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6화
576. 그들의 계획 1
-미안한데 더는 장웨이 회장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순간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너희 집안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거나 하는 건 아니지?”
중국에선 파벌싸움에 잘못 휘말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물었더니 왕룽이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난 과거 릴리와 왕룽을 구해준 대가로 왕룽의 아버지인 왕민 부서기에게 장웨이 회장의 자금줄을 막아달라고 했다.
왕룽은 더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며 미안해한다.
그러나 이제껏 막아준 것만 해도 내게는 충분히 큰 도움이 되었다.
“하여튼 아버님이랑 링링 아버지께서 그동안 수고해주신 것만 해도 충분해. 뒤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너무 선선하게 대답한 탓일까 왕룽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넌 괜찮아?
“괜찮아. 이젠 예전의 내가 아니니까.”
중국에서라면 모를까 우리나라에서 싸운다면 이젠 내게도 장웨이 회장을 상대할 방법이 있었다.
왕민 부서기와 리커준 사장이 시간을 벌어 준 덕에 그동안 많은 동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왕룽은 기가 찬다면서 말한다.
-천하의 장웨이 회장을 이토록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너뿐일 거다 아마.
“너도 마찬가지잖아.”
-나야 뭐······ 아버지 빽 때문이지 뭐. 하지만 윤호 넌 아니잖냐.
왕룽은 모든 걸 무(無)에서 이룬 내가 더 대단하다며 연신 듣기 좋은 소리를 말한다.
난 그렇게 띄워줄 필요 없다고 말한 뒤 왕룽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이 기회에 말하는 건데······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바로 한국으로 와. 내가 너희 가족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왕룽이 큰 소리로 웃는다.
-말만 들어도 고맙다. 근데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이번에 링링 아버지의 회사 레드페이를 증시에 상장하는 것 때문에 당에서 중재를 나섰어. 그래서 장웨이 회장 파벌을 더는 못 건들게 된 것뿐이야.
링링과 릴리의 아버지인 리커준이 상하이 증시에 전자결제 회사인 레드페이를 원래 계획보다 조금 앞당겨서 상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장만 하면 수조 원에 이를 정도의 거대한 회사가 될 수 있었기에 여러 파벌의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상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싸우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버지랑 장인어른이 그래도 장웨이 회장만큼은 막으려고 했는데 장웨이 그 인간이 워낙 로비를 잘 해둬서 힘들더라.
“괜찮아. 내가 아버님께 연락드릴게.”
-알았어. 네가 전화해드리면 아버지가 안심을 좀 하실 거야.
“어. 뭐 그건 그렇고 그러면 이달 말에 보자.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 오디션 준비는 그때까지 다 해놓을 테니까 링링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해.”
-어. 링링한테 말해 둘게.
그렇게 난 왕룽과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왕룽의 아버지인 왕민 부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왕민 부서기가 무안해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윤호야 미안하게 됐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장웨이 그 인간을 붙잡아 두려 했었는데······.
“아닙니다. 아버님. 이제껏 해주신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후우. 그래도 예전처럼 설치지는 못할 거다. 장웨이 회장도 그동안 우리에게 입은 손실이 꽤 크거든.
장웨이 회장의 자금줄이 워낙 타격을 크게 입었기에 당장은 움직이긴 힘들 거라고 한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감사는 무슨. 우린 가족 아니냐?
왕민 부서기는 친구의 아들인 나를 언제나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말했다.
“이제껏 장 회장을 막아내 주신 덕에 이만큼 클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아버님과 리커준 사장님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왕민 부서기가 껄껄대며 웃음을 터트린다.
-허허허.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윤호야.
속 시원한 웃음을 지은 왕민 부서기는 이제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장웨이 회장도 우리가 네 뒤에 있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예전처럼 막 대하지는 못할 거다. 그러니 큰 걱정하지 말 거라.
왕민 부서기는 장웨이 회장을 다 막진 못했지만 대신에 내 뒤에 자기가 있다는 은근슬쩍 알렸다고 한다.
내 생각 이상으로 왕민 부서기는 날 아껴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수고하고. 아 그리고······ 우리 링링을 잘 부탁하마.
순간 난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동생을 챙기는 건 오빠의 의무 아닙니까?”
순간 왕민 부서기의 말이 멈춘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실수했구나. 그래 맞다. 허허허. 우린 이미······ 가족이지.
왕민 부서기의 잠시 멈춘다.
그러다 진짜 아버지가 말하듯 건강을 챙기라며 신신당부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한유식이 흐뭇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우리 정 실장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구먼.”
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예. 한 대표님이나 이 여사님처럼요.”
그 순간 한유식과 이아은이 멈칫하더니 감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 그런가?”
“네.”
“고맙네. 정 실장.”
이아은 역시 날 다정한 눈빛으로 보며 말한다.
“고마워요 정 실장님.”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진다.
덕분에 나 역시 아침부터 기분 좋은 웃음이 나고 있었다.
“그러면 전 이만 출근해 보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나도 오늘은 대흥 저축은행에 가볼 셈이네.”
오늘부터 ‘미리내’의 회생 절차를 시작한다.
채권은 모조리 대흥 저축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보니 회생 절차는 대략 1달 정도 안에 끝을 낼 거라고 한다.
“파이팅입니다. 대표님!”
“그래. 자네도 파이팅일세!”
인사를 마친 난 정인지 주인아주머니와 이아은에게도 인사를 한 뒤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주차장의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맨 나는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경쾌한 엔진소리가 울린다.
잠시 예열을 하고 출발하려던 순간 갑자기 안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지이잉~
폰을 꺼내서 확인하자 오늘의 운세가 등록되었다는 알람이다.
[알림 : 2021년 1월 20일 ‘오늘의 운세’가 등록되었습니다.]
난 곧장 오늘 자 에브리데이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1월 20일]
[오늘의 운세 : 잡아 놓은 큰 물고기들이 도망칠 수 있다. 얼기설기 얽혀진 그물을 더욱 촘촘히 조여야 한다. 내부의 적을 조심하라.]
‘큰 물고기들이 도망을 가? 그물을 조여야 한다고?’
순간 운세가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잡아놓은 큰 물고기들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스타 연예인을 뜻하는 것이었다.
즉 누군가 우리 정 실 소속 배우들을 노리고 있다는 경고였다.
게다가 내부의 적이라는 건 배우들을 빼돌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관우 엔터 출신의 매니저들이나 백세기 실장 중에 있다는 뜻이었고.
다만 내가 관리하는 배우 4실의 스타 연예인 중에선 도망갈 배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바로 배우 2실의 스타 배우들에 대한 것이다.
조폭 계열 엔터 회사에서 도망쳐 나온 박은성.
TNT 출신으로 게임을 좋아하던 성호준.
사극 전문 배우로 한동안 작품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배우 3실에서 배우 2실로 넘어온 송지환.
배우 1실에 있다가 배우 2실로 옮긴 간판 배우 조민성까지.
네 사람은 특별한 영업을 하지 않아도 출연 제의가 밀려오는 스타들이었기에 기본적인 관리만 해도 충분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차기작을 추천해 두고는 배우 2실에 남겨 놓았다.
하지만 백세기 실장이나 관우 엔터 쪽 출신들이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오늘은 회사가 아니라 현장으로 바로 가봐야겠군.”
난 절대 내 손에 들어온 물고기를 놓칠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난 그 즉시 네 사람 중에 가장 흔들리기 쉬운 배우의 촬영 현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 * *
압구정의 유명 일식집 카게무샤.
그중 가장 안측 내실에는 아침부터 최만식 대표와 김관우 부대표 김장비 본부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굴렁쇠 엔터의 오전 회의가 끝나자마자 최만식이 부른 곳으로 김관우와 김장비가 찾아왔다.
“식사 나왔습니다.”
정갈한 정장 차림의 점원이 음식을 세팅한 후 깍듯한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갔다.
아침이다 보니 계란찜과 일본 가정식 요리들이다.
“자 드시죠. 아침은 여기가 최곱니다.”
먼저 계란찜으로 속을 달랜 최만식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정윤호 그놈. 일주일간 겪어보시니 어떻습니까?”
김관우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젊은 놈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기도 하고요.”
김관우의 평가에 최만식이 인상을 쓴다.
“그래서? 지금처럼 감탄만 하고 앉아 계실 겁니까?”
최만식 대표의 언성이 높아지자 김관우가 다급히 말한다.
“아 그게······ 아니라······ 방법이 있을 거 같습니다.”
“방법? 그게 뭡니까?”
“정윤호 실장 그놈은 워낙 꼼꼼한 터라 실수가 없지만 놈이 관리하는 배우들은 아니죠. 그 배우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흔들어 볼까 합니다.”
최만식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분탕을 치겠단 말이군요.”
“예. 주로 2실에서 위탁 스타급 관리자들을 흔들면 꽤 성과가 날 것 같더군요. 원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배우 조민성 성호준 박은성 송지환.
정윤호는 S급이라 불리는 배우들 대부분을 배우 2실에 남겨두고 4실로 독립했다.
더군다나 정윤호는 배우 4실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다.
그러니 그 틈에 배우 2실의 탑스타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작품을 제안한다면 충분히 포섭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최만식이 팔짱을 끼고 김관우를 쳐다본다.
“이전에 있던 전임자들이 모조리 비슷한 짓을 하다가 실패한 건 아시죠?”
“압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윤호 혼자서 다 커버가 가능할 때고 지금은 아니잖습니까? 제가 알아보니까 다들 조금씩은 불만이 있더군요.”
그제야 최만식이 슬쩍 관심을 보인다.
“하긴 탑스타 들은 회사의 모든 스케줄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니까······ 그럴 만도 하겠군요.”
S급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은 모든 일정이 자신을 제일 우선에 두길 원한다.
그러니 아무리 정윤호가 작품을 골라준다고 해도 직접 케어하는 것에 비해 서운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약한 고리지만 김관우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여간 시간을 좀 들여서 S급 배우들을 하나 두 명만 이탈시키면 정윤호의 신화를 깰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정윤호에 대해서 출세를 좀 빨리하더니 배우 관리에 소홀하다는 소문을 퍼트릴 생각입니다. 원래 이 바닥에서 평판이라는 게 꽤 무섭잖습니까?”
순간 최만식이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으하하하. 이제야 뭔가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군요. 역시 우리 부대표님을 모셔온 게 탁월한 선택이었나 봅니다!”
김관우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미소를 짓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계획은 현장에 나간 백세기 실장이 큰 도움을 줬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벌써 협력을 시작하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참 웃던 최만식은 겨우 웃음을 거두고 묻는다.
“그러면 어떤 배우한테 사람을 보냈습니까?”
그때 곁에 있던 김장비 본부장이 씨익 웃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실장들 모두를 현장에다가 파견했습니다.”
“아~ 그래서 오늘 실장들이 여기 식사 자리에 안 온 거군요.”
“예. 대표님.”
최만식이 마음에 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간 그건 그렇게 하고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굴렁쇠 엔터는 반드시 저희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공하게 되면 두 분께 이 굴렁쇠 엔터의 모든 관리를 맡기겠습니다.”
최만식은 최근 최은태 회장의 비자금이 굴렁쇠 엔터의 자회사에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문제는 10개나 되는 자회사인 A1 엔터부터 A10 엔터 중 어디에 숨긴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만식은 굴렁쇠 엔터를 차지한 다음 자회사를 하나씩 다 뒤져볼 생각이었다.
최만식의 말에 김관우가 짙은 미소를 띠며 답한다.
“알겠습니다. 주식 상장 전에 정윤호의 평판을 바닥으로 떨구고 굴렁쇠를 차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김관우의 자신 있는 태도에 최만식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진다.
“오늘따라 계란찜 맛이 좋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하하하.”
최만식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김관우와 김장비의 웃음소리가 카케무샤 일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 *
SBC 본관 실내 세트장.
굴렁쇠 엔터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조민성 배우는 현재 <천계의 뜰>이라는 드라마에 출연 중이다.
<천계의 뜰>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그린 12부작으로 조민성은 주인공 ‘강천하’역을 맡고 있다.
현재 배우 2실에서 주영훈 팀장이 그의 담당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지만 조민성은 주영훈 팀장을 전적으로 의존하진 않았다.
조민성 스스로가 작품을 보는 눈이 있었기에 매니저란 언제나 자신의 보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록 내가 차기작을 추천해 놓았다고 해도 관우 엔터 쪽 매니저들이 더 좋은 제안을 하면 그쪽으로 옮겨갈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기준으로는 배우 2실의 배우 중 가장 흔들리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SBC 실내 세트장에서는 조민성이 막 <천계의 뜰> 11화의 한 씬을 마치고 대기 의자에 앉고 있었다.
의자에 기댄 조민성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그런데 곁에서 수건을 건네야 할 주영훈 팀장이 보이질 않았다.
대신 소지민 실장이 배우 양지선과 함께 서서 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민성 씨. 오늘 연기 끝내줬어요.”
“선배님. 오늘 진짜 눈이 호강하는 날인 거 같아요.”
조민성이 눈웃음을 지으며 수건을 받아든다.
“고맙습니다. 소 실장님. 그리고 지선 씨도 고마워?”
역시나 오늘의 운세가 알려준 대로 관우 엔터 출신 실장이 내 배우들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작품 때문에 왔다가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거는 식으로.
난 소지민 실장이 무슨 짓을 할 건지 정확히 알기 위해 거리를 벌린 채 잠시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조민성이 땀을 닦고 나자 소지민 실장이 조심스레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민성 씨. 혹시 이 작품 끝나면 다음 작품 정해져 있어요?”
조민성이 웃으며 말한다.
“예. 정 실장이 추천해 준 작품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혹시 무슨 작품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으음. ‘강의 경계’라는 건데 MBS에서 편성을 앞두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강의 경계’요? 난 처음 듣는 작품인데? 작가가 누구래요?”
“글쎄요. 이요진이란 분인데 신인 작가라고 들었습니다.”
순간 소지민 실장의 눈이 반짝인다.
“뭐 정 실장 추천이라면 그리 나쁘진 않겠네요. 아 그런데 아쉽다······.”
소지민 실장이 말을 끌자 조민성이 호기심을 갖고 물어본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면 속 시원히 하시죠?”
소지민 실장의 눈이 번뜩였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실은 지금 막 ‘아홉수들’ 오지란 PD님을 뵙고 왔는데 민성 씨가 차기작에 관심이 없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국봉순 작가님이 쓰신 거고요.”
국봉순 작가가 쓴 SBC <아홉수들>은 안병태 CP가 자신의 조카를 캐스팅하면서 최종화 12%가 되는 망작이다.
반면 내가 그에게 추천해 놓은 건 신입작가 이요진이 쓴 <강의 경계>라는 작품으로 시청률 22%의 흥행작이다.
하지만 그 미래는 나만이 아는 것.
그러다 보니 조민성이 조금씩 흔들리는 게 보인다.
현재의 국봉순 작가는 앞으로 이지연 작가에 버금갈지 모른다는 인기 작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이거지?’
다이어리가 알려준 대로 잡아놓은 큰 물고기를 노리고 있었다.
어떤 일을 벌이는지 확인한 난 그 즉시 소지민 실장에게 다가갔다.
오늘 이곳을 찾아온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줄 생각을 하고 말이다.
‘소지민 실장. 오늘 개망신이란 게 뭔지 한번 경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