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37)
시간을 되돌린다·
은하의 가족이 여행을 떠나기 전·
한서현 정하양 이유정 류연화는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모았다·
“첫째 날에는 어디 가기 그러니까 호텔 시설을 이용하는 게 낫겠지?”
“오빠 말로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안마 시설이 들어섰다나 봐· 우리 다 같이 야경이나 보며 안마를 받는 건 어떨까?”
“거기 바도 나쁘지 않았었으니··· 괜찮겠네· 나는 찬성이야·”
“나도· 호캉스도 좋을 것 같아·”
노유성이 태어난 이후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들로서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계획을 짜면서 최고의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당연히 그 하루에는 은하와 보낼 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
여행 계획도 이제 어느 정도 구체화되기도 했겠다·
한서현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서로 외면하고 있던 화제를 입에 담았다·
“슬슬 은하랑 돌아가며 잘 순서도 결정해야 하지 않겠니?”
“····”
“혹시 단둘이서 말고 여럿이서 잠을 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
“있으면 그 사람들끼리는 묶어서 같이 자도록 해 줄게· 그렇게 하면 누군가는 은하랑 한 번 더 잘 수 있을 테니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겠니?”
은근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들을 회유하려는 한서현·
하지만 세 사람은 그녀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다·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는 거니? 아쉽네·”
여럿이서 자는 것도 싫진 않았지만 간만에 특별하게 보내는 날인 만큼 다들 사랑하는 사람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결국 그들은 공평하게 날을 정해서 은하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문제는 누가 여행 첫날 밤에 은하랑 잘 것이냐는 건데····”
인간의 정력은 무한하지 않다·
소모하면 채워야 하는 충전식이다·
은하가 현재 〈군주〉로서 추앙되며 신적인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을지라도 본질적으로 인간인 이상 끝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다만 그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아주아주 절륜했을 뿐이다·
은하 한 명밖에 모르는 그녀들이 건너 듣기로는 그랬다·
밤새도록 직접 겪어 본 바로도 확실히 그럴 것 같기도 했고·
―정말··· 너는 못 당하겠구나·
―나 나 이제 안 돼···!
―으 은하야 그 그만···!
―정말···· 괜찮아? 더 해도···?
언제나 먼저 쓰러지고 다음 날에 몸살이 나는 쪽은 그녀들이었다·
그나마 류연화만 양호한 편이었다·
그녀는 제 발로 멀쩡하게 걸어서 침실을 나갈 수 있었으니까·
“혹시 양보할 사람은 없니?”
“····”
여하간·
은하와 즐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면 무조건 첫날 밤이 유리했다·
그러니 그녀들은 모두 첫날 밤을 차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로 인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던 그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묘한 눈싸움을 벌이게 됐다·
누구도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첫 번째로 결혼한 나를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니겠니? 그러니 너그럽게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은하랑 첫 번째로 결혼한 사람은 언니지만 처음으로 연애한 사람은 나란 걸 잊은 건 아니지? 은하를 처음 만난 사람도 나고 은하랑 알고 지낸 시간이 제일 많은 것도 나고· 나랑 은하는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란 말이야· 그러니 첫날 밤은 나한테 양보해 줬으면 해·”
“그럼 나는 은하랑 회귀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사실상 처음 맺어진 것도 나였고·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는 나랑 은하의 관계를 생각해서 배려해 주면 안 될까?”
“저기 얘들아···· 회귀 전의 인연을 따지면 나도 은하랑····”
“회귀 전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니· 어찌 됐든 이번 세상에서 은하가 처음으로 선택한 사람은 나거든?”
“맞아! 회귀 전을 꺼내는 건 반칙이지!”
서로 조금도 지지 않으려 했다·
이대로 제 의견만 피력했다간 말다툼으로 번질 여지가 있었다·
가정의 평화가 깨질 수 있다·
한서현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들 생각이 그렇다면···· 좋아 사다리 타기로 결정하자·”
“사다리 타기?”
세 사람이 의문을 표하는 가운데·
한서현이 준비했다는 듯이 백지를 꺼냈다·
이내 그녀가 상단에 칸을 만들고 하단에 1부터 4까지 숫자를 적고 상단과 하단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그리려고 했다·
그때 정하양의 눈썹이 꿈틀했다·
“언니 잠깐·”
“왜 그러니?”
“언니가 사다리를 만들게 되면 조금 형평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눈치가 빠르구나· 하지만 여기서 누가 만들든 상황은 같지 않니?”
“저기 얘들아 그럼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선을 그으면 어떨까?”
“음 그것도 좀 곤란하네· 우리가 손을 대면 미리 결과를 알아 버릴 수 있잖아·”
사다리 타기로는 납득할 수 없다·
조작이 불가능하고 사전에 결과를 알 수 없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그렇게 흘러가며 한서현의 모략은 무위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때 노유성이 나타났다·
“엄마들 여기서 뭐 해요?”
“유성이구나· 마침 잘 왔네· 얼른 엄마한테로 올래?”
한서현은 거실 문턱을 걸치고 선 노유성을 곁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쪼르르 달려온 그에게 백지를 내밀었다·
“엄마들이 정해야 할 게 있거든· 그러니 유성이가 도와주지 않겠니? 사다리 타기 전에 만든 적 있지? 유성이가 여기에 그려 주지 않을래?”
“사다리 타기요? 네! 좋아요!”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유성이가 만들어 주는 거라면 공평하겠지?”
“유성이라면···· 믿을 수 있지·”
“유성아 다 만들고 나서 위에다 다른 종이를 덧대 줄 수도 있을까?”
“나도 좋아·”
노유성은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 열심히 사다리를 그려 나갔다·
거기에 종이를 잘라 붙이기도 했다·
이윽고 사다리 타기가 완성됐다·
“엄마들! 다 됐어요!”
“고마워 유성아· 엄마들은 이걸로 이제 일을 봐야 하거든· 미안하지만 깡이랑 불닭이랑 같이 놀다 오지 않겠니?”
“네! 엄마들 저 갈게요!”
“그럼 이제 사다리 타기를 해 볼까?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이의 없이 승복하기를 바랄게·”
그리하여·
네 사람은 사다리 타기를 벌였고 결과에 기뻐하고 슬퍼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후···· 3등인가· 내 입으로 말해서 이제 와서 두말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네·”
“2등이네···· 1등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2등이 어디야· 나는 이걸로 만족해!”
“내가 꼴찌네···· 4등이야····”
“···1등· 처음은 나인 거구나·”
* * *
평소에도 힘을 쓰기는 했었지만 여행이니만큼 은하는 평소보다 더 특별히 힘을 써야 했다·
덕분에 수면은 물 건너갔다·
류연화와 여행 첫날 밤을 보낸 그는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날을 새워야 했다·
‘이 짓을 여행 내내 해야 한다니····’
화목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내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했다·
즉 어젯밤 류연화에게 해 준 만큼 다른 세 사람에게도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행 기간에 잠을 자는 것은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하렘은 미친 짓이 맞구나····’
아내들이 자신을 원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그녀들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보람과 충족감을 안겨 준다·
싫을 리 없다 너무 좋다·
그럼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들을 아내로 맞이한 선택이 후회되지는 않았지만····
하렘을 차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얼른 휴가나 끝나면 좋겠다···· 일이 이렇게 하고 싶어질 줄이야·’
게다가 아이들까지 놀아 줘야 했다·
은하는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가장과 아버지로서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해하니 흡족한 감정이 더 앞섰지만·
‘그래 나만 고생하면 되지·’
지금까지 미래를 바꾸랴 일하랴 아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고생만 시켰다·
제대로 아이들과 놀아 주지도 못했다·
내심 그들에게 미안해하던 은하는 이제야 조금은 마음의 부채를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여행을 즐거워할 수 있다면 자신은 쉬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와아! 물이 엄청 많아요!”
가족 여행 둘째 날·
은하의 가족은 제주도 북부에 있는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깨끗한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에서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이 보였다·
파도치는 소리와 바다 내음이 함께 전해지기도 했다·
‘귀엽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된 노유성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노유란 노유린도 마찬가지였다·
은하는 아이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자리는 이쯤에서 잡기로 하고···· 다들 수영복을 갈아입고 오자·”
“삐삐삐 빠빠빠 뿌뿌뿌!”
“깡!”
가이드들이 파라솔을 설치해 주었다·
거대한 파라솔 아래로 짐들을 놓은 은하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노유성에게 수영복을 입히는 것은 은하가 맡기로 하고·
아내들은 노유란 노유린을 데리고 여성 탈의실로 향하기로 했다·
그때 류연화가 눈에 들어왔다·
‘저 누나가 왜 저러지?’
맨 뒤에서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그녀들을 뒤따라가는 류연화·
은하는 사뿐사뿐 모래 위를 밟는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연화야 왜 그래? 몸이 안 좋으면 파라솔 아래에서 편히 쉬고 있어·”
“아 은하야· 그게 아니고····”
“응?”
부끄럽다는 듯이·
류연화가 말을 흐리며 몸을 꼰다·
이내 그녀가 은하에게만 들리게끔 귓가에 속삭였다·
“그게 아까부터 자꾸····”
“····”
은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다만 류연화의 몸에 이상이 없어 다행이기만 했다!
* * *
노유성은 이미 바지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한서현이 사전에 입힌 것이다·
덕분에 은하는 그를 갈아입히는 데 애를 쓰지 않아도 됐다·
수영모와 물안경 튜브와 장난감을 챙겨 주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은하도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빠 우리가 1등인 것 같은데요?”
“그러게· 엄마랑 여동생들은 아직 갈아입는 중인가 보다· 먼저 우리끼리 놀고 있을까?”
“좋아요!”
짐을 둔 백사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은하와 노유성은 여성진을 기다리며 해안가에서 물장난을 쳤다·
“오 물이 안 무서운가 보네? 그래도 너무 깊이 들어가려 하지 마· 내 시야에 닿는 곳에 있도록 하고·”
“네! 아빠도 그랬어요?”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냐고?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네·”
어느새 튜브 속에 몸을 끼워 넣고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노유성·
아들의 물음에 생각에 잠겼던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무서워했을 거야·”
“그렇구나· 내가 이겼다!”
“그래 네가 아빠보다 용감하네·”
은하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로 나뉘어 존재했다·
회귀 전과 회귀 후로·
그중 회귀 전의 어렸을 적 기억은 굉장히 모호하기만 했다·
크라켄에게 가족을 잃었던 충격이 기억을 좀먹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워낙 어리기도 했었고····
다만 은하가 기억하기에 회귀 전의 자신은 어렸을 적에 울보였던 데다 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의 자신을 어렴풋이 떠올리니 노유성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은하는 장난을 치듯 권했다·
“그럼 우리 더 깊이 들어갈까?”
“···더 깊이요?”
“한···· 저어기까지 어때?”
“····”
“뿌뿌····”
“깡····”
은하는 1km는 떨어져 있는 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위를 눈에 담은 노유성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수영복을 입고 개헤엄을 치고 있던 깡이와 구명조끼를 입은 불닭이는 어처구니없어했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안 무서워· 아빠 믿지?”
“네····”
“그럼 가 볼까?”
은하는 키득거리며 기어코 노유성을 바위로 이끌려고 했다·
여성진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애가 무서워하잖니· 아빠란 사람이 장난으로라도 그래도 되겠니?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혼날래?”
“엄마!”
“···아 왔어?”
매끄러운 피부를 상당수 드러내며 검은 모노키니를 입고 있는 한서현·
대화를 듣자마자 물속으로 들어온 그녀는 노유성을 자신에게 끌어오며 은하를 노려보았다·
겸연쩍어진 은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잘못했지?”
“그래 내가 잘못했어·”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유성이 때문에 봐주는 거야·”
“유성아 고맙다·”
노유성이 애교를 부린 덕에·
다행히 한서현은 더는 화를 내지 않고 기분을 풀었다·
그사이 다른 가족들도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 어떠니? 남편이 돼서 뭐라도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니니?”
“맞아! 너한테 예뻐 보이려고 고른 수영복인데 해 줄 말 없어?”
“우리 어때? 예뻐? 야해?”
“나도···· 큰마음 먹고 골랐는데····”
가슴골이 보이는 가슴을 활짝 편 한서현의 뒤편으로·
세 사람이 보란 듯이 은하를 향해 한껏 자세를 잡았다·
어깨가 활짝 드러나고 하늘거리는 분홍 오프 숄더 비키니를 입은 정하양·
청순하면서도 성적 매력이 담긴 하얀 비키니를 입은 이유정·
마지막으로 새하얗고 탄력 있는 피부를 과감히 노출한 머리칼보다 진한 푸른 비키니를 입은 류연화·
그녀들을 보고 잠시 넋이 나간 은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예쁘네···· 엄청·”
멍하니 꺼낸 그 한마디에·
네 사람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성공하면서 기쁜 듯한 기색이었다·
은하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안심했다·
‘오늘 해수욕장을 통째로 빌리기를 잘했네····’
은하 자신이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들은 하나같이 누구나 한 번쯤 눈이 갈 법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들이 오늘 이날을 위해 작정하고 가꾼 몸매를 선보였으니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신 외의 다른 놈들이 그녀들에게 흑심을 품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면 분노로 몸이 떨렸다·
은하는 눈앞에 있는 그녀들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은 자신만 보면 충분했다·
한편으로는·
‘내 딸들이지만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아내들에게 넋이 나가 버렸었던 은하는 수영복을 입은 딸들을 보고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빠 나 예뻐?”
“저 예뻐요?”
“응 엄마들보다 더 예쁜데? 너희가 최고로 예쁘다·”
당당하게 걸어 나와 묻는 노유란과 이유정의 다리를 안고 있는 노유린·
은하는 깜찍하고 사랑스럽기만 한 그녀들에게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들이 배시시 웃으니 더더욱·
“우리보다 애들이 더 좋니?”
“내가 유란이라서 참는다 흥!”
“딸바보가 다 됐다니까·”
“그래도 유성이랑 애들이 정말로 예쁘기는 해·”
아내들은 장난스럽게 질투했다·
이후로 은하의 가족은 하루 종일 바다에서 즐겁게 놀았다·
* * *
여행 둘째 날 밤이 찾아왔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늦게까지 논 은하와 가족들은 이제 잠을 자러 가기로 했다·
은하와 단둘이 잠을 자기로 예정된 정하양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다들 오늘 노느라 피곤했을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도록 해! 유정이는 유란이 잘 부탁하고 내일 아침 로비에서 만나자!”
한껏 달아올라 있는 정빨강이었다·
더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서 터뜨려 버리고 싶다·
은하의 손을 잡은 그녀는 당장에 그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아빠는 오늘 하양 엄마랑 같이 자는 거예요? 저도 아빠랑 자고 싶은데····”
“····”
정하양이 해산을 외치려던 그때·
한서현의 치마폭에 매달려 있던 노유성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칭얼거렸다·
정하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흠칫했다·
한서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넌지시 운을 뗐다·
“그러니? 유성이가 아빠랑 같이 자고 싶은가 보구나·”
“네····”
“그럼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랑 아빠랑 유성이랑 셋이서 자도록 할까?”
“정말요?”
“하양 엄마가 허락해 준다면 당연히 가능한 일이지· 유성이가 하양 엄마한테 부탁해 보렴·”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한서현·
어찌하지 못하고 뺨을 긁적이는 노은하·
쓴웃음을 짓는 이유정과 류연화·
정하양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내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거의 울먹거리며 대꾸했다·
“아 안 돼···· 내가 오늘 밤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서현 언니 이건 반칙이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유성이가 은하랑 자고 싶다는데 어쩌겠니? 아니면 나 빼고 하양이 네가 유성이를 데리고 자든가·”
“으으····”
망연자실하는 정하양·
한서현은 그런 그녀를 놀리는 것을 계속 즐겼다·
물론 한서현도 의도적으로 그녀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즐겼다고 생각한 한서현이 선심 쓰듯 말했다·
“유성아 오늘은 하양 엄마한테 양보하고 엄마랑 같이 자자· 응?”
“네에···· 아빠 하양 엄마 잘 자요·”
“그래 유성아· 다음에 같이 자자·”
“서현 언니···· 너무너무 고마워····”
“그렇게 고마우면 내일 밤을 위해 은하 피곤하게나 하지 말렴·”
정하양은 금세 미소를 되찾았다·
이윽고 은하와 방에 들어가 마침내 단둘이 됐을 때는 표정이 돌변했다·
“어흥!”
“···응?”
정하양이 침대 근처를 지나가던 은하를 냅다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그의 위에 올라타서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여보 잡아먹을 거야 어흥!”
“얼씨구···· 그러다 혼난다·”
“꺄악!”
정하양이 힘으로 은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은하가 살며시 힘을 주어서는 자신과 그녀의 위치를 바꿨다·
정하양을 내려다보게 된 은하는 냉큼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흥·”
“여보가 나 잡아먹을 거야?”
은하는 몸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