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5화
565. 업보 3
박찬식 대표는 자신의 연임에 위협이 될만한 오한국 이사를 굴복시킨 이후 ‘미리내’에서 제작하던 <연무(煙霧)>의 판권 확보를 위해 조폭들을 동원했다.
자신이 직접 편성 취소를 한 작품을 말이다.
“박 대표가 말하길 연무(煙霧)란 드라마가 돈이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보고 돈 빌려준 걸 빨리 회수해서 ‘미리내’를 무너뜨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같이 드라마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저희 큰형님이 오케이를 하셨고요.”
‘미리내’가 어떻게 망했는지를 들은 한유식의 눈이 돌아간다.
화가 나서 몸을 바들바들 떨던 그는 내게 묻는다.
“정 실장. 오늘······ 당장이라도 MBS랑 인터뷰 좀 했으면 하는데 세팅할 수 있겠나?”
“어떤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실 생각입니까?”
“박 대표가 횡령한 돈을 어디로 보냈는지 내가 아네. 아마 내가 입을 열면 KBC의 임원들 대부분이 모조리 날아갈 거야. 의도치 않은 피해자가 나올까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더는 못 참겠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MBS에 연락해 당장 인터뷰 자리를 잡겠습니다.”
박찬식 대표를 빨리 실각시키기 위해서 한유식을 만나러 온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때 대흥 저축은행의 장기호 상무가 명동 재건파의 조폭들을 가리킨다.
“정 실장. 얼추 정리된 거 같은데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조폭 네 명이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자신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살려달라는 눈빛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 친구들 증언도 받아두면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네 사람이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저희 큰형님한테서만 좀 지켜주십시오.”
그러자 장기호 상무가 나섰다.
“그럴 거 없어. 재건파의 오동식이랑 통화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흰 기자들이 오면 증언이나 잘해. 알았어?”
네 명은 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이어서 장기호 상무가 날 쳐다본다.
“저놈들은 대흥 저축은행 명동 본사로 데리고 갈 테니까 기자들을 그쪽으로 보내. 얘들 인터뷰는 거기서 따는 게 모양새가 좋을 거야.”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난 갈게. 수고~.”
장기호가 데리고 온 정장의 사내들이 조폭들과 함께 사라진다.
난 최영호 은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아 그리고 ‘미리내’의 채권은 우리가 다 인수하겠네. 회생 절차도 최대한 빨리 진행되도록 해 주고.
최영호 은행장은 법무팀을 동원해 ‘미리내’를 예전으로 돌려주겠다고 한다.
비록 대흥 저축은행이 빚을 넘겨받는 형태가 되겠지만 사채업자들이 부풀린 수십억이 아닌 원금 3억만 빚으로 남겨 놓고 말이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는 우리 쪽이 더 많이 지고 있지. 우리는 굴렁쇠를 온전히 자네에게 맡겨두지 않았나.
최은태 회장이 굴렁쇠 엔터를 내게만 맡겨둔 걸 미안해하고 있었다.
-혹시 자금이 필요하면 우리가 빌려줄 수도 있네만?
“괜찮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차피 좋은 대본이 있었기에 좋은 배우를 구하고 한유식의 KBC 인맥으로 편성만 잡는다면 드라마를 만드는 데 큰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가? 알겠네. 그러면 우린 기업 회생 절차나 최대한 빨리 진행해두겠네.
“감사합니다.”
최영호 은행장 덕에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를 빠르게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전화를 끊은 난 이어서 MBS의 최상병 대표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은 잠시 후 8시.
한유식은 최상병 대표와의 통화로 자기가 알고 있는 박찬식 대표의 비리를 미리 알려줬다.
9시 뉴스에 내려면 사전 조사를 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화를 끝내고 난 한유식 부부에게 말했다.
“대표님. 이제 가실까요?”
한유식이 뜨거운 눈빛으로 다시 한번 부탁한다.
“정 실장. 나 좀 확실하게 밀어줄 수 있나? 박찬식이랑 한때는 자식이라 생각했던 그 금수만도 못한 것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네. 이 한유식이 아직 안 죽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포기했던 늙은 방송인의 눈에 새로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예!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겠습니다.”
“고맙······ 네.”
한유식이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엔 아내를 쳐다본다.
“미안해 여보. 반드시 예전처럼 당신 호강시켜 줄게.”
이아은은 남편의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예. 여보.”
“자 어서 짐부터 챙깁시다.”
“그래요.”
이어서 두 사람은 이곳에 올 때와는 달리 희망찬 표정으로 캐리어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캐리어에 쌀 물건들이 별로 없어 짐을 챙기는 건 금방이었다.
난 두 사람이 짐을 정리하는 동안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15일]
-PM 02: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KBC 박찬식 대표 연임 축하 화환 배달.)
드디어 박찬식 대표의 일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잘 가십쇼 박찬식 대표.’
짐을 다 챙긴 한유식이 말한다.
“내려가면서 이 리어카는 고물상에 반납하고 가세. 그래도 이것 때문에 며칠은 먹고 살았으니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앞을 잡겠습니다.”
난 씨익 웃으며 리어카의 앞 철봉을 잡았다.
철봉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자~ 그러면 가겠습니다.”
한유식과 이아은이 리어카의 뒤를 잡는다.
“출발하지.”
그렇게 우린 희망을 안고 암사동의 폐가를 떠났다.
* * *
KBC의 대표이사실.
박찬식과 임원들은 지친 몸을 카페인으로 달래 가며 장시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첫 번째 안건은 현상범 기자와 KBC 기자 10명이 경찰서에서 난동을 피운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건.
두 번째 안건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불법 침입에 대한 커뮤니티 여론이 악화되는 건이었다.
아까 전 법무팀을 동원해 악플러를 고소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선포했다.
하지만 상황은 시시각각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요즘 것들은 겁이라는 무서운 걸 모르나? 고소를 한다고 해도 더 욕설을 해?”
법무 이사 임원식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대표님. 요즘 애들은 고소 별로 겁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잡아도 나이가 어려서 처벌이 힘들고요.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아~ 알았어. 그렇게 해.”
법무 이사 임원식이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예. 바로 지시 내리겠습니다.”
그때였다.
벌컥.
대표이사실 문이 열리고 박찬식 대표의 왼팔인 한성규 이사가 들어온다.
“대표님! 이거 한번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또 뭐!”
한성규 이사가 TV를 튼다.
띠익.
대표이사실에 있는 TV를 틀자 MBS 9시 뉴스의 유성한 아나운서가 단독 기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KBC의 대표이사 박 모씨가 드라마 제작사 세 곳을 이용해 횡령을 저질렀다는 소식입니다.
-횡령을 저지른 돈은 전 국회의원 A 씨 C 씨 등 방통위 위원들에게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증언 : KBC의 전 임원 XX씨) 박XX 대표는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임원을 처리하기 위해서 권력과 결탁했습니다. 여기 그에 관한 증거로······.
얼굴이 모자이크된 한유식은 자신이 속해있던 KBC에 관해 모든 것을 까발리고 있었다.
“저 저 새X······ 저거 미친 거 아냐?”
박찬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지금 밝혀지는 일은 자신이 그토록 숨겨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유식이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용도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정윤호]
발신자의 이름을 본 박찬식은 전화를 받자마자 고함을 내질렀다.
“야 인마! 이거 다 네 짓이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지만 상대는 능청스럽게 대꾸하고 있었다.
-그러길래 왜 제 배우들을 건듭니까? 예?
“미 미친 XX!! 그렇다고 이딴 짓을 벌여? 한유식을 끌어들여서 어쩌려고? 너 이번 일 뒷감당 할 수 있냐?”
-뒷감당을 제가 왜 합니까? 그건 박 대표님이 하셔야죠.
머리끝까지 화가 난 박찬식이 다시 한번 목청이 터져라 외친다.
“XX. 너 이 새X. 내가 가만두나 봐라!!!”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이제 연임도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아 잠깐만요 박 대표님과 통화하고 싶은 분이 있어서 연락드린 거니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잠시 후.
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날세 박 대표.
“한유식. 너 이 새X······.”
-입 거친 건 여전하군. 그나저나 이제 자네 차례야. 드라마 판권을 강탈하려던 재건파 조폭들도 자네에게 사주를 받았다고 증언해 주기로 했네. 그러니까······ 이참에 인생의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한번 배워보게나.
“XX! 내가 이렇게 순순히 끝날 거 같아?”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 하지만 순순히 끝나버릴 걸세. 아 그리고 자네 자식들도 아마 나 못지않을 거야. 자식 잘못 기른 건 나뿐만 아니라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아직 와닿지는 않나 보군. 뭐 하긴 당해봐야 정신이 들긴 하지. 하여간 모든 게 업보라고 생각하게. 그게 그나마 미치지 않는 길일 테니까.
달칵.
그 말과 동시에 폰이 끊겼다.
“야! 한유식! 야!”
흥분한 박찬식은 씩씩거리며 곁에 있는 임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야! 당장 굴렁쇠 엔터 대표 들어오라고 해! 이제부터는 굴렁쇠 소속 연예인은 우리 KBC에 발도 못 들어오게 하고! 그리고 한유식 그놈도 잡아 와!”
그런데 그때였다.
대표이사실의 인터폰이 울린다.
띠리링~
박찬식은 대체 누구냐고 화를 내며 인터폰을 잡는다.
“또 뭐야?”
-이 사람아. 왜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부터 지르나?
전화기에는 신경질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송통신위원장의 목소리다.
“아 위원장님.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자네처럼 용의주도한 사람이 어쩌자고 오늘 같은 실수를 했나?
“아닙니다! 사실 오늘 뜬 기사들은 어디까지나 절 음해하기 위한······.”
그때였다.
-됐네. 먼저 KBC 이사들의 의견을 알려 주려 연락했으니까. 쉽게 말해 자넨 해고일세.
“예?”
-그래도 모양새는 사임이 좋겠지? 그러니까 오늘 안에 KBC에서 내려오겠다고 발표하게. KBC의 이사진도 싸그리 갈아치울 거니까 그렇게 알고.
“위원장님! 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면······.”
-그러길래 조심했어야지. 이건 권고가 아닐세. 그리고 만에 하나 자네가 버티거나 하면 각오를 해야 할 걸세. KBC 이사회랑 우리 위원회에서도 여럿 날아가게 생겼는데······ 자네라고 봐줄 것 같은가?
자칫 정권 스캔들로 비화 될 수 있었기에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네. 오늘까지야.
달칵.
일방적인 전화가 끊겼다.
박찬식은 전화가 끊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귓가엔 일렁이는 이명만 맴돌기 시작했다.
뒤이어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그저 여배우 하나의 약점을 캐려 한 것뿐인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윤호······ 대체 넌······ 뭐 하는······ 놈이야?”
박찬식의 머릿속에는 한 남자의 이름이 깊게 각인 되어 버렸다.
* * *
천호동 집 앞.
차 안에서 박찬식 대표와 통화를 마친 한유식이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시원하십니까?”
“시원하다마다. 자네 덕분에 원수 같은 박찬식 그 인간에게 한 방 제대로 먹였어.”
한유식 뿐 아니라 이아은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다.
“고마워요 정 실장님.”
“아닙니다. 자 그러면 들어가시죠.”
정인지 주인아주머니가 두 분을 모시고 오라고 한 덕에 난 호텔이 아닌 집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이 주춤거렸지만 난 괜찮다며 집 안 주차장으로 차를 몰랐다.
마당에 차를 대놓은 난 차에서 먼저 내리며 말했다.
“먼저 들어갈 테니 두 분은 따라 들어오세요.”
난 한유식과 이아은을 천천히 오라고 하고 먼저 1층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백설기와 인절미가 달려 나와 날 반긴다.
“왕왕!”
“냐옹~.”
뒤이어 미소와 은별이 그리고 한울이가 현관으로 뛰어온다.
“삼촌이다~~!”
미소는 여전히 은별이와 한울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난 현관으로 다가온 세 사람을 향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셋이서 잘 놀고 있었어?”
“예!”
그때였다.
미소와 은별이가 잠깐 서로를 쳐다보다 날 보며 힘차게 외친다.
“삼촌. 약속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TV의 뉴스를 다 보고서 내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아까도 영상통화로 감사 인사를 받았지만 두 사람은 직접 얼굴을 보고 다시 하고 싶었다고 한다.
덕분에 오늘 하루 정신없는 일들이 이어졌어도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한테 한 약속인데~ 당연히 지켜야지.”
미소가 으쓱거리며 은별이를 쳐다본다.
“은별아 내 말 맞지? 유노 삼촌은 약속한 거 다 들어줘! 완전 짱이지?”
은별이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맞아!”
곁에 선 한울이도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세 아이가 동시에 웃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이후 한유식과 이아은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유진이와 연소희 팀장 그리고 채상우 부부와 함께 다 같이 서로 인사를 한 다음 거실에 둘러앉았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9시 50분이 되었다.
이제 <화란전>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어~ 예고편 나온다.”
TV에서는 <화란전>이 시작한다는 예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 식혜 한잔하면서 드라마나 봐요.”
정인지 주인아주머니가 식혜와 떡을 내어오자 모두가 한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거실 테이블로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TV에선 유진이가 며칠 전 찍었던 칠성전자 모바일 광고가 나온다.
유진이가 붉은 드레스를 날리며 스포츠카를 몰고 있다.
아름답고 세련된 유진이의 모습에 다들 감탄사를 터트린다.
이어서 예뜨랑을 비롯해 유진이가 출연한 광고들이 계속해서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엔 기분 좋은 표정을 짓던 유진이가 부끄러워한다.
“아이~ 부끄럽게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유진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 배우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질수록 나 역시도 기쁨이 커졌다.
광고에 연예인이 나오는 빈도는 바로 그 배우가 얼마만큼 인지도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10시가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란전>의 첫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작한다!”
순간 모두가 빨려 들어가듯 TV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 * *
TV 배경은 밤이었다.
개울가에 휘어진 아치형 나무다리 위에서 유화 공주의 아역을 연기하는 미소가 제2 왕후 역의 최지영과 손을 잡고 밤 나들이를 하고 있다.
그때 공주 복장을 한 미소가 자신의 손 위로 내려앉은 밝은 빛 구슬을 최지영에게 내밀었다.
『어머니. 이것 좀 보셔요. 반디 님이 오셨어요.』
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보는 미소의 모습은 의젓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2 왕후 역을 맡은 배우 최지영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반디 님이 네게도 오셨구나. 옛날 옛적 어린 내게 오셨던 것처럼······.』
최지영이 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화야. 반디 님께 소원을 빌어 보렴~』
미소는 배시시 웃으며 두 손을 하늘로 뻗으면서 반딧불이를 날렸다.
『반디님! 반디님! 도깨비님께 꼭 전해주세요! 우리 계림 백성들 배 불릴 곡식 기를 맑은 비를 내려 달라고요!』
미소의 맑은 목소리가 잔잔한 밤하늘에 물결이 치듯 뻗어 나간다.
그때였다.
콰광하는 소리와 함께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투둑투둑.
조금 전까지 마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지자 두 모녀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3개월 만에 매마른 땅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종을 드는 무인들이 황급히 우산을 펼쳐 비를 막는다.
이어서 화면에는 붉은 우산 노란 우산 파란 우산 등 형형색색의 우산과 등들이 비 내리는 고대 신라의 거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화란전>에서 반딧불이를 다루고 그를 통해 도깨비와 소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2 왕후와 그 혈통만이 가지는 영능력.
7살인 유화 공주에게 그런 자질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잘하네 우리 미소.’
미소는 한때 최고의 배우였던 최지영과 연기를 하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드라마에 빠져 있을 무렵 오복희 PD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오복희 PD]
전화를 받자 오복희 PD가 흥분해서 외친다.
-정 실장님! 첫 1분째 스타트 시청률이 나왔어요!
“얼마입니까?”
흥분한 그녀가 <화란전> 첫 방송의 처음 1분째 시청률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1분째 시청률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