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1화
쇼다운(2)
프레이야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퍼져 나간다·
날카롭게 변주되는 선율이 쉴 새 없이 증폭되며 스타디움 전역으로 뻗어나가고·
스타디움 전역에 충만한 마력이 그 음색에 공명하며 동조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와아아아아아아!!!!’
그것만으로 사방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호응하며 날뛰었다·
그때마다 스타디움 전역이 무너질 것처럼 벌벌 떨리면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노래를 매개로 하는 음계술식인가····”
프레이야 칼린스가 사용하는 광역계열 음계술식·
주파수와 선율을 조종해 마력을 공명하고 의념에 동조시켜 특정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소리를 매개로 삼아 발동하는 현존하는 모든 술식 중에서도 압도적인 범위를 자랑하는 매개술식·
반경 수천 미터 가까이 되는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영향권에 둔다·
파아아아아앗!!!
하늘에서 메아리친 선율이 따스한 녹색의 마력광으로 변해 비처럼 떨어진다·
자연의 온기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녹색의 비가 광대한 스타디움 전역에 떨어지며 관객들을 감싸 안았다·
치이익!!!
광대의 머리 위로 떨어진 녹색의 비가 그의 피부를 적시고 흘러 내린다·
그때마다 상처 입고 갈라진 그의 피부가 아물어가면서 회복하기 시작했다·
“꽤나 강력한 축복부터 시작하는군요·”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본 광대가 히죽 웃으면서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아주 작정을 했나 봅니다·”
우우우우웅···!!
쏟아지는 녹색의 비가 이번에는 부드러운 하늘색의 바람으로 바뀐다·
솜사탕처럼 흐릿한 구름 덩어리가 무대 위에서 퍼져 나와 달콤한 향기를 흘렸다·
레녹의 오감을 부드럽게 자극하면서 내면 깊은 곳을 차분하게 고양시키는 따스한 의념·
프레이야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체내 마력과 자연 마력이 동시에 공명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신진대사를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기력을 불어넣고 피로를 잊게 만든다·
토커퍼즈에 오기 전 휴식을 취하고 온 레녹조차 확실하게 체감이 될 정도로 강력한 버프의 연속·
술식을 사용하는 술자의 음색과 선율의 조화· 그를 통해 쌓아 올리는 복잡한 화음·
정교한 멜로디의 조합을 통해 소리를 매개 삼아 발동하는 다양한 축복과 버프·
그 모든 것을 계산이 아니라 타고난 감각으로 해내야 하는 음악적 재능에 기반하는 매개술식·
[아아아아아-]
노래가 바뀔 때마다 프레이야의 허밍이 이어지고 버프가 중첩되어 스타디움 위로 쌓여간다·
관객들의 함성이 더욱 격렬해지고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함께 프레이야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때마다 프레이야의 노래가 더욱 강해지면서 축복을 더해가고·
스타디움에 모인 관객들의 몸 위에 쌓이면서 안녕을 기원했다·
“강력한 음계술사가 버프에 집중하면 이 정도까지 효율을 내는 건가·”
VIP석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녹이 작게 감탄했다·
“대단하군· 노래만으로 이만한 위력을 낼 수 있다니····”
레녹이 프레이야의 술식을 본 것은 편람의 우물에서 군벌의 초인들을 상대할 당시·
그때 프레이야는 자신의 허밍을 이용해 수천 미터 바깥에서 전황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전장 바깥에서 아군과 적군을 정확하게 구분해 버프와 디버프를 골라 넣는 엄청난 정교함·
하지만 술식의 컨트롤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버프에 집중하면 음계술식만으로 이 정도 위력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과 함께 공명하면서 소리를 키워갈수록 술식의 위력이 더해지며 축복이 강해지는 상황·
선율의 중심에서 노래하면서 십만 명의 관객들과 호흡하는 프레이야의 모습·
그 모습에 음계술식을 분석하던 레녹조차 순간적으로 생각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
단순히 음계술식의 힘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좋아서 프레이야라는 가희의 존재를 동경하기 때문에·
프레이야 칼린스의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기에 그녀의 음계술식조차 이렇게도 강력했던 것·
어째서 프레이야가 세계적인 디바라 불렸는지 그 명성이 대륙 전역에 유명했는지·
레녹은 이 한 번의 공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 모인 관객들이 이 순간을 더할 나위 없이 즐기고 있다는 사실도·
“빅터·”
그런 레녹의 심경을 짐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광대가 레녹을 불렀다·
양손으로 응원봉을 쥐고 몸을 흔들던 광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제가 할까요?”
“····”
“경찰청장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공연이 다시 시작되기까지 20분· 그 안에 거래를 끝낼 생각이겠죠·”
VIP석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킨 광대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프레이야의 노래를 많이 들어봤으니까요· 빅터가 공연을 즐기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광대가 레녹에게 응원봉을 건네주며 눈을 찡긋거렸다·
“제가 조용히 처리하고 오죠· 그동안 프레이야의 응원은 맡겨두겠습니다·”
“···아니·”
가면을 고쳐 쓴 레녹이 광대가 내민 응원봉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에게 일을 떠넘길 생각 따윈 없어· 내가 한다·”
“어라 아직도 우리가 남이었습니까?”
개소리를 지껄이는 광대를 무시하고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멀리 떨어진 VIP석에 앉아 있던 경찰청장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인자한 얼굴의 노인· 그 마력패턴과 기척도 담아둔 상황·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멤버들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레녹 혼자 남아 프레이야의 노래를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신호는 없을 거다· 알아서 타이밍 맞춰·”
“저희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광대가 히죽 웃으면서 응원봉을 흔들었다·
“일단 저지르고 나면 나머지는 제게 맡겨주시지요·”
“····”
전혀 믿을 수 없는 광대의 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믿음직하다·
고개를 끄덕인 레녹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VIP석을 빠져나왔다·
간식거리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순식간에 스타디움 내곽 복도로 향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써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정장을 입고 있던 경비원이 다가왔다·
“이쪽으로는 통행하실 수 없-”
피잉!!
검은 마력사 한 가닥이 관자놀이를 관통한 순간 경비원이 혼절해 쓰러졌다·
의식을 잃고 주저앉은 경비원의 모습이 희미한 마력사에 이끌려 사라졌다·
사전에 아그네타와 말을 맞추고 혼절한 이들을 경기장 밖으로 옮겨놓기로 합의한 상황·
기절한 경비원을 지나친 레녹이 계단 난간을 점멸로 건너뛰어 스타디움 지하로 향했다·
후욱 후욱!!
치이이익-!!
복잡하게 뒤얽힌 배관과 파이브 압력 조절 레버와 계기판이 빼곡하게 자리한 동력실·
철컥!!
동력실을 가로지르며 손을 뻗자 레녹의 손 안에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장치가 잡혔다·
마키나 지하 암시장에서 구매한 뒤로 사용할 일 없던 예약식 마력반발 점화장치·
촤라라락!!
파이프 연결부위 레버 손잡이 계기판의 버튼과 배관 입구·
취약한 연결부위에 폭탄물을 부착하고 마력사로 폭발 시기를 조절한다·
쿵! 쿵!!
두두두둥!!
천장에서 울려 퍼지는 격렬한 드럼소리·
환호성과 겹쳐 울리는 프레이야의 희미한 노랫말·
축제의 소음에서 혼자 동떨어진 듯한 기묘한 정적 속·
마력사를 조작해 스타디움 내부 시설 전역에 자신의 의념을 뻗은 레녹이 말했다·
“다비·”
[트리거 삽입 완료· 시동어 설정·]
레녹의 품안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면서 연산에 집중하던 다비가 말했다·
[토커퍼즈 스타디움 시설제어 시스템 완전해킹까지 5분·]
판데모니엄에서 레녹에게 기대한 건 조작술식으로 시설을 조작해 테러를 일으키는 것·
어떤 식으로 이 도시를 뒤집어 놓아야 할지는 이미 정해주었다·
남은 것은 시간에 맞춰서 콘서트를 뒤집어 놓고·
어느새 레녹은 무대 바로 아래 쪽에 위치한 준비실 근처까지 도착해 있었다·
[STAFF ONLY]
붉은 간판을 붙여둔 문 너머에서 프레이야의 스태프들이 떠드는 소리·
-휴식시간은 15분밖에 안 돼· 빨리빨리 준비해!!
-물이랑 영양제 가져와· 의상도 미리미리 깔아두고!
-마이크 배터리 가져와· 스피커 전력 누수도 빨리 고치라고 해!!
이제 막 휴식시간을 갖고 내려올 프레이야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가 한참이다·
-온다!!
-준비해· 바로 달리는 거야!
벌컥!!
프레이야가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레녹도 문을 열어젖혔다·
깨끗하게 청소된 준비실 사방에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무대의상·
주변을 정신없이 오가면서 청소하고 물건을 실어나르는 수십 명의 스태프·
사운드와 조명을 조절하면서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프레이야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걸어 나왔다·
강렬한 무대 조명 아래서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땀에 흠뻑 젖은 모습·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전혀 기력을 잃지 않고 빠르게 준비실을 훑었다·
팟·
문 앞에 선 레녹과 프레이야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치고 레녹이 걸음을 떼는 것과 모습을 감췄다·
그것을 확인한 프레이야가 즉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깐 혼자 있고 싶어· 휴게실에 있을 거니까 찾지 마·”
“예? 하지만 아직 사운드 조절 문제로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
“5분이면 돼· 괜찮지?”
프레이야가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아 휴게실에 들어선다·
그 모습을 본 레녹 역시 곧바로 휴게실 쪽으로 움직였다·
팟!
점멸을 사용해 프레이야가 들어간 휴게실 안으로 향한다·
손톱을 뜯으며 서성이고 있던 프레이야가 레녹을 향해 돌아섰다·
“그거 가지고 왔지? 없으면 진짜 큰일 난다!”
“여기 있다·”
레녹이 로브 안쪽을 펼치고 체비엔의 인형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으엑·”
프레이야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정교한 인형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 있는 인형의 얼굴을 본 프레이야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기분 나쁜 자식 취향 하고는· 진짜 나랑 똑같이 만들었네?”
“시간이 없다· 바로 시작하지·”
콘서트가 시작하기 직전 합의된 사항은 간단하다·
체비엔의 인형을 사용해 프레이야를 바꿔치고 아그네타가 인형을 조작해 프레이야를 연기한다·
하지만 아그네타는 음계술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만큼 콘서트가 다시 시작되면 즉시 들키고 말겠지·
작전 결행 시각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프레이야의 인형이 무대에 올라간 직후·
십만 명의 관객이 프레이야의 인형을 지켜보는 가운데 테러를 터트려 이 도시를 아비규환으로 만든다·
“아그네타· 준비됐나?”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아그네타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벌컥!!
휴게실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바깥의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프레이야가 움찔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다이애나! 5분 정도는 혼자 있고 싶다고-”
“이런·”
고풍스러운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문고리를 잡고 서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중절모를 매만졌다·
“먼저 온 손님이 계셨었군· 이거 실례를 저질렀어·”
“···경찰청장?”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레녹이 가면 너머로 중얼거렸다·
하이레아가 신신당부했던 이번 작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인물·
콘서트를 구경하다 먼저 VIP 객석에서 자리를 비웠던 경찰청장이 휴게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런 무대에 있을 법한 인재로는 보이지 않는데·”
청장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레녹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젊은이도 나처럼 프레이야 칼린스를 납치하러 찾아온 쪽인가?”
“····”
청장의 말 한마디로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뭐 뭔····”
당황한 프레이야가 말을 더듬거리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녀 역시 눈앞의 노인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험한 낌새를 느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노인이 서 있는 문 뒤를 바라보았다·
노인이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흘러들어오는 자욱한 혈향·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소름 끼치는 적막·
휴게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레녹이 깨닫고 몸을 돌려세웠다·
“그렇군· 왜 하필 이 시점에 일이 꼬였나 했더니-”
연유를 알 수 없는 학살· 목적을 알 수 없는 기행·
마주한 순간 느껴지는 섬뜩한 이물감과 동시에 쑤셔오는 오른쪽 손목의 성흔까지·
신녀가 레녹에게 선물했던 제사장의 권한이 반응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노인을 바라보던 레녹이 가면 너머로 싸늘한 목소리를 흘렸다·
“교단의 사도가 이번 일에 들러붙은 건가·”
“아 그렇지· 아직 본인의 소개가 늦었군·”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댄 노인이 말했다·
“교단 제5사도 엘드리히라고 하네· 괜찮다면 그 음계술사를 내게 양보해 주지 않겠나?”
* * *
같은 시각· 레녹이 떠난 VIP 객석·
휴식시간이 찾아오며 다소 한산해진 객석의 분위기·
무표정한 얼굴로 무대를 내려다보는 광대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여기에 있었군·”
레녹이 떠난 자리에 스스럼없이 앉아 편하게 몸을 기대는 중년 남성·
나직한 한숨을 내뱉으면서 등받이에 기댄 남자가 광대에게 말을 걸었다·
“환술의 대가라 하더니 그 명성대로구나· 인상착의를 알고도 인식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호오·”
힐끗 옆을 돌아본 광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군요· 요즘에는 신도들에게 그런 귀여운 촉수를 하나씩 달아주기로 한 겁니까?”
옆자리에 앉은 무표정한 인상의 남자·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특징없이 평범한 외견·
하지만 그 턱 아래에는 마치 문어의 다리와 같은 기괴한 촉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분의 전언으로 우물에서 그쪽과 협력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
하지만 남자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 역시 계백을 처리한 거물을 이런 곳에서 상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한 번만 말하지·”
귀도 교단 8사도· 캄로달이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광대를 바라보았다·
“카바힘 왕도 지하에 위치한 [문]은 본 교단에서 받아가겠다· 물러나도록·”
“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광대가 히죽 웃으면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일단 그 문어다리를 뽑아낸 다음에 다시 들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