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9화
589. 봉숙희 4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서버실에는 외부인이 출입할 순 없었기에 이두오는 회의실에서 그것도 리스너의 서버 프로그래머 감시하에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두오가 노트북 자판에서 손을 떼며 말한다.
“형. 이번 주 ‘정희왕후’ 방송에서는 시청률 조작한 흔적이 없는데요?”
“뭐?”
순간 양규민 부대표가 기다렸다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거봐! 우리 서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까!”
궁지에 몰린 오한국 이사가 날 쳐다본다.
“아니 정 실장. 그렇게나 자신만만하더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정희왕후> 4화의 시청률 20.9%가 조작이 없었다는 건 나조차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에브리데이의 일정이 그대로였기에 난 이두오를 향해 말했다.
“두오야. 그러면 이번 주 데이터 말고 서버 전체에 백도어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어?”
“가능은 한데······ 그러려면 서버 전체 권한이 필요한데요?”
순간 곁에 앉은 리스너의 서버 프로그래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보안상 서버 전체를 보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양규민 부대표 역시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이 정도 협조했으면 됐지 뭘 더 해? 우린 조작 같은 거 한 적 없으니까 이젠 그만하고 나가!”
난 양규민 부대표에게 말했다.
“그러면 2018년 ‘서울 밤하늘’과 2018년 ‘보릿고개’란 작품 시청률만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두 작품은 봉숙희 CP가 맡은 작품으로 예상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온 것들이다.
“아 거참! 그런다고 없는 게 나오나? 엉? 봐도 소용없다니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데이터가 조작된 걸 찾아내지 못한다면 봉숙희를 물리치는 게 모두 도루묵이 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부대표님. 안 나오면 제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확인하게 해 주십시오.”
순간 오한국 이사가 이를 꽉 깨물고 내 편을 들고 나선다.
“부대표님. 하나를 보나 둘을 보나 달라지는 게 없잖습니까? 예? 한 번만 더 확인시켜주시면 해달라는 걸 다 해 드리겠습니다.”
곧 KBC 상무가 될 오한국의 제안은 양규민 부대표의 관심을 끌었다.
“약속하신 겁니다?”
“예. 제가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거 아시잖습니까?”
양규민 부대표가 입꼬리를 올리며 서버 프로그래머에게 말한다.
“김 팀장. 방금 말한 딱 2가지 프로그램의 집계 데이터만 보게 해줘. 더는 절대로 보여 주지 말고.”
“예!”
양규민 부대표가 자신 있게 말하자 리스너의 서버 프로그래머가 노트북 자판을 몇 번 두드린 뒤 이두오에게 데이터 접속 권한을 내준다.
이두오의 손가락이 다시 한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타닥타닥.
경쾌한 노트북 자판 소리가 울리더니 갑자기 이두오의 손가락이 멈춰 선다.
그리고는 날 쳐다보며 힘차게 외친다.
“찾았어요. 형!”
“진짜야?”
“예. 형 말대로 변조된 게 맞아요. 데이터 보니깐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수정된 거고요. 이 정도면 서버에 백도어가 있는 게 확실해요!”
백도어.
말 그대로 해커들이 드나들 수 있는 뒷문이 시청률 조사 회사의 서버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난 자신 있게 회의실에 모인 모두를 향해 되물었다.
“그렇다는데요?”
그 순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정반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리스너’의 프로그램 시청률 집계 데이터는 봉숙희 CP가 맡은 7개의 작품에 한해서 최대 2.9%까지 조작되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3%가 넘으면 서버가 자동으로 알람을 줬을 텐데 그 이하로 조작을 해서 이제껏 발각되지 않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추가로 권한을 받은 이두오가 백도어까지 찾아내자 양규민 부대표는 사색이 되어 버렸다.
시청률을 조사해 먹고사는 회사의 시청률이 조작되었다는 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오 이사님. 이······ 이거······ 밖에 나가서 저랑 따로 이야기를······.”
말을 덜덜 떠는 양규민 부대표를 향해 오한국 이사가 씨익 웃는다.
“이 정도 조작 건이라면 오프 더 레코드를 지키긴 어렵겠는데요?”
“그 그건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그거야 저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으니까요.”
오한국 이사는 당장이라도 취재를 하려고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오한국 이사를 말렸다.
“오 이사님. 보도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걸 어떻게 숨겨?”
“이게 보도되면 그 시절에 있던 임원들과 관계자들은 모조리 해고될 겁니다. 그리고 그건 오 이사님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봉숙희 CP를 몰아내려고 오한국 이사를 도왔는데 정작 그가 사라지면 또다시 어떤 사람이 KBC 대표가 될지 모른다.
“그 그렇군. 그러면 봉숙희는 만나서 자진 하차하라고 해야겠군.”
“예. 리스너가 백도어를 설치한 ‘엔젤 미디어 컨설팅’을 고소하면 자연스레 봉숙희 CP님도 못 버틸 겁니다.”
회귀 전 이 일이 생겼을 때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자매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니 언론에 알리지 않더라도 두 자매는 스스로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
오한국 이사가 고개를 끄덕인 뒤 양규민 부대표를 쳐다본다.
“양 부대표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양규민 부대표가 진땀을 흘리며 대답한다.
“저 저희야 뭐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약속대로 오프 더 레코드를 할 테니까 고소는 월요일에 당장 접수하세요. 단 엉뚱하게 봉숙희랑 합의하거나 수작 부리면 그땐 진짜 끝장날 줄 아시고요.”
“무 물론이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믿어보죠.”
오한국 이사는 아까와 달리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정 실장. 이번에는 TNK로 가볼까?”
“예!”
이후 우린 TNK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증거를 발견했다.
봉숙희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엔젤 미디어 컨설팅’이 시청률 조작을 위해 ‘TNK’와 ‘리스너’의 서버를 해킹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증거를 확보한 우린 두 업체가 고소를 할 수 있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 * *
월요일 오전.
시청률 조사기관인 ‘TNK’와 ‘리스너’가 봉순자 대표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오한국 이사가 날 KBC로 불렀다.
난 곧장 KBC로 향했다.
오한국 이사를 만난 난 그와 함께 KBC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대표이사실 입구에 있는 비서가 우리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선다.
“봉숙희. 안에 있지?”
오한국 이사는 이제 호칭도 생략해 버렸다.
비서가 눈치를 보다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오전 중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셔서요.”
오한국 이사가 씨익 웃는다.
“그럼 안에 있다는 소리군.”
말을 마친 오한국 이사가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이미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 같은 당당한 발걸음이다.
난 오한국 이사의 뒤를 따르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녹음을 시작했다.
봉숙희를 최대한 빨리 실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사님! 이사님!”
우리가 대표이사실의 문고리를 잡자 비서가 따라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오한국 이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표이사실을 열어젖혔다.
벌컥.
대표이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군가와 전화하던 봉숙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뭐예요? 오 이사님! 밖에서 들어오지 말란 말 못 들었어요?”
“중요한 일로 온 거니까 시간 좀 내주시죠?”
“제 말 못 들었어요? 바쁘니까 당장 나가세요!”
그때였다.
오한국 이사의 표정이 차갑게 변한다.
“어제 TNK와 리스너에 들렀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보도해도 됩니까?”
그때였다.
봉숙희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뒤따라온 비서를 향해 손짓한다.
“최 비서. 나가 봐.”
“예? 아 예.”
비서가 고개를 숙인 뒤 열린 문을 닫고 나간다.
쿵.
문이 닫히자 봉숙희가 대표이사 자리에서 일어난 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시청률 조사기관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를 들었단 말이죠?”
오한국 이사가 날 데리고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를 더는 대표이사로 인정을 하지도 않는 듯 말을 낮추기 시작했다.
“어이 봉 CP. 대충 아는 눈치인데 말 돌리지 말지?”
봉숙희 CP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욧! 나 지금 대표 대행이에요. 말씀을 좀 높여······.”
“이봐 다 끝났어. 엔젤 미디어 컨설팅. 그쪽 여동생이 대놓고 시청률 조작을 한 거 다 알고 왔어. 그래서 지금 TNK랑 리스너가 당신 여동생을 고소했고. 조만간에 여동생이 다 불 텐데 괜히 힘 빼지 말고 자진사퇴 해. 그래야 그쪽도 동생도 죄가 좀 덜어지지 않겠어?”
봉숙희의 얼굴이 떫은 감을 씹은 듯 일그러진다.
하지만 이내 뻔뻔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내가 왜 자진사퇴를 하죠? 그리고 내 여동생 일은 난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봉숙희 당신은 절대로 시청률 조작을 시킨 적이 없다?”
“그래욧! 순자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지만 만약······ 진짜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순자 걔가 실적 압박 때문에 자기 멋대로 그랬겠죠.”
회귀 전에도 그녀는 이렇게 자신이 시청률 조작을 시킨 적이 없다며 완강하게 버텼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여동생이 단독으로 했다며 증언한 걸 여동생이 듣는 순간 봉순자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그래서 난 여기 들어오면서부터 녹음을 했었다.
그런데 예상한 대로 봉숙희 CP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뒤집어씌우는 말을 해버렸다.
당신은 끝이야 봉숙희.
그 순간 난 녹음을 종료했다.
그리고 봉숙희 CP와 오한국 이사가 다투는 틈을 타서 봉숙희의 여동생 봉순자 대표에게 녹음 파일을 전송했다.
[전송 완료]
녹음 파일이 전송되었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난 봉숙희 CP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봉 CP님.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죠.”
봉숙희가 악다구니를 쓰며 외친다.
“누가 CP야! 난 KBC 대표이사라니까!”
“정확히는 대표이사 대행이지 대표이사는 아니시잖습니까?”
봉숙희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날 저주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래. 아직은 아니지. 하지만 대표이사가 되는 순간 너랑 굴렁쇠부터 아주 끝장을 내줄게!”
작년 한 해.
드라마 제작사 투자 계획이 나 때문에 여러 번 취소가 된 터라 그녀는 나에 대한 악감정이 상당했다.
하지만 그 악감정을 내게 풀 기회는 아마도 없을 거다.
오늘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KBC와 관계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난 이글대는 봉숙희 CP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만이 아는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쪽이 여동생과 거래하면서 부탁한 내용이 모조리 동생분 차량 내부 블랙박스에 담긴 거 아십니까?”
“뭐?”
“당신 여동생인 봉순자 씨가 그쪽이랑 거래한 증거를 다 찍어놨다고요!”
봉숙희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다.
“수 순자가 우리들이 거래한 영상을 가지고 있다고? 그 그 X이?”
“예.”
그때였다.
<정희왕후>의 OST <낙화(落花)>가 회의실에 울려 퍼진다.
『칼날에 흩어진 붉은 꽃에~
선조의 영령이 떨어지네~』
봉숙희가 자신의 폰을 보더니 씩씩대며 전화를 받는다.
“야! 봉순자! 너 감히······ 나랑 돈 주고받을 때 녹화를 해뒀어?”
전화를 해 온 봉순자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래! 했다! 어쩔래!
“뭐? 너 미쳤어?”
-그래 미쳤다! 그리고 뭐 내가 다 시청률 조작을 한 거라고? 언니 넌 아무것도 몰라? XX! 너 혼자 살려고 그런다 이거지? 웃기고 있네. 내가 혼자 죽을 거 같아?
내가 보낸 음성 녹음 파일을 들은 게 확실하다.
“그건 또 누가 그래!”
-언니가 직접 말했잖아!
그 순간 봉숙희가 날 쳐다보며 얼굴을 붉힌다.
자신이 한 말을 녹음해서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걸 알아차린 거다.
“저······ 정 실장······ 너······ 네가······ 감히······.”
“그러길래 왜 의리 없게 혼자만 살려고 하셨어요? 예?”
순간 전화기에서 마지막 소리가 흘러나온다.
-야! 봉숙희! 넌 언니도 아냐. 이제부터 네가 시킨 거 다~ 불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달칵.
“순자야! 순자야. 야! 이 멍청아~!!!”
봉숙희가 다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받을 리가 없다.
애당초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자매였기 때문이다.
봉숙희는 폰을 꼭 쥔 채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을 몰라 하기 시작한다.
그런 봉숙희를 보며 오한국 이사가 말한다.
“이 일. 더 번지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위원장님한테 전화해서 사퇴해. 아니면 내가 직접 전화드리고 보도해 버릴 테니까.”
최후통첩을 마친 오한국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실장. 그럼 우린 나가지. 오늘 내가 밥 한 끼 거하게 살 게.”
난 고개를 끄덕인 뒤 오한국 이사의 뒤를 따라 대표이사실을 나왔다.
봉숙희는 마치 <정희왕후>의 OST인 <낙화(落花)>처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이 되고 있었다.
* * *
오한국 이사와 한유식 대표와 함께 식사하던 도중 봉숙희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오한국 이사는 이후 방통위원장과 통화했다.
이번 일은 보도하지 않는 대신 대표이사 자리를 달라고.
방통위원장은 조건부로 허락을 했는데 그 조건이라는 건 봉숙희 CP가 이미 결재한 인선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봉숙희 CP는 나태환 CP를 KBC 이사로 추천해놓았고 전두현 PD는 드라마국 국장으로 결재를 해 놓았다.
그리고 육성아와 이지성 PD는 각각 CP로 승진한다는 내용을 결재했고.
고민하던 오한국 이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한국 이사는 곧장 대표이사 대행의 권한으로 <연무(煙霧)>의 편성을 6월에서 8월 사이로 확정 지었다.
그리고 봉숙희에 관한 건 자신이 맡아서 마무리하겠다며 자신했다.
그렇게 봉숙희를 둘러싼 모든 일이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1월 26일 새벽이 되었다.
난 눈을 뜨자마자 짐을 챙겨 LT 엔터로 향했다.
며칠 전 기록적인 겨울 폭우로 인해 미뤄진 <지리산>의 마지막 촬영이 있었기에 신종기 대표가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에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LT 엔터의 옥상으로 가자 신종기 대표는 이미 헬리콥터 안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 정 실장. 빨리 와.”
“예. 대표님.”
고개를 숙이고 헬리콥터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헬리콥터는 청명한 하늘 위를 날아 지리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타다다닥.
<지리산>의 촬영장소인 천왕산장 앞 공터에 헬리콥터가 내려앉는다.
어제 하루 지리산에는 50cm 정도의 폭설이 내린 터라 바닥에 눈이 가득해 사방팔방으로 눈이 날려댄다.
덜컹.
공터에 내려앉은 헬리콥터에서 내리자 박선재 감독이 고개를 숙이고 다가온다.
“정 실장님~~! 신 대표님~~!”
한동안 못 본 사이 수염이 제법 덥수룩하게 나서 마치 산 사람 같다.
“새신랑이 한겨울 산속에 박혀 촬영만 하시더니 이제는 아주 산적이 되어 버렸네요.”
“하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저희 와이프는 머리카락이 잔뜩 길었고요.”
한 사람은 감독이고 한 사람은 제작실장이다 보니 부부가 결혼과 동시에 신혼여행을 지리산에 틀어박혀 한겨울을 보낸 셈이었다.
그 순간 신종기 대표가 웃으며 말한다.
“영화만 잘 나오면 내가 신혼여행을 좋은 곳으로 보내 주겠네~”
“이야. 기대되는데요?”
박선재 감독은 촬영에 자신 있다며 웃음을 짓는다.
좋은 대본에 내가 소개해 준 촬영 감독 그리고 내가 데리고 온 배우인 이태풍과 고재수 그리고 아역배우 강시아까지 모두가 빠짐없이 최고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천왕산장으로 가는데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잉~
잔뜩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눈앞을 흐린다.
“날씨는 따뜻한데 바람이 좀 심하네요. 조심 좀 해야겠는데요?”
“예. 그래야죠. 오늘 찍을 마지막 추격씬에서 산비탈도 타야 하고 암벽에도 매달려야 하는 데 조금 걱정입니다.”
이미 촬영 스케줄이 미뤄지다 보니 오늘 하루 말고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신종기 대표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상황은 알지만 시사회 일정이랑 상영 일정을 확정해 놔서 더 미루긴 곤란해. 박 감독.”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는 촬영을 끝내겠습니다!”
박선재 감독이 이 정도 위험은 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산장을 가리킨다.
“자 스태프들이랑 배우들이 산장 안에 있으니까 안으로 가시죠. 밥 먹고 바로 촬영 시작할 겁니다.”
“예.”
박선재 감독의 안내를 받아 신종기 대표와 난 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이이잉~
내 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알림 : 2021년 1월 26일 ‘이태풍’의 새로운 일정이 등록되었습니다.]
난 발걸음을 멈추곤 오늘 자 일정을 확인했다.
그런데 새로운 일정에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뭐 뭐야.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