹시 힘 좀 써주실 수 있을까 해서 전화했습니다.”
최은태 회장은 서예종 9기 출신으로 매년 서예종에 엄청난 기부금을 내며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나와의 관계를 최만식 대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서예종과 트러블이 생겨도 나서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최만식 대표가 일본에 격리된 상황이었기에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난 최은태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내가 누구한테 전화하는지도 모른 채 안길태 총무처장이 외친다.
“서예종에 힘을 써달라고? 후원자한테 알리나 본데 어디 한번 해봐!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그리고 씨X! 내가 너랑 굴렁쇠 엔터는 반드시 끝장을 내줄게.”
안길태 총무처장은 본인이 서예종 출신인 데다가 부총장이 5촌 친척이다.
또한 처삼촌이 차기 차관이라 불리는 장태혁 문체부 정책실장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서예종에서 안길태 총무처장을 건들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
그래서인지 누구한테 전화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귓속으로 최은태 회장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소리치는 그놈 길태 맞지?
“예. 맞습니다. 들으셨습니까?”
-들었네. 내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지. 어딘가 거기가?
“한범수 영화과 학과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플로렌스’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입니다.”
-아~ 거기? 알겠네. 조금만 기다리게.
달칵.
전화를 끊은 난 안길태 총무처장의 손목을 놓아줬다.
그러면서 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녹음’ 버튼을 눌렀다.
탁.
안길태 총무처장이 손목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찌푸린다.
“씨X. 너 누구한테 전화한 거야?”
“친구 아빠요.”
“친구 아빠?”
“예.”
“이거 미친 새X 아냐? 야 너 죽고 싶냐? 친구 아빠가 뭐 대기업 회장이라도 돼? 아니다 대기업 회장이라도 상관없어. 데리고 오라고 해! 씨X!”
그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내 친구 아빠가 사람 보낸대.
그때였다.
드르륵.
옆 VIP룸의 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나온다.
“뭔 소리야?”
“뭔데?”
“안 처장. 왜 안 들어오고······ 뭐야? 이거?”
서예종의 한범수 영화과 학과장 안준성 조교수 정상철 연출과 학과장은 나오자마자 날 보고선 얼굴을 찌푸린다.
그중 한범수 학과장이 안길태 총무처장을 보며 말한다.
“안 처장. 무슨 일이야?”
안길태 총무처장이 손목을 어루만지며 답한다.
“제 옷 좀 보십시오. 서버가 그릇을 엎어서 옷이 젖어 교훈을 좀 주려는데 정 실장 이 사람이 날 막고 방해하잖습니까? 사람 빡치게!”
“그래?”
“예. 거기다가 뭐 친구 아빠한테 전화해서 힘을 써달라고도 하질 않나······ 하여간 이 자식이랑 굴렁쇠 엔터는 내가 절대 가만 안 둘 겁니다!”
그 틈에 난 자리를 옮겨 걱정하는 성여진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굴렁쇠 엔터에서 일하는 정윤호라고 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안길태 총무처장과 한범수 학과장은 자기 남편의 승진에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성여진은 어떻게든 자기 선에서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은 뜻대로 이뤄질 수가 없다.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총무처장의 눈치를 보는 한범수 학과장이 성여진을 탓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봐 여진 씨. 여진 씨가 정 실장을 불렀어?”
“아 아니에요.”
“그래? 그런데 왜 저 친구가 당신을 끼고돌지?”
“그게······.”
난 한범수 학과장에게 성여진 대신 답했다.
“그러면 옷에 소스 조금 묻은 걸로 사람을 때리려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서빙을 하는 쪽은 크게 다칠 뻔했는데요?”
안길태 총무처장이 빽 하고 외친다.
“야! 소스 조금? 이 양복이 얼마인 줄 알고 그딴 X소리야? 밀라노에서 직수입한 명품 양복이라고!”
한범수 학과장이 다시금 안길태 총무처장을 말리더니 내게 말한다.
“정 실장.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나 눈치가 없는 사람인 줄 몰랐군. 모른 척하고 넘어갔으면 간단히 끝났을 문제인데······ 우리 안 처장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겁 없이 구나?”
간단히 끝나?
어처구니가 없네.
“제가 서예종 후배도 아닌데 저분 인적 사항까지 알아야 합니까?”
한범수 학과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 일어날 일은 모두 자네가 끼어든 탓이야.”
그와 동시에 한범수 학과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 난데. 잠깐 VIP룸으로 와봐. 아 바로 앞이라고? 잘됐네.”
탁.
한범수 학과장이 전화를 끊는 순간 거의 동시에 달칵하고 문소리가 난다.
VIP룸이 있는 공간으로 쉐프 복장을 입은 예지현이 나타났다.
“이거 뭐예요 지금.”
한범수 학과장이 아내인 예지현 쉐프를 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서버가 소스를 쏟아서 우리 총무처장 옷이 엉망이 됐어. 그러게 평소에 교육을 엄격하게 하라니까. 당신은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물렁해서 탈이야. 쯧.”
예지현 쉐프가 나와 성여진을 쳐다보다 미간을 찌푸린다.
“제가 따끔······하게 교육시킬게요.”
“교육으로는 안 될 것 같아. 플로렌스가 이렇게 격 없는 곳이라는 게 소문이 나면 어쩌려고? 이것 봐봐. 우리 총무처장이 입고 있는 정장은 밀라노에서 직수입해 한 벌에 500만 원짜리인 옷인데 이렇게 버려 놓았으니······.”
예지현 쉐프는 남편이 말하는 바를 눈치채고 성여진을 싸늘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여진 씨. 당장 옷 벗어.”
“예?”
“서버가 서빙을 실수했으면 옷 벗어야지. 왜 거기 서서 멀뚱히 서 있어? 오늘부터 당신은 해고야!”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성여진이 놀라서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쉐프님. 잘못했어요.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세요.”
성여진이 여기서 쫓겨난다고 해도 성실하고 꼼꼼한 그녀가 다른 곳에서 일을 못 할 리는 없다.
그저 본인이 이곳에서 쫓겨나면 남편에게 불이익이라도 올까 걱정하는 것이다.
성여진이 그렇게 두 손이 닳도록 빌자 예지현 쉐프가 짜증을 낸다.
“아니 왜 나한테 빌어? 빌 사람이 따로 있는데? 난 고객님 화를 돋운 사람은 절대 안 써. 여진 씨가 직접 사과라도 하고 용서를 받으면 또 모를까.”
안길태 총무처장이 외친다.
“무릎이라도 꿇으면 또 모를까 아니면 용서 안 해줘!”
한범수 학과장이나 그의 아내나 사과를 바라는 안길태 총무처장이나.
모두가 치사하고 더러워서 욕지기가 날 정도다.
그때 성여진이 무릎을 꿇으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팔을 붙잡아 허리조차 굽힐 수 없게 만들었다.
“그만하시죠. 이미 충분히 사과도 했는데 무릎까지 왜 꿇으려고 하십니까?”
그때 룸 안에서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나온 최은석 실장도 성여진을 말린다.
“제수씨가 이러시는 거 알면 익환이가 피눈물 흘릴 겁니다!”
최은석 실장까지 나타나자 성여진의 눈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은석 씨······.”
“그리고 우리 지금 익환이에게 감독직을 제안하러 온 겁니다. 그러니까 더는 이딴 인간들한테 고개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남편한테 감독······이라고요?”
“예.”
난 그 틈에 성여진을 향해 조건을 말했다.
“여 감독님을 만나 연출료 5억에 순익 10% 지급. 그리고 LT 엔터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내분을 힘들게 할까 봐서 학교에 남으신다고 하시더군요.”
“정말요?”
“예. 근데 말입니다 여진 씨에게 서슴없이 이런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이 남편한테는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부교수 자리는커녕 지금보다 더 혹독하게 부려 먹다가 끝날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부교수 자리는 저 옆에 있는 안준성 조교수가 가져갈 거고요.”
미래의 부교수가 되는 안준성 조교수를 가리키자 성여진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당하는 갑질은 참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당할 갑질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이다.
그때 최은석 실장이 내 옆에서 말을 거든다.
“제수씨. 정 실장 말 들으세요. 우리 정 실장 말 듣고 실패한 사람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이딴 짓거리 다 때려치우고 나갑시다.”
그런데 우리 말을 듣고 있던 한범수 학과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익환이한테 감독직을 맡기겠다고? 농담도 무슨 그런 끔찍한 농담이 있나? 그딴 폐인한테 연출을 맡기는 게 말이 돼?”
그때였다.
한범수 학과장이 남편을 비하하자 흔들리던 성여진의 눈빛이 번뜩이며 주먹을 꼭 쥔다.
성여진은 이를 악물고 나와 최은석 실장을 쳐다본다.
“저희 남편에게 다시 연출할 기회를 주신다는 거 빈말 아니죠?”
“저희가 왜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겠습니까? 남편분 좀 설득해 달라고 온 겁니다.”
“은석 씨도 약속할 수 있어요?”
“예! 솔직히 그런 일이 아니면 제가 이곳 VIP 코스 요리를 먹으러 올 리가 없잖아요. 매일 도시락 싸서 다니는 제 씀씀이 아시면서······.”
최은석 실장의 자린고비 성격 탓인지 성지연이 굳은 신뢰를 해준다.
“두 분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믿어 볼게요.”
성여진은 각오를 다지고선 고개를 홱 돌린다.
그러고선 한범수 학과장을 향해 격렬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남편이 왜 폐인이에요! 우리 남편. 잠시 잠시! 쉬는 것뿐이에요!”
“뭐?”
“학과장님. 우리 남편 10억으로 500만 달성한 감독이에요. 그런데 폐인요? 그러는 학과장님은 단편영화제 말고 관객 수 1만 명이라도 달성해 본 적 있어요? 없잖아요! 우리 남편이 폐인이면? 학과장님은 뭐라고 불러야 하죠?”
한범수 학과장은 단편영화제에 3편 정도 낸 것 말고는 영화를 거는 데 실패한 사람이다.
그 콤플렉스를 건들자 이제껏 언성을 높이지 않던 한범수 학과장의 얼굴이 붉어지며 빽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 이게 지금 말이면 단 줄 알아? 좋아. 그래. 네 남편은 당장 해고야! 해고!”
그리고 그의 아내인 예지현 쉐프 또한 꽥꽥 소리 지른다.
“너 당장 나가! 이 배은망덕한 것이 감히 누구에게 큰 소리야?”
두 사람의 외침에 성여진이 발끈한다.
“배은망덕? 최저시급도 안 주는 고용주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죠!”
“뭐가 어째? 야!”
예지현 쉐프가 양손을 들고 머리채를 쥐어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성여진이 예지현 쉐프의 양손을 그대로 잡고 꺾어 버렸다.
“악! 야! 놔! 안 놔?”
“당신! 그간 내가 힘이 없어 당한 줄 알아?”
성여진이 예지현 쉐프의 양손을 확 하고 밀치자 예지현 쉐프가 그대로 밀려나 남편의 품에 안긴다.
“꺄아악!”
아내가 휘청이며 자신에게 안기자 분노한 한범수 학과장이 씩씩대며 외친다.
“이 이게 감히 누굴 건드려?”
한범수 학과장이 손을 들어 올린다.
난 그 즉시 성여진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 뒤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헉헉헉. 그 손 내려~~!!”
VIP룸에 나타난 여익환 감독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여 조교수. 너 지금 나보고 소리친 거야?”
“그래~~!!”
아내에게 손찌검하려는 걸 여익환 감독은 얌전한 평소와는 달리 사람 하나 잡을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한범수 학과장이 움찔하며 손을 내린다.
여익환 감독은 숨을 가다듬고 성여진을 걱정스레 쳐다본다.
“여보 밖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성여진이 남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끄덕인다.
“다친 데는 없어. 근데 미안해 여보. 나 때문에······.”
“괜찮아. 당신 잘못 아니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여익환 감독이 아내를 껴안고선 날 쳐다본다.
“정 실장님. 저한테 한 감독 제안. 아직 유효합니까?”
“물론이죠.”
여익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 뒤 아내를 쳐다본다.
“여보. 나 감독······ 제안 들어왔어.”
성여진이 남편에게 안긴 채 안정을 찾았다.
“지금 정 실장님한테 들었어.”
“미안한데 해도 돼?”
“무조건 해. 난 내 남편이 감독일 때 가장 자랑스러웠어.”
아내의 대답이 떨어지자 여익환 감독은 잠시 말을 잊었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한 여익환 감독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탁드립니다. 정 실장님.”
드디어 <그녀는 예뻤다>의 감독이 정해졌다.
“지금부터는 저한테 다~ 맡기십시오. 그동안 당한 것을 모조리 갚아드리겠습니다.”
“예? 어떻게요?”
여익환 감독이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였다.
벌컥.
VIP 구역의 문이 열리더니 60살이 넘은 남자와 그의 비서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서예종 총장 복한중과 그의 비서실장이었다.
“한 교수! 안 처장! 자네들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복한중 총장이 한범수 학과장과 안길태 총무처장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폭풍 같은 질책에 한범수 학과장과 안길태 총무처장 그리고 한범수 학과장의 아내는 멍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최은태 회장이 보내겠다는 사람이 그의 변호사도 아닌 서예종의 총장이라니.
친구 아빠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