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6화
쇼다운(7)
[토커퍼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판데모니엄의 테러가 종식된 이후 48시간이 지났음을 알려드립니다·]
[경기장 인근 상업지구를 덮친 사상 최대 규모의 재해를 두고 도시 전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으며-]
[서대륙을 들썩인 이번 혼란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두고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뉴스가 흘러나오는 순간 조용하게 변한 카지노의 풍경·
슬롯머신을 당기거나 카드 게임에 몰두하던 사람들이 시선을 돌린다·
프레이야 칼린스의 월드 투어 도중 벌어진 판데모니엄의 대규모 테러·
십만 명의 관객들을 수용가능한 스타디움이 통째로 소멸해버린 사상 최대규모의 파괴공작·
최신 소식을 보도하는 캐스터의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현장에서 빠른 대피가 이루어지며 민간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사태 진압에 나선 경찰 측 피해는 아직도 추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이것은 경찰청 데이터베이스 내부에 신원기록이 부정확한 인원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번 테러의 주모자로 알려진 판데모니엄의 행방은 여전히 어디서도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판데모니엄이라····”
테이블 사이로 카드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무표정한 딜러를 사이에 두고 고객들이 조용히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만한 규모의 테러를 저지르고도 민간인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건 우연이 아니지· 틀림없이 의도한 결과물이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그동안 판데모니엄이 이런 식으로 인명피해를 신경 쓰며 움직인 적은 거의 없었는데·”
“범행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매끄러웠어· 범죄 컨설턴트들은 복마전 내부에서 최소 다섯 이상의 인원이 움직인 결과라 하더군·”
“고작 다섯 정도의 실행인원으로 이만한 재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토커퍼즈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최고급 쇼핑몰과 카지노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륙 각지의 고위층이나 상당한 자산가들이 대부분이다·
남들보다 여러 소식들을 먼저 접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번 테러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쥐고 있는 이들이 꽤 있었다·
“관측이 막히는 순간까지 현장을 훔쳐보던 이들이 있습니다· 정황상 교단이 개입했다는 건 틀림없어요·”
“사도가 출현했다는 전조가 있었네· 배교자들이 갖고 있던 교리에서 비슷한 사료를 찾을 수 있었지·”
“믿기 어렵군··· 복마전과 교단의 사도가 스타디움을 결전장으로 삼아 맞붙기라도 했다는 건가?”
“아무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판데모니엄과 교단이 한차례 충돌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서대륙에서 가장 많은 현금 자산이 오가는 환락의 도시·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오가는 정보들 역시 돈이 되는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
카지노 바 근처에 앉아 고객들이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쿠르르릉···!!
카지노를 걸어 나오자마자 도로를 오가는 무수한 공사차량이 보인다·
트럭과 크레인을 비롯한 중장비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 전 레녹이 지워버렸던 토커퍼즈 스타디움이 위치해 있던 폐허·
시민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스타디움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신디케이트에서 모조리 댔다더군·”
“음지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 범죄사업가들이?”
“프레이야 칼린스의 이번 콘서트 시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주최했다는거 알지? 이렇게 된 이상 시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토커퍼즈 내부의 균형이 신디케이트 쪽으로 확 쏠리게 되는 건가· 이 도시에는 카지노와 유흥시설밖에 안 남게 될지도 모르겠어·”
토커퍼즈에 도박을 하러 온 손님들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소식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도시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있어서는 복잡한 문제다·
외부인의 방문이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주머니도 덩달아 풍족해지겠지만 반대로 도시 기반은 불안정해질 테니·
그 균형을 시민들이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하게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판데모니엄의 테러로 인해 난리가 벌어지며 빅터의 인상착의 역시 어느 정도 알려지기는 했지만 레녹은 굳이 겉모습을 바꾸지는 않았다·
가면을 쓴 이 모습이 알려진다 해도 큰 상관은 없는 데다 인식저해 마법으로 귀찮은 일은 대부분 피할 수 있으니·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호텔 거리·
그곳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최고급 호텔 로비로 들어선다·
눈부신 조명과 최고급 시설이 자리한 카지노 홀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 건물 최상층에 위치한 최고급 스위트룸·
토커퍼즈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상층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는 숙박시설·
“빅터·”
광활한 룸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아그네타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왔구나·”
벌컥!!
스위트룸 안쪽 침실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머리가 산발이 된 프레이야가 걸어 나왔다·
한참 잠에 빠져 있다 막 일어난 것처럼 졸음이 가시지 않은 듯한 나른한 표정·
게슴츠레한 눈으로 레녹을 바라보던 그녀가 물었다·
“광대 찾았어?”
사도와의 전투가 마무리된 지 이틀· 일행은 토커퍼즈에 남아 싸움의 여파를 추스르고 있었다·
토커퍼즈를 휩쓴 테러로 인해 프레이야가 당장 콘서트를 이어갈 수 없게 된 것은 예상대로였지만·
사도와의 결전 직후 광대의 행방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
스타디움이 소멸하며 함께 모습을 감춘 두 사도야 그렇다 쳐도 광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작전이 여러모로 꼬이게 된다·
그 시점에서 떠날 채비를 하던 다른 멤버들 역시 행동을 달리해 도시를 탐색하기 시작했던 것·
“···하· 그럼 그렇지·”
레녹이 대답하지 않자 프레이야가 피곤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침실 문에 기대선 채로 휴대폰을 두들기던 그녀가 그것을 침대에 휙 던지며 말했다·
“소속사에 이야기는 해 뒀어· 내일이면 관계자가 도착해서 여기 있던 일을 수습할 거야·”
“그래서?”
“아마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 토커퍼즈를 떠날 배편도 구해질 거라고·”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기대앉아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그 정신병자 놈이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일정이 엄청 꼬일걸· 난 이제 몰라·”
“····”
레녹은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스위트룸 바깥의 발코니를 바라보았다·
발코니의 크기가 어찌나 큰지 어지간한 집의 마당만 하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투명한 난간 옆에는 넓은 수영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발코니 최외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소류의 모습·
레녹이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소류가 입을 열었다·
“토커퍼즈 시내 최상급 호텔 스위트룸은 하루 숙박료만 수천만 셀에 달하는 걸로 유명하지·”
서늘한 눈길로 레녹을 돌아본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덕분에 도시가 모두 보이는 이런 사치스러운 곳에서 탐색을 시도할 수 있었지만··· 큰 수확이 없군·”
“····”
“광대의 기척이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이미 토커퍼즈를 이탈했을 경우도 생각해 두어야겠어·”
“사치스럽다라 카바힘의 왕족이면서도 그런 감성을 느끼는 건가?”
레녹이 가면 너머로 눈을 가늘게 떴다·
“저번 결산에서 물려받은 유물들을 자랑하던 건 누구였지?”
“자랑을 한 게 아니라 정보를 거래하기 위한 대가로 사용했을 뿐이다·”
소류가 쓴웃음을 지었다·
“추방당한 왕족인 내게 왕가의 재산이 많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애초에 유산에는 크게 관심 없다·”
“그럼 네가 이번 작전에 참가한 이유는 뭐지?”
레녹이 냉소했다·
“카바힘을 통치하는 왕좌를 탈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모든 일을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야·”
소류가 레녹을 앞서나가 유리난간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토커퍼즈를 내려다보는 소류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지고 있던 카바힘 왕조의 혈계능력· 이 핏줄에 내려진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서지·”
“····”
“예전에는 나에게 주어진 이 능력이 축복이라고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이걸 이용해 더 강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곤 했다·”
소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카비힘을 나와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겠더군· 내게 주어진 이 힘은 아르스노바의 실수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결과에 불과했던 거다·”
쩌저적···!!
소류가 잡은 난간이 겉에서부터 천천히 얼어붙는다·
아무런 힘을 사용하지 않고 손을 갖다 대는 것만으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냉기·
소류 본인이 자신의 혈계능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였다·
“무의미한 변명이군·”
레녹이 냉소했다·
“너 스스로 혈계능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맞아· 그렇지는 않았겠지· 내가 너와 같았다면 분명 다르게 생각했을 거다·”
소류가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너처럼 타고나길 축복받은 특질계 술사였다면 광대처럼 자기 자신마저 가지고 놀 수 있는 괴물이었다면 고민하지 않았겠지·”
“····”
소류는 카바힘 왕실 직계 혈족의 일원이자 왕가에서 추방당한 왕자·
하지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은 빙결계 혈계능력은 여전히 그의 내면에 남아 있다·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한 자신의 혈계능력을 다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규격을 뛰어넘은 술사들을 보며 깨닫고 말았던 것·
소류 자신의 재능이나 역량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
혈계이능을 자신의 내면에서 완전히 지워내거나 아니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더 강하게 만들거나·
어느 쪽이든 카바힘 왕도 지하에 위치한 [문]에 그 해답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판데모니엄에 입단하지 않았다면 너 같은 술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단장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레녹의 가면을 냉정한 눈길로 바라보며 소류가 말했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 참가한 거다· 추방당한 왕자라 해도 왕성 안에서는 내 존재가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관심 없어· 쓸데없이 발목을 잡는 일이나 없도록 해라·”
레녹이 가면 너머로 소류를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그걸 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미친 환술사가 될 테니·”
“····”
소류는 대답하는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이 어떻게 될지 정도는 이미 각오를 해둔 것이겠지·
레녹은 그런 소류를 무시하고 곧바로 걸음을 돌려세웠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나는 스위트룸 거실의 정중앙·
수십 명이 앉아도 자리가 남을 법한 대형 소파를 중심으로 복마전의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샹들리에 위에 매달린 아그네타 소파 가장 안쪽에 드러누워 멍하니 하품하는 프레이야·
발코니 통로 근처에 기대선 소류와 초대형 TV 앞에 삐걱대며 서 있는 체비엔의 인형·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안타레스의 모습까지·
하지만 레녹은 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토커퍼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사도와의 전투가 종식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다른 멤버들 역시 레녹이 어떤 식으로 사도와 싸우고 승부를 냈는지 지켜보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판데모니엄 내부에서 어쩌면 광대에 비견되는 수준으로 강할지도 모르는 조작술사의 존재·
소류가 레녹을 보며 언급했듯이 다른 이들 역시 레녹을 보면서 그 술식과 재능에 대해 각자 다른 감상을 품기 시작했던 것·
치이익-
그 순간 스위트룸 벽에 걸린 초대형 TV에 노이즈가 끼며 하이레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이 됐군· 광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인 건가?]
묘한 침묵 속에서 하이레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의 성패부터 설명할게· 카바힘 외무성 측에서 프레이야가 기존 일정보다 빠르게 왕도에 입국하는 것을 허가했어·]
“····”
[토커퍼즈에 이만한 난리가 난 시점에서 프레이야가 예정보다 빠르게 카바힘에 오는 걸 막을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야·]
서늘한 침묵 속에서 하이레아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테러 피해 정도가 예상보다 훨씬 커져 버려서 몇몇 멤버의 신원이 일부 노출되는 건 피할 수 없었어· 예를 들자면-]
삑·
스크린 너머로 레녹이 쓰고 있는 흑요석 가면의 형상이 떠올랐다·
가면의 형상을 마치 몽타주의 형태로 그려놓은 듯한 일종의 문양 같은 그림·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시선이 레녹에게 향했다·
[수만 명이 빅터가 테러를 저지르는 순간을 지켜봤지· 어떻게 해도 말이 나오는 건 막을 수가 없더라· 괜찮겠어?]
“관심 없다·”
레녹이 대꾸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안건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교단 쪽은 어떻게 됐지?”
[현재 신디케이트 측에서 스타디움 재건을 핑계로 현장에서 시신과 피해를 수습하고 있어·]
스피커 너머로 하이레아가 종이를 팔락팔락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로 위장했던 교단 신도들은 현장에서 전원 사망· 교단 북서지부에서 파견 나온 사제들도 거의 절멸한 것으로 추산 중이야·]
“····”
[다만 습격의 주체가 되었던 5사도와 8사도의 경우에는 관련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어· 신디케이트 측에서 해당 정보를 일부러 감춰두고 있는 거겠지·]
광대의 자폭· 레녹의 금기병장 사용·
술식의 범주를 넘어선 두 가지 힘이 동시에 하나의 좌표에 중첩되면서 스타디움 내부 공간이 통째로 소멸해 버린 상황·
하지만 그 폭발 속에서 5사도와 8사도가 완전히 사망했으리라 확신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5사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캄로달은 애초에 자신의 촉수를 사용해 타인을 인형처럼 조종해 오던 사도·
이 자리에서 자신의 분신을 잃는다 해도 약간의 타격을 입을지언정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을 일은 없겠지·
최소한 교단 측의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사도의 시신이나 잔해물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레녹을 비롯한 복마전 멤버들이 아직까지 토커퍼즈에 남아 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광대 아트렌 키자드의 행방은?”
사태가 일단락된 이후 남아 있던 멤버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마땅한 단서가 없다·
말 그대로 레녹이 터트린 소멸술식과 함께 그 자리에서 한 줌의 먼지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그의 행운을 예지해 준 반동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지·”
안타레스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아트렌 키자는 살아 있다· 다만 어디에 있는지는 예지할 수 없을 것 같군·”
“크큭 이 자리에서 미리 말해두지····”
체비엔의 인형이 음울한 조소를 터트렸다·
“만약 광대가 시간 안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번 공략작전에서 발을 빼겠다····”
“····”
“그 환술사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작전이다··· 쓸데없이 왕도에 몸을 던져 자살할 이유는 없겠지····”
“누가 보면 전위라도 맡은 줄 알겠어· 후열에서 인형이나 만지고 있을 거면서 뭐라는 거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프레이야가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애초에 그 정신병자가 이런 곳에서 죽었을 리가 없잖아· 생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라고·”
“그렇다 해도 이쪽에서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둘 수밖에·”
소류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지로 위치를 점칠 수 없다면 광대의 부재를 감안하고 작전을 다시 짜야 한다·”
“야 내가 말했잖아· 쓸데없는 소리 하게 할래?”
“아니· 필요한 일이다·”
프레이야와 소류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광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작전은 진행되어야 해· 혼자서 카바힘에 콘서트를 하러 갈 생각인가?”
“그건····”
순간적으로 프레이야가 표정을 찡그린 사이 소류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바힘 왕도에 이렇게 쉽게 잠입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체비엔이 이탈해도 이쪽은 계획대로 움직인다·”
“····”
광대가 사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소재를 점칠 수 없는 상황·
최악의 경우 광대가 복귀하지 않는다 해도 프레이야는 예정대로 카바힘에 콘서트를 하러 가야 한다·
이 상황에서 다른 멤버들이 작전을 포기해버리면 프레이야는 카바힘에 혈혈단신으로 도착해야 할 터·
소류는 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작전을 강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콘서트는 취소하면 돼· 뭐가 문제야?”
프레이야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였다·
“소속사에 말해서 공지하고 위약금 지불하면 돼· 내가 이런 투어 한두 번 해본 줄 알아?”
“카바힘에서 이번에 네 방문을 허락한 이유가 콘서트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소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왕도의 [문]을 열기 위해 네 술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콘서트를 취소하면 무조건 보복하려 하겠지·”
“····”
“선택의 여지는 없어·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카바힘에 가야 한다·”
멍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아그네타가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것처럼 물었다·
“아 두 사람 지금 싸우는 거야?”
“····”
호화로운 스위트룸에 차가운 적막이 감돌았다·
팔짱을 낀 채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프레이야와 굳은 표정의 소류·
생각에 잠긴 안타레스와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체비엔의 인형·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레녹이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참 토론하는 도중에 미안하지만 그 화제와 관련된 소식이 하나 있어·]
그 순간 하이레아가 스크린 너머에서 말했다·
[신디케이트에서 우리 쪽 회선에 접촉했어· 광대의 신변을 그쪽에서 확보하고 있다는군·]
“···!!!”
그 순간 프레이야와 소류가 시선을 홱 돌렸다·
“장소는? 어디에 있는 거지?”
“뭘 원하는 건데? 돈이라도 달라고 이제 연락한 거야?”
[아니· 돈은 아니고 요구사항이 한가지 있군·]
하이레아가 고민하는 듯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번 테러의 주모자를 보고 싶어 해· 아마 빅터와 직접 대화하고 싶은 것 같아·]
“····”
자연스럽게 모든 멤버들의 시선이 레녹을 향했다·
신디케이트· 토커퍼즈 시정부와 함께 이 거대한 환락의 도시를 양분하는 세력·
토커퍼즈에 온 뒤 몇번 이름을 들어봤을 뿐이지만 어떤 세력인지는 짐작이 간다·
이 유흥도시를 장악한 범죄조직의 연합체에서 레녹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건가·
“위치는?”
[여기서 멀지 않아·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최심부 번화가 지하 암시장·]
하이레아가 말했다·
[서대륙 최대 규모의 인간경매장이 그곳에 있다고 하더군·]
“광대의 이름을 언급한 것 자체가 광대가 그곳에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텐데·”
소류가 고개를 기울였다·
“신디케이트 측에서 광대의 신변을 확보하고 있다는 확실한 정황이 있나?”
[글쎄 증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한가지 추신을 덧붙이기는 했군·]
하이레아가 살짝 묘한 어조로 대답했다·
[8사도가 보유하고 있던 금기병장 ‘비애’가 경매장의 상품으로 올라올 예정이라고 해·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