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9화
769. 시나리오의 주인 1
왕미인 작가가 보내는 까톡이 연달아 들어오고 있다.
[MBS 왕미인 작가 : 보내 주신 시나리오 말인데 제목은 달라도 제가 쓴 거예요! 이게 원래 <그녀는 예뻤다>란 제목으로 고기동 감독님 시나리오 수업 시간 과제로 쓴 대본이고요.]
[MBS 왕미인 작가 : 근데 이게 왜 실장님 손에 있어요?]
<다시 태어난 아이돌> 시나리오의 주인이 왕미인 작가일 줄이야.
게다가 원래 제목이 회귀 전 내가 알던 <그녀는 예뻤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기동 감독은 왕미인 작가가 과제로 제출한 시나리오를 보고 제목을 <다시 태어난 아이돌>로 바꿔 투자 배급사에 돌린 것이다.
그 순간 회귀 전 표절 소송이 걸리지 않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영화화가 결정되고 투자금이 들어왔을 때 회귀 전에는 가난한 작가이던 왕미인 작가에게 돈을 주고 시나리오를 산 게 분명했다.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시나리오의 진짜 주인을 알았기에 눈앞에서 항의하고 있는 천이상 이사와 박은빈 그리고 고기동 감독의 태도가 그저 가소롭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
먼저 왕미인 작가의 시나리오 권리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천이상이 고기동 감독과 박은빈까지 끌고 온 것도 수상했다.
기자들에게 유진이가 강압적으로 박은빈의 주연을 가로채려고 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기 딱 좋은 구도였으니까.
나 그 즉시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전 고 감독님 영화에서 손을 떼죠.”
“뭐야? 너 무슨 꿍꿍이야?”
“고 감독님 작품에서 손을 떼라면서요?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난 어깨를 으쓱인 뒤 유진이 역시 일으켜 세웠다.
“유진아 가자.”
박은빈과 노려보던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가 말한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 순간 유진이를 노려보던 박은빈이 빽하고 외친다.
“뭐야? 왜 이렇게 쉽게 물러나? 응? 내가 주연한다니까 방해하려고 한 주제에 왜 갑자기 이래?”
박은빈이 발작하듯 고함을 친다.
의심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렇기에 난 더는 말을 섞지 않고 유진이를 데리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딸랑.
카페 M의 출입구에 달린 종소리를 들으며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유진이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오빠. 왜요? 고 감독님이 표절했을지 모른다면서요? 표절 작품으로 저렇게 당당하게 구는데 한 소리 해줘야죠!”
“그 전에 이것부터 봐봐.”
난 의아해하는 유진이에게 왕미인 작가가 보내 준 까톡 메시지를 보였다.
유진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작품이······ 왕 작가님이 원본이라고요?”
“어. 그러니까 지금 바로 MBS로 가서 시나리오 권리부터 얻어야 해!”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시나리오 판권을 획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유진이를 설득했다.
유진이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안에 더 있었으면 괜히 말렸겠네요. 알았어요 오빠. 당장 가요!”
다만 MBS 앞에는 베이징덕 요리전문점이 없다.
“MBS 앞에는 베이징덕이 없으니까 오늘은 감자탕이나 먹자.”
유진이가 생긋 웃는다.
“오빠. 난 원래 베이징덕보다 감자탕을 더 좋아했어요.”
“오케이~ 그러면 왕 작가님 만나고 나서 감자탕 먹으러 갈까!”
“아니에요. 감자탕 싸서 집에 가서 미소랑 같이 먹어요.”
“그래. 내가 오늘 그 시나리오 사면 특자로 쏜다!”
“예썰~”
난 그렇게 외친 뒤 왕미인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왕미인 작가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저 방송 작가실에 있어요. 그쪽으로 오시면 돼요.
“바로 가겠습니다.”
유진이와 난 즉시 MBS로 향했다.
* * *
정윤호가 사라진 카페.
천이상은 주머니에서 녹음 중이던 폰을 살짝 올려놓았다.
탁.
천이상이 녹음 중지 버튼을 눌렀다.
[녹음 중지]
“젠장. 두 사람 다 어떻게 말실수 한 번을 안 하냐!!”
천이상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선 박은빈을 노려봤다.
“야 박은빈! 정유진을 도발해서 기삿거리를 만들라고 했더니 네가 먼저 흥분하면 어떻게 해! 네가 지X발광하는 소리만 담겼잖아! 만약에 정 실장이 녹음이라도 했으면 넌 인마 끝이야!”
박은빈이 씩씩거리며 정유진이 나간 문 앞을 가리킨다.
“아 저게······ 열받게 하잖아요!”
“저게? 넌 아직도 정유진이 겨우 저게야? 지금 정유진은 너랑 비교도 안 될 거물이야! 그거 인정 안 하면 넌 앞으로 절대 정유진 못 이겨.”
박은빈이 부들부들 떨며 답한다.
“아 안다고요!”
“아는 데 그래? 그리고 알면 다시는 이딴 모습 보이지 마!”
박은빈이 대답 없이 고개를 홱하고 돌린다.
정유진이 한국 최고의 배우라는 걸 머리로는 인정해도 가슴으로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때 고기동이 눈치를 보며 말한다.
“그러면 끝난 거야? 천 이사?”
천이상이 정윤호가 사라진 입구를 보며 답했다.
“아니. 정윤호 저 자식. 절대 그냥 넘어갈 놈이 아냐. 뭔가 있어.”
천이상은 그 순간 아차하며 벌떡 일어났다.
“설마······ 아니······겠지?”
“뭔데??”
천이상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이제껏 경험으로 늘 정윤호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한발이 앞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젠장!”
천이상은 고기동을 노려보며 외쳤다.
“고 감독. 시나리오 원작자의 대본 권리 방송 아카데미에도 있지?”
고기동이 침을 꼴딱 삼켰다.
“어. MBS 방송 아카데미에서 만들어진 시나리오의 모든 권리는 아카데미도 일정 부분 권한이 있어.”
“그러면 당장 MBS 방송 아카데미에 가자. 정 실장 저 자식. 아까 폰 보는 게 수상해.”
“응? 정 실장이 내가 왕미인 작가의 시나리오를 갖고 영화를 만들 걸 안다고? 어떻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천이상은 이제까지 정윤호에게 당한 경험을 살려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늘 한발 아니 두 발 앞서 움직이는 정윤호였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본능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지금은 움직일 때였다.
천이상은 곧장 자신과 친한 MBS 방송 아카데미의 가애주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가 대표. 지금 당장 나 좀 봐. 내가 부탁할 게 있어!! 어 지금 당장!!”
천이상의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정윤호에게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 * *
MBS 방송 작가실.
주로 예능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송 작가실로 들어가자 왕미인 작가가 우릴 작은 회의실로 안내한다.
이번 주 수요일 밤 <토크쇼! 연예 세상>에서 시청률 15.5%가 나온 왕미인 작가는 메인 작가가 되어 한창 다음 주 대본을 쓰던 중이었다.
그런데 고기동 감독이 멋대로 자기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려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유진이가 찾아와서 괜찮다며 이야기해 주자 금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설마 제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라서요. 이제 괜찮아요.”
왕미인 작가가 진정했으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현재 시나리오가 왕미인 작가에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왕 작가님. 혹시 그 시나리오를 본인이 직접 썼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을까요? 고기동 감독에게 보낸 이메일 기록이라든지요.”
“아뇨. 고기동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종이로 출력해서 받았어요.”
MBS 방송 아카데미 강사진 중에서는 결과물을 종이로 출력해서 제출하라는 사람들도 있다.
PD나 투자자들이 종이로 영화 시나리오를 보기 원하는 경우가 많아서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출력된 종이로는 객관적인 증거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혹시 시나리오 작업은 노트북으로 하셨습니까?”
파일 작성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녀가 의자 옆에 놓아둔 가방에서 얇고 반짝이는 흰색 노트북을 꺼낸다.
그런데 가방에서 꺼낸 게 올해 나온 신상 노트북이다.
“설마······ 노트북 바꾸셨습니까?”
“아 예. 한 달 전에 파일을 여기로 옮겼어요.”
왕미인 작가는 평생 글만 쓰다 보니 컴퓨터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파일을 아예 새 컴퓨터로 옮기면 포렌식이고 뭐고 할 게 없는데······.
“혹시 옛날 노트북은요? 디지털 파일 포렌식을 하려면 원래 쓰던 노트북이 필요합니다.”
왕미인 작가의 얼굴이 하얘졌다.
“완전히 고장 나서······ 폐가전으로 버렸는데······ 어떻게 하죠?”
당황한 그녀가 발을 동동 굴린다.
하지만 난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방법들이 많으니까요. 그러면 혹시 시나리오를 다른 공모전에 낸 적은 없습니까? 공모전에 이메일로 제출하면 기록이 남으니까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왕미인 작가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없어요. 원래는 드라마 대본으로 만든 걸 고기동 감독님 수업에 맞추려고 급히 영화 시나리오로 변경했거든요.”
드라마화 대본이라고?
그 순간 눈앞에서 서광이 비친다.
“잠깐만요. 이게 원래 드라마 대본이라고요?”
“예. <그녀는 예뻤다>는 원래 드라마 공모전용으로 작성한 거였어요. 근데 고기동 감독님 수업 숙제까지 할 시간이 안 나서 쓰던 대본을 급히 수정해서 낸 거예요.”
영화 시나리오의 원작인 드라마 대본이 있다면 고기동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를 훔쳐 갔다는 걸 인정받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러면 드라마 대본은 공모전에 낸 적이 있습니까?”
“아 네. 공모전에 4화까지 써서 제출했어요.”
“혹시 그 메일 좀 볼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그녀가 노트북으로 들어가 메일을 검색한다.
“여기요.”
[한국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
[날짜 : 2019년 5월 13일]
[<그녀는 예뻤다> 1화~4화.]
‘됐다!’
거의 2년 전.
그녀가 공모전에 제출한 드라마 대본 공모전 파일이 메일에 첨부되어 있었다.
“제가 파일을 잠깐 봐도 될까요?”
“예. 보세요.”
그녀가 내 앞으로 노트북을 내밀어 준다.
그때부터 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시나리오를 보기 시작했다.
탁탁.
노트북의 화살표로 읽으며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기쁨의 포효를 지를 뻔했다.
캐릭터의 이름 배경 기본 설정과 조연들이 이름까지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알던 <그녀는 예뻤다> 영화보다 분량이 더 많아서 그런지 훨씬 더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극에 재미를 더하는 깨알 같은 조연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담겨 있었다.
파일을 한 페이지씩 넘겨 읽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4화까지 다 읽어버렸다.
‘이거 드라마도 만들면 재미있겠는데? 아차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탁.
기분 좋게 마지막 노트북 자판의 화살표를 두드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 드라마 대본이 있으니 영화 시나리오도 왕 작가님의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네요.”
“예? 이걸로요?”
“예. 캐릭터의 이름 배경 첫 번째 에피소드까지 싹 다 같습니다. 게다가 주요 설정이 겹쳐서 이 정도면 빼박입니다.”
“하아~ 다행이다~”
“축하해요 작가님.”
왕미인 작가가 유진이의 축하를 받으며 한숨을 내쉰다.
난 영화 시나리오의 판권을 지키기 위해 먼저 드라마 대본에 대한 계약부터 마무리 짓기로 했다.
“작가님. 이 드라마 대본. 계약하신 곳 있습니까?”
“아 아뇨. 공모전에도 떨어졌는데요?”
“그럼 저희랑 계약하시죠?”
“예? 굴렁쇠에서도 드라마 제작을 하나요?”
“아뇨. 저희는 판권만 사고 제작은 미리내와 할 수 있도록 힘을 써 드리겠습니다. 물론 순서로는 영화가 우선이겠지만 드라마화도 그리 늦지 않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왕미인 작가의 눈이 큼지막해진다.
졸지에 원래의 꿈이었던 드라마 작가가 되게 생겨서였다.
“어 어떻게 해~”
그러자 유진이가 왕미인 작가의 손을 잡고 방방 뛰기 시작한다.
“어떻긴 어떻게 해요? 당장에 계약하셔야죠!”
정유진.
나이스 어시스트.
오늘따라 유진이가 참 예쁜 짓을 많이 한다.
“아 예. 예. 할게요. 꼭 할게요. 정 실장님이랑 꼭 할게요!”
당장 팩스로 계약서라도 보내 달라고 해야겠다.
“그러면 제가 계약서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예. 작가실에 팩스 있으니까 보내 주시면 돼요.”
“예.”
그렇게 구두로 약속을 하고 에브리데이를 확인했다.
그런데 일정이 그대로다.
[에브리데이 V13]
[날짜 : 2021년 3월 27일]
-PM 10:00 [NEW. 정유진]
<연예계 방방곡곡> “정유진의 신작 영화는 표절작?”
[연예올타임즈] “정유진의 첫 영화 제작 무산.”
[산업일보]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 굴렁쇠 엔터 상장에 예상치 못한 악재 발생.”
(긴급회의 : 고기동 감독의 시나리오와 원본 시나리오 사이에 80% 이상의 일치를 확인.)
‘응? 이건 왜 안 사라지지?’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사라지는 건가 하던 그때였다.
덜컹.
방송 작가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전화 통화를 하며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알겠다니까? 내가 여기 일 끝내고 바로 나갈 테니까 국장님 방에 가 있어.
달칵.
방송 작가실에 들어온 누군가가 외친다.
-왕 작가는 어디 있어?
-회의실에 있을 건데요? 불러 드릴까요?
-아냐. 우리가 가 보지.
두 사람이 대화하며 우리가 있는 회의실로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난 즉시 왕미인 작가의 노트북에 펼쳐진 파일을 닫았다.
덜컹.
문이 열리더니 MBS 방송 아카데미의 가애주 대표와 지난주까지 <토크쇼! 연예 세상>을 이끌던 최은세 작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MBS 방송 아카데미는 방송국에 필요한 작가와 스태프들을 양성하기 위해 방송국이 만든 자회사였다.
그리고 해당 아카데미에 출강을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MBS 방송국 스태프들 내지는 외부 현업 관계자들이고.
어쨌건 방송국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관이기에 가애주 대표는 MBS에서도 이사급 대우를 받는 거물이다.
천이상 이사와도 사적으로 친한 사이였고.
그리고 최은세 작가는 MBS 방송 아카데미에서는 이사급 대우를 받는 작가 겸 이곳 방송 작가실의 치프이기도 했다.
순간 두 사람이 조금 전 만난 천이상 이사의 부탁을 받고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영화 시나리오의 판권을 이참에 넘기라고 온 거겠지.
그렇다면 이 둘을 처리해야지 일정이 사라지는가 보다.
“정 실장이랑 유진 씨도 있었어?”
가애주 대표는 우리가 있을 줄 몰랐는지 놀란 기색이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안녕하세요?”
유진이와 내가 인사하자 가애주 대표는 금세 얼굴을 가다듬고 가식적인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나야 늘 안녕하지~ 그리고 유진 씨. <화란전>은 늘 잘 보고 있어. 우리 교육생들이 다 유진 씨 팬이니까 언제 한번 놀러 와서 특강 같은 거 한번 해줘.”
“제가 감히 어떻게요.”
“에이~ 왜 그래? 그냥 와서 편하게 이야기 좀 해주면 돼.”
“죄송해요. 전 아직 제 연기만으로도 벅차서요.”
“그래? 아쉽네. 하여간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와줘.”
“네.”
유진이가 탑스타의 반열에 올라있다 보니 가애주 대표는 이 와중에도 유진에게만큼은 다정하게 군다.
가애주 대표는 그렇게 말한 뒤 왕미인 작가를 쳐다본다.
“아 맞다 왕 작가. 잠깐만 나가서 따로 좀 볼까? 내가 우리 왕 작가랑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아 참고로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아니지. 왕 작가한테는 엄청 좋은 기회야.”
엄청 좋은 기회?
늘 아랫사람을 유혹할 때 꺼내는 말은 그렇게 시작하지.
난 왕미인 작가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왕미인 작가도 무슨 일인지 눈치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선 가애주 대표에게 거부 의사를 밝힌다.
“죄송해요 대표님.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라서요. 이거 끝내고 나서 나가면 안 될까요?”
“5분이면 되는데도?”
“죄송해요. 대표님.”
가애주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새파란 작가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순간 최은세 작가가 왕미인 작가를 거칠게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야. 버릇없이 어디서 거절을 해? 가 대표님께서 할 말이 있다고 나오라고 하시잖아!”
왕미인 작가가 고개를 젓는다.
“죄송해요. 정 실장님이랑 이야기가 먼저예요.”
순간 최은세 작가가 발끈해서 외친다.
“야 너 계속 이렇게 위아래로 모르고 싸가지 없이 굴면 앞으로 MBS에서 아예 일 못 하게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 엉?”
감히 유진이가 출연할 영화 시나리오의 주인을 위협해?
난 그 즉시 왕미인 작가의 앞을 막으며 최은세 작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저랑 하시죠 작가님.”
지금부터 난 왕미인 작가의 시나리오를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그리고 표절 작가들과 손을 잡은 이들은 모조리 나락으로 떨어뜨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