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3화
563. 업보 1
KBC 문화부 이규진 부장이 방송국 대표의 이름을 언급했으나 난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KBC의 박찬식 대표를 자리에서 끌어내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점잖던 이규진 부장의 말투가 순식간에 반말로 바뀐다.
“하. 이 시건방진 자식 말하는 꼬락서니 좀 보게? 야 정 실장. 내가 좋게 좋게 말하니까 이게 설득으로 들리냐?”
“그럴 리가요. 처음부터 협박으로 들렸습니다. 방송국 대표가 한 짓이니까 엔터 회사 일개 실장인 너는 짜져 있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잖습니까?”
“잘 아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당장 다시 생각해. 이렇게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굴렁쇠 셔터 내리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
이규진 부장은 이젠 방송국의 힘을 앞세워 날 무릎 꿇리려 한다.
그에게는 을에 불과한 엔터테인먼트사 직원이 갑인 방송국에 대든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물러설 생각이 없다.
내가 여기서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다음은 내 배우가 물러서야 할 테니까.
특히 기자가 아이들이 있는 학교까지 몰래 들어와서 미소의 사진을 찍고 약점을 캐려고 온갖 짓을 저지른 순간 내가 봐줄 수 있는 선은 이미 한참 전에 넘었다.
“글쎄요? 셔터를 내리는 게 과연 누가 될지 모르겠는데요?”
더는 대화를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
난 발걸음을 돌려 경찰서 안으로 다시 향했다.
“정 실장! 야! 거기서! 기다리라고!”
뒤에서 이규진 부장이 언성을 높이며 외친다.
하지만 난 그의 말을 무시하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현상범 기자의 진짜 배후를 안 이상 이제부터는 거침없이 나가겠다고 다짐하고서 말이다.
끼익.
경찰서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전히 기자들과 변호사들이 난동을 피우고 있다.
난 그 즉시 폰을 꺼내 난동을 피우는 기자들을 찍기 시작했다.
[동영상 녹화 중······.]
내 폰에 KBC 기자와 변호사들의 난동이 담긴다.
다들 현상범 기자를 둘러싼 채 난동을 피우고 있었기에 녹화를 시작한 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때 날 데리고 경찰서를 나섰던 이규진 부장이 경찰서 안으로 뒤따라 들어온다.
짤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이규진 부장이 내가 폰으로 녹화 중인 걸 알아차린다.
“야 인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뭐하긴.
방송국 기자들이 공권력을 무시하고 짓밟으려는 걸 취재 중이지.
그 순간 현상범 기자를 둘러싼 문화부 기자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모두의 얼굴이 한 화면에 잡힌다.
‘그래. 치~즈~ 해봐.’
난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들 여기 보십쇼.”
“뭐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순간 기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내 쪽으로 덤벼든다.
“야! 내놔!”
“어딜 찍어!”
그때 연소희 팀장이 내 앞을 막아서며 팔을 뻗친다.
“우리 실장님 건들기만 해봐! 니들 다 죽을 줄 알아!”
연소희 팀장의 가녀린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하이톤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기자들이 잠깐 움찔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연소희 팀장의 어깨 위로 손을 뻗는다.
난 그 즉시 연소희 팀장을 뒤로 잡아당긴 뒤 내가 촬영하던 폰을 건넸다.
“연 팀장님이 영상 찍으세요.”
“예!”
연소희 팀장이 폰을 받으며 촬영을 이어간다.
그리고 난 연소희 팀장의 앞을 가로막으며 멍하니 보고만 있는 경찰들에게 외쳤다.
“기자들이 일반인에게 린치를 가하는데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겁니까? 대한민국 경찰이?”
난 경찰의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을 해댔다.
그러자 이제껏 눈치를 보던 경찰서장이 눈을 질끈 감고 지시를 내렸다.
“야! 전부 다 체포해!”
“기잔데요?”
“기자면 뭐? 우린 경찰이잖아 인마!!”
명령이 떨어진 순간 오합지졸처럼 굴던 경찰들도 순식간에 표정이 변했다.
“정 실장도요?”
“야! 피해자를 왜 체포해? 넌 눈이 없냐? 일방적으로 린치를 당하고 계시잖냐! 정신 안 차려?”
“죄송합니다! 서장님!”
그제야 십 수명이 되는 경찰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나와 내 앞을 막아선다.
그리고는 기자들을 밀어내며 외친다.
“저희 몸에 한 번만 손 더 대시면 공무집행 방해! 으윽! 그만······ 하시라고 공무집행 방해죄로······ 에이X. 몰라! 다 수갑 채워!”
경찰들은 결국엔 기자들의 팔을 꺾기 시작했다.
“아아악!”
팔이 꺾인 기자가 비명을 지른다.
나머지 기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짭X 주제에 기자 팔을 꺾어?”
“이것들이 언론의 무서움을 모르고 감히 기자를 건드려?”
경찰들이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언론의 무서움? 그러면 당신들은 공권력의 무서움이나 맛보쇼!”
그 말과 동시에 경찰들이 기자들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철컥철컥.
“아악 내 팔!”
쿵쿵쿵.
기자들의 얼굴과 몸이 차디찬 경찰서 바닥에 부딪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들 모두 현상범 기자 옆에 수갑을 차고 앉게 되었다.
현상범 기자는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힐끔힐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현재 수갑을 차지 않은 건 멀찍이 떨어져 있던 변호사 3명과 이규진 부장뿐이었다.
난 내친김에 즉시 MBS 최상병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대표님. 여기 천호 경찰서인데요. 변호사랑 보도팀 좀 보내주셔야겠습니다.”
-왜? 무슨 일인가?
“그게 말입니다······.”
난 미소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부터 시작해 지금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현상범 기자가 <화란전>의 여주인공인 유진이와 미소를 노렸다고.
게다가 그 와중에 이제 치료 중인 은별이란 아이의 모자를 벗기는 짓을 해댔다고.
최상병 대표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XXXX! 알았어. 그 근처에 있는 MBS 기자들은 다 보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제보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뒤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그 순간 다이어리의 일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1월 13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정유진] <연예계 방방곡곡> “퓨전 사극의 주연 배우 J 씨. 학교 취재 중이던 KBC 기자 폭행!” (회의 내용 : KBC 방송국에 항의. 정유진에 관한 허위 기사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
‘됐다.’
그때였다.
딸랑.
경찰서 문이 열리고 굴렁쇠 엔터의 곽무혁 법무팀장이 도착했다.
미소를 끔찍하게 아끼는 곽무혁 법무팀장이 고함을 지르며 두리번거린다.
“현상범 이 새X 어디 있어?”
곽무혁 법무팀장의 목소리가 경찰서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현상범 기자가 목을 움츠린 뒤 경찰서 구석으로 시선을 돌린다.
“야! 현상범! 일로 와 너 이 자식. 오늘이 네 인생 종 치는 날인 줄 알아!”
깜짝 놀란 현상범 기자는 의자에 앉은 채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쿵쿵쿵.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경찰관님! 말려주세요! 사람 살려!”
다행히 경찰들이 곽무혁 팀장을 말린다.
그를 피해 의자를 튕기며 도망가는 현상범 기자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MBS 보도국 기자들도 뛰어 들어왔다.
“정 실장. 우리 왔어!”
경찰서에 들어온 MBS 보도국 기자들이 씨익 웃으며 촬영을 시작한다.
“자 여기부터 찍어!”
“야 김 기자. 현 기자. 니들은 오늘 끝났어.”
MBS 보도국 기자들은 같은 기자라고 용서하지 않고 KBC 기자들을 마치 조폭 대하듯 촬영하기 시작했다.
“고개 돌리지 말고 여기들 보세요~오. 치~즈!”
그렇게 현상범 기자를 비롯한 KBC 기자들 모두가 일제히 뉴스 출연진이 되고 있었다.
* * *
곽무혁 법무팀장은 현상범 기자는 당분간 세상 구경하기 힘들 거라며 날 안심시켰다.
그제야 난 곽무혁 법무팀장과 연소희 팀장 그리고 MBS 보도팀에게 뒤를 맡긴 뒤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유진이에게 영상통화로 전화를 걸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영상통화 중인 화면에는 유진이를 비롯해 채상우 부부와 덕배 그리고 미소와 은별이 한울이가 한 화면에 나온다.
이제 예비소집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지 다들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유진아. 여기 다 끝났으니까 안심해. MBS 기자님들이 다 터트릴 거래. 은별이 모자 벗겨진 사진은 절대 안 나갈 거야. 대신에 은별이랑 미소가 껴안고 있는 영상 정도는 나갈 수 있어.”
-하아~ 다행이다. 은별이 모자 벗겨진 사진만 아니면 돼요.
“그건 절대로 안 나갈 거니까 안심해. 그리고 웬만한 것도 다 모자이크해서 나갈 거야.”
-다행이네요.
그때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은별이가 날 보며 고개를 숙인다.
-윤호 삼촌~ 약속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우리 은별이. 삼촌이 그 나쁜 아저씨 혼내줬으니까 울지 마. 알았지?”
은별이가 일부러 더 활짝 웃는다.
-네. 그럴게요~ 그리고 미소랑 한울이가 저 많이 달래줬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래. 잘됐네.”
그때 미소가 말한다.
-삼촌~ 오늘 우리 집에 다들 모여 ‘화란전’ 보면서 놀 거예요. 삼촌도 빨리 오세요.
“응~ 알았어. 나 일 하나만 더 하고 갈게. 다 같이 놀고 있어?”
-네~.
난 유진이에게 밤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제부터는 박찬식 대표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 안에 끝낸다.’
그렇게 결심한 난 우선 에브리데이를 통하여 박찬식 대표에 관한 일정부터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15일]
-PM 02:00 KBC 박찬식 대표 연임 축하 화환 배달.
역시나 방송국의 대표는 이 정도로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없나 보다.
그렇다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내가 아는 정보를 이용해 그를 끌어내리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다.
‘한유식 전 KBC 전무한테 연락해야겠네.’
한유식은 2년 전 박찬식과 더불어 KBC 대표의 자리를 노리던 인물이다.
그는 인품이 좋아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기에 모두가 한유식을 차기 KBC 대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박찬식 대표의 간교한 술수에 빠져 KBC에서 해고를 당해버렸다.
원치 않은 퇴사를 당한 한유식은 그 이후에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안개 낀 비밀의 섬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을 다룬 드라마 <연무(煙霧)>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난 지금부터 그를 만나 2년 전 박찬식 대표에게 당한 억울함을 풀자고 할 생각이었다.
박찬식 대표가 없어야지 <연무(煙霧)>는 훨씬 더 많은 지원을 받을 테니 말이다.
“자~ 가볼까?”
난 주차장에 댄 차에 시동을 걸고 한유식 대표의 제작사인 청담동 ‘미리내’로 향했다.
* * *
KBC 대표이사실.
대표이사인 박찬식은 임직원들을 모아 오늘 밤 첫 화가 방영되는 <정희왕후>의 홍보를 강요하고 있었다.
이번 <정희왕후> 성공에 자신의 연임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KBC 산하 케이블에서도 밤까지 광고 좀 더 때려! 아직 노출도가 낮잖아!”
박찬식의 말에 대표이사실에 모인 편성 국장과 드라마 국장 및 각종 부서의 장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정희왕후>의 OST인 낙화(落花)가 대표이사실에 울려 퍼진다.
『칼날에 흩어진 붉은 꽃에~
선조의 영령이 떨어지네~』
왕권을 잡기 위해 비정한 칼날을 휘두르는 비정함이 주된 가사로 된 노래였다.
그런데 회의 중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박찬식이 발끈하고 외친다.
“누구야!”
모여 있던 국장을 비롯한 CP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벨 소리는 바로 박찬식 대표의 품에서 나고 있었으니까.
결국 태은종 드라마 국장이 조심스레 말한다.
“저기 대표님 안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인 거 같습니다.”
“그래?”
무안한 상황이지만 박찬식 대표는 사과하지 않고 폰부터 확인했다.
[발신자 : 이규진 부장]
“잠깐들 조용히 좀 해 봐.”
문화부 이규진 부장은 박찬식 대표의 측근.
몇 주 전부터 <화란전> 측의 약점을 캐기 위해 뛰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이규진 부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찬찬히 말해 봐. 무슨 큰일?”
-현상범이 사고를 쳐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기자가 경찰에 체포돼? 한심하긴! 그걸 보고만 있어? 애들 보내서 당장 빼내!”
-그게······ 그러니까······ 그러려다 다른 문화부 기자들도 다 같이 체포되었습니다.
“뭐?”
-막아보려고 했는데 정윤호 그 새X 때문에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저희······ 지금 방송도 타고 있습니다.
박찬식은 아찔해졌다.
MBS는 오늘 <정희왕후>와 경쟁할 <화란전>이 방송되는 방송국.
없는 죄도 만들어 보도할 놈들에게 약점을 잡혔다.
박찬식은 전화를 든 채 태은종 국장을 향해 외쳤다.
“야! 태 국장. 당장 MBS 뉴스 좀 틀어봐. 어서!”
“아 예.”
태은종 국장이 다급히 MBS 채널을 튼다.
TV에서 <5시 MBS 뉴스>가 나오고 있다.
MBS의 안태식 아나운서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중이다.
-오늘 천호동 경찰서에 KBC 기자들이 침입해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KBC 기자로 알려진 피의자가 초등학교 예비소집을 하는 정미소 양과 정유진 양을 찍겠다며 초등학교의 담을 넘었습니다. 피의자는 교실로 침입하려다······.
난동.
월담.
침입.
하나 같이 부정적인 단어들이 섞인 보도가 무려 5분 동안이나 이어진다.
그리고 동영상 속 정유진과 정미소는 모자를 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기자에게 맞서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기자가 ‘악당’이고 정유진과 정미소는 ‘정의의 사도’ 같은 구도였다.
“뭐야······ 이······ 이건!”
영상을 보던 박찬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연임은 물거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박찬식이 빽하고 외쳤다.
“야. 이 부장. 이 일은 네 선에서 정리해야겠다.”
전화기 너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표님! 설마 절 버리시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현상범 그 새X 한테 다 뒤집어씌우라고. 알겠어? 그리고 괜히 그놈 하나 지키려다 여럿 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현상범 기자를 버리라는 말에 이규진 부장이 마지못해 답한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 이쪽에서도 자네는 빼주고 법무팀도 총출동시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러면 좀 빨리 보내주십시오. 이러다 다 죽겠습니다.
“아 알았다니까!”
씩씩대며 전화를 끊은 박찬식은 이어서 인터폰으로 법무팀에게 지시를 내렸다.
“법무팀 전원 천호동 경찰서로 출동해. 그리고 추가 보도부터 막아 애들 빨리 빼내고.”
당황한 박찬식의 겨드랑이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인터폰이 다시 한번 울린다.
이번에는 홍보실의 연락이다.
-대표님. 지금 각종 커뮤니티에서 ‘정희왕후’와 KBC가 집중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뭐?”
-KBC 기자가 화란전의 주인공인 정유진과 정미소를 노리고 초등학교까지 따라 들어가 폭력을 휘둘렀다는 내용이 게시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관리자들한테 지우라고 하는데 잘 먹히질 않습니다. 기사도 하나둘 올라오고 있고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박찬식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야! 안 되면 돈이라도 뿌려! 그리고 기사 못 쓰게 기자들한테도 압박 넣고!”
<정희왕후>의 첫 방송까지는 고작 4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시청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결국 박찬식은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아니다. 커뮤니티에 글 올리는 것들 법무팀에 말해서 싹 다 고소해! 허위 기사 쓰는 놈들도 싹 다 고소하고!”
박찬식은 자신도 모르게 불에다가 기름을 들이붓고 있었다.
* * *
난 한유식이 대표이사로 있는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로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한유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해당 번호는 고객님의 사정으로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어······.]
‘응? 뭐지?’
드라마의 편성을 앞둔 제작사 대표는 절대 폰을 끄지 않는다.
편성을 잡기 위해 방송국과 수도 없는 미팅을 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마음에 난 제작사 ‘미리내’의 유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한번······.]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제작사 대표와 제작사 전화가 동시에 안 되는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망했군.’
수도 없이 많은 드라마 제작사는 늘 자금난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편성을 받지 못한 드라마 제작사는 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미리내’에서 제작 중인 안개가 끼는 섬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을 다룬 <연무(煙霧)>는 한유식의 라인들이 여전히 KBC에 남아 있기 때문에 편성이 안 잡힐 리가 없었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보니 당최 현재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미리내’의 제작실장이던 현종연 실장을 겨우 수소문해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현 실장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하아~ 소식 못 들으셨구나. 저번 주에 저희 부도났어요.
“예? 왜요? 편성만 잡히면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랬었죠.
“그런데 왜요?”
-그게······ 저······ 박찬식 대표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요.
어이가 없게도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가 망한 건 박찬식 대표의 장난질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일에는 나 역시 조금은 연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