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7화
587. 봉숙희 2
봉숙희 CP는 시청률을 조작할 수 있다.
그녀의 여동생 봉순자가 운영하는 ‘엔젤 미디어 컨설팅’이란 홍보 회사를 통해 시청률 통계업체인 ‘TNK’와 ‘리스너’의 서버를 해킹하는 방식으로.
그 결과 앞으로 3년 뒤.
봉숙희 CP는 자신의 지난 작품 시청률들을 적게는 1%에서 많게는 3% 정도까지 올렸다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검찰의 조사 결과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내용이 여전히 내 다이어리에 남아 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4년 11년 23일]
-PM 10:00 <연예계 방방곡곡> 양대 시청률 조사기관 TNK 리스너. 서버에 백도어 설치 발견. 외부 침입 흔적 소스 코드 발견 검찰 조사 중. (기타 : 엔젤 미디어 컨설팅이 해킹.)
그래서 난 시청률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봉숙희가 두렵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봉숙희 CP와 봉순자 대표는 구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통화 중인 오복희 PD에게 털어놓을 순 없었다.
아직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일단 봉숙희도 별것 아니지 않냐며 그녀를 달랬다.
“봉숙희 CP가 시청률에 마법사라 불리던 게 언제 적인데요. 그리고 ‘화란전’은 유진이가 나오는 5화부터가 본 게임인데 뭘 걱정하십니까?”
조금 전 방송된 <화란전> 4화는 미소와 조연들의 맹활약으로 시청률 23.7%를 달성하며 <정희왕후> 4화의 시청률을 이겼다.
난 아역들과 조연만으로도 이겼으니 <화란전>에서 유진이를 비롯한 주연급들의 궁정 암투극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다음 주 5화부터라면 더 크게 이길 거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오복희 PD는 명색이 자신이 PD인데 미리 겁을 먹은 게 부끄러웠는지 헛기침하며 답한다.
-크흠. 하 하긴 언제 적 봉숙희야!
“예. 그리고 저쪽에 봉숙희가 있으면 여긴 오복희가 있잖습니까?”
오복희 PD를 띄워 주자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알았어요. 더는 쪽팔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오복희 PD는 류한준 CP와 함께 MBS 임원들과 만나 홍보비를 더 타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난 박인기 팀장을 비롯해 모두에게 <정희왕후>의 시청률을 알렸다.
“‘정희왕후’는 시청률이 20.9% 나왔다는군요. 우리 ‘화란전’ 4화의 23.7%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네요.”
난 봉숙희 CP에 관한 언급은 일부러 피했다.
미리 사기를 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박인기 팀장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럼 그렇지.”
연소희 팀장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정희왕후’가 이길 거라고 TNT 애들이 노래를 부르던데 가서 한 마디 해줘야겠는데요?”
그때였다.
지이잉~
진동으로 전환해 놓은 매니저들의 폰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한다.
분명 한우혁에 대한 광고가 틀림없다.
“자 그럼 이제 우리는 광고나 쓸어 담아 볼까요?”
“예! 실장님!”
그때부터 우린 물밀듯 밀려오는 광고 제의를 선별하기 시작했다.
문의가 끝도 없이 이어지다 보니 전화를 받는 폰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때 배우 4실과 같은 층에 있는 구성철 실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정 실장! 전화 받아! 한우혁 광고 문의인데 4실에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안 된다고 나한테 전화 왔어.”
“어딘데요?”
“생생우유 홍보이사야.”
이후 오덕구 팀장이 뛰어들어오며 외친다.
“난 아동복 ‘아이조아’ 홍보실인데. 여기도 급하데. 당장 이 전화 좀 받아봐.”
두 사람이 각자의 폰을 내민다.
난 그 순간 씨익 웃으며 회의실을 가리켰다.
회의실에는 모든 팀장들이 진땀을 흘리며 광고 문의를 처리 중이다.
“잘됐네요. 두 분도 온 김에 좀 도와주시죠?”
“어?”
“아 아니. 그게 나도 좀 바빠서······.”
두 사람이 못 올 곳을 왔다며 뒷걸음질 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회의실에 앉아 광고 문의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주영훈 팀장을 비롯해 배우 2실 가수 2실 매니저들까지 남는 사람들은 모조리 회의실에서 광고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몸을 움츠렸던 한우혁의 화려한 비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KBC 조정실.
막 10시 드라마가 끝나고 시청률 집계가 나오자 봉숙희 CP에게 축하가 쏟아진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비슷하게나마 따라잡았네요.”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본부장과 국장 및 조정실에 있는 직원들이 와서 아부를 떨어댄다.
그리고 그들 뒤로 일명 ‘봉숙희 사단’으로 불리는 나태환 전두현 육성아 이지성이 찾아와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들이 모시는 봉숙희가 조만간 대표이사로 승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축하 자리에도 불편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오한국 이사.
유태오 전무.
그리고 도예수 CP.
오한국 이사와 유태오 전무는 차기 대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갑자기 치고 올라온 봉숙희 덕분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도예수 CP는 후배에게 자기 드라마에 대한 권한을 뺏긴 셈이었고.
하지만 봉숙희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던 시청률을 좁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 사람의 불편한 시선을 느낀 봉숙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쳐다보지들 마세요. 대표이사 자리를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위원장님이 어젯밤에 직접 찾아와서 무조건 하라는 걸 어쩌겠어요?”
봉숙희는 취임식도 하지 않았지만 대표이사 권한대행으로 이미 실질적인 대표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흐른 후 유태오 전무가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유 전무님. 우리 잘해봐요.”
봉숙희가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에는 오한국 이사를 쳐다본다.
“오 이사님은 곧 상무로 승진하실 거니까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알겠······ 습니다.”
이어서 봉숙희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한 태도로 모인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 당분간 비상 체제로 돌아갈 거니까 각 본부장들은 영업에 주력해 주세요. 비상 상황일수록 흑자 경영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유 전무님 오 이사님 두 분은 예능국과 보도국 위주로 신경 써 주세요. 드라마국은 제가 직접 관리하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고위 간부들이 불편한 기색을 겨우 참은 뒤 자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도예수 CP는 혼자만 자리에 남았다.
“선배는 왜 안 나가세요?”
“봉 CP. 이 작품은 내 거야.”
봉숙희가 피식하고 웃는다.
“누가 이 작품 선배가 메이드 한 거 모른대요?”
“아는 데 계속 이렇게 날 망신시킬 거야? 대표로 올라가면 이제 현장 일은 손 떼야지! 안 그래?”
그 순간 봉숙희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린다.
“어쩌겠어요. 방통위원장님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희왕후’를 띄우고 ‘화란전’을 이기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솔직히 시청률 경쟁이라면 선배보다는 제가 더 낫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선배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현장에서 작품만 잘 뽑아주세요.”
CP의 권한을 뺏기고 졸지에 PD 역할만 하게 생긴 도예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3화 시청률이 16.9%가 나온 건 박찬식 대표가 벌인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봉숙희가 더 좋은 성적을 낸 탓에 마땅히 대꾸할 수가 없었다.
“XX!”
도예수는 그렇게 거친 말을 내뱉고 몸을 돌려 버렸다.
봉숙희는 도예수의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더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선배로는 못 이겨.”
봉숙희는 조정실 식구들에게 수고하라고 말한 뒤 조정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복도 끝 휴게실로 향한 그녀는 곧장 TNT 엔터의 유강석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봉숙희.”
-아 대표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이영이가 체면 좀 세웠습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
봉숙희는 유강석 대표에게 자신의 여동생 봉순자가 운영하는 ‘엔젤 미디어 컨설팅’에 돈을 건네주라 말했다.
유강석 대표는 봉순자에게 흔쾌히 거액을 건넸고 봉순자는 그 돈을 받아서 언론플레이를 해댔다.
대형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배너 광고를 하고 댓글을 달고 심지어 ‘엔젤 미디어 컨설팅’에서 관리하는 인플루언서들의 SNS를 통해 <정희왕후>를 봐 달라며 부탁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하하.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좀 부탁할 수 있지?”
-얼마든지요.
“그래. 그리고 마케팅 회사에서 올릴 수 있는 시청률에는 한계가 있는 거 알지? 나머지는 우리 KBC가 다 채워야 하니까 협찬 빵빵하게 넣어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자금력 하나는 끝내주잖습니까?
“그래. 그건 알지.”
그때였다.
봉숙희가 웃으며 묻는다.
“아 그런데 혹시······ 정 실장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어? 왜 그렇게 정유진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이기는 데 집착해?”
유강석 대표가 단번에 대답한다.
-정윤호 그 자식한테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식이 제일 아끼는 정유진 주연의 프로는 무조건 이기고 싶습니다.
봉숙희가 깔깔대며 웃는다.
“그러면 한 팔 거들어줘야겠는데? 실은 나도 그 친구한테 빚이 하나 있거든.”
-빚이요?
“뭐 그런 게 있어.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정윤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순간 유강석 대표의 목소리가 한층 더 올라간다.
-그렇다면······ 앞으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대표님!
봉숙희는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린다.
“알았어. 그럼 수고하고 다시 연락해. 이번 주는 몰라도 다음 주부터는 빡빡할 거야. 진짜 승부는 그때부터야.”
-알고 있습니다. 따로 좀 더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저희 TNT 쪽 배우들 출연하는 프로에도 좀 신경 써주십시오.
“얼마든지.”
봉숙희는 전화를 끊은 뒤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여동생 봉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순자야. TNT 쪽에서 아주 크게 쏴줄 모양이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땡겨보자.”
-어머? 우리 봉 여사. 제대로 봉 잡았나 본데?
“봉인지 호구인지. 봐야 알겠지?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슬쩍 건드려야 하는 거 알지?”
이번 주는 시청률 조사기관의 데이터를 건들지 않고 순전히 엔젤 미디어 컨설팅의 힘만 이용했다.
그래서 시청률을 꽤 올릴 수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화란전>의 시청률을 따라갈 순 없었다.
봉숙희로서는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던 시청률 조작에 결국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돈만 빵빵하게 꽂아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나저나 우리 봉 여사가 KBC 대표이사라니 참~ 사람 일 알다가도 모르겠는데?
“그러게나 말이다.”
폰 너머로 깔깔대는 여동생의 웃음소리에 맞춰 봉숙희도 크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 * *
밤새도록 미소와 한우혁에게 쏟아지는 광고를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지하 녹음실로 내려가서 이준수와 ‘익스텐션’의 너튜브 라이브까지도 체크해야 했다.
‘익스텐션’은 이 무대가 마지막 무대인 듯 최선을 다했고 리더인 남궁혁은 서연우와 세리와 함께 <닿지 않은 마음>을 열창했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이 끝날 땐 ‘익스텐션’에 대해서 묻는 팬들의 수가 상당히 늘어났다.
덕분에 이준수는 ‘익스텐션’의 주말 음방 무대가 취소됐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잘 됐다고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난 새벽 3시까지 추가 광고 문의를 받은 뒤 뒤는 직원들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온종일 폭우 속에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을 감자마자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삐삐삐.
“응? 뭐지?”
오전 7시에 맞춰둔 알람이다.
“벌······써?”
마치 시간이 삭제된 것 같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잠이 오진 않았다.
결국 난 침대에 누워서 어제 기사들을 확인했다.
[4년 만에 귀환한 한우혁. 한층 깊어진 연기력.]
[도깨비 ‘비형랑’의 카리스마.]
[병마와 싸워 이기고 돌아온 남자가 보여주는 진한 연기. 한우혁의 빠져드는 듯한 눈빛.]
한우혁의 연기력을 인정하는 기사들이 가득한 걸 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어젯밤 있었던 두 드라마의 치열한 경쟁 결과가 나와 있다.
[MBS <화란전> 4화 최고 시청률 23.7% 달성! 동 시간대 1위.]
[KBC <정희왕후> 4화 최고 시청률 20.9% 달성!]
그런데 기사 중 눈에 띄는 게 있다.
[<정희왕후> 중년층 이상에서는 동 시간대 1위! 전통 사극의 묵직한 힘.]
“제법인데 봉 CP?”
봉숙희는 40대 이상의 중년층에 대한 시청률 그래프만 따로 뽑은 다음 <정희왕후>가 <화란전>을 이겼다고 주장했다.
비열한 장난질이지만 나름은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중년층 이상에서 시청률 1위 같은 결과가 나오면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화장품이나 마사지 광고를 받을 때 <정희왕후>의 광고 단가가 <화란전>보다 높게 설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앞으로는 연령대 시간대 등 모든 통계 지표에서도 이겨줄 생각이었다.
설령 봉숙희가 시청률을 조작한다고 해도 말이다.
“후우. 그건 그거고 밥부터 먹어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두툼하게 옷을 챙겨입고 1층으로 향했다.
덜컹.
1층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는 한유식이 유진이와 미소와 함께 인절미와 백설기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그리고 주방에서는 한유식의 아내 이아은과 정인지 아주머니가 함께 북엇국을 끓이고 있다.
한유식과 이아은 부부는 이틀 뒤 근처 빈집으로 이사 가기로 한 터라 그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는 중이다.
“안녕히들 주무셨어요?”
한유식이 웃으며 반긴다.
“어~ 정 실장. 어제 늦게 온 것 같더니 조금 더 자지 그랬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눈이 저절로 떠지더라고요.”
그때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북엇국 냄새가 진짜 끝내주는데요?”
정인지 주인아주머니가 다정히 말한다.
“당연하지. 정 실장 어제 그 폭우 속에서 돌아다니느라고 바빴다길래 끓인 건데. 어서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힘내.”
정인지 아주머니의 배려에 아침부터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사합니다.”
난 그 틈에 조르르 달려온 미소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어제 드라마 이야기로 미소에게 칭찬을 해준 다음 북엇국을 먹기 시작했다.
맞은 편에 앉은 미소는 자기 얼굴보다 큰 그릇에 숟가락을 푹 떠서 국물부터 들이마신다.
후루룩.
순간 미소가 혀를 내밀며 손부채질을 한다.
“아뜨······ 엄마. 무 물······.”
난 유진이보다 먼저 찬물을 미소의 앞에다 내밀었다.
미소가 작은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찬물을 꼴깍꼴깍 마신다.
“하아~ 뜨겁다.”
“뜨거운 음식은 천천히 먹어야지 미소야.”
미소가 혀를 빼꼼히 내밀고 살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뜨거울 때 먹는 게 맛있어서요!”
그건 그렇긴 하지.
“그래도 데지 않도록 앞으로는 식혀 먹자?”
“예!”
미소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후~하고 국을 식힌다.
미소가 바람을 입안에 물 때마다 양쪽 볼이 볼록해지며 마치 작은 공을 문 것처럼 변한다.
미소의 귀여운 행동에 다들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자 한유식 역시 봉숙희 CP의 대표이사 승진 건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라인인 오한국 이사의 대표이사 승진이 물 건너간 탓에 한유식도 조금은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그때였다.
한유식의 폰으로 오한국 이사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선배님.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저 지금 천호동입니다.
“봉숙희가 대표이사로 내정됐다는 것 때문인가?”
-소식 들으셨군요.
“그래. 음. 그러면 전에 둘이 갔던 카페 K에서 볼까?”
-예. 지금 바로 오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 실장도 같이 봤으면 합니다.
“응? 우리 정 실장은 왜?”
-봉숙희 CP가 정윤호 실장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더군요.
한유식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묻는다.
“봉 CP가 정 실장한테 왜 악감정이 있어?”
-그게요······. 아 카페 다 왔습니다. 자세한 건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달칵.
전화가 끊겼다.
말을 하다 말다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오한국 이사의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다.
그때 한유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정 실장. 혹시 봉 CP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 있나?”
“아뇨?”
회귀 전이면 모를까 회귀한 이후에는 그녀와 직접 얽힌 적은 없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우리 배우 4실의 스타들에게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고 나 또한 봉숙희가 시청률 조작을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울릴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직접 들어봐야 할 것 같군. 같이 나가지.”
“예.”
난 그 즉시 한유식 대표와 함께 천호동의 카페 K로 향했다.
만에 하나 봉숙희 CP가 내 앞길을 막는다면 난 그녀가 KBC 대표이사가 되는 걸 막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