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8화
첫 접견·
드디어 암흑연합과 신성연방, 두 대표팀을 태운 배들이 마주했다· 두 배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나란히 나아가고 있었다·
“제대로 붙어보자! 광신도들!”
“감히 우리한테 메시아를 떠맡겼겠다?”
암흑연합 대표들이 도발하듯 한마디씩 건네고 있었지만, 저쪽에는 크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갑판 위를 살폈다·
‘없나?’
프리스트 측에도 하얀 전투복을 입은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레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시몬·”
메이린이 생글거리며 다가와 물었다·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분석했던 학생들이 제대로 와 있나 한번 살펴봤어·”
“자나깨나 룬 리그 생각이네· 너무 걱정 마!”
메이린이 전의를 불태우며 가슴을 탕탕 쳤다·
“내가 반드시 이겨줄 테니까!”
시몬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을게·”
여전히 이쪽 인원 몇몇이 도발하거나 우우 하고 야유를 보내고 있었지만, 다행히 이건 경쟁심에 불타서 하는 행위지 증오나 살심 같은 건 크게 보이지 않았다·
‘로하론에서 임무를 하고 와서 다행이네·’
합숙 초만 해도, 프리스트를 죽이자· 지금 이 기회에 없애 버리자· 하는 과격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만큼 다들 프리스트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로 가득했다·
하지만 로하론에 넘어온 뒤 모두가 느꼈다·
대륙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도 무슨 괴물 같은 게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같이 싸우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학생들은 많은 걸 배웠다· 신성연방의 땅이라고 전부 광신도나 테러리스트들이 사는 건 아니었다· 특히 이번 코코 메시아 사태로 사람들이 ‘율법’에 얽매여 있다는 것과, 싫어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그들 중에서는 하늘섬의 신앙 정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데바교를 믿는 척만 하는 무종교인들도 존재했다·
물론 로하론의 일만으로 프리스트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맹목적이던 혐오감이 조금은 걷힌 느낌·
역시 이런 건 연방에 와서 직접 몸으로 겪어보지 못하면 깨닫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시몬도 연방에 다녀온 뒤에 많은 편견들이 깨졌다·
‘하지만 방심할 때는 아냐·’
시몬이 제 뺨을 가볍게 짝짝 때렸다·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신성연방 측도 암흑연합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을지는 의문이고·’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두 배는 어느새 커다란 해안 동굴 안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터널처럼 방대한 크기였다·
“시몬! 저기 봐요!”
카미바레즈가 총총거리며 앞을 가리켰다·
수면에 마나로 이루어진 마법진 한 쌍이 일렁거리며 펼쳐져 있었다· 두 배가 마법진으로 향하며 간격을 좁혔다· 이제는 갑판 위에 얼굴들이 서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배들이 마법진에 닿는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아래에서 커다란 파도가 몰아쳤다· 선체가 위로 살짝 들리며 파도를 타고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다들 힘껏 기둥이나 손잡이 따위를 붙잡고 버텼다· 시몬도 한 손으로는 밧줄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미바레즈의 손목을 잡아주었다·
엄청난 속도로 주위의 경관이 쌩쌩 지나가더니 마침내·
쏴아아아아아-
배가 멈추고 눈앞에 커다란 동굴의 입구 같은 게 보였다·
“괜찮아? 카미·”
“아, 네! 고마워요!”
급히 앞머리를 정돈한 카미바레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저기 봐요 시몬! 사람들이 가득해요!”
정말이었다· 동굴 입구 앞에 빼곡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귀가 아릿할 만큼 강렬한 함성이 쏟아졌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기 다른 색의 펜스가 쳐져 있고,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오른쪽에는 암흑연합 주민들이었고, 왼쪽에는 신성연방의 주민들· 모두 일부러 룬 리그의 대표들을 환영하러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메이린이 당혹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룬 리그의 열기가 대단하긴 하네·”
이내 배가 동굴 앞에 정박했고, 내려가는 다리가 펼쳐져 지상에 연결되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어느새 학생들과 마찬가지의 똑같은 검은 전투복을 차려입은 메도우가 앞을 가리켰다·
“그럼 가시죠! 암흑연합 주민들께 인사드리러!”
“네!”
처적!
척!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메도우의 교관들과 선원들이 일제히 도열해서 대표들을 향해 경례했다·
룬 리그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의 경례였다·
선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시몬이 이끄는 10명의 대표들이 배 아래로 내려갔다· 촬영 담당인 딕도 마력 촬영기를 짊어진 채 시시덕거리며 따라나섰다·
“다들 잘 다녀와라!”
“힘내·”
예비 멤버에도 탈락한 말콤, 피츠제럴드와는 여기서 이별이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멤버들과 악수를 하거나 가볍게 포옹하기도 했다· 감성적인 카미바레즈는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죄송해요, 저희만 가게 돼서·”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내가 생각해도 지금 이 멤버가 최선이니까·”
대표들이 차례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배로 내려갔다· 준비를 마친 시몬이 나타났을 때 말콤이 덥석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꼭 이겨라·”
말콤의 이렇게 진지한 얼굴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시몬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물론이야, 말콤· 배를 잘 부탁해·”
“시몬·”
피츠제럴드도 한 손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다른 한 손을 주먹 쥔 채 내밀었다·
“돌연변이 동아리 멤버로서 저력을 보여주고 와라·”
“당연하지·”
두 사람이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혔다· 이내 시몬이 내려오자 앞서가고 있던 메이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가렸다·
“뭐야뭐야·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 같은 거?”
“···하하·”
“반면 그 옹졸남은 얼굴 한번 안 비치네·”
메이린이 갑판 쪽을 살펴본 뒤 혀를 찼다·
옹졸남이라 함은 하운드 키즈의 크레이그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름 한 달간 합숙을 한 사이였지만 결국 친해지는 건 불가능했다·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는 듯 메이린이 고개를 홱 돌렸다·
“걔는 다시는 내 인생에 볼 일 없었으면 좋겠어!”
이내 모두가 배에서 내려왔다·
다들 1번인 시몬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몬이 걸어오자 옆으로 물러나 비켜주었다·
이내 시몬이 옷깃을 한번 고친 뒤 걸어갔고,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저기 온다!”
“키젠 학생들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오른편 펜스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암흑연합 주민들이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무운을 빕니다! 시몬 군단장!”
“엘리사 경!”
“에이젤! 얼굴 보러 여기까지 왔다!”
곳곳에서 온갖 환호성과 비명으로까지 들리는 열띤 응원이 터져 나왔다·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해 줄 수 있다니,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면서 기뻤다· 그만큼 네프티스의 룬 리그 매체화가 성공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시몬이 손을 흔들어주며 걷고 있는데 조금 앞에서 마력 촬영구를든 채 촬영하던 딕이 휙 하고 뭔가를 던졌다·
확성 수정구였다·
“대장이 한마디 해야지! 멀고 먼 중립지대까지 보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딕!’
시몬이 메도우의 눈치를 살폈으나, 메도우는 오히려 뭘 좀 안다며 딕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시몬이 민망하게 웃었다· 그래도 허락이 떨어진 것 같으니 확성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즉시 폭발적인 함성이 쏟아졌다· 걸어오고 있던 메이린이 깜짝 놀라며 귀를 막고 파르르 떨었다·
“평생 잊지 못할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대표들 모두 큰 힘을 받고 갑니다· 저희가 보답하고 약속해 드릴 수 있는 건 한 가지·”
시몬이 후욱 하고 숨을 내뱉은 뒤 답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역시나 폭발적인 환호성이 돌아왔다· 시몬이 다시 확성 수정구를 딕에게 던진 뒤 대표들을 이끌고 걸었다·
그러다 반대편을 슬쩍 바라보았다·
‘저기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네·’
저쪽 신성연방 주민들도 암흑연합 주민들 못지않게 많이 왔지만, 격려하는 방식이 달랐다· 바닥에 엎드리거나, 두 손을 모으고 승리를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몇몇 대표들도 격려하러 온 주민들의 손을 맞잡고 기도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조금 더 정적이고 경건했다· 문화의 차이가 이렇게 또 드러났다·
“이쪽입니다!”
메도우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암흑연합과 신성연방의 통로가 서로 달랐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은 뒤에, 메도우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룬 리그의 ‘무대’에 오릅니다· 신성연방과의 동반 입장이고 10번부터 1번까지 차례대로 입장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많은 대륙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모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중을 향한 마지막 쇼케이스입니다! 그다음은 결전뿐! 자! 10번 대표님부터 준비하시죠!”
* * *
중립지대에서 특별한 역사적 장소로 여겨지는 자연 동굴인 ‘시작의 동굴’·
상당히 방대한 넓이를 자랑하는 이 동굴 안에는 룬 리그에 초대받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쪽의 관중석도 반으로 갈렸고, 오른쪽은 암흑연합, 왼쪽은 신성연방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빨리 좀 시작해라!”
“언제까지 그 우스꽝스러운 전통 춤만 보게 할 거냐?”
암흑연합 주민들이 항의하듯 외쳤다·
“격식이 떨어지는군요· 역시 악마의 추종자들답습니다·”
“저들에게 천벌이 떨어지길 여신께 기도드리죠·”
신성연방 주민들은 눈을 흘기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번 룬 리그의 개최를 책임진 중립지대 관계자들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룬 리그는 대륙 평화를 위한 행사였고, 지금 관중으로 선정한 사람들은 모두 군인이나 정계 인사들을 제외한 평화주의자들이었으나, 역시 뿌리 깊은 갈등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멀었소?”
이번 일을 맡은 중립지대의 행사 사회자가 무대 뒤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때 관계자가 달려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사회자는 춤을 추던 무희들을 서둘러 돌려보낸 뒤 드디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룬 리그의 각 진영 대표들이 모두 도착했다고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떠들썩한 환호성이 동굴을 가득 울렸다·
“지금부터 역사 깊은 룬 리그가 시작됩니다! 룬 리그의 대표들을 두 명씩 이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와 환호를 부탁드립니다!”
그가 팔을 펼쳐들었다·
“암흑연합 대표 10번! ‘뱀파이어 로드의 핏줄’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그리고 신성연방 대표 10번! ‘성체의 성녀’ 리사라 님입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탄성과 함께, 무대에서 박쥐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내 그 박쥐 무리가 뭉치며 붉은 섬광이 튀어오르더니, 카미바레즈가 퐁 하고 나타나 바닥에 착지했다· 작은 날개를 파닥거린 그녀가 암흑연합 관중들을 향해 두 손을 휙휙 흔들었다·
‘떠, 떨려!’
그녀의 동공이 뱅뱅 돌고 있었다· 그러다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화아아아아악!
저쪽도 압도적이었다·
눈부신 빛무리와 함께 양 날개를 펼친 천사가 나타나 미소 짓고 있었다· 신성연방 주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를 외쳤고, 울먹이며 그 이름을 연호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내 그 빛이 중앙으로 모여들더니, 빛의 천사의 둔갑이 풀리며 하얀 제복을 입은 평범한 소녀가 통 하고 내려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내 리사라와 카미바레즈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척·
중간에 선 남자가 두 손을 뻗었다·
악수하라는 신호였다·
두 사람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가와 악수했다· 무슨 말을 할지 미처 생각을 못 했던 카미바레즈가 불쑥 내뱉었다·
“자, 잘 부탁해요!”
아무리 성녀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1학년이 된 리사라도 극도로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다· 준비해 온 말을 잊고 말했다·
“저, 저도 잘 부탁합! 쓰믑니다!”
그게 끝이었다· 손을 떼어낸 두 사람이 서로를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성연방의 10번이 성녀였다니! 무서워!’
‘뱀파이어는 동화책에서만 봤는데! 암흑연합에는 진짜 뱀파이어가 살아 있었구나· 무서워!’
서로가 서로에게 겁먹고 있었다·
이내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께 두 사람이 물러나고 사회자가 앞으로 나왔다·
“다음 차례로 넘어가겠습니다! 신성연방의 9번! ‘성벽 위 현자’ 아렌디아 오르발로 님과, 암흑연합의 9번! ‘메두사’ 클라우디아 멘지스 님이 입장하십니다!”
쏟아지는 함성과 함께 클라우디아와 아렌디아가 동시에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클라우디아는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꿔 화려한 맹독 분수를 일으키는 것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환호성을 샀다·
두두두두두두!
그러나 바로 반대편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신성연방에서는 무려 금속으로 이루어진 둔중한 전차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내 문이 덜컥 열리고, 뺨에 그을음이 묻은 여학생이 걸어 나왔다·
작은 키에 둥글둥글한 다람쥐 같은 인상의 그녀가 손바닥을 가볍게 흔들자, 그것만으로도 신성연방의 주민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상당한 인기였다·
처억·
마주 본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클라우디아 멘지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축성의 전문가라지? 맹독 대처는 되어 있을 거라고 믿을게· 아마 공성은 내 담당일 것 같거든·”
아렌디아가 쓱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서로 열심히 해보죠·”
‘···말수가 적은 타입이네·’
살짝 견제해 보려고 했던 클라우디아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어떤 실력을 보일지는 겉모습으로는 모르니까·
이내 두 사람이 물러나고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이번엔 가장 기대가 되는 만남 중 하나입니다!”
사회자가 한 팔을 휘둘렀다·
“군말 없이 바로 모셔보겠습니다! 암흑연합 8번! ‘마검 사용자’ 쥴 빈체레 님과 신성연방 8번! ‘성검 사용자’ 시그문드 아한델 님입니다!”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허리춤에 마검을 찬 쥴이 발소리를 죽인 채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수수한 등장이었다·
반면에·
와아아아아아아아악!
신성연방 측에서 거의 까무러칠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잘 흥분하지 않던 연방의 관중들이 이번만큼은 달랐다·
시그문드!
시그문드!
처억!
성검을 머리 위로 뽑은 채 다가오는 잘생긴 금발의 미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눈부신 빛이 동굴을 환하게 밝혔다·
“반가워요! 여러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페트리 형제님! 도런스 자매님!”
심지어 무릎을 굽히고 사람들과 하나하나 손을 부딪히거나 짧게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난리도 아니었다· 그와 손을 잡아보겠다고 무수한 팔이 뻗어졌다·
거의 행사 시간 10분을 혼자서 다 잡아먹은 뒤에야 성검 사용자 시그문드가 무대 중앙으로 왔다·
“반갑다! 꼭 한번 만나고 싶었어! 이름이 쥴 빈체레라고 했지?”
덥석!
악수 사인이 떨어지기도 전에 시그문드가 쥴의 손을 덥석 맞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쥴이 인상을 썼지만, 시그문드는 그저 기뻐하며 악수한 손을 짤짤짤 흔들어댔다·
“이번 암흑연합 임무에서 많은 걸 배웠어! 연합의 주민분들도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시더라! 먹을 것도 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는데, 내 머릿속 편견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게 됐지! 잠시나마 그들을 위해 검을 들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쥴도 희미하게 말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연방에서 느꼈소·”
“암흑연합의 사람들은 다들 부지런해! 신성이 없으니 다 굶을 줄 알았는데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고 매일매일 부지런히 물을 주면서 관리하더라! 그들은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었어! 아, 너무 우리 임무 이야기만 했나? 마검 사용자라고? 나는 성검 사용자야! 어느 쪽이 더 뛰어날지 기대되는데! 어제는 잠을 한 시간밖에 못 잤어! 룬 리그라니! 이런 꿈의 무대에 왔다는 게 나는 너무···!”
너무 말이 많긴 했지만, 조용한 성격의 쥴은 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사회자가 빨리 끊으라는 듯 손모양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성검 사용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 룬 리그에서 제일 일찍 나와 선두에 설 거고, 제일 마지막에 돌아갈 거야, 쥴·”
시그문드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쥴이 말을 받았다·
“나도 매일 암흑연합의 선두에 서겠소·”
시그문드가 무척 만족스럽게 웃었다·
“검사끼리의 진검 승부! 기대할게!”
* * *
무대 뒤편·
아직 나오지 않은 다른 대표들 모두 이 광경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엘리사가 말했다·
“쥴 표정 봐· 넋이 나간 표정인데?”
“신성연방에도 저런 캐릭터의 인간이 있구나· 특이하네·”
다들 무대 밖을 보며 룬 리그 행사를 즐기거나, 상대를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는 가운데 시몬은 팔짱을 낀 채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끼융·
귓가에 아주 희미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이 귀를 쫑긋하더니, 모두가 한눈을 파는 사이 슬쩍 걸어갔다·
-끼융·
누구의 울음소리인지는 뻔했다· 시몬의 얼굴이 펴졌다·
‘란의 울음소리잖아?’
이내 목소리를 쫓아 들어간 곳에서·
“아·”
하얀 제복을 입은 새하얀 머리카락의 여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웃었다·
“오랜만임다· 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