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4화
574. 한모금 우유 4
태원 보육원의 원장실.
주먹을 꽉 쥐고 양아진 사장에게 다가가자 그는 냉큼 무릎을 꿇어버린다.
“자 잠깐만요!”
두 손을 내민 양아진 사장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 나온다.
게다가 반말도 높임말로 바뀌었다.
하지만 양아진 사장 같은 인간은 확실하게 기를 꺾어야지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
그래서 난 계속해서 그를 몰아세웠다.
“들어올 때는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 이제 와 왜 이러십니까? 자 빨리 일어나세요. 이번엔 저 먼저 치겠습니다.”
난 그 말과 동시에 주먹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갔다.
양아진 사장이 앉은 채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시면 다시는 사고 안 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믿을 수가 없다.
이런 타입들은 눈앞의 위기만 넘기고 나면 다시 보복하려는 인간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믿을 걸 믿으라고 하십시오. 그나저나 빨리 일어나시라니까요?”
그러자 양아진 사장이 황급히 폰을 꺼내 들며 말한다.
“이 이걸 드릴 테니 믿어 주십쇼!”
난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쪽 폰은 어디 쓰라고요?”
“유 부장! 그 인간과 통화를 전부 녹음한 파일이 담겨 있습니다.”
영업과 배달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자동 녹음으로 설정되어 있어 통화 내용이 모조리 녹음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게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그리고 그는 다급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이참에 이 동네도 떠날 테니까 한 번만 봐주십시오. 예?”
생긴 것과 달리 겁이 좀 많다.
“정말입니까?”
“예. 어차피 방송을 탄 여기서 밥 벌어먹기는 텄잖습니까? 이렇게 된 거 한모금은 제 대리점 계약도 해지할 겁니다. 홧김에 찾아왔지만 그냥 싹 잊고 새 출발 하겠습니다.”
양아진 사장은 뒤도 안 돌아보고 고향으로 가겠다며 약속했다.
그게 진짜라면 양아진 사장을 혼내는 건 이 정도 하면 될 것 같다.
어차피 내가 노리는 진짜 목표는 유문호 부장이니까.
“일단은······ 녹음 파일부터 들어보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난 양아진 사장에게 받은 폰에서 녹음된 대화 파일을 틀었다.
파일에는 유문호 부장의 목소리가 선명히 녹음되어 있었다.
-한우혁을 ‘갑질 배우’로 만드는 거? 그거 별거 없어. 그 집 부모한테 우유 좀 협찬해 주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만 하면 돼.
-어차피 노인네들은 욕심이 많아서 아까워서라도 다 먹는다니까.
-뭐? 오늘 안 먹었다고? 거 사람이 겁이 그렇게 많아서 어디 쓰나? 걱정하지 말고 내일쯤 가서 안 드시면 상한다고 말해 봐. 그럼 먹게 되어 있어!
-일단 먹이는 데만 성공하면 돼! 그러면 한우혁 측에서 협찬해 달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했다는 기사를 낼 거야. 당신은 그때 기자 회견할 준비나 하고.
유문호 부장은 자신이 한 일을 전화상으로 실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도움이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양 사장님을 고소하진 않는 대신 이 파일을 제보하시고 인터뷰에도 응할 수 있겠습니까?”
양아진 사장이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예. 어차피 유 부장 그 새X 때문에 이렇게 된 거······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양아진 사장은 혼자는 죽지 않겠다는 듯 물귀신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난 즉시 한유식에게 물었다.
“한 대표님. KBC 기자들을 다시 좀 부를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한유식이 폰을 들고 조금 전 보육원에서 나선 채치수 리포터의 팀을 불러들였다.
“10분 안으로 돌아온다는군.”
10분이라.
그렇다면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난 눈치를 살피는 양아진 사장에게 말했다.
“리포터가 올 때까지 그쪽에서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 뭡니까?”
“진한이한테 사과하십시오.”
9살인 우진한은 양아진 사장에게 도둑으로 몰려 경찰에게 잡혀갈 뻔했다.
난 이 기회에 우진한의 가슴속에 새겨진 상처도 치유해주고 싶었다.
양아진 사장이 내 눈치를 보다 결국엔 고개를 툭 하고 떨군다.
“아 알겠습니다.”
난 보육원장님을 보며 말했다.
“진한이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원장님?”
보육원장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정 실장님.”
* * *
KBC 리포터가 오기 전.
보육원장이 직접 우진한을 데리고 원장실로 돌아왔다.
우진한은 양아진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양아진 사장을 보자마자 바싹 얼어붙어 버렸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리다 보육원장의 뒤로 숨어버렸다.
양아진 사장이 내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고개를 숙인다.
“미 미안하다. 꼬마야.”
양아진 사장의 사과에 우진한이 눈을 끔뻑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하지만 이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며칠간 자신이 겪었던 분한 감정이 일시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저랬었지.’
고아들은 뭔가 사건 사고가 생길 때면 무조건 제일 먼저 의심을 받게 된다.
부모가 없어서 손버릇이 나쁠 거라면서 혹은 비뚤어진 성격을 갖고 있을 거라면서.
그때의 억울함은 진짜 죽고 싶을 정도로 깊은 고통을 안겨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 일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다음에 발생한다.
진짜 범인이 알려져도 사과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은 대신 화를 내주거나 따져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아들 대부분은 사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
자연히 상대를 용서하는 법도 잘 알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고아인 우진한도 막상 사과를 받자 가슴 속에 쌓인 분노를 표현만 할 뿐 어떻게 그 분노를 해소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도와줘야겠네.’
나 역시 엄마가 없었다면 용서란 걸 모르고 살았을 거다.
그리고 평생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더욱 힘든 삶을 살았을 거고.
그래서 난 엄마에게 배운 ‘용서하는 법’을 우진한에게 알려줄 생각이다.
양아진 사장이 아니라 우진한을 위해서.
난 우진한에게 천천히 다가간 뒤 무릎 꿇고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진한아?”
우진한이 화가 풀리지 않은 채로 날 쳐다본다.
“네······.”
“아저씨도 고아야.”
우진한의 눈이 큼지막해진다.
“정말······ 요?”
“그래. 난 경기도 광주의 천사 보육원이라는 데서 자랐어.”
그제야 우진한이 날 호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진한아. 저기 아저씨가 엄청 밉고 화나지? 그치?”
우진한이 내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네······.”
“하지만 미워도 자기 잘못을 알고 사과하며 머리를 숙이는 사람은 용서해줄 수 있어야 해.”
“왜요······? 이렇게 화가 나는······ 데요?”
“용서를 할 줄 모르면 영원히 그 기억에 사로잡혀서 가슴 속에 나쁜 마음이 자라나거든. 우리 진한이. 평생 나쁜 마음을 갖고 살고 싶어?”
우진한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요.”
난 씨익 웃으며 우진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싫으면 용서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해. 어때? 한번 해볼래? 별로 어렵지도 않아.”
우진한이 힐끔힐끔 양아진 사장을 쳐다본다.
완전히 기가 죽은 양아진 사장이 제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그때였다.
보육원장이 날 가리키며 말을 한다.
“진한아~ 용서를 할 줄 알아야지 진한이가 좋아하는 우혁 삼촌처럼 그리고 여기 앞에 아저씨처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우리 진한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우진한이 슬그머니 날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었다.
“그거 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간단해. 그냥 용서한다고 말하면 돼.”
“그게 끝이에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푸는 시작은 바로 ‘용서’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데서 시작한다.
“알았······ 어요.”
하지만 우진한은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지 우물쭈물한다.
난 그런 우진한을 돕기 위해 다시 한번 양아진 사장을 채근했다.
“양 사장님. 우리 진한이한테 사과하는 거 맞으시죠?”
양아진 사장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래. 진짜 미안하다. 진한아.”
우진한이 양아진 사장을 쳐다보며 말한다.
“여전히 아저씨가 밉지만······ 용서할게요. 먼저 사과하셨으니까.”
드디어 우진한의 입에서 용서란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때였다.
또르르.
툭툭.
우진한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고여 또르르 떨어져 내린다.
“어?”
마치 가슴 속 응어리가 눈물로 녹아내리는 듯 우진한이 격한 감정에 싸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난 두 팔을 벌려 혼돈에 싸인 우진한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엄마가 내게 해줬듯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잘했다. 우리 진한이. 참 잘했다.”
등을 토닥거리자 우진한은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한다.
“으흐흐흑······ 아 아저씨······ 나······ 나······.”
우진한은 가슴속 깊이 쌓인 울분이 사라지는 느낌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눈물로 녹여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양아진 사장도 자신이 한 짓이 부끄러운지 재차 우진한에게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하다 진한아.”
다행스럽게도 우진한의 가슴 속에 영원히 박힐 대못 하나를 빼낼 수가 있었다.
그때.
드르륵.
타이밍 좋게 KBC 채치수 리포터가 원장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있는 양아진 사장과 내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우진한 그리고 한 쪽에 떨어져서 가슴을 부여잡은 보육원장을 보자마자 직업 정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카 카메라! 당장 찍어요!”
그렇게 두 번째 인터뷰가 시작되어 버렸다.
* * *
한모금 우유 본사 11층.
유문호 부장은 안절부절못하고 폰을 만지작대고 있다.
양아진 사장이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고 한 이후 도통 연락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 이 자식.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유문호 부장은 도저히 못 참고 양아진 사장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오형주 과장이 불편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본다.
“오 과장. 너 지금 왜 그런 눈으로 봐? 앙?”
“실장님. TV 좀 보시죠?”
“TV? 무슨 TV?”
“KBC요.”
“또 무슨 일인데?”
“보면 아실 겁니다.”
그때 유문호 부장의 눈에 사무실에 있는 홍보부 직원들 눈빛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이다.
‘이것들이······ 왜 이러지?’
순간 불길함을 느낀 유문호 부장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로 KBC 뉴스를 확인했다.
10분 전 뉴스에서는 양아진 사장이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음성 변조를 한 채 갑질 증언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유문호 부장의 이름은 삐- 처리가 되어 정확히 나오진 않았지만 본사에 있는 직원들은 대번에 그가 누군지를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홍보 담당 부장이면서 대리점주에게 연락하는 담당자는 한 명이기 때문이다.
[KBC 투데이 정오 뉴스]
······
-(채치수 리포터) : 그러니까 한모금 우유의 XXX(삐-) 쪽에서 한우혁 씨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는 말씀이신가요? 홍보를 담당하는 XXX(삐-) 부장님이요?
-(양XX 사장) : 예. 맞습니다. 일개 연예인 주제에 시건방지다며 단단히 혼쭐을 내줄 거라고 하더군요.
-(채치수 리포터) : 그럼 유통 기한이 다 된 우유 납품 문제도 그 부장이 개입한 건가요?
-(양XX 사장) : 예. 본사 간부가 원하는 일이라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인터뷰하시는 걸 보고 양심에 걸려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채치수 리포터) : 그 말. 믿어도 되나요? 실례지만 인근에서 사장님에 대한 평판이 엄청나게 안 좋더군요 방금 발언도 믿을 수 있을지······
-(양XX 사장) : 제가 죽을죄를 지은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속죄할 생각으로 대리점도 접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일은 본사의 XXX(삐-) 부장이 시킨 건 맞습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양아진 사장은 폰을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녹음 파일이 재생된다.
그러자 유문호 부장의 목소리가 변조되어 한우혁을 ‘갑질 배우’로 만들어 버리라는 지시들이 나온다.
그와 동시에 TV 화면 하단부에는 붉은 줄에 흰 글자로 [(단독) 한모금 우유 갑질 정황!]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유문호 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이제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자신이 뒤집어쓰게 생겼기 때문이다.
“저 저 새X가!”
당장 양아진 사장을 만나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11층의 입구 쪽에서 소란이 들린다.
벌컥.
11층의 입구 유리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젊은 사내 한 명과 네 명의 정장 사내들이 빠르게 다가온다.
“유 부장! 당신 미쳤어? 앙?”
제일 앞장선 젊은 사내는 한모금 우유 안태진 대표이사의 아들 안창수 상무였다.
올해 35살인 재벌 3세 안창수 상무는 갑질로라면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만큼이나 폭력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사 상무님.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놀란 유문호 부장이 방송을 해명하려 한다.
하지만 안창수 상무는 다가오자마자 구둣발로 유문호 부장의 정강이를 차버렸다.
퍼억-
“악!”
비명을 지르고 무릎 꿇은 유문호 부장에게 안창수 상무가 외친다.
“이 새X가 우리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했나!!”
안창수 상무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따라온 네 명의 정장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야! 감사팀. 애들 다 불러서 이 새X 바닥까지 삭삭 긁어서 나온 것들 검찰에다가 넘겨버려!”
“예!”
유문호 부장은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을 맛보며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갑질을 하려다가 실패한 자의 최후였다.
* * *
모든 것을 해결한 난 태원 보육원에 기부금을 내고 종종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한우혁에게도 전화를 해서 잘 해결되었음을 알렸다.
한우혁은 태원 보육원장이 도와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앞으로는 자신이 정기적인 기부를 하겠다고 약속해왔다.
그리고 한우혁의 두 분 부모님도 보육원에 봉사 활동을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일에 태원 보육원과 우진한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한 뒤 사무실 견적을 뽑기 위해 한유식 대표와 함께 JU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입구에서 주영인에게 받은 번호를 누른 뒤 3층으로 올라갔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대략적인 견적을 함께 뽑고 있었는데 한모금 우유 본사의 사과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독) 한모금 우유 안태진 대표. 긴급 사과 기자 회견]
-안태진 대표는 자사의 부장이 대리점 사장을 압박해 배우를 노렸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를 약속드립니다.
기사에 포함된 동영상에선 안태진 대표와 그의 아들 안창수 상무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본 한유식이 껄껄대며 웃는다.
“저 오만한 인간들이 직접 사과하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저도 이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대기업이 4년 만에 복귀한 배우를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묻어버리려고 한 일은 상당히 파장이 커진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최고위 임원까지 나와서 사과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뒤로 기사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단독) 시민 단체 한모금 우유의 과대광고 고발. 효과 없는 기능성 우유로 소비자를 기만.]
-시민 단체 KAN : 한모금 튼튼 우유는 일반적인 제품보다 오히려 뼈 건강을 돕는 요소들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2월에 있을 일이 조금 더 일찍 터져버렸다.
오늘 일은 한유식이 KBC 인맥을 총동원해서 도와준 덕분이었기에 한유식에게 감사를 표했다.
“대표님 덕분에 오늘 같은 일이 가능했습니다.”
“허허. 무슨 소리 하는가. 난 소개만 하고 자네가 다 한 거잖나.”
서로 덕분이라며 추켜세우던 그때였다.
까톡!
한유식의 폰에서 까톡 알림음이 울린다.
한유식이 잠깐만이라고 말하고 까톡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대표님.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연무(煙霧)>의 남자 주인공은 새로 구해야 할 것 같네.”
TNT 엔터로부터 법대로 하자며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배우를 출연시킬 수 없다는 까톡이란다.
너무도 아쉬웠다.
성규환만 한 배우를 찾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된다고 하는 데 매달릴 생각은 없다.
난 빙그레 웃으며 한유식을 달랬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제가 새 배우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더 잘하는 배우를 찾아서 배를 아프게 만들어보죠.”
“허허. 그래. 그렇게 하지!”
그런데 그때였다.
한유식의 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발신자 : 성규환]
성규환은 TNT 엔터 소속의 남자 배우이자 지금 막 <연무(煙霧)>의 출연을 고사한 과거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응? 이 친구는 왜 전화했지?”
“일단 받아보시죠? 사과라도 하려고 전화했나 보죠.”
“알겠네.”
한유식이 성규환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내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잠깐······ 지금 그 말 진심인가?”
‘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