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44화 에필로그
어느 햇살 좋은 가을 아침·
삐비빅! 삐빅!
탁·
“····”
스마트폰의 알람을 끈 남자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골격이 좋은 상반신은 아직도 잠에 취한 듯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출근 화이팅!”
큰달 류건우였다·
그는 빠르게 침대에서 벗어났다· 원래 알람도 테스타의 노래였으나 모닝콜로 지정해둔 곡은 느낌이 변질되기 쉽다는 말에 얼른 그만뒀다·
‘평소에도 많이 들을 수 있으니까!’
큰달은 7급 공무원이던 언제나처럼 얼른 씻고 시리얼을 꿀꺽꿀꺽 들이켜고선 옷을 입었다·
다만 본래는 ‘출근복’이라고 한다면 검은 정장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네·”
그는 웃으며 소매를 만졌다·
면바지에 단정한 셔츠를 걸친 그는 차라리 과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대학생에 가까운 복장이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이 정도의 격식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좋은 곳인 것 같아·’
오르빗 스타즈 엔터테인먼트·
테스타의 회사이기도 한 그곳으로 그는 기운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시내버스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큰달은 익숙하게 맨 뒷자리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테스타 서울 첫콘에서 동물잠옷들ㅠ (직캠)
-요원청우 솜인형 수요조사합니다·
-우리 애들 빌보드 인터뷰 하나 더 떴어요! (링크)
테스타의 리믹스 활동은 끝났다· 하지만 그들이 이륙해 놓은 성과와 이야기들이 끝없이 흘러넘쳤다·
문화훈장을 이번에 탈 것 같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에서 심상치 않게 나왔으나 자신의 SNS는 그런 언급 없이 그저 테스타로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큰달은 기분 좋은 얼굴로 타임라인을 내리다가 자신에게 온 DM도 하나 확인했다·
-콘서트표 정말 감사합니다 빅문님··ㅠㅠ 다시 생각해도 진짜···
콘서트 초대권을 받았던 SNS 친구는 아직도 간헐적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가끔은 기프티콘도 함께 보내줘서 좋게 거절한 것도 몇 번이었다·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고등학생이셨지·’
게다가 자신이 콘서트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라고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간식까지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큰달은 잠시 동공을 떨었으나 곧 기분 좋게 답장했다·
‘아니에요! 즐겁게 보셨다니 기뻐요ㅎㅎ’
타임라인에는 그 외에도 테스타와 관련된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은하수처럼 넘쳤다·
연차를 써서 생일 카페에 갈 거란 사람 일상에서 테스타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은 일에 행복해하는 사람 우울한 날에 영상을 보고 기분을 푼 사람····
큰달 본인은 몰랐지만 건너 건너 연결된 몇몇 홈마의 잡담용 계정들도 있었다·
-이세진 예능 출연하면 불러주세요
-ㅠㅠㅠ문대 머리 잘랐구나 우리 문대의 병지컷과 장발을 추억하며·· (사진)
-저 이번 투어도 미국 공연 한번 가려구요!ㅎㅎ 휴가 모으기 돌입···
“오 부럽다·”
그리고 곧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기는 말만 하면 형이 즉각 표를 보내줄····
‘아냐! 의존하지 말자·’
하지만 이미 이번에 서울에서 하는 무슨 무슨 K-POP 종합 콘서트도 표를 받아버렸다····
-이번에도 2장인데 괜찮냐· 일단 보낸다·
-아니 형···· 으윽··· 가 감사합니다·
욕망을 이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큰달은 한숨을 참았다·
그래도 좋은 기분은 어쩔 수 없어서 그는 결국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지 못하며 기분 좋게 타임라인을 갱신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응원글이····’
-김래빈이 콘서트에서 AR 틀어놓고 립싱?ㅋㅋ 루머도 쥐어짜네 불쌍ㅠ 얼마나 라이브 못하는 돌을 빨면 이게 먹힐 줄 알았을까ㅠ 갓기토끼는 다 라이브야 개···
‘으헙·’
그는 얼른 뒤로 가기를 누르며 벗어났다· 타임라인 너머에서 온 살벌함에 진땀이 났다·
래빈 씨의 팬인가?
‘아침부터 활기차시네·’
큰달은 스마트폰을 한번 쓱 쓸어내린 뒤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내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가 내리는 버스의 창 너머로 오르빗 스타즈의 사옥이 보였다·
“건우 씨 오셨네~”
“안녕하세요!”
큰달은 열심히 사무실의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그의 이전 직업 덕에 일종의 경력직 취급을 받는 것 같았으나 현실은 아직 수습 기간에 가까웠다·
아직 출근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부서도 막 생긴 상황이었다·
“이제 우리가 꾸려가야 하는 거죠·”
신생 기획사답게 아직 키우는 연습생은 극소수였고 그것도 다 최근에 들어온 아이들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연습생들을 좀 뽑으려고 하는데 요새 또 적당한 애들이 많지 않아서·”
“레티 거기는 데뷔도 잘 안 시켜주면서 애들 어떻게 그렇게 홀라당 데려가나 몰라·”
수완이 사기꾼 수준이라며 동료가 투덜댔다·
LeTi는 오래된 대형 기획사인 데다가 현직인 VTIC의 이름값이 지난 몇 년간 워낙 대단했던 덕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또 판이 달라졌지만!”
테스타의 최근 성적에 싱글벙글 웃는 것은 비단 그쪽 담당 부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테스타가 있는데·”
“그럼요· 무조건 오겠죠!”
그들의 대화를 경청만 하던 큰달도 뿌듯한 기분에 어깨를 살짝 폈다·
그래 우리 형이 그렇게 대단한····
“···래서 건우 씨·”
“네?”
순간 말을 놓친 그가 되묻자 친절하게 상사가 다시 말해준다·
“일단 오늘은 길거리 캐스팅 감만 좀 볼까요?”
어어?
어어어?
* * *
‘맙소사·’
그렇게 ‘류건우 직원님’은 이 오전에 인근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물론 진짜 큰달이 누군가를 잘 캐스팅해 오길 기대하고 보낸 건 아니었다· 평일 오전은 중고등학생을 보기도 힘든 시간 아닌가·
-감만 한번 보고 오세요· 감만!
그냥 그가 지난 일주일간 거의 휴일도 없이 일했으니 오전 몇 시간 넉넉하게 농땡이 칠 수 있도록 빼준 거라고 귀띔받았다·
‘괜찮은데!’
게다가 실은 농땡이라고 부르기도 뭐 했다· 큰달은 혼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려 캐스팅 참고용으로 연습생 하나를 붙여줘서 함께 외출한 것이다····
“····”
‘그리고 지금까지 별다르게 캐스팅하고 싶은 사람도 못 봤어····’
괜히 연습생만 많이 걷게 만든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울 정도였다·
그렇게 큰달은 터벅터벅 걷다가 툭 어깨가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아뇨·”
고개를 돌리자 같이 외출한 연습생의 얼굴이 보였다·
잘생겼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학교 근태··· 아니 출석 일자를 의심할 것 같은 묘한 날 티가 났다·
그리고 큰달은 왠지 약간 불안해졌다·
아무리 연습생이라도 지금은··· 학생들은 보통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 학교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학교는··· 혹시 안 가세요?”
“오늘 개교기념일이에요·”
휴 그렇구나·
의외로 순순히 대답한 학생에게 조금 안심하며 큰달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침 타이밍이 맞았는지 전광판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렀다·
‘나온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이걸 보기 위해 연습생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근처 지하철역 안에서 멈췄다·
큰달은 숨을 골랐다·
[테스타(TeSTAR) WORLD TOUR Official Trailer]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씩 웃으며 눈을 뜨는 차유진을 시작으로 화면이 빨려 나가듯 넓어진다·
와아아아!
함성 속에 잡히는 건 광활한 주 경기장·
바로 테스타의 이번 콘서트 세계 투어 프로모션 비디오였다·
몸을 날리는 7인의 군무 화려한 무대 장치 뜨겁고 격정적인 라이브와 넘치는 끼····
지하철 전광판의 저화질에서도 마치 불처럼 빛난다·
‘보러 오길 잘했어·’
형에게 이걸 보러 갈 거라고 문자까지 했던 게 좀 부끄럽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저기·”
옆에서 연습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테스타 선배님이요· 실제로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 그러니까····”
“네·”
큰달은 빨려들 듯 화면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요·”
콘서트를 기억한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흡입력과 빛을·
물론 큰달은 이제 상태창이 아니며 더는 아이돌의 능력치를 등급으로 보여주는 홀로그램 창을 띄우지도 못한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볼 수 있었다·
테스타라는 가수의 힘이·
프로모션 비디오에 뜨는 저 출연진 소개 자막처럼 선명하게·
[차유진]
화면에서 붉은 금발의 사람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블랙홀 이목을 집중시키는 에너지와 끼·
폭발적인 무대 퍼포먼스가 시그니처처럼 뇌리가 각인되게 만드는 아이돌·
장난스러움 너머 핵심을 찌르는 듯한 육감이 그의 태도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 열기 어린 얼굴 뒤로 바통 터치되듯 다음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백안에 볼 점이 있는 퇴폐적인 인상의 퍼포머·
[김래빈]
그가 솔로 인트로곡을 마이크 하나 든 채 잡고 질주하는 장면이 화면에 가득 찼다·
그렇게 무모하도록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까지도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곡으로 빛나게 만드는 놀라운 예술적 재능·
또 서늘한 외양과 상반되는 따듯하고 예절 바른 태도가 오묘한 캐릭터를 만든다는 점도 무대 밖의 색다른 매력이었다·
그리고 다음 멤버도 그런 매력을 가졌다·
[배세진]
단정한 외양으로 선보이는 놀라운 연기력은 호소력에 가깝게 화면을 채운다·
그의 연기력은 연기 활동에서만 돋보이지 않는다· 놀라운 표현력이 무대 스토리의 질을 올려주었다·
춤 노래의 기반이 전혀 없던 데뷔 전과 지금 뛰어나도록 성장한 그의 모습을 비교하면 소름이 돋을 것이다·
그렇게 배세진이 얼마나 이 팀의 무대에 헌신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때마다 비슷한 감동이 찾아올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헌신하는 이 팀을 지탱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류청우]
체격 좋은 몸과 성대에서 나오는 흔들리지 않는 정석의 힘· 구심점·
그게 퍼포먼스의 균형을 잡고 무대 전체의 초점을 잡았다·
류청우가 센터에 설 때마다 느껴지는 안정감· 그리고 자신감· 그걸 기반으로 삼아 약간 짓궂은 대담함도 마다하지 않는 것까지 모두가 매력적이었다·
팀을 지탱하는 심지·
그리고 그런 심지를 가진 사람이 팀에 하나 더 있었다·
[선아현]
화면에서 길쭉한 팔과 다리가 우아한 선을 그린다· 다리로만 물구나무서듯 화려한 턴과 함께 독무가 포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잡혔다·
타고난 무용수 또 타고난 미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어마어마한 외양·
하지만 사실 역경을 이겨낸 단단함과 강인함이 아이돌 선아현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뒤를 잇는다·
[이세진]
무대를 가르는 퍼포먼스를 하는 그 얼굴에서 희열이 스쳐 지나갔다·
큰 체격에서 주는 위압감이 아이돌다운 춤 선과 어우러지며 짜릿한 적절함을 선사했다·
긴 세월 열렬히 고민하고 연습해 갈고 닦아낸 기량이 보석처럼 빛난다· 그가 아이돌로서 느끼는 만족감만큼 쾌감이 시원하게 화면을 채운다·
그리고··· 그만큼 시원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린다·
바로 마지막 멤버·
[박문대]
화면에서는 마이크를 들어 올리며 씩 웃는 아이돌이 보인다·
땀방울이 빛에 반사되듯 흩날린다·
넘치는 가창력 감수성 넘치는 음색과 홀을 가득 채우는 발성· 메인보컬의 미덕은 모두 갖춘 아이돌·
그러나 보컬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지켜볼수록 독특한 성격에서 재치 있는 발상 놀라운 행동 같은 것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가령 냉정하고 이성적인 면모와 상반되는····
무대와 관객에 대한 사랑·
[TeSTAR]
박문대의 웃는 얼굴을 끝으로 프로모션 비디오는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콘서트 무대는 카메라 속에서도 눈을 사로잡는 그 별빛 같은 반짝임을 바래지 않았다·
어느 날의 직캠처럼 말이다·
“····”
어쩐지 가슴이 찡했다·
문득 시선을 돌리니 옆의 소년도 넋이 나간 듯이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아이돌 지망생····’
···그 모습을 보니 캐스팅이라는 게 어떤 일인지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어떤 기준을 잡아야 하는지 말이다·
큰달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테스타 좋아하세요?”
“····”
옆에 선 소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큰달은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테스타 나오는 콘서트 표가 있는데 보러 갈래요?”
“···!!”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는 연습생에게 K-POP 종합 콘서트의 여분 표를 줘서 돌려보냈다·
‘응· 이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려던 것도 프로모션 비디오를 다시 나오는 순간 잊어버렸다·
“전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갈게요·”
그리고 나서도 그는 광고판을 보고 잠시 서 있었다· 다시 돌아올 테스타 투어 비디오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였다·
“후우·”
이윽고 순서가 또 돌아와 전광판에서 영상이 나오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툭툭·
누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연습생이 다시 돌아온 걸까?
“아 두고 간 거라도 있····”
“박문대·”
숨도 쉬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후드를 푹 눌러 쓴 사람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깔끔히 자른 검은 머리가 하얀 얼굴을 덮고 있는 남자·
테스타 박문대·
“답장도 안 보더니 여기 있었냐·”
그의 형은 역에서 자신을 찾느라 꽤 걸렸다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쓱 웃었다·
“왜 여기···?”
“너 오늘도 출근 날이라고 해서 점심이라도 같이하자고·”
“어어억!”
“애들 기다리고 있다·”
“자 잠시만요!”
이윽고 류건우는 박문대와 함께 지하의 역사에서 뛰어나갔다·
햇살이 반짝였다·
-에필로그 完