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6화
566. 견제 1
오복희 PD가 <화란전>의 방송이 시작한 뒤 1분 뒤의 시청률을 말해준다.
-첫 1분째 17.3%로 스타트 끊었어요.
“17%를 넘겼다고요?”
-네. MBS에서는 <부부의 이면> 이후 4년 만의 기록 경신이래요. 덕분에 지금 드라마국부터 편성국까지 아주 난리가 났어요. 거의 월드컵 4강 간 수준이라고 보셔도 돼요.
<부부의 이면>은 막장 드라마의 정석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 시청률 40%를 돌파한 4년 전 초 흥행작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첫 화 시청률이 17.1%로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기록을 경신했다며 MBS에선 다들 흥분의 도가니라고 한다.
“그럼 정희왕후 쪽은 어떻습니까?”
-거기는 13.2%로 시작했어요.
엇비슷한 시청률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이가 나 버렸다.
“역시나 오늘 일의 영향이 있었나 보네요.”
KBC 박찬식 대표는 <정희왕후>의 홍보비로 족히 두 배는 넘게 썼었다.
하지만 오늘 현상범 기자와 박찬식 대표가 연달아 사고를 친 덕분에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해졌다.
-아무래도요. 그리고 유앤미 팬클럽의 화력 지원 덕분에 30대와 40대 여성분들이 우리 쪽으로 오신 것 같아요.
유진이와 미소의 팬클럽인 ‘유앤미’는 오늘 미소의 예비소집일에 있었던 현상범 기자의 일을 집중적으로 커뮤니티에 퍼 날랐다.
더군다나 ‘우리 미소 지키미’라는 소모임까지 만든 열성 팬들의 활동 덕분에 아이를 가진 30대와 40대 여성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당분간은 저희 드라마가 앞서 나가겠군요.”
-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데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죠. 하여간 계속해서 시청률 나오는 대로 까톡으로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미소한테 오늘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 힘내라고 전해주세요. 아 물론 오늘 연기도 너무 잘하고 있다고도요.
“예. PD님.”
오복희 PD는 조정실에서 부른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난 그 즉시 거실에 있는 모두에게 <화란전>의 시청률을 알려줬다.
“17.3%로 출발했습니다. 상대인 정희왕후는 13.2%고요.”
유진이가 환호성을 지른다.
“와~ 대박이다. 4%나 차이가 났어요?”
보통 시청률 1%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TV를 가진 인구를 3천만 명 기준으로 잡고선 대략 30만 명 정도가 봤다고 가정을 한다.
그런데 현재 4% 차이라면 거의 100만 명 넘는 수의 차이가 난다는 소리였다.
“와~~ 이겼다. 만세!”
미소가 두 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른다.
그러자 은별이와 한울이가 곁에서 함께 만세를 부른다.
이어서 유진이를 비롯해 덕배와 연소희 팀장과 채상우 부부와 소파에 앉은 한유식 부부까지.
모두가 킥킥 웃음을 터트리며 만세를 외친다.
잠시 후.
유진이가 손을 내리고 미소를 진정시킨다.
“미소야. 이제 드라마 봐야지~!”
“응! 엄마.”
미소가 손을 내리고 TV에 집중을 시작한다.
그제야 모두 자리에 앉아 다시 TV로 고개를 돌리며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은 드라마가 아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살폈다.
두 손을 꼭 모은 채 TV를 보는 미소.
미소의 연기를 보느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은별이와 한울이.
어린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뜬 아이들이 이제는 멀쩡히 살아 웃음소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유진이와 덕배 그리고 채상우 부부도 아이들을 잃고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리 밝게 웃고 있다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또한 소파에 앉아 서로 손을 꼭 쥐고 있는 한유식 부부도 인생이 바뀌었고.
비록 오늘도 몸은 힘들었지만 내가 고생한 덕에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다는 충만감이 가슴을 한껏 채우고 있었다.
TV 속 드라마보다 훨씬 더 드라마다운 광경을 쳐다보던 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 * *
10시 55분.
엔딩곡으로 서연우가 부른 화연가(花戀歌)가 나오면서 <화란전>의 1화가 끝났다.
최고 시청률은 19.8%.
퓨전 사극의 1화 시청률치고는 어마어마한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경쟁작인 KBC의 <정희왕후>는 15.3%로 막을 내렸다.
<정희왕후>는 남녀주인공인 박우준과 소이영이 분발했지만 시작부터 벌어진 격차를 줄이긴 쉽지 않았다.
“우리 미소의 열연 덕에 ‘화란전’이 ‘정희왕후’를 이겼네요.”
유진이의 평가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1화부터 열연을 한 미소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미소야. 오늘 연기 정말 좋았어~!”
“그러게. 작년 아역 상을 받은 배우답더라.”
“미소야 기분이 어때?”
미소가 배시시 웃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르겠어요! 막 기분이 이상해요. 얼굴도 뜨겁고 손도 뜨겁고 그래요.”
미소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하다며 조그만 양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를 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연기란 걸 알다 보니 흥분이 좀 과해진 모양이다.
난 얼굴이 달아오른 미소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
“자 삼촌을 따라서 천천히 심호흡해 보자. 후~~ 하~~.”
미소가 눈을 감고 가슴에 두 손을 올리더니 날 따라 길게 심호흡을 한다.
“후우~ 하아~ 어? 됐다?”
미소가 답답한 게 사라졌다며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삼촌 됐어요!”
“응. 앞으로 기분이 이상해지면 그렇게 해.”
“네~.”
“아 맞다. 인사해야지.”
미소가 신이 나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두 손을 배꼽에 대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감사합니다~!!”
미소는 마치 아역상을 받을 때처럼 기분 좋게 인사를 해댔다.
순간 모두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지이잉~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미소에게 쏟아지는 배역 제안과 광고 제안들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소파에 앉아 있던 한유식이 내게 미소의 배역을 제안한다.
“정 실장. 혹시 우리 ‘연무(煙霧)’에 일령신(日影神) 역할로 미소를 출연시켜줄 순 없을까?”
순간 미소가 먼저 묻는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역할이에요?”
“아 그게 말이다······.”
한유식이 웃으며 <연무(煙霧)>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리내’에서 제작하던 <연무(煙霧)>는 한 달에 한 번 지독한 안개가 끼는 연무도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을 다룬 이야기다.
연무도에서는 일 년에 일주일은 대연무(大煙霧)라고 하여 섬 전체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안개로 뒤덮이는 날이 찾아온다.
그리고 대연무(大煙霧)의 밤에는 섬사람들은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대연무(大煙霧)의 밤.
바다에서 죽은 귀신들이 뭍을 그리워해 섬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그 일주일간은 외부 민박도 받지 않고 손님 자체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근처에 왔던 대형 낚싯배가 기관 고장을 당하여 섬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연무(煙霧)>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연무도에는 신이 둘 살고 있는데 하나는 아이의 모습을 한 일령신(日影神) 또 하나는 남자 노인의 모습을 한 월령신(月影神)이다.
한유식은 그중 일령신(日影神)의 역할에 미소가 나와줬으면 하고 있었다.
<연무(煙霧)>는 회귀 전에도 평균 시청률 18%를 달성한 흥행작이다 보니 미소의 출연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또 방영 후 해외 수출에서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는다.
다만 미소는 TVM의 <먹방 유람단>을 촬영하고 있고 안정해 감독과 함께 <실종 – 잃어버린 자들>의 영화 촬영을 앞두고 있어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올해에는 학교에도 보내야 했고.
그런데 그 순간 드라마의 대본 이야기를 다 들은 미소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보인다.
학교도 재미있지만 이제 막 연기에 재미를 붙인 상태라 꼭 하고 싶은 눈치였다.
‘어떻게 한다?’
현재 촬영 중인 <먹방 유람단>과 <실종 – 잃어버린 자들>을 최대한 빨리 촬영하면 3월부터는 한 작품만 촬영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유진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유진아. 넌 어떻게 생각해?”
“이야기만 들어보면 엄청 재미있는 작품인 거 같은데······.”
말을 하던 유진이가 미소를 쳐다본다.
미소는 이번엔 엄마를 향해 두 눈으로 윙크해댄다.
“엄마~!”
유진이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우리 미소. 학교 다니면서 연기할 수 있겠어? 공부하느라 시간 없을 텐데?”
미소가 자세를 바로 하고 답한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 벌써 학교 교가도 다 외웠어요~!”
미소는 대뜸 일어서더니 천호 제일 초등학교의 교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넓은 뜻~~~ 바른 생각~~~ 아아~~』
하지만 당당하게 말한 것과는 달리 다음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듯 테이프가 늘어진 것같이 노래가 늘어진다.
그때 보다 못한 한울이가 입을 방긋방긋하며 가사를 알려주려 한다.
미소가 그걸 보고 따라 하려다 멈칫하고 노래를 멈췄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죄송해요. 아까는 다 외웠는데 까먹었어요. 근데······ 나 진짜 열심히 할게요.”
커닝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울이가 알려주는 것도 마다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미소였다.
유진이가 미소를 꼭 껴안았다.
“알았어. 대신 지금 촬영하는 거 끝내고 나서 하자. 그리고 3월부터는 딱 한 작품만 해야 해?”
“아싸!!”
미소가 엉덩이를 씰룩이더니 한울이와 은별이의 손을 잡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유진이가 날 쳐다본다.
난 고개를 끄덕인 뒤 한유식에게 말했다.
“한 대표님. 다른 스케줄이 있으니까 미소 촬영은 최대한 뒤로 미뤄주십시오. 그러면 미소의 출연을 확정 짓겠습니다.”
“알겠네. 어차피 이달에는 회사 정돈하는 것만 해도 힘들 거야. 회생에도 시간이 걸릴 거고.”
“알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미소의 출연을 확정 지은 난 말이 나온 김에 ‘미리내’의 회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에게 씐 과도한 채무는 최영호 은행장이 조절해주기로 한 상황.
어차피 채권의 대부분을 ‘명동 재건파’가 보유하고 있었기에 부도 처리된 ‘미리내’의 회생 절차는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현재 계약서상의 문제로 인해 <연무(煙霧)>의 남녀주인공 출연료는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돈인 데다가 배우들만 양해해주면 ‘미리내’의 재건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기에 한유식에게 말했다.
“한 대표님. 혹시 성규환 배우랑 양지선 배우에게 추가 출연료 없이 출연을 부탁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연무(煙霧)>의 남녀주인공인 성규환과 양지선은 편당 3천만 원으로 계약했기에 총 24화 분량에 달하는 7억 2천만 원씩을 지불한 상황이다.
즉 현재 두 사람에게 나간 돈만 14억 4천만 원.
그 돈을 아낄 수만 있다면 여러모로 편하게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두 배우는 모두가 인성도 좋은 데다 연기력이 상당했기에 가능한 이대로 가는 게 좋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유식이 자신 없게 말한다.
“TNT의 성규환은 가능할 것도 같은데 관우의 양지선은 좀 힘들지 싶네.”
관우 엔터 소속이었던 양지선은 현재 우리 굴렁쇠 엔터의 소지민 실장이 담당하고 있다.
소지민 실장은 가수 3실 담당이지만 양지선이 원래 가수로 시작해서 예능을 겸하다가 배우가 된 터라 여전히 양지선의 매니저 업무도 봐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양지선은 현재 저희 회사 소속이니까 제가 내일 회사에 가서 소지민 실장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대신 대표님은 성규환만 좀 맡아주십시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리고 정 안 되면 플랜 B를 가동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에 하나 두 배우가 거절하면 새로운 배우를 구한 다음 처음부터 투자받아서 드라마를 만들자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자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러 갈까요?”
그때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유진이가 말한다.
“그러면 은별이랑 이 대리님은 2층에서 저랑 미소랑 같이 자고 덕배랑 상우 오빠는 3층에서 자면 될 거 같아요.”
“그래.”
그때 정인지 아주머니가 한유식의 부부에게 말한다.
“두 분은 1층에서 주무세요. 따뜻하게 이부자리 깔아놨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폐라뇨. 저희 집에 들어오시면 다 한 가족 인걸요.”
그때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던 백설기와 인절미가 뛰어 내려왔다.
“끼이잉~!”
“냐오~~!”
드라마가 시작할 때부터 소파로 올라간 두 마리는 한유식과 이아은의 쓰다듬어 주던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한 대표님이랑 사모님은 오늘 1층에서 설기랑 절미랑 같이 주무시면 되겠네요.”
한유식의 부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렇게 웃으며 다들 잠자리로 향하는데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KBC 박찬식 대표. 긴급 사임 발표]
-KBC의 박찬식 대표는 오늘 있었던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이 시각 부로 사임하기로 발표······.
난 기사를 본 순간 곧장 폰을 한유식에게 내밀었다.
“한 대표님. 이것 좀 보시죠.”
한유식이 미간을 찌푸리고 작은 글씨를 본다.
순간 찌푸려졌던 표정이 활짝 펴진다.
난 그의 표정 변화를 보며 테이블 위의 있던 사이다를 종이컵에 따라 건넸다.
“대표님 한잔하시겠습니까? 맛이 아마 끝내줄 겁니다.”
한유식이 씨익 웃더니 사이다를 단숨에 들이켠다.
종이잔을 비운 그가 날 보며 소감을 한다.
“크흐~ 사이다가 이런 맛이었군.”
“예. 대표님.”
자신을 괴롭힌 자가 몰락하는 걸 확인한 한유식의 얼굴에는 시원한 웃음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행복하게 마무리 지어지고 있었다.
* * *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자 <화란전> 첫 방송 시청률 19% 때문에 난리가 났다.
수년간 깨어지지 않던 역대급 기록이 경신된 까닭이다.
난 축하를 받을 겨를도 없이 곧장 팀장급 회의에 들어갔다.
오늘은 관우 엔터와 굴렁쇠 엔터가 합병한 후 첫 번째 팀장급 회의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긴 테이블 대부분이 차 있다.
그런데 강감찬 대표와 반대편에 김관우 부대표를 중심으로 두 개의 파벌이 선명히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은 배우 2실과 4실 그리고 가수 1실과 2실.
오른쪽은 배우 1실과 3실 5실과 가수 3실과 4실의 실장과 팀장들이 앉아 있다.
자리에 앉자 강감찬 대표가 회의를 시작한다.
회의의 시작은 어제 있었던 <화란전>의 시청률에 관한 내용이다.
“정 실장. 수고했다. 역대급 기록으로 출발했더구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 페이스가 유지될 수 있게 신경 좀 써. 현장 스태프들에게 아끼지 말고 베풀고. 주연답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안 그래도 이따가 경주에 내려가서 사소한 것까지 챙겨 볼 생각입니다.”
유진이와 미소는 오늘 새벽에 다시 지방 촬영을 떠났다.
그리고 나도 오늘 아침 팀장 회의만 끝나면 현장으로 다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래. 알다시피 매니저라는 일은 현장이 가장 중요하지. 언제나 잊지 말도록.”
“예.”
“혹시 할 말 있냐?”
난 잠깐 심호흡을 하고 <연무(煙霧)>의 여주인공 양지선의 재출연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부도가 났던 ‘미리내’가 다시 회생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양지선’씨가 주연하기로 했던 ‘연무(煙霧)’도 제작에 다시 들어간다고 하고요.”
순간 술렁이는 소리가 돌기 시작한다.
강감찬 대표는 시끄러운 회의실을 진정시킨 뒤 묻는다.
“그래서?”
“그래서 말인데 한 대표님이 저에게 과거 연무의 주연 배우였던 양지선 배우를 추가 출연료 없이 쓸 수 있겠냐며 문의를 해오셨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법적으로는 ‘미리내’가 부도난 순간 계약금의 반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양지선 배우와의 계약은 ‘관우 엔터’ 시절에 ‘미리내’와 맺었던 계약.
현재 굴렁쇠 엔터로 통합된 상황에서는 권리를 따지기 더욱 어려워졌다.
즉 도의적인 문제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소지민 실장은 뻔뻔하게 나온다.
“‘미리내’가 부도가 나면서 그 계약은 소멸되었어요.”
“압니다. 그래도 도의적으로 한 대표님을 돕는 게 ‘미리내’나 KBC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좋지 않을까요?”
박찬식 대표의 라인이 갈려 나가면 KBC에서도 한유식 대표의 라인들이 다시 기지개를 켤 게 분명했다.
난 그 점을 언급하며 소지민 실장에게 권유했다.
양지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협조를 해주자고 말이다.
그리고 난 한유식과 ‘미리내’를 위해서뿐 아니라 양지선의 미래를 위해 진심을 담아 말한 것이었다.
<연무(煙霧)>의 여주인공을 맡게 되면 양지선은 배우로서의 입지가 탄탄해지기 때문이다.
소지민 실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하아~ 진짜~ 내키지는 않지만 조건 하나만 들어주면······ 최대한 하는 쪽으로 고려해 볼게요.”
“무슨 조건입니까?”
그런데 그 순간 소지민 실장의 입에서 터무니없는 조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 실장. 당신······ 양아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