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0화
610. 전속 계약 해지 1
전화를 걸어 온 성규환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
큰일이 났다는 그의 말에 난 일부러 더 차분히 말했다.
“규환 씨. 진정하시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찬찬히 말씀해 보세요. 저 정윤호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든 간에 제가 다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잠깐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와 함께 성규환이 말을 잇는다.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겠는데 회 회사에서 제가 정 실장님이랑 만난 걸 알고 있습니다. ‘연무(煙霧)’에 출연하는 것도 절대 허락 안 해 줄 뿐더러 저한테는 고의적인 태업으로 50억짜리 소송을 걸 거랍니다.
사정을 듣는 순간. TNT 엔터 매니저가 성규환의 차에 달린 블랙박스를 확인했다는 걸 알았다.
회귀 전에도 TNT 엔터의 매니저들은 블랙박스 정보를 빼내어 배우들이 어딜 갔는지 알아내는 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혹시 유 대표한테 태업을 제가 시켰다고 이야기하셨습니까?”
-아뇨! 절대로요. 며칠 전에 불려 갔을 때도 안 했고 오늘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대놓고 협박을 하길래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연락드린 겁니다.
“괜히 겁주려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뵙고서 이야기하시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아 지금 천호동으로 운전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근처 카페에다가 차를 대놓고 블랙박스에 촬영 안 되는 쪽에서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예.
달칵.
전화를 끊은 난 왕룽과 릴리 그리고 유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성규환을 데리러 향했다.
* * *
천호동 카페 근처 골목에 있는 성규환을 태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왕룽과 릴리 그리고 유진이는 천호동 집에 내려주고선 바로 옆 옆집인 한유식 대표의 집으로 향했다.
현재 시각은 새벽 1시였지만 한유식 대표는 자지 않고 있었다.
한유식 대표의 아내 이아은은 성규환이 흥분해 있는 걸 보고 따뜻한 보리차를 건넨다.
“이거 마시고 진정 좀 하세요.”
“예. 감사······ 합니다.”
성규환이 뜨거운 보리차 한 잔을 후후 불어가며 마신다.
무려 50억이란 소송을 건다는 말로 패닉에 빠졌었지만 나와 한유식 대표를 보자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절대 소송에 들어가지는 못하도록 확실히 막아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저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철저히 부인하십시오.”
성규환이 자백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태업을 지시한 걸 알 방법은 없다.
애당초 그걸 조심하기도 했었고.
그러나 TNT 엔터에서 더러운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나도 성규환을 혼자 둘 순 없었다.
하지만 성규환이 애원하듯 말한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절 TNT 엔터에서 좀 빼주시면 안 됩니까? 이틀 전에 PJK 화장품 건도 정 실장님 경고가 없었다면 전 아주 끝장났을 겁니다.”
며칠 전 성규환을 만났을 때 계약이 잡혀 있던 PJK 화장품과 절대 계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를 했었다.
그런데 내 말대로 PJK는 부도가 나버렸다.
그로 인해 성규환은 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긴 상태였다.
하지만 고민이 되었다.
고소를 막는 것과는 달리 성규환을 TNT에서 빼내는 건 아예 전면전을 벌이자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불안해하던 성규환이 한 마디를 더한다.
“아 그리고 유 대표가 저 말고도 정 실장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압니다. 성 배우님한테 협박 전화를 했으니 아마 조금 이따가 저한테도 전화하겠죠.”
“아뇨. 그게 아니라······ 며칠 전에 처음 대표이사실로 불려 갔을 때 절 타이르면서 말하더라고요. 정 실장님은 조만간 끝장이 날 거고 미리내도 끝장날 테니 관심 가지지 말라고요. 그땐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아니었습니다.”
“끝장난다고요?”
“예. KBC 나태환 CP님이랑 같이 있었는데 지분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정 실장님이 더는 ‘연무(煙霧)’에 관여 못 하게 만들 거라던데요? 뒤늦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그땐 그냥 지나가는 이야긴 줄 알았습니다. 근데 조금 전에 정 실장님도 같이 XX 낸다는 소릴 들으니까 그때 말한 게 진짜였던 거 같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태환 CP는 내가 날려버린 봉숙희 사단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그가 나에 대해 악감정이 있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미리내의 지분을 언급하면서 끝장이 날 거란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며칠 전 ‘미리내’의 지분을 둘러싸고 한유식의 세 자녀와 싸웠던 일이 바로 나태환 CP와 유강석 대표 때문에 벌어진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쩐지 한유식 대표의 자식들이 너무 빨리 알아차리고 왔다 싶었다.
그때 곁에 있던 한유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규환에게 물었다.
“나 CP랑 유 대표가······ 진짜 그랬는가?”
성규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다른 건 자세히 못 들었지만 미리내 지분을 어찌한다는 건 확실히 들었습니다.”
한유식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 역시도 나처럼 유강석 대표와 나태환 CP가 자식들이 찾아오게 만든 배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유강석 대표와 전면전을 벌이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제가 규환 씨의 계약 해지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른 적들이 많아서 유강석 대표와의 충돌은 뒤로 미루고 싶었지만 더는 참을 수는 없었다.
유강석 대표의 약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성규환부터 빼내 주고 말이다.
그러자 성규환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 그러면 전 뭐부터 하면 됩니까?”
“절 만난 걸 알게 된 건 아마도 블랙박스를 봐서 일 겁니다. 그것부터 봐야겠는데······ 그전에 먼저 그날 천호동에 끌고 온 차의 키를 회사랑 공유하는지부터 알려주십시오.”
“차 키를 식탁 위에 두긴 하지만 제 키를 회사에는 맡기진 않습니다. 매니저인 상준 형한테도요.”
그렇다면 충분히 법적으로 걸 수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싶은데 혹시 원격 접속이 되는 모델입니까?”
“글쎄요? 전 그런 건 잘 몰라서요.”
“그러면 혹시 블랙박스 앱 같은 건 설치한 적 있습니까? 차 살 때 영업 사원이 알려주기도 합니다만······.”
“아 예. 처음 설치는 했는데 쓰진 않았습니다.”
성규환은 6개월 전에 차를 샀을 때 영업 사원이 설치를 해줬다면서 폰을 내밀었다.
난 폰을 받은 뒤 앱 목록을 확인했다.
[다보여 블랙박스 LTE VER 5.0]
LTE 망을 이용해 녹화된 게 클라우드로 자동 업로드되는 기능이 있는 최고 사양의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연예인이라고 일부러 가장 비싼 최상급 모델을 달아 놓은 거다.
사실 덤터기를 쓴 셈이지만 덕분에 블랙박스 메모리를 직접 확인해 보지 않아도 되었다.
“이 모델은 계정을 생성하면 원격으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일단 계정부터 만드시죠. 그러면 차에 갈 필요 없이 차 안에 누가 들어왔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난 옆에서 회원 가입을 도와준 뒤 클라우드 서비스로 데이터를 복사하는 기능을 선택했다.
[데이터 전송 중 : 남은 시각 1분]
분명 성규환은 블랙박스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전송되는 데이터의 양이 너무도 적다.
아무래도 지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송 완료]
난 즉시 앱에 접속해 성규환이 나와 한유식을 만나러 온 날짜의 데이터를 확인했다.
[해당 날짜의 데이터가 없습니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매니저가 영상을 본 뒤 자신이 들어온 흔적을 없애기 위해 데이터를 지운 모양이다.
성규환이 고개를 갸웃한다.
“으음. 고장이 났나······.”
“매니저가 블랙박스를 확인하고서 지운 것 같습니다.”
“예? 상준 형이······ 그런 짓을 했다고요?”
자기 매니저인 오상준이 차를 뒤지고 블랙박스도 지웠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눈치다.
하긴 24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대행해주는 매니저가 회사의 감시자라는 말을 들었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덕분에 오히려 TNT 엔터에서 나오기 쉬워졌습니다.”
잠시 충격받고 멍하니 있던 성규환이 정신을 차린다.
“예? 어떻게요?”
“개인차 안에 침입했고 데이터를 건드렸다면 매니저와 회사를 상대로 고소할 수가 있습니다.”
TNT 엔터에서 배우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블랙박스를 지우기까지 했다면 이건 범죄의 영역이다.
“그렇습니까?”
“예. 그러니까 일단은 지금부터는 블랙박스 내용이 자동으로 서버에 업데이트되도록 해두겠습니다. 그러면 다음번에 매니저가 들어오는 장면을 모조리 녹화할 수 있습니다.”
LTE 서비스로 연결해 놓는다면 이제 블랙박스의 내용을 지워도 클라우드에 남은 건 지울 수 없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는 계정에 로그인해야지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우선은 몇 가지 기능을 활성화했다.
[클라우드 업데이트 : ON]
[실시간 감지 알람 : ON]
그리고 내 폰에도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앱을 깔았다.
이제 로그인만 하면 내 폰에서도 성규환의 차 안을 볼 수가 있었다.
“이번 일이 다 끝나면 계정을 바꿔드리겠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바로 고소하실 겁니까?”
“아뇨. 일단은 증거가 녹화되는 대로 고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랙박스는 제가 온라인으로 로그인해서 계속 확인해 볼 테니까 배우님은 돌아가시는 대로 한유식 대표님을 뵙고 왔다고 말하세요. ‘연무(煙霧)’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걸 사과하고 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죄송하다면서 연기를 좀 하십시오.”
“연기요?”
“예. 상대가 의심하지 않도록 잔뜩 겁을 먹은 척 구십시오. 그러면 저들은 아마도 저만 노릴 겁니다.”
성규환 같은 경험 적은 배우들은 노련한 엔터 회사를 상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TNT 엔터가 나만 노리게 하는 게 좋았다.
성규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당분간 잔뜩 겁먹은 생쥐처럼 연기를 해야겠군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 성규환이 쭈뼛거리다 묻는다.
“근데 전속 계약을 해지하면 전 바로 굴렁쇠 엔터로 가게 됩니까?”
“아뇨. 그랬다간 법적으로 걸려들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전속 계약을 해지해서 무소속이 된 다음에 잠깐 다른 엔터에 몸을 의탁하시는 게 좋습니다.”
“다른 엔터 어디 말씀이십니까?”
“대천 그룹 부회장의 장녀가 곧 엔터 회사를 세울 겁니다. 거기에 몸을 잠깐 숨기시죠.”
김애련의 장녀 이하윤이 대천의 이름을 버리고 밑바닥에서부터 회사를 설립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뜻대로 되진 않는다.
이하윤이 회사를 설립하는 순간 대천 그룹의 영애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업계에는 쫙 퍼져나갈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곳으로 옮기면 TNT의 유강석도 대천 그룹이라는 간판 앞에서는 섣불리 덤벼들지 못할 거다.
하지만 일단 계약 해지를 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그곳과 계약이 끝나면 무조건 굴렁쇠로 가겠습니다 정 실장님.”
“그러면 잠시만요.”
늦은 시각이었기에 혹시나 하고 까톡을 먼저 남겼다.
그런데 곧장 전화가 걸려 온다.
-정 실장님. 무슨 일이세요?
“혹시 연예인 한 명 영입하실 생각 없습니까?”
-벌써요?
“예. 괜찮은 사람인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흠. 문제라면 기존 소속사랑 트러블이라도 생긴 건가요?
외할아버지와 엄마를 닮아서인지 눈치가 빠르다.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성규환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말할 수가 있었다.
사정을 들은 이하윤이 대답한다.
-영업 방해 걸리지 않게 배우를 빼내야 한다는 거군요. 알았어요. 그러면 전 대천 그룹 출신의 변호사를 보내드릴게요. 일단 배우를 프리로 만들고 나중에 저희 엔터 회사를 설립해서 그분을 영입하면 되겠네요.
외할아버지가 다른 건 다 알아서 하되 변호사만큼은 자신이 지정해주는 사람으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
대천 그룹 출신에 능력있는 사람으로 차후 엔터회사의 부대표로 삼으라며 말이다.
이하윤은 그 변호사가 현재 대천에서 나와 법무법인을 가진 변호사이니 전속 계약 해지를 돕도록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배우가 누구예요?
“성규환이라고 곧 연무(煙霧)의 남자 주인공이 될 사람입니다.”
-우와~~ 규환 씨요? ‘교수 사회’에 나오신 그분 맞죠?
이하윤이 들뜬 목소리로 성규환을 반긴다.
<교수 사회>에서 카리스마 있게 나온 성규환의 모습에 반했다면서 약간은 흥분한 목소리였다.
“예. 맞습니다. 곁에 있으니 말씀 나눠 보시죠.”
성규환이 기쁜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잠시 후.
대화를 끝낸 이하윤이 말한다.
-그러면 내일 바로 규환 씨한테 변호사 보내드릴게요.
성규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하윤 씨.”
-저야 말로요.
그런데 전화를 끊으려던 이하윤이 갑자기 친근한 말투로 묻는다.
-근데 정 실장님. 저 내기에 졌는데······ 바라는 거 없으세요?
이하윤과 내기를 하긴 했지만 딱히 뭔가 보상을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다.
마치 슈팅 게임을 할 때 목숨 하나 더 생기는 아이템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말했을 뿐이었다.
“글쎄요? 아직은요.”
이하윤이 아쉽다는 듯 말한다.
-그래요? 흠······ 알았어요. 대신 생각나시면 미리 이야기해 주세요. 저도 준비는 해야 하니까요.
“예.”
-그러면 하시는 일 잘 되길 빌게요.
달칵.
전화를 끊고 나자 이하윤이 내게 친해지려고 하는 태도가 살짝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회귀 전 그녀의 선민의식 가득한 본모습을 봤었기에 아무리 그녀가 친하게 군다고 해도 호감이 들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 내 머릿속엔 오로지 정실모의 성공과 굴렁쇠를 지켜내는 것 그리고 잠 밖에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냥 다음번에 그냥 수면 시간을 늘려줄 순 없냐고 부탁해 볼까? 아니면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걸 만들어 달라든지······”
최근에는 워낙 바빠서 잠을 못 자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상상만 들고 있다.
난 머리를 털어 이하윤에 대해서 싹 잊어버린 후 성규환과 대책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경호원을 시켜 그를 배웅하고선 유강석 대표를 상대하기 위해 에브리데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눈을 뜨자 아침 8시다.
난 정신을 차리고 왕룽과 릴리 그리고 링링과 함께 식사하려고 1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잉~
아침부터 폰에 진동이 울린다.
[다보여 알림 : 차량 내부의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블랙박스의 동작 센서는 침입자가 있음을 알렸다.
실시간으로 보기를 누르자 두툼한 검은색 점퍼를 입은 사람이 블랙박스에 손을 대는 게 보인다.
성규환의 매니저 오상준이다.
성규환의 차에 손대는 게 적어도 하루 이틀은 걸릴 줄 알았는데 작정하고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도 증거를 빨리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
이제 게임은 반쯤 끝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때였다.
오상준 매니저가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오상준 매니저가 전화를 끊는 순간 어이가 없게도 내 폰이 울리고 있었다.
[발신자 : 유강석 대표]
오상준 매니저가 TNT 엔터 유강석 대표에게 전화했나 보다.
피할 생각은 없었기에 곧장 전화를 받았다.
순간 고성이 튀어나온다.
-야! 정윤호! 니가 감히 내 배우를 빼 가려고 수작을 부려? 너 당장 우리 회사로 와!
나야말로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지금 바로 가죠.”
난 전화를 끊은 뒤 거실에 있던 왕룽과 하루에게 나중에 식사하자고 말한 뒤 한유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난 한유식과 함께 곧장 TNT 엔터로 향했다.
* * *
TNT 엔터의 회의실.
난 한유식 대표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이후 이하윤이 보내준 법무법인 창성의 대표 변호사이자 앞으로 하윤 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이 될 최운재 변호사가 파트너 변호사와 함께 들어와 우리 곁에 앉았다.
잠시 후.
유강석 대표와 TNT 엔터의 법무팀장 황인준이 눈에 불을 켜고 회의실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성규환이 자신을 감시하는 매니저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실로 들어오는 성규환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그는 마치 이미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적당히 겁을 먹고 포기한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예 작정하고 인생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유강석 대표는 나만 박살 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성규환과 성규환의 매니저가 자리에 앉자 유강석 대표는 삿대질하며 외친다.
“정윤호. 감히 남의 회사 배우를 빼돌리려고 태업을 지시해? 너 이거 영업 방해인 거 알지? 50억 소송 들어갈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해!”
유강석 대표가 당장이라도 씹어먹을 듯한 눈빛을 띤다.
하지만 씹어먹는 건 그쪽이 아닌 내가 될 거다.
내게는 유강석 대표의 미래에 관해 적힌 에브리데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유 대표. 당신 사람 잘못 건드렸어.’
지금부터 난 유강석 대표를 자근자근 밟아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