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3화
623. 마지막 수업 3
『으아아아아~』
생일 잔칫상 앞에서 일어난 유진이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원망이 가득한 그녀의 눈이 천신(天神)을 향해 울부짖는다.
맑은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탁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유진이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가녀린 몸이 마치 폭풍우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인다.
잠시 뒤.
유진이의 발작이 멈췄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번쩍 뜬 유진이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독을 먹고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돌아오는 장면이다.
눈 깜짝할 사이 유진이의 눈에는 살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서슬 퍼런 눈빛을 한 유진이의 눈길은 차기 왕권을 놓고 경쟁하는 두 공주를 향했다.
『10년 전······ 너희들이 내게 독버섯을 먹인 거였어?』
유진이 얼굴에는 주연으로서의 카리스마가 흘러넘친다.
『너······ 설마 기억이······?』
『그래서 이번에는 내 어머님께도 독을 쓴 거야?』
『아니 유화야! 그건 아니야!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고!』
『닥쳐!』
유진이의 벼락같은 호통에 한상희와 민규리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떤다.
그 순간 유진이가 품속에 손을 넣는다.
도깨비 비형랑(鼻荊郞)이 준 붉은색 뿔피리가 품에서 나온다.
비형랑이 준 것으로 무슨 일이 있을 때 불라고 한 뿔피리다.
죽은 2왕후는 도깨비 비형랑(鼻荊郞)을 인간 사의 일에 부르지 말라고 했었지만 복수에 눈이 먼 유진이는 도깨비를 불러 버렸다.
삐이이이익!
높은 고음이 쉬지 않고 대궐에 울려 퍼진다.
그 순간 가면을 쓴 비형랑(鼻荊郞)역의 한우혁가 대궐 안에서 걸어 나온다.
평소와 같이 한 손에는 대금을 쥐고 있었으나 평소 입고 있던 옷이 아닌 붉은 천으로 된 도포를 펄럭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검고 긴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있었다.
마치 지난 인연인 2왕후가 죽어서 슬퍼하다가 변해버린 듯 말이다.
터벅터벅.
힘없이 대궐에서 나온 한우혁가 대궐 계단에 멈춰 선다.
그 순간 병사들이 외친다.
『도 도깨비다!!』
『도깨비가 나타났다!』
전설 속에나 나오는 도깨비를 직접 보게 된 병사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다만 다리가 얼어붙은 열 명 정도가 남아서 바들바들 떨며 칼을 겨누고 있다.
한우혁는 병사들을 무시한 채 유진이만을 향해 말한다.
『날 불렀느냐. 아이야.』
유진이가 피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한우혁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보았다. 그녀가 천신의 곁으로 가는 것을.』
『그런데······ 그런데······ 왜 안 지켜주셨어요! 아저씨는 되돌릴 수 있잖아요!』
유진이가 절규한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토해내는 유진이의 절규에 한우혁도 굵은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아니······ 그녀는 이미 너와 수명을 바꾼 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소원으로 다른 부탁을 하였다. 자기 대신······ 널 지켜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음 계약자로 널 지명했다.』
유진이가 이를 깨물며 노려본다.
서슬 퍼런 유진이의 눈빛을 보자 한우혁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다.
유진이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압도된 까닭이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제가 비형랑 아저씨의 계약자인 거죠?』
한우혁는 낮은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한다.
『피와 피가 맺어진 고대의 맹약에 따라 나 비형랑은 그대가 나의 계약자임을 알리노라. 그리고 계약의 증거로 바라는 소원 셋을 이뤄 주마.』
그 순간 유진이가 몸을 돌리더니 식탁에 있는 왕후와 공주들을 향해 가리킨다.
『저들을 모두 꿇려 주세요. 대왕님만 빼고요.』
『고작 그것이 소원이냐?』
『예!』
『그 정도는 소원이 아니라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다음부턴 소원이라고 먼저 말한 뒤 부탁을 말하거라. 소원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말을 마친 한우혁가 손을 아래로 내리며 조용히 말한다.
『왕을 빼놓고······ 모두······ 꿇어라!』
쿠웅.
음갈문왕 역인 송지환만 빼고 1왕후 이태연 정화 공주 한상희 3왕후 윤주연 도화 공주 민규리가 일제히 머리를 흐트러진 식탁에 들이박는다.
쾅! 쾅쾅!
이어서 병사들과 신하들도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린다.
순간 한우혁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이야. 내가 이들을 모두 없애기를 바라느냐? 단 그건 소원을 먼저 빌어야 한다.』
그때였다.
식탁에 누워있는 1왕후 이태연이 씩씩거리며 외친다.
『도 도깨비가 인간을 해치······면······ 힘이 약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너······넌······ 우릴 죽이는 순간 죽게 될 것이야! 어디······ 어디 한번 해봐라 이놈!』
3왕후 윤주연도 지지 않고 외친다.
『여봐라. 전설상의 도깨비라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도깨비가 힘을······ 잃거든······ 크흑······ 목을 날려 버려라!!』
그때였다.
유진이가 저벅저벅 걷더니 바닥에 엎드린 병사의 손에서 칼을 빼내 든다.
스르릉.
날카로운 칼날에 빛이 머물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유진이가 칼을 아래로 내리깔고 천천히 발을 옮긴다.
『아저씨는 너희들을 안 죽일 거야. 내가······ 내가······ 죽이면······ 되니까.』
유진이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살기 어린 말로 왕후와 공주들을 바라본다.
시간이 멈춘 듯한 움직임 속에 유진이만이 고고히 움직이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 한 공주들과 자기 어미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왕후들을 모두 죽여 없애버리겠다면서 말이다.
유진이가 칼을 늘어뜨리며 천천히 걷는다.
끼기기긱.
유진이가 쓰기에는 긴 칼이 월궁의 바닥 돌과 부딪히며 쇳소리를 낸다.
왕후와 공주역의 배우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국왕만이 이를 말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내가 죽고 전설적 존재인 도깨비가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딸들이 서로 죽이려는 걸 알고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인 설정이다.
그때 유진이가 식탁에 누워있는 이태연의 옆까지 다가갔다.
첫 번째 목표를 정한 유진이를 보자 한우혁가 말한다.
『괜찮겠느냐?』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해요!』
유진이가 이를 갈며 두 왕후와 두 공주를 노려본다.
『전······ 어머니가 남기신 마지막 유언대로······ 계림의 큰 꽃이 될 거예요. 저 가증스러운 인간들을 모조리 도륙 내는 한이 있더라도······.』
섬뜩한 말을 한 유진이가 칼을 들어 올렸다.
1왕후 역의 이태연은 자기 머리 위로 칼날이 떨어질 상황이 되자 바들바들 떨며 외친다.
『미 미쳤어. 아 안 돼! 난 아냐! 살려줘요! 대왕님!!』
연기인지 진짜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유진이의 표정 탓에 이태연의 이마에는 진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하아압!!』
유진이가 기합을 외치며 칼날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이태연이 놀라서 옆으로 몸을 피해 버렸다.
콰앙!
유진이의 칼날은 조금 전까지 이태연이 누워있던 바로 옆자리에 박혀버렸다.
대본에선 유진이가 칼로 위협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너무도 위협적으로 칼날을 휘두른 탓에 이태연이 놀라서 피해버렸다.
오복희 PD가 NG를 외치려다 멈칫한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유진이가 주연다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다 보니 끊기 어려운 거다.
그런데 그 순간 유진이가 상황을 강제하기 시작한다.
최지영에게 배운 것처럼.
유진이는 스태프가 NG를 외칠 틈도 주지 않고 눈으로 한우혁를 노려보며 말을 건다.
『비형랑 아저씨. 왜······ 간섭하세요? 죽이지 말라고요?』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 대사가 들어갔지만 덕분에 자연스레 다음 대사를 읊어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한우혁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할 대사를 읊었다.
『네 어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는 것이다. 널 지켜달라는 건 네가 하는 짓으로부터 널 지켜주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자 오복희 PD가 입을 쩍 벌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확성기를 잡은 손에서 힘을 풀고서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다.
순간 유일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송지환이 빠르게 달려가 유진이의 앞을 막아섰다.
『유화야! 그만하거라! 의심만으로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정신을 차리거라!』
유진이의 싸늘한 눈이 송지환을 향한다.
송지환이 움찔할 정도로 살기 넘치는 눈이었다.
꿀꺽.
송지환이 마른침을 삼킨다.
『승천한 2왕후가 마지막까지 바란 소망을 잊지 말아라. 유화야. 계림의 꽃. 그것은 피로 쟁취하는 길이 아니다!!』
그 순간 유진이가 잡았던 칼을 떨어뜨린다.
쨍그랑.
유진이는 온몸에 힘이 빠져 축하고 늘어뜨리더니 송지환의 품에 안겨 절규하기 시작한다.
『어흐······흑······ 어머니······ 어머니······ 엄마~~』
송지환의 가슴께를 부여잡은 유진이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몰아닥쳐 세트장의 깃발을 펄럭인다.
펄럭펄럭.
세트장에 꽂힌 계림의 깃발이 마치 유진이의 목소리에 공명이라도 하듯 일제히 떨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커~~트! 오케이!”
오복희 PD가 뒤늦게 외친다.
그 순간 촬영에 나섰던 배우들 모두가 털썩 주저앉는다.
이태연은 가슴에 손을 얹고 놀란 가슴을 달래느라 정신이 나갔다.
병사와 신하들 역시 마치 진짜 신통력에 당한 듯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킨다.
다들 경외와 공포가 어린 유진이의 연기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유진이는 그렇게 주연답다고 할 만한 압도적인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순간 정신을 차린 송지환이 아직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울고 있는 유진이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내 곁에서 그 광경을 본 최지영이 흐뭇하게 웃는다.
“쟨 매번 저렇게 사람을 놀라게 한다니까? 하란다고 진짜로 단번에 저기까지 가버리면 어떻게······ 해.”
고개를 돌려보자 최지영이 감격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진이가 어머니를 부른 순간 마치 2왕후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세트장 밖에 있는 배우마저 울려버린 유진이의 연기는 이제까지 보여줬던 연기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연기였다.
한국 최고의 연기자인 최지영을 발탁한 박우민 이사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거참. 나도 많은 배우를 봐왔지만 유진이 쟨 도저히 가늠이 안 가네······.”
그때였다.
유진이가 호흡을 가다듬고 웅크렸던 몸을 힘들게 일으킨다.
그리고는 먼저 자신이 위협한 이태연에게 고개를 숙인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이태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답한다.
“그 그래. 얘. 그래도 앞으로는 좀 적당히······ 적당히 좀 해.”
“죄송해요. 감정이 좀 차올라서 그랬는데 절대로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 그래.”
이태연이 <화란전>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시작부터 기세에 밀려버린 셈이었다.
유진이는 이후 단역 배우와 스태프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제야 모두가 정신을 차리더니 우레와 같은 손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세트장을 가득 채우는 손뼉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진다.
“우와~~ 유진 씨. 진짜 최고였어.”
“와~ 진짜. 박력 끝내 주던데?”
“우리 주연. 이렇게만 해주면 정희왕후고 나발이고 신경 안 써도 되겠는데?”
“역시 주연이 다르긴 달라?”
“주연 배우님. 오늘 수고했어요~~”
유진이를 향해 저마다 ‘주연배우’란 말을 덧붙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씬을 씹어먹고 주연의 존재감을 각인 시켜버린 덕에 최지영이 말한 대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주연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사를 받는 유진이가 비틀거리는 모습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선생님. 유진이 좀 데리고 올게요.”
“어 그래.”
난 유진이를 부축해서 데려 나오기 위해 세트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 * *
유진이에게 도착한 순간 유진이가 안심하고선 내 품에 쓰러지듯 안긴다.
털썩.
“그럴 줄 알았다.”
이마에 진땀이 가득한 유진이가 배시시 웃는다.
“헤헤······ 오빠. 왔어요?”
“당연히 와야지. 네 매니저인데. 근데 너 걸을 수 있겠어?”
유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요~”
“혼자 걸어갈 수 있으면 이따가 밥 두 그릇 먹어도 허락해 줄게.”
유진이가 장난스레 울상을 짓는다.
“꼭······ 먹고 싶은데······ 그래도 못 걷겠어요.”
온몸을 쥐어짠 탓에 진짜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단다.
그때 양소리 대리가 뛰어왔다.
“실장님. 제가 부축할게요.”
“아뇨. 얘 지금 그럴 힘도 없어요. 제가 유진이 업을 테니까 양 대리님이 뒤에서 좀 받쳐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난 유진이에게 등을 내밀었다.
“유진아 업혀.”
순간 유진이가 눈치를 보며 말한다.
“저 아침에 밥 두 그릇 먹어서······ 무거운데······.”
어쩐지 내 눈을 피하더라니.
하지만 오늘은 칭찬만 해줘야지.
이렇게 고생했으니 말이다.
“괜찮으니까 업혀.”
딴에는 걱정되는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유진이는 40kg 중반대의 빼빼 마른 몸이었다.
유진이가 조심스레 두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싼다.
난 다리에 힘을 주고 가볍게 일어났다.
‘음. 평소보다 1kg이 늘긴 했군.’
툭하면 현장에서 쓰러지는 여자 연예인들을 업어야 하는 게 일이다 보니 업는 순간 난 여자 연예인들의 체중을 대충 알 수가 있었다.
“오빠······ 나······ 무겁죠?”
“걱정하지 마. 가벼우니까.”
유진이가 조금은 기쁜 말투로 말한다.
“진짜요? 정말?”
“어. 쌀 한 가마니보다는?”
“아 뭐래요!”
유진이가 등에 업혀 밝은 목소리로 툴툴거린다.
평소 같으면 내려달라고 바둥댔겠지만 진짜 힘이 없는지 입으로만 투덜대고 있다.
“하여간 오늘 수고했어. 진짜 멋있더라 정유진. 아까는 진짜······ ‘화란전’의 주인공다웠어.”
순간 유진이가 웃으며 내 목을 잡은 손에 살포시 힘을 준다.
“고마워요 오빠.”
난 피식 웃으며 유진이를 업고 대기 천막으로 향했다.
순간 스태프들이 양쪽으로 쭉 물러난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말이다.
“유진 씨. 수고했어.”
“유진 씨. 조금만 쉬고······ 또 하자.”
“우리 주연. 포스 끝내 주던데?”
“정 실장. 우리 주연 좀 잘 모셔~”
“예~”
오복희 PD는 그런 우릴 보고 말한다.
“정 실장님. 유진 씨 좀 쉬게 대기 천막에 두고 나서 저 좀 봬요.”
오늘 안에 다음 촬영을 할 수 있는 지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예. PD님.”
그렇게 난 유진이를 데리고 대기 천막으로 향했다.
대기 천막 앞에 있던 최지영이 웃으며 유진이의 손을 잡아준다.
“수고했어. 유진아.”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마치 진짜 엄마와 딸처럼 두 사람은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대기 천막 안.
난 짜 먹을 수 있는 죽을 꺼내 일단 유진이에게 먹였다.
최지영 배우 역시도 그 곁에서 죽을 먹으며 체력을 회복했다.
체력보다는 심력을 많이 써서 기진맥진해진 터라 죽을 먹자마자 유진이가 금세 기운을 낸다.
“오빠. 따뜻한 죽 먹으니까 좀 살 거 같아요. 저 바로 다음 씬 촬영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바로는 무슨. 1시간 뒤에 촬영 들어가자고 할 테니까 그때까진 푹 쉬어.”
“예~썰!!”
난 양소리 대리와 박우민 이사에게 뒤를 맡긴 뒤 대기 천막을 나왔다.
오복희 PD에게 1시간 정도는 지나야 촬영을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민규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것을 보니 내가 나오기를 기다린 모양이다.
“실장님. 저랑 잠깐만 이야기 좀 해요.”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는 얽히기 싫었다.
“아뇨. 전 할 이야기 없습니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민규리가 내 팔을 덥석 잡는다.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바뀌실걸요?”
얘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