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8화
648. 컴백 3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14일]
-PM 10:00 [NEW. 김세리] <연예계 방방곡곡> 김세리. KBC ‘뮤직 스테이지’ 무대에서 실수 연발. “1위 달성은 다음 주로.”
세리가 무대에서 실수를 연발한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세리는 겁 많고 허풍이 좀 있었지만 실전에는 매우 강한 타입이다.
과거와는 달리 솔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신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했고.
그렇기에 세리가 혼자서 무너진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바로 이 일이 외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순간 난 가장 먼저 방금 대기실에 들어온 박은빈을 의심했다.
박은빈은 이렇게 먼저 나서서 대기실 인사를 다니는 타입도 아닌 데다가 나와는 엄청난 악연이 있었기에 우리 대기실을 찾아오기도 싫었을 테니 말이다.
즉 지금 이렇게 찾아온 건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난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저희가 먼저 인사를 가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박은빈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린다.
“오랜만이에요 정 실장님. 뭐 대기실 인사야 한가한 사람이 돌면 되는 거죠. 신경 쓰지 마세요.”
분홍색 투피스를 입은 박은빈이 눈웃음을 짓는다.
쉬는 동안 시술을 받았는지 도도하고 오만하던 인상이 강아지처럼 착해 보이는 인상으로 변해 있다.
순간 뒤쪽에 앉아 있던 세리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내 옆으로 삐죽 빠져나왔다.
일부러 가렸는데도 내 생각보다 더 당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선배. 복귀 축하드려요!”
박은빈이 피식 웃는다.
“축하는 네가 받아야지. 근데 너 오늘 1위 거의 확정이라며?”
“아직 잘은 몰라요.”
“겸손은 됐어. 스태프들한테 들어보니까 사실상 1위라고 그러던데 뭐. 그나저나 너 많이 컸다?”
박은빈이 살짝 도발하듯 말한다.
세리가 눈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에이~ 그거야 모르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닌데요 뭘.”
세리는 내가 말해준 걸 기억하고선 이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박은빈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언제 이렇게 컸냐 우리 세리.’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0주 연속 음방 1위 12주 연속 음방 1위를 한 세리는 이제 더는 어린 꼬맹이가 아니었다.
박은빈에게 맞서서 시선을 마주할 정도로 당당한 가수가 된 것이었다.
기특하고 대견해서 웃음마저 지어진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박은빈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고작 몇 개월밖에 못 봤었는데 세리의 태도가 너무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그래? 뭐 그러면 1등······ 잘하길 바랄게.”
“예! 선배님. 그리고 컴백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세리가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자 박은빈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진다.
이젠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라는 뜻인 듯 두려움도 보이지 않고 생글생글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동팔 본부장이 내게 말한다.
“정 실장.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박은빈을 여기서 두고 단둘이?
아무리 세리가 당차졌다곤 해도 박은빈 같은 미친 X이랑 둘이 둘 생각은 없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 미친 도란희가 붙어있긴 했지만 괜히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난 마동팔 본부장에게 말했다.
“그냥 여기서 말씀하시죠.”
“하~ 진짜 넌 어쩜 그리 한 번을 그냥 듣는 법이 없냐? 나오라면 좀 나와 봐. 세리가 듣는 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니까.”
“세리가 못 들을 이야기라면 저도 안 듣겠습니다.”
“이 새X가 진짜!”
마동팔 본부장의 인상이 팍 구겨지고 큰 소리가 나오려고 한다.
폰을 슬쩍 만지면서 녹음하려던 순간 그가 숨을 쉭쉭 몰아쉬며 진정하기 시작한다.
“야. 정 실장.”
“예. 말씀하십쇼.”
“김동수 대표랑 유강석 대표에 관한 이야기야. 그래도 필요 없냐?”
최근 김동수 대표와 유강석 대표는 화연의 류신 실장과 손을 잡고 할리우드 영화에 자기네 배우들을 출연시키려 시도했다.
그러다 나 때문에 판이 깨졌고.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지금은 세리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 이야기라면 오늘 무대 끝나고 나서 하시죠?”
결국 마동팔 본부장이 짜증을 내면서 몸을 돌려 버렸다.
“됐어! 새X! 듣기 싫으면 관둬! 야! 은빈아! 가자!”
마동팔 본부장은 그대로 대기실 밖을 나서 버린다.
그걸 본 박은빈이 날 쳐다보며 입꼬릴 올린다.
“여전하네요 우리 정 실장님은. 자기만 옳고 겁도 없고.”
난 그녀에게 똑같이 답했다.
“누가 겁이 없나 모르겠네요. 우리 은빈 씨는 나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또 수작을 부릴 마음이 나던가요?”
박은빈이 뭔가 대꾸하려 몸을 부르르 떤다.
“재수······ 없어!”
난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대답을 속으로 숨기면서 말이다.
‘이하동문.’
박은빈은 날 빤히 노려보다 몸을 홱 하고 돌려 버렸다.
쾅!
대기실의 문이 거칠게 닫힌다.
난 그 즉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14일]
-PM 10:00 [NEW. 김세리] <연예계 방방곡곡> 김세리. KBC ‘뮤직 스테이지’ 무대에서 실수 연발. “1위 달성은 다음 주로.”
아쉽게도 아직은 일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하지만 아직 생방송 무대까지는 꽤 남았기 때문에 안심할 순 없었다.
박은빈이나 마동팔 본부장이 언제 세리에게 해코지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어쨌건 난 세리를 안심시키려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세리의 표정이 밝았다.
“세리야. 괜찮아?”
세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괜찮져~. 그리고 유노 오빠 무슨 말 하려는지 나 이제 알아요. 박은빈 신경 쓰지 말고 제 할 일만 하라는 거죠?”
기특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 세리. 진짜 다 컸네. 내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인데?”
하지만 그때였다.
세리가 내 팔을 꼭 쥐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뇨. 절~~대 아니에요!”
일순간 아이처럼 변한 세리의 행동에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하하. 알았어. 알았으니까 팔 좀 놔 줘. 쥐 나겠어.”
어찌나 꽉 하고 잡았는지 피가 안 통하는 것 같다.
세리가 눈치를 보며 묻는다.
“나 두고 안 갈 거죠?”
“물론이지.”
세리가 그제야 슬금슬금 손을 떼며 말한다.
“그럼 됐어요!”
어쨌건 세리의 멘탈이 단단하다는 걸 확인했기에 난 KBC <뮤직 스테이지>의 차태희 PD부터 만날 계획을 잡았다.
현장에서 돌아가는 모든 상황은 PD에게 전달되니까 그녀를 만나면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두 사람 다 고생 좀 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 난 PD님 뵙고 올게.”
“예~~.”
난 차태희 PD를 만나기 위해 곧장 부조정실로 향했다.
반드시 오늘 세리를 1위로 만들기 위해서.
* * *
부조정실 앞에는 PD를 만나러 온 여러 회사의 매니저들이 서 있었다.
KBC <뮤직 스테이지>의 차태희 PD나 안동규 CP를 만나서 자기네 가수들 조금이라도 챙겨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매니저들은 바짝 얼어붙어 부조정실로 들어가는 양쪽 복도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물어보려던 순간 부조정실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야! 하조은! 갑자기 와서 이게 무슨 개X 같은 소리야? 네가 CP라니!
-인사 발령장 떴으니까 가서 확인해봐. 인마.
-야 설마 내가 박은빈 컴백을 막았다고 이러는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 미치겠네. 그래도 결국엔 넣어줬잖아. 핑크다이아가 펑크 났다길래 자리 빼줬으면 됐지. 이젠 내 자리까지 빼라고?
-아 그건 난 모르겠고 하여간 인사 발령장 떴으니까 네 방으로 돌아가서 내용이나 확인해 봐.
-XX. 인사 발령을 당일에 내는 게 어디 있어? 그리고 나 이제 음방 맡은 지 두 달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꺼져 있어!
-아 그렇게 우겨도 소용없다니까? 그리고 너나 꺼져!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들어보니 KBC <뮤직 스테이지>의 안동규 CP가 다른 부서로 막 발령이 난 모양이다.
그리고 동기인 하조은 CP가 대신해서 온 것이다.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회귀 전 하조은 CP는 나와는 상극이었다.
몰래 접대를 받는 것은 물론 엔터 회사 직원이나 출연진들을 철저히 을 취급한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면 온갖 아부를 해야 했다.
그녀의 기분 여하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순간 오늘 세리가 실수 연발을 하게 되는 건 바로 이 하조은 CP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귀 전 그녀는 TK 엔터 쪽에서 로비를 자주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손을 써서 오늘 세리가 1위 달성에 실패하게 된다면 박은빈의 컴백 이슈를 다시 부각시킬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그녀를 몰아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쾅!
거칠게 부조정실의 문이 열린다.
“XX!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안동규 CP가 욕을 하며 나온다.
“선배! 잠깐만요!”
그와 동시에 차태희 PD가 뒤를 따라 뛰쳐나왔다.
놀란 매니저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안동규 CP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탓인지 매니저들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횅하니 지나가 버렸다.
뒤를 이어 나온 차태희 PD는 매니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안동규 CP를 쫓아간다.
“선배~~ 기다리라니까요?”
두 연출자가 사라지자 부조정실의 문이 열렸다.
안동규 CP와 동기인 하조은 CP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40대의 하조은 CP가 몸에 짝 달라붙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복도에 늘어선 매니저들을 보고 말한다.
“마침 다들 모여계셨네. 제가 커피 한잔 씩 타 드릴 테니까 들어들 와요.”
매니저는 공중파 음방 CP가 한잔하자고 하면 커피가 아니라 사약이라도 마시는 척을 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매니저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과하게 아부하기 시작한다.
“아이고~ 커피는 제가 타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찐한 에스프레소를 머릿수대로 뽑아 오겠습니다!”
“에스프레소는 무슨. 우리 하 CP님은 얼어 죽어도 아.아야! 하 CP님! 제가 아.아를 1층 카페에서 바로 사 오겠습니다!”
비록 안동규 CP가 출연진들 배려를 많이 해 줬지만 다른 프로그램으로 발령이 났다는 순간 다들 순식간에 안면을 몰수해 버린다.
그리고는 다들 하조은 CP에게 잘 보이겠다고 아부를 떨어댄다.
하조은 CP는 그 광경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으로는 날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넌 이제 어쩔 거냐는 듯한 표정이다.
정확히는 너도 빨리 알아서 고개를 숙이라는 눈빛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난 이곳에 있는 매니저 모두와 반대의 선택을 내렸다.
비록 세리가 무대에서 실수 연발을 겪으며 1위가 위태롭다지만 하조은 CP에게 고개를 숙일 순 없었다.
더는 회귀 전처럼 아부를 떨며 살 순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CP님. 커피 타 주실 분이 많은 듯하니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하조은 CP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한다.
“정 실장.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면 뭐 해? 새 버스 왔는데.”
그녀는 자신과 손을 잡으라며 회유를 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곁에서 매니저들의 숙덕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새X가 미쳤나?
-와 정 실장 저거 배짱 좋네. 새 CP의 제안을 물리쳤다고?
-어쩌려고 저래?
-잘 나간다 잘 나간다 하니까 감을 잃었나 보네.
-오늘 1위 확정도 아니던데 저러다 튕겨 나가는 거 아냐?
다들 하조은 CP가 들으란 듯 날 향해 비난해댄다.
그들의 말대로 새로운 음방 CP를 따르지 않는 건 미친 짓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건 미래를 모르는 평범한 인간들의 생각이다.
미래를 아는 내겐 지금의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이다.
지금 뛰쳐나간 안동규 CP는 4년 뒤 예능국 국장이 되는 일정이 여전히 에브리데이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5년 3월 15일]
-PM 04:00 KBC 안동규 신임 예능 국장 화환 전달.
인간만사 새옹지마.
난 이 세상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미래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다들 수고하십시오.”
순간 복도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멍청한 새X. 내가 저 새X 고개 빳빳하게 들 때부터 결국에는 사고 칠 줄 알았다.
-정 실장도 끝났네.
-끈 떨어진 CP 뒤를 쫓아서 뭘 어쩌겠다고.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그 소리를 무시하고선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 멍청한 게 누군지 알게 해줄 테니까.’
* * *
KBC 휴게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쌍욕이 문밖으로 새어 나온다.
어지간해서 흥분하지 않는 안동규 CP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특별한 귀책 사유도 없이 갑자기 자신이 하던 역할을 그만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XX. 진짜 메일로 발령장 보냈네. 우리 대표님. 무슨 생각이지? 설마 하조은 저게 본인 라인이라고 그러는 건가?
-설마요~ 선배야말로 오 대표님 라인이잖아요.
-하아~ 내가 무슨 라인이 있어? 그런 거 딱 질색인 것 알잖아. 그래서 이 꼴을 당했고.
-아니라니까요? 선배~ 대표님 찾아뵙고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세요.
현재 KBC는 오한국 대표의 라인과 나태환 이사의 라인으로 나뉜 상태다.
그리고 그렇게 라인이 나뉘게 된 건 나로 인해 전임 대표이사들이 낙마했기 때문이다.
전임 KBC 대표였던 박찬식 대표가 해임되고 다음으로 온 봉숙희가 자진사퇴 하면서 대표의 자리가 텅 비게 되었다.
그 틈을 KBC 이사였던 오한국이 쟁취해서 대표가 되었고 봉숙희 사단의 우두머리였던 나태환은 이사가 되었다.
그 결과 두 개의 라인으로 나뉜 것이다.
다만 KBC의 이사들은 나태환을 더 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막 KBC <뮤직 스테이지>의 CP로 발령된 하조은은 다들 오한국 대표의 라인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정반대였다.
두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는 듯하니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구체적인 사정을 알아야지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도 있을 거고 말이다.
똑똑.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차태희 PD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여기 못 써요! 딴 휴게실로 가세요.
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벌컥.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태희 PD와 안동규 CP가 씩씩거리는 게 보인다.
한바탕 욕을 쏟아내려던 두 사람이 날 알아보고 화를 참는다.
“어? 정 실장? 여긴 어떻게······.”
안동규 CP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음방 순위 1위 후보인 세리와 서연우의 매니저인 내가 신임 CP인 하조은이 아니라 자기를 쫓아올 줄은 모른 것이었다.
“두 분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제가 쏘겠습니다.”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자 안동규 CP가 미간을 찌푸린다.
“정 실장. 이렇게 와준 의리는 고마운데 그러다가 새 CP한테 찍히면 어쩌려고 그래?”
“찍히면 좀 어떻습니까? 전 안 CP님이랑 더 오래 가고 싶습니다.”
안동규 CP가 고개를 젓는다.
“고맙긴 한데 그래도 지금······ 나한테 오는 건 아냐. 다시 돌아가서 하 CP 비위 좀 맞춰. 오늘 세리 음방 1위 노리고 있다면서? 세리가 첫 솔로 1위인데 이러면 쓰나? 돌아가.”
“아뇨. 그런다고 하조은 CP가 절 예쁘게 보진 않을 겁니다. 그분은 나태환 이사님의 라인이잖습니까?”
하조은 CP는 오한국 대표의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난 그녀가 실제로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그녀와 독대했을 때 그녀가 나태환 이사의 라인이라는 걸 털어놨기 때문이다.
“뭐······라고? 나태환 라인이라고?”
“하조은 CP님의 전 프로그램인 ‘싱어송’ AD들한테 물어보십시오.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안동규 CP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내 임명장 발령은 사실상 나태환의 뜻이었다 이거야?”
“아마도 맞을 겁니다. 나태환 이사님이 자기 사람을 박아 넣으려고 대표님을 협박한 거겠죠.”
“어쩐지 날 이렇게 하실 분이 아닌데 이상하긴 했어.”
차태희 PD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선배.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 어떻게 할 지부터 이야기해요. 진짜로 받아들이고 하 CP한테 음방을 이대로 맡길 거예요?”
안동규 CP가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 어떻게 해? 끌어내?”
“끌어내야죠! 그럼 이대로 있어요? 하 CP 성격상 우리 애들 다 날리고 능력 없이 빌빌대는 자기 애들로 다 채울걸요?”
“그렇긴 한데······ 끌어낼 방법이 없잖아!”
두 사람은 오늘 발령이 난 하조은 CP를 끌어낼 방법이 없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내겐 방법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빠르게 났다.
세리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조은 CP를 <뮤직 스테이지>에서 몰아내기로 말이다.
난 심호흡을 한 뒤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두 사람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