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33)
이전 삶에서·
루미너스그룹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 이정인은 자신의 형제에게 모질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 삶에서 아버지는 큰아버지 이병인의 권모술수로 새벽그룹의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리고 자살했다·
홀로 모든 책임을 끌어안고·
―···아빠?
이유정이 열한 살이었을 때 일이다·
그날의 기억은 유독 선명했다·
〈기적〉의 대가로 잊지 않았더라면 절대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된 죽음이었고 부모의 죽음이었으며 첫 번째 발견자였으니까·
―아···빠···?
새벽 호텔 사태로 인해·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 된 이정인은 정신적으로 위태로워하며 서재에 틀어박혔다·
그런 그를 위로하러 서재에 들어선 이유정이 목도한 것은 목을 매달고 삶을 마감한 그의 유해였다·
―····
이정인은 등을 보인 채로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의자가 엎어져 있었으며 그의 바짓가랑이에서는 악취를 풍기는 오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유정은 자신이 본 광경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서재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뒤이어 서재를 찾은 어머니의 새된 비명이 울려 퍼졌을 때였다·
―꺄아아아악!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을 사랑으로 보듬어 준 어머니·
이유정은 상류층 여인다운 면모와 품위를 보이던 그녀가 이성을 잃고 오열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충격에 정신을 차린 그녀도 곧 어머니처럼 엉엉 울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느냐면·
―네 아버지 일은 안타깝게 됐다·
―큰아버지····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유정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이정인이 홀로 떠안고 죽은 것으로 새벽 호텔 사태와 다른 사건에 대한 책임 소지는 유야무야 해결됐다·
당시 새벽그룹의 회장으로 있었던 그녀의 할머니 이윤희와 선녀 정부 마지막으로 어둠 사이에서 모종의 협의가 오간 것이다·
그리고 이병인이 이정인을 대신해 차기 회장으로 취임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 주렴·
이병인은 이정인의 죽음을 기리고 그의 가족들을 후하게 대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닌 어디까지나 계산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이병인으로서는 그들을 우대하며 한때 그들의 편에 붙어 있던 세력을 장악할 의도를 품고 있었다·
승계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가까이에서 감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유정도 이유천도 모르지 않았다·
―네··· 큰아버지····
그럼에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숙여야 했다·
설령 이정인의 죽음에 이병인이 관련되었을지 모른다 해도·
이미 대세는 그에게 기울었으며 나이가 어린 그들에게 손을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가족들하고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아니 그것은 이유정의 바람이었다·
이유천의 바람은 달랐다·
―나는 이렇게는 절대로 못 끝내· 분명 우리가 모르는 게 있을 거야· 아버지를 명예롭지 못한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오빠 우리 힘으로는····
―그래서 평생 수그리고 살라고? 원래는 우리가 가졌어야 할 것들을 다 빼앗기고?
―····
―나는 아버지의 원수일지 모르는 사람 밑에서 비굴하게 굴면서 살고 싶지 않아· 유정이 넌 가만히 있어· 어떻게든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내가 오빠잖아?
만약 이정인이 살아 회장이 됐다면 다음 대의 회장은 이유천밖에 없었다·
이유정은 새벽그룹의 회장 자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했고 애초 첩의 자식이나 다름없던 그녀에게는 정통성이 떨어졌다·
그렇다 보니 이병인에 대한 반감은 이유천보다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권력보다 가족들이 더 소중하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실을 파헤치려고 들었다·
대가로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정인이도 그렇고 아니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유 유천아···? 아 안 돼····
―아····
이병인이 회장이 된 이후로 새벽그룹은 침체기에 빠졌다·
경쟁자였던 YH그룹이 약혼으로 시리우스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하던 반면에 그가 추진하는 모든 일은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벽그룹의 과거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물밑에서 목소리를 내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이병인을 몰아내고 대신에 이유천을 회장 자리에 앉히려 했다·
하지만 모반은 실현되기도 전에 이병인에게 발각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여러 이유로 숙청당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유천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바로 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오빠····
이병인에게 있어 정통성을 지닌 이유천은 눈엣가시였다·
그렇기에 그는 교통사고로 위장해 이유천을 죽인 것이다·
이유정은 내막을 짐작했다·
물증은 없고 본인은 부인했다지만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합리적 의심이었다·
그러나 이유천의 시체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해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흑····
―그래 유정이 네 마음 이해한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잃어서 많이 힘들겠지·
―큰아버지가····
―그렇더라도 주제는 파악해야지· 눈이 그게 뭐냐·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오렴·
―···네·
기껏해야 눈시울이 벌게진 상태로 이병인을 노려보는 것뿐·
그마저도 이유정은 이병인의 경고에 눈을 내리깔아야 했다·
회귀 전 그녀의 현실이었다·
한편 이유천의 죽음으로 어머니는 완전히 실성하고 말았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머니의 정신은 유아로 퇴행했다·
이병인은 그런 그녀의 요양을 위해 한적한 시골로 보내 버렸다·
말이 요양이지 실상은 유폐였다·
이유정은 그녀가 어느 날 홀연히 세상을 떠나게 될 때까지 극진히 그녀를 간호했다·
―····
그때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였다·
이유정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가족을 모두 잃은 것이다·
지독한 상실감은 그녀로부터 하여금 삶의 의지를 빼앗았다·
그러나 차마 죽을 용기는 없었으며 그럼에도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이병인이 찾아온 것은 그러던 때였다·
―유정이 너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말이다····
―····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데·
―가족···이요···?
―그래· 마침 얼마 전에 나한테 좋은 이야기가 들어왔거든····
이병인에게 있어 이유정의 존재는 정략적인 도구로서 가치가 높았다·
날이 갈수록 YH그룹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는 그녀를 이용하고자 했다·
YH그룹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정략결혼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후보자는 두 명이었다·
갤럭시그룹의 최정훈과 단군그룹의 홍진우·
―어느 쪽이든 유정이 네가 원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있도록 힘을 써····
―싫어요·
―····
―하고 싶지 않아요·
이유정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정략결혼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새벽그룹의 직계로서 누릴 것을 누린 그녀는 그룹의 이익을 위해 언젠가 자신을 희생하게 될지도 모를 날을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그러나 그 가정은 이정인을 위해 이유천을 위해 존재했다·
‘누구 좋으라고·’
이유정은 이병인의 이익을 위해서 정략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얌전히 그녀의 사정을 배려해 줄 리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선택해야 했다·
―···이렇게 나올 거냐· 유정아 앞으로도 네가 새벽그룹의 사람으로서····
―저 나갈게요·
―뭐?
―나가 살겠다고요· 새벽그룹하고는 아예 연을 끊고요·
어차피 이유정은 더는 새벽그룹에 애착을 가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것을 계기로 그녀가 새벽그룹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완전히 사라진 셈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과감하게 인연을 끊기로 했다·
생계는 걱정하지 않았다·
―네 나이에 뭘 할 수 있다고! 정말 후회하지 않을 거냐?
―네 후회하지 않아요·
재산이라면 아버지와 어머니 이유천이 남겨 놓은 게 있었다·
자신이 따로 모아 둔 것도 있었고·
이전처럼 풍족하게 살긴 힘들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정도였다·
또한 생활력은 어머니를 간호하며 강해지기도 했다·
―대체 혼자서 어떻게 살겠다고····
―아카데미에 들어갈 거예요·
―····
―플레이어가 될 거예요·
이유정은 이병인의 성격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일반인으로서 살아간다면 필시 그는 새벽그룹의 힘을 사용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로서는 그의 영향력이 가장 적게 미칠 플레이어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안녕히 계세요 회장님·
이유정은 새벽그룹과 절연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의 계획대로 중등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됐다·
그곳에서 그녀는 따돌림을 받았다·
―쟤가 걔야? 끈 떨어진 연·
―우리 괜히 엮이려 하지는 말자· 잘못해서 새벽그룹에서 보복이라도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새벽그룹이 쇠락해 가고 있더라도 여전히 재계 순위 10위 내에 있는 재계그룹이었다·
그렇다 보니 새벽그룹의 직계였던 그녀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고 또한 그녀가 새벽그룹과 절연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기 꺼려질 만도 했다·
―····
이유정 또한 사정을 이해했기에·
그녀도 자칫 자신이 피해를 줄까 그들과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언급해서는 안 될 쉬쉬해야 할 존재가 된 것이다·
그녀가 새벽그룹의 직계였었다는 이야기는 알 만한 사람들만 알고 그대로 묻히게 됐다·
고등아카데미에 진학하게 될 때는 재계그룹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더더욱·
그래서 은하가 회귀 전에 그녀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사교성이 좋았더라면 어쩌다 주워듣게 됐을 수도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그녀 이외에 딱히 친구가 없었다·
* * *
이유정이 은하에게 끌리게 된 것은 그녀의 기구한 사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그녀는 가족을 잃은 그와 자신을 겹쳐 보았다·
그에게 연민과 동정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마땅한 친구가 없던 그녀에게 그는 편히 마음을 터놓고 대할 수 있는 상대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눈치챘을 때는 어느새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하랑 나는 가족이 없었으니까 서로가 기댈 수 있는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은하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 가족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안개꽃 파티에 집착하고 하백련에게 집착한 것이리라·
이유정 자신이 그랬듯이·
“이크 나는 그만 일어나 봐야겠네· 일하러 갈 시간이야·”
“벌써? 이제 곧 떡볶이도 나올 텐데 한입이라도 먹고 가지·”
“그러고 싶기는 한데···· 다음에 기회 되면 먹도록 할게· 나는 가 볼게·”
그때쯤 시간을 확인한 이유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정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도 이젠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그가 가게를 나서는 것을 배웅한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노유린과 하백련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언니 언니·”
“왜애? 유린아?”
“이건 모예요?”
“이거? 음···· 아마 트램펄린인가 그랬을걸? 저기 올라가서 방방 뛰는 거야·”
“응? 응? 응?”
“우리 직접 올라가서 놀아 볼까?”
“네에·”
하백련이 트램펄린 위에서 가볍게 폴짝폴짝 뛴다·
그 위에 앉아 있던 노유린은 돌연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하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날도 다 있구나····’
그 광경을 눈에 담고·
이유정은 절로 흐뭇해졌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낳은 딸아이 노유린·
그리고 이전 삶에서 자신과 그가 딸처럼 소중히 아끼던 하백련·
두 사람이 사이좋게 노는 모습은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게 했다·
물론 이전 삶의 하백련이었다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면서 항의했을 것이다·
‘회귀 전의 나는 백련이한테···· 참 복잡한 감정을 품었었지·’
이전 삶에서·
이유정이 하백련에게 애착을 가진 이유는 그녀 또한 자신과 은하처럼 가족을 잃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를 보살피게 된 자신과 은하가 마치 가정을 이룬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언니한테는 미안한데···· 그래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저 은하 오빠 좋아해요· 제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요·
그런데 설마 자신보다 12살 어린 그녀가 그런 말을 해 올 줄은 몰랐다·
새끼 고양이인 줄 알고 키웠건만 사실은 새끼 호랑이였던 것이다·
당시 그녀의 진심을 들은 이유정은 크나큰 배신감에 휩싸였었다·
은하는 모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둘이서 툭하면 싸웠었다·
‘하지만 백련이 네가 있어서····’
은하가 삶에 미련을 가질 수 있게 이끌 수 있었다·
만약 자신만 그의 곁에 있었다면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래 인정할게· 하지만 백련이 네가 은하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온전히 네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나는 딱히 도와주거나 하지 않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언니· 절 인정해 줘서· 그리고 언니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언니도 좋아하는걸요? 그러니까 두 번째라도 좋아요·
미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유정은 하백련이 은하에게 품는 마음을 용인했었다·
그녀를 딸이 아닌 한 명의 여자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그렸었다·
―죽게 두지 않을 거야 시간을 되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회귀 전의 자신이 은하를 따라서 〈심연의 던전〉 공략에 참가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은하를 죽지 않게 하려고·
자신과 은하와 하백련 셋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지만 회귀 전의 자신은 끝끝내 그를 지켜 내지 못했다·
그때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기적〉의 기프트로 시간을 되돌려 그를 회귀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너는 또 우리를 만났지·’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됐을 텐데도·
은하는 기억을 잃은 자신과 하백련을 이번 세상에서도 만나러 왔다·
혼자서 묵묵히 모든 과거를 간직하고 암울한 미래를 바꾸려 들었다·
자신과 하백련을 위해·
아니 하백련의 미래를 위해·
‘아마 백련이 네가 없었다면···· 어쩌면 은하는 미래를 바꾸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나와도 만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자니 이유정으로서는 하백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얘들아 음식 나왔어!”
“네 지금 갈게요! 유린아 우리 이제 로제 떡볶이 먹으러 가자!”
“네에!”
그런데 하백련은 이번 삶에서도 어김없이 은하에게 마음을 품어 버렸다·
그가 그녀를 조카나 딸처럼 여기고 있는 것과 다르게·
그녀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유정을 포함해 그의 아내들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백련이의 사정은 회귀 전이랑 달라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참 신기하네· 은하가 이번 삶에서 백련이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모습을 생각하면 반하는 것도 이해되기도 하고···· 혹시 이런 게 운명이란 걸까·’
심경이 복잡하지 않느냐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하백련에 대한 정과 고마움이 더 앞섰기에·
이유정은 평온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으음! 역시 로제는 맛있네요! 응? 언니는 안 먹어요?”
“백련아·”
“네 언니·”
“은하 좋아하니?”
“네?”
“남자로서·”
“····”
딸그락하고·
눈이 크게 떠진 하백련이 손에 쥔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치 죄를 저지르고 들킨 사람처럼·
이유정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그녀를 보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백련이 너한테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야·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해·”
“····”
“이성으로서 은하를 좋아하니?”
“···네···· 그런 것 같아요····”
하백련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며 고개를 푹 수그린다·
이유정은 그런 그녀를 보고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구나· 응원할게·”
“네? 언니 지금 뭐라고····”
“내가 도와줄까?”
“····”
은하의 마음이 어떨지는 모르나·
하백련이 그에게 품은 마음을 자신이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을 보태고 싶었다·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귀 전의 기억 때문일까? 전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때 하백련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요···?”
“응 정말·”
이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