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2화
772. 기자 간담회 1
“엄마! 엄마! 빨리 들어가서 먹자!”
미소가 베이징덕이 얹혀 있는 쟁반을 든 채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며 재촉한다.
“응. 알았어~”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오른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쳐다본다.
“오빠 근데 감자탕은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둘 다 먹으면 되는 거지.”
“대박! 진짜죠?”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때 유진이가 흠칫하더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아니 잠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너그러워요?”
너님 기분 좋으라고요.
그리고 어차피 야식으로 부은 살은 내일 아침 혹독하게 트레이닝해서 빼면 된다.
냉찜질도 하고.
스쿼트도 하고.
한 시간 정도 러닝머신을 뛰면 가뿐히 뺄 수 있다.
유진이는 갑자기 오한이 든다며 몸을 부르르 떤다.
“뭐지? 오빠가 이렇게 웃을 땐 뭔가 있는데?”
눈치 빠르긴.
“있긴 뭐가 있어? 자자~ 식겠다. 빨리 먹자.”
유진이가 날 살짝 흘겨보다 포기한 듯 말한다.
“에잇. 알았어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뭐 내일 생각할래요~”
유진이는 그렇게 말한 뒤 미소가 들고 있는 쟁반을 함께 들고 거실로 향한다.
잠시 후.
모두가 거실에 둘러앉았다.
정인지 아주머니가 베이징덕의 갈색 껍질을 얇게 저미듯 썰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베이징덕이 잘 굽혔는지를 알려준다.
그때 유진이가 말한다.
“오늘 제가 한 번씩 다 싸드릴게요~”
유진이가 밀전병을 펼치더니 껍질을 올리고 오이채와 채소를 얹은 뒤 흑색에 가까운 찐득한 첨면장 소스를 얹고 쌈을 싼다.
그러고선 그 쌈을 제일 먼저 정인지 아주머니에게 건넨다.
“먼저 고생하시는 우리 아주머니부터. 아앙~”
정인지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음음······ 고마워 유진아.”
“저도 늘 고마워요~”
다음으로 한유식 대표 부부.
그다음으로는 나 강은기 이수찬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소에게까지 싸서 한 입씩 쏙쏙 먹여 준다.
그렇게 다 쌈을 싸서 넣어준 뒤 본인도 먹으려던 순간이다.
“어음~마! 우물우물. 엄마······아 건······ 내가 싸써!”
미소가 양 볼을 부풀린 채 쌈을 싸놓았다.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고기와 오이채를 잔뜩 넣어 밀전병 밖으로 오이채가 삐뚤빼뚤 삐져나와 있다.
하지만 그런 미소의 쌈도 유진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보인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우와~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그럼 어디 먹어 볼까? 아앙~~”
유진이가 입을 벌리자 미소가 유진이의 입 안으로 쏙 하고 넣어 준다.
덥석.
“엄마 맛있어?”
유진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은 듯한 미소를 짓는다.
“응~ 너~무~ 맛있는데?”
미소가 먹던 쌈을 꿀떡 삼키며 배시시 웃는다.
“나도! 나도! 엄마가 싸줘서 더 맛있었어!”
순간 유진이와 미소는 서로를 껴안고 볼을 비비며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미소가 또 하나의 쌈을 싸서 내게 건네준다.
“유노 삼촌~ 엄마 영화 주연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자 이거 드세요!”
미소가 유진이한테 싸준 것보다 2배는 더 큰 사이즈로 쌈을 싸준다.
“고마워~ 미소야.”
덥석.
미소가 내민 쌈을 한입에 다 넣어서 씹기 시작했다.
밀전병의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더니 연이어 베이징덕 껍질이 입안에서 과자처럼 바스락대며 씹힌다.
겉바속촉의 오리고기 맛과 동시에 오이와 파의 상큼한 맛과 첨면장의 달콤 고소 짭조름한 맛이 한데 섞여 환상의 맛이 난다.
그 순간 나 역시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미소에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회귀 전에는 결코 맛보지 못한 행복의 맛이었기 때문이다.
* * *
베이징덕을 먹으며 한유식 대표와 <그녀는 예뻤다>의 드라마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흠······ 메인 PD가 김성운 그 친구라면야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근데 캐스팅을 왕미인 작가한테 맡겨도 되겠나?”
“김 PD님도 사람 잘 보실 거고요 저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난 왕미인 작가의 가능성을 믿지만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태다.
그럴 때 곁에서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흠~ 그러면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2달 정도 뒤에 드라마 편성 잡으면 되겠나?”
“예.”
“영화화는 어디까지 이야기가 됐는데?”
“시나리오 주연 배급사는 정해졌는데 감독은 아직 안 정했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일정 나오면 이야기해 줘. 그나저나 이번에도 잘 부탁하네.”
“예 대표님.”
드라마화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한유식 대표에게 내일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와달라고?”
내일은 굴렁쇠 엔터가 모든 기자를 불러다 놓고 회사의 실적과 차후 운영 방향에 관한 질문을 받고 발표를 하게 된다.
다음 주 주식 상장을 위해 그동안 일으켜온 각종 호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영화 쪽은 LT 엔터의 신종기 대표님께서 직접 와주기로 하셨습니다. 드라마화 발표 때 KBC 전무이셨던 한 대표님도 함께 계시면 조금 더 힘을 받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알았어. 자리만 채우면 되는 거니 뭐가 문제겠나.”
“감사합니다.”
한유식 대표까지 내일 불러 모은 뒤 난 이어서 강은기를 쳐다봤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강은기가 먹기 쉽도록 이수찬이 직접 쌈을 싸주고 있다.
“형님. 드시죠.”
강은기가 부끄러워하며 손사래를 친다.
“야 나 혼자 먹을 수 있다니까?”
“아 예~ 압니다. 아니까 아~~”
혼자 먹겠다고 떼를 쓰는 강은기와 그걸 무시하는 이수찬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은기야. 오늘 베이징덕 사 온다고 고생 많았다.”
강은기가 쌈을 꿀꺽 삼키고서 답한다.
“이 정도로 뭘. 어차피 할 이야기도 있었는데 잘됐지 뭐.”
“무슨 이야기?”
“내일 최영호 은행장님 나오신다더라.”
“잘됐네.”
“어. 그런데 아직 다 끝난 게 아닌 거 알지?”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만식 대표가 일본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 처리되지 않은 인물이 있다.
박상곤 의원.
그리고 그에 관한 뉴스가 거실에 켜놓은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번 4월에 치르게 되는 서울 부산 대전 광주광역시와 서울 국회의원 3석 경기 2석 대구 1석 광주 1석을 놓고 다투는 재보궐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지난주까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던 박상곤 의원이 이끄는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난한 대승을 기대했던 박상곤 의원도 근심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를 분석하는 시간을······.
주요 대도시의 시장들이 각종 비리에 얽혀 사퇴하고 구속당한 터라 이번 재보궐선거는 엄청난 화제 몰이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박상곤 의원이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우세하던 그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저거 최 회장님 작품이야?”
“어. 아버지가 요즘 들어서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종종 나가시더라고.”
최은태 회장은 회복이 조금 되자마자 벌써 병원 밖으로 다니기 시작한단다.
“하긴 너네 두 부자 모두를 노렸으니 화 많이 나셨겠지.”
최만식 대표라는 걸림돌이 사라지자 최은태 회장이 거침없이 나서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치 쪽 기사를 보니 문뜩 걱정되기 시작한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연예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강은기에게 경고는 해둬야 할 것 같다.
“은기야. 이제부터 처신 잘해야 해.”
“처신? 우리가 왜?”
“정치인들이 선거에 연예인들을 동원하려고 연락해 올 거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유명 연예인들에게 비서를 보내 온갖 형태의 ‘찬조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말이 요청이지 사실 반쯤은 협박에 가깝다.
그래서 경력 있는 연예인들 일부는 아예 해외 로케가 있다면서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 연예인 동원하는 거 불법 아냐?”
“놀랍게도 아냐. 근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자기들 비리가 터지면 연예인들을 제물로 바쳐 버려.”
정치인들 간에 비리가 터지면 곧이어 연예인의 이혼 마약 폭력 등의 사고가 뉴스에 도배된다.
정치인과 손잡은 기자들이 이런 일을 주도하는데 그때마다 연예계는 초토화가 되곤 한다.
“아이돌이나 탑스타를 조심해야겠네?”
“당연하지. 조회 수 안 나오는 연예인의 사건 사고는 자기들 비리를 덮질 못하니까.”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는 채미현 씨가 제일 위험하네.”
로코의 여왕인 그녀는 현재 동생 채석현을 세상에 알린 이후 화제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지. PD나 영화 제작자들이 술자리 가지자는 건 당분간 나가지 마.”
“명심할게.”
그때 강은기가 내게 묻는다.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너는? 우리 회사보다 너네 굴렁쇠가 더 문제 아냐? 굴렁쇠에는 탑 연예인들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많잖아.”
“걱정하지 마. 우리 애들은 문제없어.”
인성 바른 연예인과 함께하기 때문에 술이나 약 같은 일에 얽힐 일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보호하는 중이고.
“하긴 네가 어련히 할까. 그나저나 내일 기자 간담회. 잘 치러라.”
“생큐.”
이제까지 수도 없는 고비를 넘기고 굴렁쇠 엔터의 상장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최고의 회사를 만들고 최고의 연예인들을 지키며 사는 삶.
그 삶이 점점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종로에 있는 50년 된 최고급 한정식집 일월(日月).
박상곤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박상곤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거 자금이 부족하다고? 야! 밑의 애들 좀 더 족치고 지방 기업들 찾아가서 받아! 일주일에 격차가 4%가 빠지면 이러다가 본선에서 진다고! 빚을 내든 땅을 팔든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목청을 놓아 외친 박상곤이 전화를 탁하고 끊는다.
“최은태······ 이 영감이 미쳤나. 도대체 돈을 얼마나 풀고 있는 거야?”
원래 선거라는 건 공식적인 돈보다 비공식적인 돈이 몇 배는 더 많이 든다.
그런데 최은태 회장이 야권에 얼마나 돈을 퍼부었는지 전국 각지에 야당 쪽 유세 차량이 더 보인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제 그에게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권력의 지원이다.
그래서 지금 이 한정식집에서 지난 며칠간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던 한 사람을 만나기로 한 상황이다.
북악산 아래 푸른 기와집 주인을.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인기척이 느껴진다.
“대통······ 어? 왜? 자네 혼자 온 건가?”
박상곤은 같은 여당이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나오지 않고 강성기 정무수석이 나왔다.
“강 수석! 내가 VIP 만나고 싶다고 했지 너 만나고 싶다고 했어?”
강성기는 표정을 굳힌 채 박상곤에게 말한다.
“VIP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사사로이 권력을 움직인 것의 대가는 본인이 직접 책임을 지라고 하셨습니다.”
박상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그 그간 내가 협조한 건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러기야?”
“전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닥쳐~~!”
박상곤이 들고 있던 찻잔을 집어 던진다.
쨍그랑.
도자기로 만든 찻잔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나 이대로 안 죽어! 이 박상곤! 절대로 이렇게 안 무너진다고!”
박상곤은 씩씩거리며 룸을 나가버렸다.
쾅.
거칠게 문이 닫힌 순간 강성기는 한숨을 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옆방으로 이동해 문을 열었다.
옆방에는 휠체어에 탄 최은태 회장과 그의 변호사가 있었다.
“회장님. 들으셨습니까?”
“그래. 그분께 고맙다고 전하게.”
“그러면 같이 가시죠. 이대로 VIP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최은태 회장이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젓는다.
“아닐세. 이 정도만 해준 걸로 족하다네. 그리고 저 친구는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사라져야 할 정치인이라 무리한 부탁드린 거였다고 전해 주시게나.”
“VIP께서도 그 점을 잘 아셔서 박 의원을 쳐내는 데 동의하신 겁니다. 다만 꼭 좀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최은태 회장이 빙그레 웃는다.
“나처럼 어두운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자체로 그분의 약점이 된다네. 20년 전의 우리 인연은 굳이 다른 사람들이 알 필요가 없지 않은가. 지금껏 그러했듯 남은 임기도 무사히 마치길 빈다고 전해 주시게나.”
지금의 대통령은 종로에서 무소속 의원으로 내리 4선을 한 다음 여당이 되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정치색이 옅은 그였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최은태 회장의 대가 없는 정치 후원이 있어서였다.
“아 그리고······ 나 같은 돈놀이꾼을 그래도 이렇게나마 인간 대접을 해줘서 고맙다고 전해 주시게나. 내 조만간 그 감사하는 마음에 보답고자 기여금을 보낼 터이니 내가 낸 돈으로 힘없고 어려운 이들을 잘 도와주셨으면 하네.”
“회 회장님. 그렇다면 더더욱 VIP를 직접 만나 보시고······.”
최은태 회장이 빙그레 웃더니 변호사를 향해 말했다.
“가지 김 변.”
“예. 회장님.”
최은태 회장은 김택훈 변호사가 이끄는 휠체어를 타고 룸을 나섰다.
강상기는 백발을 날리는 최은태 회장을 가만히 보다 그의 등 뒤에서 고개를 숙였다.
세상 사람들은 사채꾼이라 손가락질했지만 필요하다 싶은 돈을 아끼는 법이 없었던 이가 바로 최은태 회장이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강상기 민정수석의 큰 목소리가 최은태 회장의 귀에 닿고 있었다.
* * *
토요일 새벽에 출근한 난 강감찬 대표와 강지영 이사와 오늘 기자 간담회에 대한 대책 회의를 했다.
오늘 기자 간담회를 무사히 잘 마쳐야지 회사에서 바라는 주식 공모가 2만 원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새벽 내내 회의를 마친 뒤 4층으로 돌아왔다.
정 실의 직원들을 회의실에 모은 순간 홍보 담당 김미혜가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보여준다.
[<지리산> 관객 수 1천만 돌파!]
[이태풍 연속 1천만 관객 수 돌파! 올해도 황룡영화제 대상 수상 가능성 급등!]
[할리우드 진출을 코앞에 앞둔 고재수 올해 신인상 가능성이 급등.]
[강하나 너튜브 구독자 수 200만 돌파.]
[정유진의 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90만 명 돌파!]
[최덕배 최한울과 함께 완판남 형제로 등극. LM 의류 신상 후드티 완판!]
[박상규 <도플갱어> 첫 촬영 시작!]
[체리블라썸 컴백 몸풀기 시작?]
오늘도 연예 기사면의 절반 정도는 굴렁쇠 엔터에 관한 내용들이다.
정사모는 이제 대부분이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덕배 역시도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리고 박상규는 <도플갱어>에서는 주연으로 <연무(煙霧)>에서는 조연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다.
“실장님. 이 정도면 오늘 기자 간담회는 해보나 마나 아니에요?”
“아뇨. 방심하면 안됩니다.”
“예? 왜요?”
김미혜 대리를 비롯해 모든 팀장과 정 실 직원들이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저희는 기자들에게 뒷돈을 거의 주지 않으니까요.”
이 업계에는 관행적으로 뒷돈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굴렁쇠 엔터는 정해진 선 이상으로는 돈을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딴 주머니를 채워 주지 않는 우릴 매우 못마땅해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에브리데이가 이런 운세도 알려준 상황이다.
[에브리데이 V13]
[날짜 : 2021년 3월 20일]
[오늘의 운세 : 유비무환(有備無患)]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난 새벽부터 나와서 준비를 마쳐 놓은 것이고.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도란희가 고개를 갸웃한다.
“실장님! 그러면 오늘 기자 간담회 때 저희가 바람잡이라도 할까요?”
“그럴 필요 없어. 내가 다 준비해뒀으니까.”
난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안심을 시켰다.
날 믿어 달라고.
순간 영원한 나의 동기 이영진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하긴 우리 정 실장님이 우릴 실망시킨 적 없잖아? 에이~ 난 걱정 안 할래. 오늘 내 할 일이나 해야지.”
도란희가 맞장구를 친다.
“뭐 하긴. 누가 우리 정 실장님한테 이겨? 실장님! 파이팅!”
정 실 매니저들 모두가 파이팅을 외쳤고 난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당당히 소강당으로 향했다.
* * *
정 실의 회의가 끝난 이후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난 강감찬 대표와 강지영 이사와 함께 오늘 기자 간담회에 관해 추가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린 다 같이 지하 소강당으로 내려왔다.
지하 소강당에는 기자들이 무려 150명이나 몰려들어 와글거리고 있다.
원래 오기로 한 기자들보다 무려 50명이 더 찾아온 상황.
강지영 이사는 발표를 맡았기에 강감찬 대표를 모시고 김관우 부대표 정수혁 이사가 기다리는 무대 위로 향했다.
“저희는 먼저 올라갈게요.”
”예. 전 제일 앞자리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난 무대 아래 가장 앞 열의 객석에 있다가 필요하면 중간에 끼어들기로 약속하고선 1열 내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앉은 자리 옆에는 오늘 막 출소한 최영호 대흥 저축은행장이 앉아 있다.
“고생하셨습니다. 은행장님.”
“고생은 무슨. 정 실장이 고생했지. 미안해 그날 밤 모든 걸 맡겨 둬서.”
“아닙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자 문이 닫히더니 사회를 맡은 김장비 본부장이 진행을 시작했다.
“아! 아! 그러면 지금부터 저희 굴렁쇠 엔터의 기자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저희 강감찬 대표님의 발언이 있겠습니다.”
강감찬 대표는 내가 회귀한 이후의 굴렁쇠 엔터 사업 현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굴렁쇠 엔터의 회사가 몇 배로 더 성장했고 앞으로는 세계로 뻗어 나갈 거란 것도.
그렇게 강감찬 대표의 확신에 찬 설명이 끝난 이후 질문 시간이 되었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착착착.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든다.
김장비 본부장이 손을 든 기자들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2열 중간에 있는 한 명을 가리킨다.
“박 기자님?”
“예. 조명일보 박형식 기자입니다.”
독사 박형식.
그는 한국 최대의 일간지인 조명일보 문화부 팀장 기자였다.
그리고 그는 평소 엔터테인먼트사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것만 골라 기사를 내서 엔터 회사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인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첫 질문부터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질문은 실례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유진 양이 매니저와 한집에 산다던데 사실입니까?”
술렁거리는 소리가 일더니 모두의 눈이 1열에 앉은 내게 꽂히기 시작한다.
지금 그 말은 유진이와 나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박형식 기자는 이제 어떻게 대답할 거냐며 입꼬리를 씨익 올린 채 웃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약속한 대로 강감찬 대표가 날 가리킨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 정 실장이 대답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난 마이크를 건네받고선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