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1화
721. 스타 매니저 4
나의 백기사들인 진성식품이나 LM 의류 CK 엔터에서 마케팅 부서의 임원들을 보내왔다.
이렇게 이슈 때문에 바빠질 때면 전화 연락이 힘들다는 걸 알고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중 진성식품에서는 진성준 대표가 직접 왔다.
순간 강감찬 대표가 재빠르게 소식을 전한 이영진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 대리. 진 대표는 먼저 회의실로 모셔오고 나머지는 6층 대회의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해.”
“예!”
이영진이 밖으로 나가자 강감찬 대표가 김관우 부대표를 향해 말한다.
“부대표. 여기까지 해. 광고주가 직접 찾아왔는데 안 된다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광고주들은 광고주님이라 부를 정도로 엔터 회사에게는 갑 중 갑이다.
하지만 김관우 부대표는 이를 악물더니 고개를 젓는다.
“차라리 잘됐네요. 이제 제가 광고주들을 설득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봐.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김관우 부대표가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예. 정 실장 말대로 광고비를 전액 기부한다고 해도 정 실장이 얻게 되는 혜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방송 PD나 광고주들이 몰래 찔러 주는 혜택들이 여간 많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정 실장에게만 계속 특혜를 주는 게 문제입니다.”
“뭐라고? 특혜?”
“예. 솔직히 대표님 앞이라서 입 다물고 있는 거지 회사 내에서 정 실장 특혜 준다고 얼마나 뒷말이 나도는지 아십니까?”
강감찬 대표가 화를 버럭 낸다.
“능력대로 대우해주는 건데 특혜는 무슨 특혜! 그리고 남을 시기할 시간이 있으면 프로그램 하나 더 따고 배우를 성공시킬 생각을 해야지!”
강감찬 대표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김관우 부대표는 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뭐 하여간 회사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광고주들은 제가 다 설득할 테니 성공하면 철회해 주시고 앞으로 매니저들은 광고 출연이 안 된다고 못 박아 주십시오.”
김관우 부대표는 덕배뿐 아니라 매니저인 나까지 주목 받자 큰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특히 다음 달 초에 굴렁쇠 엔터를 상장하다 보니 어떻게든 내게 흠집을 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강감찬 대표가 화가 나서 한마디를 더 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나섰다.
이젠 곧 진성준 대표가 회의실에 도착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대표님께서 광고주님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저도 고집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김관우 부대표의 말대로 회사 내에서 내가 특혜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여기서는 강감찬 대표가 나서서 김관우 부대표를 찍어 누르는 건 그림이 안 좋다.
차라리 김관우 부대표가 날 밟으려다 실패로 돌아가는 게 좋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김관우 부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그 순간 김관우 부대표가 강감찬 대표를 향해 자신 있게 말한다.
“정 실장 말하는 거 대표님도 들으셨죠? 제가 광고주들을 설득하면 더 이상 특혜는 없는 겁니다?”
김관우 부대표가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진성준 대표가 젠틀하고 예의를 갖춘 사람이라지만 그도 엄연한 재벌가의 로열패밀리니까.
다시 말해 갑질 좀 할 줄 안단 소리다.
* * *
진성준 대표가 여진수 비서와 함께 임원 회의실에 찾아왔다.
간단한 인사 후 자리에 앉자마자 역시나 덕배와 날 함께 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는 제안부터 꺼낸다.
“덕배 군이랑 정 실장님을 저희 광고 모델로 쓰고 싶습니다.”
순간 김관우 부대표가 끼어들어 진성준 대표에게 말한다.
“진 대표님. 죄송하지만 정 실장은 귀사의 광고 모델을 맡을 수 없을 듯합니다.”
진성준 대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강감찬 대표와 날 보고 말했는데 갑작스레 김관우 부대표가 답을 하며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진성준 대표는 김관우 부대표를 잠깐 바라보다 강감찬 대표에게 묻는다.
“대표님도 같은 생각입니까?”
강감찬 대표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현재 회사 내에서 정 실장에게 너무 특혜를 주는 거 아니냐고 해서 저도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다만 전 기본적으로는 정 실장의 광고 출연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김관우 부대표가 다시 끼어든다.
“진 대표님. 회사 내부 사정도 이해 좀 해주십시오. 그리고 정 실장이 출연하지 않는 대신 덕배 앞으로 책정한 광고비의 20%를 자진 삭감토록 하겠습니다.”
기껏 내어놓은 수가 재벌한테 광고비를 깎아 주겠다는 것이라니.
진성준 대표가 로열패밀리치고는 워낙 정중하게 군 터라 이 정도로 된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진성준 대표는 필요에 따라서 무자비하게 사람을 대할 수도 있는 냉철한 로열패밀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진성준 대표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김관우 부대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 푼돈 깎아주면 제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습니까?”
진성준 대표의 말투가 냉랭해진다.
파트너로 대하던 눈빛은 이제 아랫사람을 깔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당황한 김관우 부대표가 급히 상황을 수습하려 한다.
“그 그리고 저희 회사에 있는 천재 작곡가 윤동구 실장이 해당 광고의 CM송을 무료로 제작해 드리겠습니다. 광고 효과는 확실하게 있을 거라 자부합니다.”
진성준 대표가 가당찮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결국 내게 묻는다.
“정 실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야 당사자다 보니 여기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진성준 대표는 형들의 질시로 온갖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무능한 윗사람이 능력 있는 아랫사람을 방해하는 걸 무엇보다 싫어했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이 그런 상황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진성준 대표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자기 비서에게 고개를 돌린다.
“여 비서.”
함께 온 여진수 비서가 고개를 숙인다.
“예. 대표님.”
“우리 회사에서 굴렁쇠 엔터 쪽에 협찬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몇 개지?”
“총 33개 정도 됩니다.”
“그럼 광고는?”
“광고는 큰 거 5개 계열사와 과자나 음료수들같이 작은 건 15개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김관우 부대표와 연관된 배우나 가수들에게 들어가는 것들만 추려 봐.”
여진수 비서가 태블릿도 보지 않고 즉각 대답한다.
“정 실장 쪽에 들어가는 광고를 제외하면 협찬은 25개 광고는 큰 거 2개 작은 거 13개가 관련 없는 것들입니다.”
진성준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싹 다 빼.”
순간 회의실에 북극 한파가 몰아치듯 차가운 냉기가 몰아친다.
정 실 배우와 가수를 빼고 굴렁쇠 엔터의 모든 배우와 가수의 협찬과 광고를 모조리 끊으라는 지시까지 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진성준 대표가 가지고 있던 로열패밀리다운 모습이다.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여진수 비서가 폰을 꺼내 든다.
김관우 부대표가 다급히 외친다.
“대표님! 왜 이러십니까!”
진성준 대표가 손을 들어 여진수 비서를 말린다.
그러고선 눈을 깔며 김관우 부대표를 쳐다본다.
“진성식품의 대표인 제가 직접 찾아와 부탁까지 했습니다. 이 정도로 예의를 갖췄는데 감히 내 체면을 무시한 인간에게 왜 호의를 베풀어야 합니까?”
겉으로만 존대지 철저히 아랫사람을 대하는 말투다.
“호······ 호의라뇨? 그 그동안은 저희 애들이 필요해서 광고에 쓰신 거잖습니까?”
“이봐요. 부대표. 착각도 작작 하세요. 우리 진성에는 탑스타가 아닌 이상 대체할 연예인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다시 말해 정 실장 쪽 연예인 빼고는 굴렁쇠의 사정을 봐줘서 협찬해 준 거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김관우 부대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마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성준 대표가 혀를 찬다.
“하~ 진성의 이사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던 주제에 참~ 겁이 없어졌군요. 내가 강 대표님이랑 정 실장님이랑 좋게 지내니까 본인도 뭐가 된 줄 착각하는 겁니까?”
“그 그게······.”
진성준 대표는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여진수 비서에게 말한다.
“여 비서. 홍보이사 지금 당장 여기로 데려와! 그동안 사람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진성의 이름값이 이따위로 땅에 떨어진 거야? 어?”
“예. 바로 튀어오라고 하겠습니다.”
김관우 부대표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한다.
진성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진성준에게 제대로 찍혔다는 소문이 돌게 되면 앞으론 어떤 광고 대행사도 김관우 부대표와 일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떤 연예인도 마찬가지로 김관우 부대표와 손을 잡지 않으려고 할 거다.
이젠 내가 광고에 출연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김관우 부대표에겐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러자 김관우 부대표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파 옆으로 나가 무릎을 꿇는다.
털썩.
“지 진 대표님.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습니다. 하 한 번만 봐주십시오.”
김관우 부대표가 바들바들 떨며 고개마저 숙인다.
하지만 그 행동이 다시 한번 진성준 대표를 화나게 만든다.
“무릎은 왜 꿇으십니까? 내가 갑질이라도 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야~ 오늘 여러 방식으로 날 엿 먹이려고 작정하셨네.”
김관우 부대표가 울상을 하고 손을 휘젓는다.
“아 아닙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진짜 오늘 기분 좋게 왔는데 확 나빠지게 만드시는군요.”
결국 김관우 부대표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진땀을 뻘뻘 흘리며 날 쳐다본다.
“저 정 실장. 어떻게 좀 해 봐. 광고 출연해도 되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설득할게. 제발! 좀······ 응?”
어찌나 다급한지 김관우 부대표가 애원하듯 말한다.
그때 강감찬 대표도 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진성준 대표가 말한 일이 벌어진다면 결국 굴렁쇠 엔터의 상장에도 좋을 게 없다.
물론 백기사인 진성준 대표가 그걸 모를 리는 없다.
즉 이 행동은 보란 듯한 허세일 게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를 달래고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그는 진성그룹의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진 대표님. 저희 부대표님이 옛날 분이라서 사과하는 스타일이 좀 올드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절대 갑질이니 뭐니 하는 소문이 안 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진성준 대표가 짜증을 거두고 말한다.
“후우~ 알겠습니다.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최덕배 배우와 정 실장님 두 분이 저희 제품 광고에 함께 나와주시면 됩니다.”
이 와중에 은근슬쩍 광고를 확정 지으려고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사업가는 사업가다.
강감찬 대표를 슬쩍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난 진성준 대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 대표님. 광고 출연하겠습니다.”
진성준 대표가 헛기침한다.
“크흠.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는 저희끼리 했으면 좋겠군요.”
강감찬 대표가 김관우 부대표를 향해 말한다.
“김관우 부대표는 본부장 데리고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지?”
“아 알겠습니다.”
김관우 부대표가 황급히 고개를 숙인 뒤 김장비 본부장과 함께 임원 회의실을 나간다.
텅.
문이 닫힌 순간 진성준 대표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한다.
거만하고 오만한 표정이 사라지곤 평소대로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가 조금 무례했습니다. 강 대표님이 이해 좀 해주십시오.”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가 더 무례했지요.”
진성준 대표와 강감찬 대표가 서로에게 양해를 구한다.
진성준 대표는 이어서 내게 말한다.
“그러면 이제 계약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정 실장님.”
“어떤 제품을 광고하실 생각입니까?”
“이번에 리뉴얼한 ‘진짜라면’ 제품의 광고 모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덕배 씨는 3억 정 실장님은 5천만 원으로 광고비를 측정했습니다.”
‘진짜라면’이라면 안심이다.
진성식품의 초창기부터 나왔던 ‘진짜라면’은 최근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진성준 대표 체제에서 리뉴얼해서 이 라면은 향후 10년 라면 판매량 글로벌 TOP 5위 안에 들어가는 히트를 치며 진성식품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거듭난다.
“감사합니다. 대신 제 앞으로 측정된 광고비는 전액 보육원에 기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부요?”
“예. 광고 출연을 대가로 다른 매니저들의 불평을 지우기 위해서 전 광고비를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진성준 대표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한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저희도 추가로 보육원과 저소득층 아동에게 새로 나오는 ‘진짜라면’ 5천 박스를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햇반과 김치도 세트로 묶어서요.”
확실히 나의 백기사는 손을 잡을 만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러면 혹시 내일 촬영이 가능하겠습니까?”
“내일······이요?”
“예. 원래 제품을 리뉴얼하는 거라 생산은 문제없고 광고 모델만 찾던 중입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지금처럼 분위기가 좋을 때 광고를 내보낼 생각입니다.”
진성준 대표는 이번 주 <전지적 관찰 시점> 방송이 나가기 전에 제품 판매를 시작하려 한다.
빡빡하긴 하지만 덕배가 오늘 오후에 서울로 올라오니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예. 대표님.”
“아 참 광고 촬영 장소는 덕배 군의 집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덕배의 집은 현재 <다큐 7일>과 <전지적 관찰 시점>의 촬영 때문에 깔끔하게 정리된 상황.
광고 촬영 현장으로 쓰기에도 문제가 없다.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해서 내가 동반 출연하는 덕배의 라면 CF 광고 계약이 마무리되었다.
* * *
진성식품을 비롯해 백기사들과 광고 출연 계약을 3건 정도 더 맺은 뒤 다음 날.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연예계에서는 <전지적 관찰 시점 : 최덕배 – 정윤호 매니저> 편의 여파가 한창이다.
그 탓에 현재 ‘진짜라면’ 광고 촬영을 앞둔 이 상황에도 광고주의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지잉~ 지잉~
결국 난 폰을 무음으로 변경한 뒤 광고 촬영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촬영할 ‘진짜라면’ 광고 촬영 현장은 <전지적 관찰 시점>에 나왔던 덕배의 집이다.
방송에 나온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 ‘진짜라면’의 CF 촬영 현장을 이곳으로 정한 것이다.
“조명 조금만 더 밝게 해줘. 라면 CF는 조명이 생명이야!”
‘THE 베스트’ 광고의 반응이 좋았기에 이번 광고도 박불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때였다.
끼익.
큰 방문이 열리더니 메이크업을 마친 덕배가 나온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한울이가 방 안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한다.
“형 파이팅!”
“그래 파이팅! 그리고 한울아.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끝나고 밥 먹자.”
“알았어 형.”
그때 한울이가 문틈으로 날 발견하고 배꼽 인사를 한다.
꾸벅.
난 인사를 하는 한울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울이가 생긋 웃고는 조용히 문을 닫는다.
콩.
한울이는 CF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촬영이 끝날 때까지 방 안에서 양소리 대리가 같이 놀아 줄 예정이다.
그리고 사실 한울이도 오늘 CF에 동반 광고 제안이 들어왔었다.
덕배도 처음엔 호의적으로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 기자들이 학교로 찾아와서 마구잡이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마음을 바꿔버렸다.
덕배는 심지어 CF를 비롯해 모든 방송에 한울이를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그래서 현재 이번 주 <전지적 관찰 시점>에도 한울이는 출연하지 않기로 결정 나 버렸다.
그때 덕배가 스태프들과 인사한 뒤 내 곁으로 온다.
그런데 현장에 와 있던 진성준 대표가 다가오더니 덕배에게 묻는다.
“덕배 군. 한울이 출연을 다시 한번 고려해줄 수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자꾸 방송에 나오다 보면 한울이가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못 할 거 같아서요. 한울이가 학교 다니는 게 소원이었기에 그것만은 지켜주고 싶습니다.”
진성준 대표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알겠습니다.”
그때 촬영 준비가 끝났다.
박불출 감독이 우리를 쳐다본다.
“두 사람. 이제 촬영 준비 좀 해주세요.”
“예!”
덕배가 주방 옆의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난 가스레인지 앞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내가 라면을 끓이고 덕배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실장님. 팔 좀 벌려보세요. 앞치마 차셔야 해요.”
“예.”
가스레인지 앞에 선 나는 스태프가 채워 주는 앞치마를 착용했다.
앞치마에는 앙증맞은 토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한 박불출 감독이 내게 말한다.
“정 실장님. 라면은 적당히 끓이는 척만 하면 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따가 진성식품 식품연구소 팀장님이 끓여주실 겁니다.”
하지만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풀었다.
내가 정 커피만큼이나 자신 있는 게 바로 정 라면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